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89화 (90/497)

Chapter 89 - 89. 무궁화호 (3) - 1부 끝

[키아아아아!]

[크아아아악!]

[아이에에엑!]

사방에서 도롱뇽 변종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

사방에서 도롱뇽 변종들이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들린다.

쏴아아아아아-

투투투툭- 후두둑-

다시 거세게 변한 빗줄기가 객차 유리 창문을 두드린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어차피 창문 커튼을 쳐서 내부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성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몸을 더욱 움츠렸다.

나는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왜 이렇게 많이 살아남았지?'

지금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만 들어도 하나, 둘 정도의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폐허와 혼돈 속에서 적어도 수십 마리 정도의 물량이 살아남았다는 현실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무너진 지하 터널, 주저앉은 수원역과 그 부속 건물들, 구멍이 막혀 버린 굴들.

그리고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잡아먹었던 검은 불길.

'대체 어떻게···.'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옥상에서 누더기 변종과 싸우던 도롱뇽 변종들의 수는 최소 스무 마리는 족히 넘었었다.

그렇다면 지하 터널에 그 정도의 물량만 있었는가?

'···아니.'

또한 우리가 옥상에서 벗어나 도주 경로를 정하고 있을 때, 플라자 건물에서부터 한 무리의 도롱뇽 변종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발소리만 들어도 그 수 또한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렇다면 플라자 건물의 무리를 합치면 지하 터널에 있던 군락지와 수가 비슷해지는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퉁

무궁화호 객차의 천장이 옅게 울렸다.

"······!"

나와 지수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바라보았다.

순간 착각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수의 귀가 쫑긋거리고 그녀의 시선이 천장에 고정된 걸로 보아하니 착각이 아닌 무언가 확실하게 천장에 올라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무언가는 도롱뇽 변종이겠지.

······퉁 주르륵- 철퍽-

끈적한 점액질이 빗물과 함께 창문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선로 주변의 자갈밭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퉁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질퍽! 질퍽! 질퍽-

금속판을 내딛는 소리가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셋에서···.

더 이상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발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온다.

"······."

"······."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방음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빗물에 푹 젖은 옷이 주는 한기도 잊을 만큼 몸이 바싹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똑똑-

창문을 노크하듯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끄그그그그극···]

똑똑똑똑똑똑똑-

한 마리의 도롱뇽 변종이 유리를 두들기기 시작하니 자기 동료를 따라 창문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왼쪽에서.

똑똑-

오른쪽에서.

똑똑-

위에서.

똑똑-

사방에서.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놈들에게는 그저 한 번씩 두들기는 행위에 불과하겠지만, 객차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도롱뇽 변종들의 손에 의해 혹여 유리가 깨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져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지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다.

그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을 오들오들 떨며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지수의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불안함에 탁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지수를 내 품으로 끌어당겼다.

처음에는 내 손이 어깨에 닿자 흠칫 놀라던 그녀였지만, 이내 저항 없이 오히려 더 바싹 붙어왔다.

쏴아아아아-

쿵! 쿵! 쿵!

두근! 두근!

빗소리 사이로 지수와 내 심장 소리가 겹쳐 들린다.

"저것들이 여기로 들어오면 어떡해···?"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지수가 고개를 들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안 들어올 거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모두를 여기로 데려왔는데, 나 때문에 다치거나 죽으면 어떡해?"

"······."

"차라리 여기 말고 좀 멀더라도 안전한 건물로 들어갈걸···. 괜히 급해서 수원역하고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쉿! 괜찮아. 괜찮아. 네가 여기로 데려와서 오히려 다행이었지."

나는 지수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그녀를 달랬다.

"너는 최선을 다 했어. 너무 걱정 하지마. 아무도 안 다칠 거야."

"응···."

감각이 좋다는 것은 듣고 싶지 않은, 원하지 않는 정보들까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는 소리다.

바깥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나와 달리 지수는 이 근방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대부분 다 듣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공포에 질린 것이겠지.

눈을 감았다가 뜨니, 지수의 호박색 눈동자가 바로 앞에서 보였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살살 두드려주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살살 닦아주었다.

나도 지금 상황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를 의지하는 사람이 있는 한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깊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쿵! 쿵! 쿵!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여전히 거세게 박동할 뿐이었지만.

쯔즉- 쩌억- 퉁 퉁 철퍽!

[······츄릅]

도롱뇽 변종들이 점액질을 뿜는 손을 객차의 금속판과 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끈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금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와서 옥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비가 와서 객차에 묻은 우리들의 냄새가 지워졌으니까.

물론, 도롱뇽 변종들이 객차 주변을 점거하지 않았다면 제일 좋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 좀 가라.

제발 좀 가.

뚝- 뚜두둑- 기기기기긱! 카카카카캉-!

선이 뚝뚝 끊어지는 소리와 철판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객차의 금속판 구겨지는 소리가 아닌걸 보니 아마도 이 소리는 선로에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전신주가 휘어지고 부러지는 소리일 것이다.

쿠웅-!

파바박!

[크아아아악!]

[끼아아아악!]

퉁퉁! 철퍽! 철퍽!

전신주가 자갈밭을 내려찍자, 도롱뇽 변종들이 발광하며 날뛰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전신주는 우리가 있는 무궁화호 쪽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넘어진 것 같았다.

만약 쓰러진 기둥이 무궁화호를 강타해서 유리가 깨지거나 했다면, 새로 생긴 틈에 흥미를 가진 도롱뇽 변종들이 들어오고 말았을 것이다.

"아저씨···."

나는 지수를 더 꽉 끌어안으며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그녀의 입을 막았다.

"나한테 기대. 소리 듣지 마. 눈도 감아."

그리고 지수의 귀를 내 손으로 감쌌다.

쿵! 쿵! 쿵!

그녀가 바깥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오직 내 맥박 소리만 들을 수 있게.

내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놈들의 소리 대신 내 박동으로 지수의 귀를 채워줄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서 숨을 내쉴 때마다 나와 지수의 호흡이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아, 하아."

"후우···."

지수의 떨림이 멎어간다.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패닉이 왔을 때와 비교하면 떨림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짐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짐을 덜어 주는, 서로에게 의지를 할 수 있는 동료였다.

그러니까 내가 지수에게 기대는만큼, 지수도 내게 기대기를 바랐다.

내가 지수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나와 지수가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안심시키고 있을 때.

[키아아아아아악!]

퉁퉁퉁퉁-

찰박! 찰박! 찰박!

철퍽-

객차에 올라탄 도롱뇽 변종들 중 하나가 길게 울부짖더니 그것들의 소리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도롱뇽 변종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서성거리다가 처음에 우르르 몰려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우르르 물러났다.

쏴아아아아아-

찰박찰박찰박찰박···

이윽고.

물 튀기는 소리와 함께 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숨소리뿐.

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아직 그것들이 떠난 것이 확실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상 한 시간은 지났을 무렵, 그리고 지수의 떨림이 완전히 멎었을 무렵.

"끝났다. 진짜로 간 것 같아. 하아···."

"드디어···."

지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상황의 종료를 알렸다. 그녀가 몸의 긴장을 풀며 내게 몸을 완전히 기댔다.

"다행이야."

지수가 작게 웅얼거렸다.

"어. 다행이지. 지수 네가 우리를 구했네. 이번에도. 여기가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고마워."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하지만 지수는 잠자코 듣기만 하라는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

"이번에는 내가 아저씨를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

"아저씨가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야."

"······."

"우리가···. 흑,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지수는 떨림이 진정된 것이 무색하게 재차 어깨를 가늘게 떨기 시작했다.

옥상에서 나누지 못한 재회의 기쁨과 안도.

그것들이 위기 상황이 완전히 일단락되자 뒤늦게 한꺼번에 찾아온 것 같았다.

남들 앞에서는 언제나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였지만, 적어도 나와 있을때 만큼은 본 모습을 보여주는 지수였다.

그 뒤로 긴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 살며시 안아주며 각자의 심장 박동을 몸에 새겨줄 뿐.

지수는 상황에 밀려 조금 늦었지만, 고개를 들어 힘겹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호박색 눈은 물기에 젖어 어두운 상황에서도 보일 만큼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살아서 보자는 약속을 지켰다.

지수는 웃으면서 보자는 약속을 지켰다.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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