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1 - 101. 성균관대역 (1)
성균관대역 승강장 한복판.
"······씨발."
나는 한 시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지수, 예린, 한세아는 바싹 굳은 얼굴을 한 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내 앞에 놓인 머리를 잃은 외팔이 남성의 시체.
데구르르-
머리는 저만치 굴러가고 있다.
뚝- 뚝-
내가 들고 있는 도끼에서 뚝뚝 떨어지는 새빨간 피.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던 사람을 내 의지로 죽였다.
아니, 정확히는 방금 막 죽은 사람의 머리를 도끼로 벴다고 한 것이 옳았다.
머리를 부수지 않으면 죽은 시체가 되살아나 나무 인간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성균관대역에 도착한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잠시 과거로 되돌려야 했다.
***
성균관대역에 도착했을 당시.
"···현우씨."
한세아가 떨리는 목소리를 나를 불렀다. 지수는 입술을 짓씹으면서 예린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나는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지금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성균관대역의 처참한 모습에 몸을 바싹 굳힐 수밖에 없었다.
무너진 스크린 도어, 흩뿌려진 유리 조각, 꿈틀거리는 넝쿨 줄기.
여기까지는 화서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도 겨우 그 정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지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산(山).
시체들의 산.
승강장을 가득 메운 시체들의 산이 있었다.
시체들에게서 나온 체액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바닥에 고여 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끔찍한 참상에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몸을 바싹 긴장시켰다.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성균관대역 북부역사는 거대한 뿌리에 의해 무너져 있었다. 하얀 벽을 가졌을 북부역사는 갈색으로 변한 핏자국들로 인해 잔뜩 더럽혀져 있었다.
휘이이이-
싸늘한 바람을 타고 비릿한 혈향이 가득 느껴진다.
끼익- 끼익···
[수원 천안급행 ②→]
간신히 매달린 안내판이 바람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흔들린다.
성균관대역와 화서역의 상태는 서로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적어도 화서역에는 시체들이 쌓여 있지 않았으니까.
어째서 갑자기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지, 어째서 성균관대역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를 조사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했다.
이미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이곳은 시체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체액이 흘러나오는 걸 보니 시간이 오래 지난 것도 아닌 듯했고.
거리의 청소부인 넝쿨이 아직 시체를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시체들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으니까.
지수가 도끼 끝으로 마구잡이로 쌓인 시체들을 툭툭 건드렸다.
"아저씨, 이거. 사람 아니야. 다 나무 인간들이야."
나는 지수의 말에 시체들의 산에 좀 더 가까이 다가 갔다.
지수의 말대로 시체들에게는 나무 껍질들이 다 붙어 있었다. 여기 죽은 것들이 전부 나무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였다.
만약 이 많은 수의 시체들이 인간인 상태에서 죽었다면, 진작에 되살아나서 승강장 내부를 돌아다녔을 테니 미동도 하지 않는 이것들은 나무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나는 위에서 올라오는 신물을 간신히 삼키고는 다시 시체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이것들을 살펴보면 이 끔찍한 광경을 만든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싶어서.
마구잡이로,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시체들은 온전한 것들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한쪽 팔이 없거나,
한쪽 다리가 없거나,
머리가 없거나,
상체가 없거나,
하체가 없거나,
손가락만 남았거나.
마치 무언가가 한입씩 베어 문 듯이.
"그리고 아저씨, 저기 봐봐."
지수가 눈을 날카롭게 만들며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지점에는 자판기 하나가 엎어져 있었는데, 그것에는 어떤 자국이 하나 남아 있었다.
커다란 손아귀로 내려찍은 듯한 자국.
그 탓인지 자판기는 잔뜩 우그러지고 문이 활짝 열린 채 뒤집어져 있었다.
"······변종."
어느새 내 옆에 바짝 붙은 한세아가 흔적들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여 한세아의 말에 동의했다.
사지가 크게 뜯겨진 나무 인간들은 머리가 남아 있어도 신체가 크게 훼손되면 죽음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았다.
처음 알게 된 정보였지만 그다지 쓸모는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무 인간의 신체를 터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그동안 머리만을 노렸던 이유는 그 편이 나무 인간을 죽이기에 제일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건만.
효율을 따지지 않는 변종은 특유의 괴력으로 나무 인간들을 단순하게 찢어발겨 죽인 거겠지.
물론, 변종이 아닐수도 있지만 나무 인간들을 장남삼아, 혹은 화풀이 대상으로 학살할 수 있는 존재는 변종뿐이었으니까.
또한 자판기에 남은 커다란 손자국은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낼 수 있는 흔적이 아니었고, 묘하게 손자국이 눈에 익은 느낌에 기시감이 들었다.
바로 그때.
"쉿!"
지수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나, 예린, 한세아는 숨을 꾹 참아 입을 다물었다.
지수의 귀가 쫑긋거린다. 이내 그녀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지수가 조금 전에 가리켰던 자판기였다.
"숨 소리가 들려. 희미하지만. 피 냄새도 나는 것 같아. 아닌가? 쌓인 시체들에서 나는 냄새인가?"
일행의 시선이 자판기로 집중되었다. 자판기 주변에는 금속 판과 검은 플라스틱의 잔해가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자판기 내부를 구성하고 있던 장치인 듯했다.
그리고 지수가 자판기에서부터 숨소리가 들린다고 했으니 그 안에 무언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무 인간이든, 무엇이든.
"예린아, 검은 입자가 보여? 자판기나 저 산에."
"자판기에는 안 보여요, 오빠. 저기 산은···. 으음···.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죄송해요. 확실하게 모르겠어요."
"일단 알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꽈악-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망치를 강하게 쥐었다. 지수도 도끼를 양손으로 쥐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판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빠득- 빠드득-
찰-박 찰-박
유리 조각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었다. 바닥에 고인 끈적한 체액이 신발 밑창에 들러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도 긴장감을 올려주는 것에 한몫 했다.
이윽고.
나와 지수가 자판기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지수가 도끼의 피크 부분을 자판기 밑으로 집어넣었다. 그때까지 자판기 안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안에 무언가 있는 것은 확실하건만.
"어떻게 할래? 일단 들어 올려?"
지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살려······."
남성의 목소리가 자판기 내부에서 들려왔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목소리였다.
"······! 들었지?"
"···응. 그래서 어떡할 거야?"
낯선 사람의 말소리에 흠칫 놀란 나와 지수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대처할지 논의했다.
분명히 들렸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하지만 우리는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사람의 말을 하기는 했지만 사람이라고 확정지을 수 없는 노릇이고, 만약 사람이라고 해도 문제다.
기껏 구해줬더니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우리 일행을 위협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비약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숨은 것이 성균관대역을 이 꼴로 만든 존재일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자판기 크기로 보아 많은 수의 사람이 들어 있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수, 예린, 한세아의 목숨을 지켜야만 하는 내게는 신중해야만 하는 선택이었다.
구할 것인가.
구하지 않을 것인가.
"···올리자."
나는 결정을 내렸다. 자판기를 올려 안에 든 사람을 확인하자는 결정을.
구할 수 있다면 구할 것이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참상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던가.
왜 이 역에 있었고, 어디에서 온 생존자인지 알아야 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알았어. 내가 도끼로 밑에 들어 올릴 테니까 아저씨는 밑에 생긴 틈 잡고 버텨줘. 다음에 나도 같이 올리는 거 도와줄게. 세아 언니. 언니는 예린이랑 같이 좀 떨어져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넵. 조심해요."
지수는 내 말에 반대할 만도 하건만, 그저 내 결정을 순순히 따를 뿐이었다. 한세아와 예린이 뒤로 물러난 것을 확인한 뒤 지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둘, 셋 하면 올리는 거야. 알았지?"
"응."
"하나··· 둘··· 세엣!"
"흡!"
끄그그극-
지수의 신호에 맞춰 자판기를 있는 힘껏 들어 올리니 금속판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조금씩 자판기가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흐읍···!"
끼기기기긱!
-쿵!
이윽고, 바닥에 엎어졌던 자판기가 곧추세워졌다.
뚝- 뚝-
그리고 날카롭게 찢어진 금속판들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피를 심하게 흘리고 있는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
한쪽 팔이 없는 남성은 이미 다량의 피를 쏟은 듯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몸에서 뿜어진 핏물에 푹 절여진 옷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매우 더러워 보였다.
성균관대역만큼이나 끔찍한 몰골이었다.
나와 지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정확히는 남자를 함부로 건들 수가 없었다는 것이 옳은 말이었다.
이미 남자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치료해 줄 수 있는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억지로 건들다가는 남자의 상처가 더 크게 벌어질 수도 있기에 그랬던 것이지만 곧 아무래도 상관 없어졌다.
남자는 눈을 자극하는 태양 빛에 의해 잠시 정신을 차리는 듯했으나,
"······손···. 괴물의 손이 너무 많···. 목소리···도망······."
간신히 몇 마디만을 내뱉고는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던 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자판기 내부에 숨어 있던 남자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남자와 대화조차 하지 못했지만.
눈을 완전히 감지 못한 남자의 얼굴에 여전히 남아 있는 깊은 공포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신 답을 해주고 있었다.
"······."
"···죽었어."
지수가 나지막하게 말한 소리에 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어느새 그녀는 도끼를 높게 쳐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방금 죽은 남성을 향해 도끼날이 떨어질 것 같았다.
"저 남자한테는 미안하지만, 죽여야 해. 아니, 죽이는 게 아니라 처리하는 거지. 언제 나무 인간으로 변할지 모르니까. 아저씨도 학교에서 봤잖아. 그러니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머리를, 머리를······."
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 끝말을 흐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예린을 구하기 위해 간 학교에 있던 먹이 주머니들.
그 안에 담긴 시체가 되살아나서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거미 변종이 만들었던 먹이 주머니라서 특이한 경우일 수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내가 할게. 도끼 줘."
나는 지수에게 말했다. 지수가 머뭇거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저씨. 내가 해도-"
"내가. 할게."
"···너무 무리하지 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지수가 그랬던 것처럼 도끼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도끼를 아래로 내려찍었다.
새빨간 도끼날이 공기를 매섭게 가르는 것이 느껴진다.
새빨간 도끼날은 벌써 피를 머금은 것처럼 보인다.
새빨간 도끼날은 새빨간 잔상을 남기며 남성의 목을 향해 날아간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모든 숨탄것들의 숙명이다.
쐐애애액!
우리가 살기 위해선.
'만약 내가 고민하지 않고 자판기에서 그를 구했다면, 그 남자는 살 수 있었을까. ···아니었겠지.'
이미 죽은 저 남자를 다시 한번 죽여야 했다.
···콰직!
***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현우씨."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한세아가 도끼를 강하게 쥐고 있는 손을 감싸 쥐며 위로 했다. 나는 저만치 굴러간 남성의 머리를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도끼 자루를 쥔 손에는 나무 인간의 뻑뻑한 껍질이 아닌 인간의 연약한 살점을 벤 감촉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나무 인간들의 목을 베어 죽여왔음에도, 이미 죽은 사람의 목을 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행위였음에도,
손이 가늘게 떨려오고 있었다.
뒤늦게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것인가.
'이제와서?'
역시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전 괜찮습니다, 세아씨. 지수야, 여기. 도끼 돌려줄게."
"아저씨···."
내가 건넨 도끼를 받은 지수 또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난.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내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들의 표정을 보면 아마도 좋진 않을 것이다.
"하아···!"
막힌 가슴을 애써 큰 한숨으로 뚫었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가 굴러간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빠득- 빠드득-
찰박- 찰박-
유리 조각이 바스러지는 소리와 바닥에 고인 체액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지만, 지금만큼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홀로 떨어진 남성의 머리 앞에 도달했다.
탁- 탁-
그것을 주워 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남성의 머리칼에 묻은 흙먼지를 살살 털어 주었고, 아직 살짝 떠 있는 눈을 감겨 주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머리를 잃은 몸에게, 몸을 잃은 머리에게. 서로를 되찾게 만들어주었다.
다시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남성.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그제서야 죽은 남자를 위해 묵념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고인을 욕보인 나는 죄스러움에.
잠시나마 남자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부디 편하게 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