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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86화 (87/497)

Chapter 86 - 86. 도주 (2)

[끼에에에엑!]

[크르르르르···!]

[이이이익!]

도롱뇽 변종이 다가온다.

그것들은 도롱뇽 특유의 긴 꼬리로 몸의 중심을 잡으며 몸에서 뿜어지는 점액질을 이용해 뱀처럼 바닥을 기어 오고 있었다.

타앗!

이윽고, 세 마리의 도롱뇽 변종들이 순식간에 접근하며 바닥에서 위로 솟구쳤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와 지수를 위에서부터 덮쳐 짓누르겠다는 모양새.

나는 손에 감겨 오는 금속 막대기의 서늘함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제일 선두에 있는 도롱뇽 변종의 머리를 향해 쇠지렛대를 아래에서 위로 있는 힘껏 올려쳤다.

빠악-! 철퍼덕!

[케에엑!]

턱을 강타한 쇠막대에 의해 배를 드러낸 채로 뒤집어진 도롱뇽 변종.

하지만 나는 다시금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힘이 안 들어갔어···.'

쇠지렛대. 속칭 빠루.

쇠지렛대는 그렇게 효율이 좋은 무기는 아니다.

통짜 쇠로 이루어져 있어 무게는 꽤 나가지만, 도끼와 다르게 무게 중심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서 휘두르는 힘에 비해 타격력이 약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손잡이가 따로 없는 쇠지렛대는 부딪치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들고 있는 손으로 전달되고 만다.

또한 도롱뇽 변종들은 넓은 면적을 때리는 타격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옥상에서 1층까지 바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움직이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 떨어질 때 사방으로 비산한 점액질이 일종의 완충제 역할을 해준 것이겠지.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쇠지렛대로 후려친 도롱뇽 변종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놈의 턱과 쇠지렛대가 맞부딪치는 순간, 변종이 뿜어내는 점액질이 순간적으로 응고되며 힘을 흐트리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반동은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고, 그 탓에 아직도 떨리는 손이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강하게 쥐었다.

[깔깔깔깔깔깔깔!]

쾅! 쾅! 콰직! 콰드득!

[크아아악!]

누더기 변종과 도롱뇽 변종의 사투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위에서는 영역 다툼이 한창인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도롱뇽 변종들의 빈틈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내 생각을 멈추고 급하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키아아아악!]

바싹 붙어 뒤따라오던 또 다른 도롱뇽 변종이 물갈퀴 달린 손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파앙!

물갈퀴 막과 대리석 바닥이 부딪치니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사방으로 비산한 점액질이 바닥의 먼지와 뒤섞여 한층 더 더러워진 모습을 자랑했다.

내가 뒤로 물러난 그 순간.

"이야압-!"

콰직!

[끼에에에에···]

"우선 하나! 아저씨! 둘 남았어!"

지수가 소방 도끼의 피크 부분으로 후미에 있던 도롱뇽 변종의 머리통을 완전히 내려찍어 터트렸다.

인간의 머리를 잃어 버린 도롱뇽 변종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축 늘어트렸다. 간혹 신경이 살아 있는 듯 긴 꼬리가 꿈틀거렸지만 사후 경직에 불과해 보였다.

"잘했어!"

"이것들 물속에서나 무섭지, 여기서 보니까 별거 아니네!"

지수가 자신감에 차서 소리쳤다. 나는 그녀의 활약에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옅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전방으로 고정했다.

그래. 너희들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는 물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롱뇽 변종들은 물속에서 눈으로 쫓지 못할 속도를 자랑했지만, 이곳은 수면 밖이라 그런지 눈이 놈들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다.

물 밖으로 벗어난, 영역 다툼의 힘 싸움에 밀려 이곳으로 떨어진 네놈들 정도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어.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 주는 지수와 함께라면 도롱뇽 변종 한 둘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어.'

[아기기긹-!]

내게 턱을 얻어맞은 도롱뇽 변종이 어느새 몸이 뒤집었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타격이 소용없다면, 내려찍어서 찔러 죽이면 그만이다.

타타탓! 타탓-!

나는 'ㄱ'자로 휘어진 끝부분을 손으로 감싸며 일자로 쭉 뻗은 부분을 앞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놈을 향해 내달렸다.

"흐읍!"

쐐애액!

이윽고, 도롱뇽 변종의 앞에 도착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높게 든 쇠지렛대를 놈의 눈에 박아 넣었다. 아니, 박아넣으려고 했다.

휘릭!

어느새 제자리에서 뒤돌아 나에게 긴 꼬리를 휘두른 도롱뇽 변종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퍼억!

하필이면 내려찍기 전이라 가드가 풀렸고, 도롱뇽 변종의 꼬리는 가로 막는 것이 없는 내 가슴팍을 곧장 강타할 수 있었다.

"커헉!"

휘둘러진 무거운 꼬리의 중량에 의해 기껏 모은 숨이 모두 빠져나갔다.

우당탕!

"현우씨!"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나와 지수가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세아가 애타게 나를 불렀다.

"크으윽!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서둘러 상태가 양호하다는 말을 전했다.

지수는 도롱뇽 변종 한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우며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별거였다.

'···방심하지 마. 조급하게 굴지마.'

나는 지수처럼 동물적 감각이 강화된 것도 아니다.

내게 있는 것은 오직 예전보다 조금 더 강해진 근력뿐.

그렇기에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최대한 도박을 하지 않는 쪽으로 변종을 상대해야 했다.

비록 물 밖의 도롱뇽 변종이 물 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고 하더라도, 변종 특유의 비정상적인 괴력만큼은 동일했으니까.

그리고 언제부터 였을까.

심장 쪽이 묘하게 욱신거린다.

도롱뇽 변종의 꼬리에 얻어맞기 전에도 뻐근했으니 그 전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가만히 몸을 숙여 숨어있던 옥상에서 벗어나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푸른 조각에서 기적이 일어났을 때 찰나에 불과했지만 심장이 콱 조여지는 느낌을 받았었으니 그때부터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심장이 아프기 시작한 시기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살의를 드러내고 있는 도롱뇽 변종을 죽이는 것이다.

그녀들을 지키기 위해서.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전방에 있는 도롱뇽 변종을 노려보았다.

그때.

툭-

지수가 어깨를 맞대며 내게 작게 물었다.

"아저씨! 괜찮은 거 맞지?"

"어. 괜찮아."

나는 괜찮다.

괜찮아야만 했다.

상황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길목을 막고 있는 나와 지수.

우리 일행을 죽이려는 두 마리의 도롱뇽 변종.

다만 상대해야 할 것이 셋에서 둘로 줄어드니, 중압감이 한결 덜해졌다.

그리고 놈들은 자신들의 동료 하나가 맥없이 죽은 모습을 보더니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크르르르···]

[······츄릅]

대치 상황을 이어가던 중, 나는 도롱뇽 변종 중 하나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수야. 내 기준 왼쪽에 있는 놈 보이지? 나한테는 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두워서 확실하지가 않네. 너는 어때 보여?"

"눈이 없는 건지는 나도 확실하지는 않은데, 일단 두 눈 다 감고 있는 건 확실해."

누더기 변종과 싸움의 여파로 두 눈을 잃게 된 것인지, 아니면 변이가 불완전하게 끝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저놈이 시각을 잃어 버렸다면, 후각과 청각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후각보다는 청각에 더 집중을 하고 있겠지.

쏴아아아아아아-

비에 푹 젖은 우리에게는 약간의 땀 냄새가 나긴 하지만. 주변을 잠식한 물내음과 동일한 냄새가 더 강하게 나고 있었으니까.

"내가 눈이 안 보이는 놈 시선 끌어 볼게. 그리고 혼자 남은 놈 동시에 상대하자."

"좋아. 아저씨만 믿을게. 신호 줘."

나는 몸을 천천히 낮추며 바닥에 널린 돌조각 하나를 주워들었다.

"신호는 이게 바닥에 떨어질 때야. 이해했지?"

지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나는 손에 들린 돌조각을 굴리다가 이내 멀리 힘껏 던졌다.

휙!

빙빙 돌아가며 앞으로 날아가던 돌조각은,

···따악-!

대리석 바닥과 부딪치며 빗소리를 뚫고 쪼개지는 소리를 냈다.

[······아긹!]

털퍽!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도롱뇽 변종이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크게 도약했다.

계획대로 일이 풀린 것을 확인한 우리는 자기 동료가 탈주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도롱뇽 변종을 향해 내달렸다.

부우웅!

콰직! 콰악!

[끼아아아악!]

나는 지수가 도끼의 피크로 변종의 머리를 노릴 수 있도록 도롱뇽 변종의 꼬리를 밟는 것과 동시에 쇠지렛대를 놈의 몸에 박아 넣었다.

까그극-!

쇠지렛대의 단단한 금속이 변종의 살점을 뚫고, 변종의 뼈를 어긋나게 만드는 감각이 손으로 곧장 전해졌다. 소름끼치는 감각이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쇠지렛대를 더 깊숙이 박아넣었다.

물렁함과 딱딱함이 같이 느껴졌다.

"어딜!"

도롱뇽 변종은 반항하며 특유의 괴력으로 나를 밀쳐 내려고 했지만, 지수의 도끼가 놈의 머리를 파고드는 것이 더 빨랐다.

콰드득!

푸슉!

두개골이 둘로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변종의 체액이 갈라진 틈으로 내뿜어졌다. 놈은 처음에 죽었던 도롱뇽 변종과 마찬가지로 발작하다가 몸을 축 늘어트리게 되었다.

콱!

혹시 몰라 확인 사살을 위해 쇠지렛대를 도롱뇽 변종의 머리에 다시 한번 박아 넣었다.

단단한 금속 막대기가 제 몸을 헤집어도 미동도 하지 않는 변종.

그 반응에 이놈 또한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그제서야 나와 지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씩 웃었지만 상황이 일단락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시되는 도롱뇽 변종 한 마리가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철퍽! 철퍽! 철퍽!

놈은 동료의 단말마를 들은 후 급하게 몸을 돌려 다시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홀로 남고, 시각 기관을 잃은 변종을 상대하는 것은 지금까지 했던 일에 비하면 매우 쉬운 일에 속했다.

콰직!

"이제 끝이지? 하아."

"후우우-. 어. 진짜 끝."

마지막 도롱뇽 변종까지 처치한 나와 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예린과 한세아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우씨!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 없죠?"

한세아는 예린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가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내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네네. 걱정 마세요, 세아씨. 멀쩡합니다. 여긴 별일 없었죠?"

"죄송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에이, 예린이 지켜 주신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나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한세아에게 손사래를 쳤다.

"언니! 오빠!"

예린의 얼굴에도 안도의 기색이 가득 찼다. 나는 예린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아이의 꼬리가 살랑거렸다.

그때.

"···누가 보면 아저씨 혼자 싸운 줄 알겠어요."

지수가 나를 걱정하던 한세아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한세아가 흠칫 몸을 떨며 어색한 손동작으로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 지수씨도 고생 많았어요."

"흥."

"하하···. 일단 빨리 나갑시다! 위에서 도롱뇽 변종들이 또 떨어질지 모르잖아요. 자자. 얼른!"

또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조성되려는 느낌에 나는 서둘러 이곳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했다.

"맞아! 언니, 나 추워."

"알았어. 가자. 가서 옷 갈아입자."

예린의 지원사격에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무궁화호가 있는 곳은 이쪽이에요. 저 따라오세요. 예린아, 이제 언니 손잡고 갈까?"

"아니! 세아 언니 손잡고 갈래!"

"······알았어."

나와 지수가 도롱뇽 변종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한세아가 예린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통성명을 나눈 것 같았다.

예린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세아를 매우 친근하게 여기고 있었다. 벌써 한세아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것을 보면.

[직원 전용 출입구]

이윽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 선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힘차게 문을 열었다.

벌컥!

[깔깔깔깔깔! 아빠! 왜 그래? 꺄하하하핫!]

위에서 들리는 누더기 변종의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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