Chapter 83 - 83. 따라쟁이 (3)
"저게···뭐야."
혼란 속에 살아남은 한 생존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벤치 뒤에서 고개를 살며시 내밀어 출구 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과 지금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숨은 곳의 거리는 약 20m.
생각보다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나는 풋살장 안에 있는 생존자들이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이내 해결되었다.
질퍽!
그것이 점액질이 흐르는 팔을 바닥으로 짚으며, 옥상으로 완전히 들어왔으니까.
"······!"
나는 그것의 형체가 보이자마자 고개를 다시 벤치 뒤로 숨겼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나는 심연에 있던, 엘리베이터 통로를 타고 올라온 존재의 외형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인형을 녹인 후 강제로 이어 붙이면 저런 모습일까.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뒤엉킨 채 하나로 뭉쳐진 듯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마치 누더기처럼.
질척질척한 밀가루 반죽처럼 흘러내리는 몸통, 마구잡이로 붙여놓은 수많은 팔과 다리, 예상치 못한 위치에 달린 사람의 얼굴,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는 물갈퀴 달린 손바닥, 손가락들···.
그리고.
형체의 정면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존재하는 커다란 입.
쩌어억-
그 입이 위아래로 크게 벌어지며,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사로잡은 먹잇감을 먹기 좋게 토막 내기 위한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끔찍하고 기괴한 그 모습을.
[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그륵-]
턱- 턱- 턱- 턱- 턱- 턱-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를 어색하게 흉내냈다. 그리고 거대한 덩치에 달린 수많은 팔과 다리로 바닥을 짚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앞을 못 보나?'
바로 앞에 풋살장에 들어 있는 먹잇감들이 있는데 그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바닥과 벽을 더듬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아니면 재미를 위한 장난질?'
느리지만 착실히 풋살장을 향하는 모습에 수원 고등학교에서 만난 거미 변종처럼 죽이기 전에 가지고 노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살려주세요! 배고파요! 아빠!]
게다가 시각이 아예 없다면 이곳까지 오는 통로는 어떻게 기어 올라왔겠는가.
시각은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다만 지금 저 괴물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아마도.
'···아직 바깥의 빛에 적응하지 못했나?'
지금 하늘은 구름이 가득 끼어 있기는 해도 심연의 어둠과 비교하면 매우 밝은 수준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긴 해도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도망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로 들어섰다면, 저 괴물과 중간에 마주쳤을 거라는 것이다.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통로는 한정적이었으니까.
질퍽- 질퍽- 질퍽-
질퍽!
[아빠. 여기 없어? 이상하다···이상해]
그것, 아니 누더기 변종이 커다란 몸을 이끌고, 마침내 풋살장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을 때.
두려움과 공포에 머리가 잠식된 한 생존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오지 마! 오지 마아아악! 나가! 이 괴물 새끼야!!"
그 순간.
[···찾았다]
부우웅-!
누더기에 달려 있던 수많은 손 중 하나가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빠르게 휘둘러졌다.
덥석-!
"커억! 놔아아-! 케에엑!"
잡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크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은 순식간에 소리를 낸 생존자를 낚아채서 들어 올렸다.
버둥버둥-
콰직!
뚝- 뚝-
생존자는 발버둥 치며 반항했지만, 변종의 괴력에 머리통이 산산이 부서지며 조용해졌다. 축 늘어진 몸을 타고 새빨간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쩌어억-
우적우적- 빠드득- 빠득- 우직- 우적-
누더기 변종의 커다란 입이 생존자를 한입에 삼키고 잘게 씹자 비릿한 혈향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맛있다맛있다맛있다맛있다맛있다맛있다]
그리고 누더기 변종이 씹을 때마다 중얼거리는 소리를 풋살장의 생존자들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꺄아아악!"
"시바아알! 나갈 거야! 나갈 거라고!"
"오늘 죽을 것들은 다 죽었는데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지금 공포에 미쳐서 날뛰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은 누더기 변종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조용히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저들은, 이성이 마비된 저들은 그런 행동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맛있어더먹을래더먹을래더줘더더!]
누더기 변종은 엘리베이터 통로에 있던 나무 인간 변종들의 피보다 훨씬 신선한 살아 있는 사람의 피를 맛보자 더욱 흥분하며 수많은 손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쾅! 쾅! 쾅! 쾅!
철그럭- 철그럭- 철그럭-
"아아악!"
변종의 괴력이 담긴 손이 바닥과 철망에 부딪힐 때마다 사람들 또한 그 소리에 지지 않는 비명을 질러댔다.
"비켜!"
"다 꺼져! 개새끼들아!"
생존자들은 서로 먼저가겠다고 저희들끼리 밀치며 출구로 우르르 몰려갔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더한 절망이 깃들었다.
그도 그럴게, 풋살장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에는 누더기 변종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극도로 시야가 좁아진 이들의 최후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배고파아아···]
덥석! 콰직!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의 끝이 그저 한낱 변종의 먹잇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누더기 변종은 손에 무언가 잡히는 대로 입으로 밀어넣었다. 그것이 생존자이건, 인조 잔디 타일이건 변종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닥치는 대로 입에 넣고 씹을 뿐.
콰앙!
후두둑!
간혹 잡는 것보다 높게 치켜든 손으로 내려찍을 때는 사람들의 형체가 산산 조각나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우적우적우적우적우적- 콰직! 까드드득-
"사, 살려-"
"아아악!"
억센 이가 가득 난 입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사람들의 살점과 뼈가 뚝뚝 끊어지거나 터져 나가며 새빨간 피가 변종의 턱을 타고 흘러 바닥에 고였다.
이내 풋살장 안에는 살점과 뼈를 씹어먹는 소리만 남아 우리들의 귓가를 자극했다.
"······."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여전히 벤치 뒤에 숨어 풋살장에서 일어나는 학살극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혹시 저것이 숨소리를 들을 까 봐 최대한 옅게 숨을 내쉬면서.
유해를 어떻게든 빼내겠다고 버텼다면 지금 나도 저 꼴이 되었겠지.
지수와 예린의 꼬리는 심각한 상황을 인지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지만, 애초에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나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이 셋이나 있었으니까.
「비겁해. 네 옆에 있는 것들이랑 저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들이 무슨 차이가 있다고?」
속삭임을 애써 무시한 나는 그녀들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말만 속으로 되뇌었다.
꺼으윽-
질퍽- 턱- 턱- 질퍽-
요란한 식사를 마친 누더기 변종은 거하게 트림을 하더니 다시 수많은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사방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아니, 지금은 눈이 엄청 안 좋나 봐요. 어두운 곳에 있다가 와서 그런가?"
내 옷깃을 꽉 쥐고 있는 한세아가 작게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여 동의했다.
"네. 그리고 후각도 좋진 않은 것 같습니다."
"후각도요?"
"코로 보이는 기관도 안 보이고, 생존자들을 찾을 때도 청각이나 촉각에만 의지한 걸 보면···."
"확실해요? 확실해야 해요."
한세아가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나는 지금껏 내가 겪은 경험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다 보았다.
나무 인간과 거미 변종.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후각 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위험에 처한 상황이 한둘이 아니었지.
만약 저 누더기 변종에게도 후각 기관이 있었다면, 굳이 사냥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청각에만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누더기 변종의 배 속에 들어간 생존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냄새가 가득 풍겼었으니까.
하지만 겨우 그 정도 근거를 가지고 확실하냐고 묻는다면.
···확실하진 않다.
나는 한세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하진 않고 그냥 추측입니다. 그래도 가능성은 꽤 높아요."
"그럼 일단 후각도 가지고 있다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저도 현우씨처럼 저것이 후각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도박을 하기에는 저희 손에 걸린 게 많잖아요."
"···그렇죠. 제가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세아씨 말이 맞아요. 성급하게 굴면 안 되죠. 후우···."
킁킁-
나와 한세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무언가가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렸다.
"······!"
우리는 화들짝 놀라면서 누더기 변종을 바라보았지만, 킁킁거리는 소리는 그쪽이 아니라.
'···내 옆?'
고개를 돌리니 지수가 쉴 새 없이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 공기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리를 낸 것이 지수라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지수가 후각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더기 변종이 후각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한세아와 이야기를 나눌 때 하필 냄새 맡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빨리 나가야 하는데···."
지수가 초조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녀는 나를 다급하게 툭툭 치며 불렀다.
"아저씨. 빨리 여기서 벗어나서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해."
"그건 나도 알고 있지만···."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머리 속에는 지금 그 생각뿐일 것이다.
나는 벤치 틈 너머로 풋살장과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살폈다.
핏자국이 낭자한 풋살장의 인조 잔디 바닥, 뭉개진 살점이 더럽게 묻은 철조망, 변종이 미처 주워 먹지 못한 사람의 신체 부위들···.
그리고 지독한 혈향과 역겨운 하수구 냄새가 서로 뒤섞여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질퍽- 질퍽-
당장에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느새 출구에 자리 잡아 문을 틀어막고 있는 누더기 변종 때문에 유일한 출입구가 막힌 상황이다.
"···곧 비가 올 거야."
지수가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했다.
"······!"
나는 지수의 말에 급하게 고개를 위로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과연, 지수의 말대로 구름이 가득 꼈던 하늘이 점차 검게 변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여기는 비를 피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 고스란히 비를 다 맞게 될 거라고. 이래서 빨리 나가야 한다고 한 건데···."
지수가 예린을 품에 안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를 맞는 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저 누더기 같은 게 비를 맞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 ···훨씬 더 공격적이고 빨라지겠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아저씨는?"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야.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에 나는 골머리를 싸맸다.
확실히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반추해 보면, 비가 내리는 상황은 절대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밖에 나가는 것을 망설임 없이 포기할 정도로 사람에게 위험한 환경이 조성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지하 터널과 엘리베이터의 수직 통로에 자리 잡은 도롱뇽 변종들.
지상에 뚫려 있는 굴들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숨구멍 역할을 하든, 분출구 역할을 하든.
"씨···. 그쪽 때문이잖아요! 당신이 말리지만 않았으면 이런 걱정 안 해도 됐을 텐데!"
지수가 한세아를 흘겨보며 불만을 토해냈다. 한세아는 지수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요. 지수씨."
"아니요. 세아씨는 잘못 없어요. 그때 출구로 가지 말라고 한결정은 제가 내린 거니까요. 방금 지수도 본심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지, 지수야?"
나는 분위기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개입했다.
지수가 한세아에게 불만을 표한 것은 답답한 상황에 매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보호 본능이 불쑥 튀어나온 거겠지.
그리고 한세아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통로를 기어 올라오고 있던 누더기 변종과 마주쳤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우리가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은 누더기 변종이 옥상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닌 중간에 경로를 틀어 우리 앞길을 막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는 말이다.
비록 지금 우리는 이곳에 고립되고 말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목숨을 구해 준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응. 미안, 아저씨."
"사과는 내가 아니라 세아씨한테 해야지."
"······죄송해요. 아줌마."
"···아줌마?"
이상하다.
분명 서로 사과를 주고받고 화해를 할 타이밍이었던 것 같은데 분위기가 다시 과열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나는 지수와 한세아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쉿! 통성명은 나중에. 일단 최대한 여기서 조용하게 있으면서 버텨봅시다. 저 누더기 변종도 여기에 온종일 있지는-"
후두둑-
후둑- 후두두둑-
"···이런."
나는 머리 위를 때리는 물방울에 입을 다물었다.
처음 한 두 방울은 맛보기였다는 듯, 떨어지는 물줄기는 순식간에 거세게 변해 지면을 강타했다.
쏴아아아아아-
세찬 비가 내린다.
투명한 빗물은 인조 잔디에 배인 핏물들을 쓸어 담아 배수구로 밀어 넣었다. 인조 잔디는 붉은색에서 벗어나 처음의 초록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화가 시작된 것은 인조 잔디의 색만이 아니었다.
거세게 내리는 비가 사방에 습기를 퍼트렸고.
그와 동시에.
지하의 군락지가 지상을 넘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