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5 - 85. 도주 (1)
[끼에에에엑!]
[끄라아아아아아악!]
[나가! 여기서 나가!! 다 죽여 버릴 거야!]
쾅쾅쾅! 콰직! 콰드드득!
나는 풋살장에서 들리는 소란을 뒤로하고, 한세아와 함께 6층으로 내려왔다.
지나가면서 흘깃 본 엘리베이터 문 주변에는 끈적한 점액질이 무자비하게 달라붙어 질척하게 흐르고 있었다.
쏴아아아···
건물 옥상에서 내부로 들어오자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아저씨! 나 따라와! 내가 지냈던 곳으로 가기만 하면 돼!"
"알았어! 거기가 어딘데?"
"선로! 수원역 선로에 있는 무궁화호! 거기로!"
지수가 앞장서서 뛰어가며 우리가 가야 할,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한세아가 들어왔던 길을 역으로 따라 지나가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 순간, 지수가 나와 정반대 길목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옆에 붙어 있는 AK플라자로 이어진 비밀 통로로.
지수는 심연이 도사리고 있는 AK&몰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로.
"지수야! 어디가?!"
나는 당황하며 급하게 지수를 멈춰 세웠다.
지금 저 밑으로 가려고 한 건가?
끝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구멍이 뻥 뚫린 저 밑으로?
"이쪽 길이 제일거리가 짧아! 아저씨야말로 어디 가는데?"
"나? 나는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로 가려고-"
"빙 둘러서 갈 시간 없어! 아저씨! 이번에는 내 말대로 해!"
하지만 이 밑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간단 말인가.
내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한세아가 내 손을 잡으며 지수에게 이끌었다.
"현우씨! 이번에는 지수씨 말대로 해요! 어차피 현우씨랑 제가 들어온 통로는 이미 막혔을 거예요!"
그와 동시에.
두두두두두두-!
[끼에에에엑!]
[캬아악! 크아아악!]
내가 가려고 했던 방향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들렸다. 도롱뇽 변종들의 괴성과 함께.
[깔깔깔깔깔깔깔!]
우적- 우적- 우드득- 콰직!
옥상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변종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뼈와 살을 씹는 소리와 함께.
"이런 씹! 빨리 갑시다! 미안, 지수야! 가자!"
선택지가 두 개는 있는 줄 알았건만, 사방에서 조여 오는 죽음의 소리에 아래로 내려간다는 선택지만 남고 말았다.
나와 한세아는 몸을 돌려 지수와 예린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문득, 플라자 건물 쪽에 있던 도롱뇽 변종들이 왜 한 박자 늦게 이곳으로 오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의자 바리케이드가 효과가 있었나?'
플라자 건물 6층 엘리베이터 통로를 콱 틀어막은 나와 한세아가 만들었던 의자 바리케이드.
물론 그곳으로만 도롱뇽 변종들이 뛰쳐나오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그 장애물들이 약간의 시간을 벌어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도롱뇽 변종들의 파도가 몰려오는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곳에 있는 모든 도롱뇽 변종들이 한꺼번에 옥상으로 몰려왔다면,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미처 자리를 피할 틈도 없이 놈들의 마수에 목숨을 잃고 말았을 테니까.
타타탓! 타탓-!
어느새 도착한 에스컬레이터 끝 부분.
갈색으로 변한 핏자국들과 말라비틀어진 나무 조각들이 에스컬레이터 바닥 틈 사이에 어지럽게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
막상 이곳으로 가자고 했던 지수도 그것들을 보자 얼굴이 희게 질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바리케이드를 타 넘었다.
"아저씨, 빨리 넘어 와! 예린이도 언니 손잡고 조심해서 넘어오자."
침대 매트리스, 철제 선반이나 책상 등 여러 가구로 이루어진 바리케이드.
먼저 넘어간 지수를 제외하고, 예린, 한세아, 나 순으로 장애물을 넘어 에스컬레이터 디딤판에 발을 올렸다.
쿵-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두고 오거나 놓친 거 없는지 확인해요!"
도끼, 쇠지렛대, 도구 가방은 옥상에서 챙겨왔다.
하지만 총과 유해 막대기는 챙기지 못했다.
총은 포자에 잡아먹혀 더 이상 쓸 수 없어져서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유해 막대기를 잃어 버린 것은 뼈 아픈 손실이었다.
하지만.
지수, 예린, 한세아의 목숨을 걸고 유해 막대기를 되찾으러 갈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기도 하고.
"없어! 이제 그냥 바로 내려가기만 하면 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번에도 지수가 핸드 레일을 손으로 쓸면서 앞장섰다.
나머지 일행이 그녀를 뒤따라가면서 정신없이 내달려 건물 1층을 향해 움직였다.
빠각! 바스락! 바드득!
쿵- 쿵- 쿵-!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나무 조각이 박살나는 소리와 신발 밑창이 금속 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 층을 내려갈 때마다 위에서 투과되는 미약한 빛마저 사라지면서 우리들의 주변에는 점점 어둠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하늘에는 비구름이 가득 낀데다가, 태양이 저물고 있는 저녁 시간대라 옥상에 있어도 그다지 밝지는 않았었지만.
그리고 AK&몰 각 층에 도롱뇽 변종들이나 다른 나무 인간들이 숨어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건물은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발을 내딛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이 건물 자체가 누더기 변종의 영역이라 다른 괴물들이 없는 건가?'
누더기 변종이 탄생하기 전에는 지상은 무주공산이었겠지만, 지금 지상은 누더기 변종의 영역이다.
지상은 누더기 변종의 영역.
지하는 도롱뇽 변종의 영역.
다만 비가 내리는 상황 탓에 도롱뇽 변종의 영역이 지상까지 확장되었고, 그 이유로 영역이 겹치게 되면서 누더기 변종과 도롱뇽 변종이 서로 충돌하게 된 것 같았다.
이윽고.
우리는 아무 일 없이 건물 6층에서 2층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거의 다 왔어! 좀만 더 가면···!"
그때.
끼긱-
에스컬레이터 디딤판이 비틀렸다.
"······!"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지수가 화들짝 놀라면서 달리는 것을 멈췄고, 황급하게 발을 에스컬레이터 스커트 가드 위로 올려 몸을 지탱했다.
"왜 그래? 뭐 있어?"
나는 지수의 반응을 보고 쇠지렛대를 들며 사방을 경계했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저씨! 밑에···! 밑에 조심해!"
지수가 도끼로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래?'
"현우씨! 에스컬레이터 안에 뭐가-!"
내가 시선을 아래로 돌리는 것과 동시에 한세아의 경고 섞인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미처 끝맺어지지도 못한 채 상황이 벌어졌다.
끼긱- 끼기기긱-
꿀렁- 꿀렁-
에스컬레이터 디딤판이 금속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우직- 꽈드드득! 우득!
그리고 디딤판과 스커트 가드의 벽 사이로 사람의 팔이, 아니 나무 인간들의 팔이 비집고 튀어나와 이리저리 뒤틀리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디딤판의 양 끝에서 삐져나온 팔들은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이리저리 사방으로 휘적여졌다.
[끼에에에엑···!]
[크아아아악!]
나무 인간들의 괴성이 들려오는 에스컬레이터 밑.
바닥에서 솟구치는 팔과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드는 혐오스러운 소리.
마치 이 광경은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게, 생자를 자신들과 똑같이 망자로 만들어 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지옥의 한 폭 같았다.
혹은 물 대신 검은 금속이 물결치는 삼도천이거나.
"힉!"
"괜찮아. 괜찮아."
예린이 바로 옆에 있는 한세아를 꼭 안으며 고개를 돌렸다. 한세아가 예린을 마주 안으며 토닥였다.
'어둡고 습한 곳을 찾아서 들어간 건가?'
어쩌다 에스컬레이터 안에 나무 인간들이 빨려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이걸 지켜볼 시간은 없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지수야! 그냥 가! 이것들 밑에서 나오지는 못 하는 것 같다!"
나는 발을 바닥으로 내딛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지수에게 말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씹더니 앞으로 크게 도약했다.
쿵-! 우직! 우득!
우드드득!
지수가 디딤판을 강하게 밟자, 불룩 튀어나온 디딤판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튀어나온 팔을 산산이 부러뜨리는 소리가 났다.
"조심해서 따라와! 잡히지 않게!"
"예린이라고 했지? 언니한테 와!"
지수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앞으로 돌려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만 한세아는 안심이 되지 않는지 예린을 들어 품에 안고 달렸다.
예린도 한세아에게 몸을 완전히 기대는 것을 보니 짧은 사이에 마음을 연 것 같았다.
쿵! 쿵! 쿵! 쿵! 쿵!
나는 그녀들을 뒤따라가면서 바닥을 딛는 발에 힘을 더 줘 디딤판을 강하게 밟았다.
[끄아아아악-!]
우직-! 우직-! 우지직-!
버둥버둥-
디딤판이 강하게 눌릴 때마다 나무 인간들의 괴성과 함께 에스컬레이터 계단 앙 끝으로 나온 팔들이 부러지고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격하게 파닥거린다.
간혹 두 팔 사이로 지나갈 때, 놈들의 손가락 끝이 우리들의 신발 표면을 긁고 지나갔지만.
빠각! 빠드득!
오히려 그럴수록 팔에 붙어 있는 나무 껍질들이 바스라지면서 에스컬레이터의 틈을 메웠다.
이미 나무 인간들의 팔은 뒤틀릴대로 뒤틀렸기 때문이다.
부우웅!
퍼억! 쩌어억-
지수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팔이 걸리적거리는지 도끼를 휘둘러 팔을 조각내며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심연이 한층 더 가까이 보이는 1층에 도달했다.
1층 에스컬레이터에는 디딤판 하나가 빠져있었는데 이 틈을 통해 나무 인간들이 에스컬레이터 내부에 갇히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빈틈을 응시하며 혹여나 나무 인간들이 빠져나올까 봐 경계했지만, 다행히 나무 인간들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다들 이상없지? 안 다쳤지?"
꿈틀거리는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아닌 단단한 건물 바닥을 밟자 안심한 지수는 황급히 몸을 돌려 우리들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어어. 우린 다 괜찮아. 지수 너는? 너도 어디 안 다쳤지? 네가 제일 앞장섰잖아."
"응. 아저씨. 나도 괜찮아. 다들 무사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
"좋아. 이제 이 건물에서 나가기만 하면···."
내가 일행이 전부 무사하다는 것에 한결 안심하며 수원역 선로가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슈우우욱!
쿵! 쿵! 쿵!
으직! 콰직! 뻐억!
철퍽-!
위에서 무언가 공기를 무겁게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끈적한 점액질이 사방으로 튀었다.
"······!"
추락한 것의 정체는 세 마리의 도롱뇽 변종.
[끄르르르르르···]
푸르르!
그것들은 머리를 거세게 흔들었고, 이내 떨어진 충격의 여파에서 벗어난 도롱뇽 변종들이 우리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도롱뇽 변종들의 눈에 깃든 것은 강렬한 살의와 식욕.
당장이라도 우리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정말 쉽게 가는 일이 없네. 세아씨, 예린이 데리고 같이 뒤로 물러나요."
"넵! 조심해요!"
한세아가 내 말에 예린을 꽉 안은 채로 주변을 경계하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나는 한세아가 그나마 안전한 후방으로 빠진 것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야. 나 좀 도와줘야겠다."
그와 동시에 쇠지렛대를 뾰족하게 세우며 지수에게 작게 말했다.
"걱정 마. 나도 충분히 한몫 할 수 있으니까.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좋아. 네가 최고야."
"나만 믿어. 아저씨."
후웅-! 후웅-!
지수는 몸을 풀 듯 도끼를 붕붕 돌렸고, 이내 도끼 자루를 양손으로 강하게 쥐어 공격을 대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츠르르르르륵-!
세 마리의 도롱뇽 변종들이 점액질을 뿜으며 바닥을 타고 순식간에 기어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