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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100화 (101/497)

Chapter 100 - 100. 화서역 (3)

내가 화서역에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역 근처의 위치한 호매실지구와 정자지구 같은 택지지구에 사는 주민들이 많아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 많이 붐빈다는 것 정도.

수원역에 가장 인접한 역이니 유동 인구가 많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지금은 과거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리고 지수가 보여 주었던 지도를 떠올리니, 좌측에는 공원이 있고, 우측에는 아파트 단지와 학교 부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것이 기억났다.

양측에 높게 세워진 담벼락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지도가 틀리진 않을 것이다.

"흐음."

지수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멀리 보이는 역사 건물을 바라보았다. 귀가 조심스럽게 쫑긋거렸다.

[화서역]

파란 글씨의 간판이 벽면에 붙어 있는 역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화서역의 모습 또한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 인간들 소리가 들려. 수는 셋에서 넷 정도. 그보다 더 많을수도 있어. 소리가 겹쳐 들리고 있어서."

전방을 살펴본 지수의 말에 나와 한세아는 몸을 바싹 굳혔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저수지를 끝까지 지나칠 때까지 우리가 우려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기에 무사히 화서역에 도착한 우리는 긴장이 풀리던 참이었다.

이제는 다시 긴장을 할 때였지만.

우리는 이내 눈앞으로 다가온 화서역 승강장의 모습을 보며 각자 무기를 들어 앞세웠다.

[끄르르르륵···]

[키이이-]

빠드득··· 빠그극-

틀도 남기지 못한 채 완전히 박살 난 스크린 도어, 거기서 떨어진 유리 조각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조각을 밟으며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들.

2층 대합실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간혹 무언가 쌓여 있는 걸 보니 이곳을 지나간 군인들이 임시로 만들어둔 바리케이드인 듯했다. 혹은 생존자들이 만들었거나.

화서역에는 오직 싸늘한 죽음의 분위기만 풍기고 있었다.

돌아다니는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나무 인간들 보고 생명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저것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니까 도롱뇽 변종들은 이곳으로 안 온 모양이야. 그것들 흔적도 안 보이고."

지수가 작게 한 말에 나, 예린, 한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 인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은 적어도 저것들이 이곳에서 제일 위험한 존재들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저수지 근처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면 우리는 오히려 꼼짝도 할 수 없었을 것이리라.

"어떻게 할 거야, 아저씨? 그냥 다 죽여 버려? 아저씨랑 내가 힘 합치면 죽이는 건 쉬울텐데."

지수가 살벌하게 빛나는 도끼날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현재 우리가 지나가야 할 길목을 막고 있는 나무 인간들은 총 셋.

죽이고자 한다면 셋 정도는 지수의 말대로 큰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아니, 죽이더라도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해야 해요. 위랑 옆을 보세요."

한세아가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대합실과 금속 담벼락을 가리켰다.

"2층 대합실이랑 양 옆 담벼락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지금 승강장 쪽에 있는 건 셋 뿐이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나무 인간들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한세아의 의견이 옳았다.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고.

고작 셋에 불과할 뿐이지만, 한 마리씩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다. 놈들이 단말마조차 내지 못하게 말이다.

예기치 못한 소음이 발생하면 근처의 있을지도 모르는 나무 인간들이 전부 이곳, 화서역으로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마요, 세아 언니. 저도 무모하게 싸울 생각은 아니니까요. 바닥에 널린 자갈 던져서 한 마리씩 유인해서 죽이려고 했어요."

"아하."

한세아는 멋쩍게 웃었다. 괜한 말했다고 생각하는 듯했으나 각자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었다.

"그럼 어떤 놈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까?"

나는 일행의 이목을 집중시켜 분위기를 환기했다. 내 말에 일행의 시선이 전방으로 쏠렸다.

[끼이이이이-]

승강장 내부를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 세 마리.

그것들은 사람의 말소리를 내지 못한 채 그저 하염없이 의미 없는 발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발작하듯 인간의 말을 어설프게라도 내뱉었던 나무 인간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행동은 점점 단순하게 변하고 있었다.

행동이 단순해지는 만큼 괴력이 강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생전 인간의 흔적이 사라져만 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르르르···]

[시에에에엑]

빠득- 빠그극- 나무 인간들은 각자 다른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을 밟고 다녔다.

그것들이 입고 있던 옷들은 피부에 난 거친 표면을 가진 나무 껍질에 의해 다 해져서 더 이상 옷이라고 부를 수 없는 넝마로 변해 있었다.

"아까 내가 말한 대로 자갈 던져서 유인 해 보자. 최대한 한 마리씩 데려와볼게. 그리고 저것들 죽인 후에는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어. 저수지는 지나쳤지만 혹시 모르니까."

지수가 바닥에 있는 자갈 하나를 주워 들며 말했다. 나, 예린, 한세아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잘그락- 뚜득-

푸쉬이익···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담벼락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빼곡히 붙어 있는 넝쿨 줄기를 도끼로 갈라 뿜어지는 체액을 온몸으로 맞았다.

"아으···."

끈적거리는 투명한 체액에 젖은 한세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지만.

꿈틀거리는 넝쿨이 기분 나쁘기는 해도 넝쿨이 뿜는 체액에는 약간의 위장 효과가 있기도 한데다가 넝쿨 더미에 몸을 숨기기에도 용이하니까 꼭 해야만 하는 절차였다.

"세아씨는 예린이랑 같이 여기에 꼭 숨어계십쇼. 넝쿨 체액도 뒤집어썼으니 당장은 들키지 않을 겁니다."

"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뇨. 각자 역할이 다른 거니까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한세아와 예린이 넝쿨 더미에 몸을 숨긴 것을 확인한 후,

"···던진다?"

지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끄르르르르르···]

우선 우리가 처음 노리는 건 나무 인간 세 마리 중 제일 가까이에 있는 놈.

"어. 던져."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손에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망치가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활약할 시간이 아니었다.

나무 인간의 머리를 한 방에, 최대한 조용하게 쪼개거나 뚫을 수 있는 건 지수가 가진 도끼가 유일했으니까 말이다.

바로 그때.

휙!

지수가 던진 자갈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따악!

까드드득!

[끄륵?!]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던 나무 인간의 머리에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자갈. 갑작스러운 외부 자극을 느낀 나무 인간이 목관절을 기괴하게 꺾으며 반응했다.

휙! 휙! 휙!

잘그락-

그리고 지수가 연이어서 자갈을 던졌다. 이번에는 나무 인간을 맞추는 목적이 아닌 유인을 위한 목적으로 던져진 자갈. 그것은 나무 인간의 발치에 떨어졌다.

[끄르르르르!]

빠득- 빠드득- 부스스-

계속해서 근처에 떨어지는 자갈을 인식한 나무 인간이 서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비틀리는 관절 부분에서 가루가 떨어졌다.

"···준비해. 온다."

"응. 만약 내가 빗나가면 다음은 아저씨야."

"걱정하지마."

어느새 우리가 숨어 있는 넝쿨 더미 코앞까지 도달한 나무 인간.

까드득- 까드득-

나무 인간의 고개가 이리저리 돌려진다.

[흐으으으-]

놈의 역겨운 숨소리가 들린다.

'지금!'

내가 속으로 외친 것과 동시에.

쐐애액!

지수가 도끼를 있는 힘껏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콰직!

묵직한 도끼날은 나무 인간의 머리를 사정 없이 가르며 놈의 울대가 있는 곳까지 반으로 갈라버렸다.

[·········!]

순간 경직이라도 걸린 듯 부들부들 떨리는 나무 인간의 팔과 다리. 다행히 우리가 의도한 대로 소리는 전혀 내지 못했다.

털썩-

잘그락!

나무 인간의 몸은 이내 힘을 잃고 자갈밭으로 쓰러졌다. 자갈밭이 살짝 짓눌리며 소리를 냈다.

"하아- 하아-."

나무 인간이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지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실수없이 놈을 한 방에 죽인 덕분에 나까지 나설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셋 중 하나를 처리했을 뿐, 아직 두 마리가 남아 있으니 멈출 시간은 없었다.

"지수야. 힘들면 내가 할까? 망치는 잠깐 네가 들고 있고."

나는 심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지수가 걱정되어 그리 제안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아니. 내가 해야지. 아저씨는 내가 빗나가면 망치들고 처리해주기로 했잖아. 무기를 바꾼다면 아저씨가 빗나갔을 때 내가 망치를 휘둘러야 하는 건데. 나는 망치는 자신없어."

"알았어. 빗나가더라도 내가 확실하게 처리해 줄 테니까 너무 부담감 갖지마."

"나만 믿어, 아저씨. 걱정하지 말고. 나도 아저씨 믿으니까."

지수가 씨익 웃으며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긴장은 했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은 그 모습에 나도 웃어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오냐. 다음 놈 유인하자."

그 뒤로, 남아 있는 두 마리의 나무 인간을 처리하는 것은 일사천리였다. 지수의 도끼가 빗나가는 일은 없었고, 내 망치가 공기를 무겁게 가르는 일도 없었다.

승강장을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들은 전부 처리한 상황.

나는 숨을 죽인 채 나와 지수를 지켜보고 있는 한세아와 예린을 손짓으로 불렀다.

"헉!"

쪼르르 달려 나오는 두 사람을 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던 나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지수도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조그맣게 벌렸다.

"···언니. 체액이 마를 때까지 겉옷 입고 있어야겠는데요."

이내 자기 상체와 번갈아 가면서 보던 지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힉!"

한세아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지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고, 화들짝 놀라며 가슴팍을 가렸다.

뜯어진 넝쿨 줄기 사이에 파묻힌 탓인지 줄기에서 체액이 계속 흘러나왔고, 그 체액이 한세아의 상의를 완전히 적셔버린 것이다.

···그 덕에 상의가 한세아의 몸에 착 달라붙게 되니 그녀의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크흠!"

나는 괜스레 어색하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예린도 한세아만큼 젖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예린은 처음에 묻힌 체액을 제외하고는 별로 묻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 한세아가 예린을 품에 넣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자, 나무 인간도 다 죽였으니 바로 성균관대역으로 가죠. 벌써 해가 중천을 넘어갔어요. 이 속도대로라면 의왕역까지는 못 갈 것 같은데."

생각보다 벌써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겨우 세 마리뿐인 나무 인간을 죽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탓이었다.

한 마리를 유인하고, 죽이고, 또 한 마리를 유인하고, 죽이고의 반복적인 행동.

그러다가 멍청한 나무 인간이 다른 곳으로 정신이 팔릴 때면 유인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배로 들었었다.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갈 길이 먼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잘그락- 잘그락- 빠득- 빠드득

자갈과 유리 조각이 부딪치는 불협화음을 들으며 선로를 따라 걷고 있을 때, 따스한 손 하나가 내 손을 맞잡아왔다.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현우씨도, 지수씨도."

한세아.

그녀가 안도감이 서린 얼굴로 내 손을 잡은 것이었다. 그녀의 이마에도 나와 지수 못지않게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잠시뿐이었지만 한세아가 느꼈을 불안감이 이해가 되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했겠지.

여기서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너무 걱정 하지 마십쇼. 잘해낼겁니다. 저도, 지수도, 예린이도. 그리고 세아씨도. 어제 세아씨가 저에게 해준 말처럼 저희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마주 잡은 손을 꽉 잡아주면서 웃어 주는 것.

어색하게나마 웃어 주면서 안심시켜 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래.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그리고 무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끊임없이 발버둥칠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모든 숨탄것들의 숙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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