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05화 (106/497)

Chapter 105 - 105. 덕영대로 (2)

도로 양측에 설치된 가로등과 전봇대.

도로 양측의 시야를 가리는 예전보다 훨씬 커진 가로수들.

좌측과 우측은 시야만이 아닌 나무와 넝쿨로 길 자체가 꽉 막혀 있었다.

오직 뚫려 있는 곳은 아스팔트 도로뿐.

하지만 그마저도 온전하게 뚫려 있지 않았다.

도로 중앙의 가드레일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들이 음산하게 방치되고 있었으니까.

경차부터 시작해서 중형 트럭까지.

아마도 사태 초기에 엔진이 아직 작동을 하고 있었을 때, 남쪽으로 내려가려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일 것이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있는 사거리에서 아래로 쭉 내려간다면 고속도로가 나온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운전자와 그의 가족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최대한 도망치려고 했겠지.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말이다.

앞뒤 상관없이 전부 산산조각이 난 유리창, 찌그러진 차체, 공기가 다 빠진 타이어들, 사방에 흩뿌려진 핏자국들.

갈색으로 변한 핏자국들은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 존재감을 알려 이곳에서 일어난 비극을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만약 계획이 성공했다면, 자동차들이 도로 위에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 아닌 무사히 빠져나가 텅 빈 도로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넝쿨들이 시체들을 전부 먹어 치워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질린 얼굴로 음산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도로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철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보이는 것이 바로 이런 꼴이다.

"···아저씨, 내가 예전에 말했지? 차 밑에 조심하라고."

지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드 모텔에서 편의점으로 향할 때, 예린을 통해 말하기는 했으나 결국, 내용은 같았다.

바로 '차 밑을 조심하라'라는 것.

습한 곳을 좋아하는 나무 인간들이 어두운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무라면 보통 밝은 햇빛을 좋아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들의 껍질에 붙은 검은 이끼탓인지 나무 인간들은 생각보다 어두운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용히 가요, 다들. 너무 조용해. 나무 인간들이 안 보이는 것도 이상하고."

"넵."

"알았어."

지수가 작게 속삭이듯한 당부에 우리는 곧장 대답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으니까.

마치 공간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이윽고.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그나마 방치된 자동차들의 수가 적은 우측 도로를 통해 의왕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있을 무언가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부스럭- 부스럭-

도로에는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를 뚫고 자란 수풀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차량 내부에 검은 이끼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지속해서 내린 비에 푹 젖은 좌석 시트에는 곰팡이가 얼룩덜룩 피어 있었다.

가죽 시트일 경우에는 작은 넝쿨들이 잔뜩 자라 있어 말미잘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버려진 차량 내부에는 간혹 자잘한 막대기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아마도 죽어서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유골이겠지.

그래도 온전한 죽음을 맞이했다며 위로해야 할까.

적어도 나무 인간이라는 괴물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애써 고개를 돌려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비극뿐인 참상을 눈에 더 담다가는 내 기분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잘 알고 있었으니.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탁- 탁- 부스스-

지수는 도끼를 아래로 내려 허리춤까지 오는 수풀을 밀어내고 있었다. 나무 인간의 체액이 묻어 있는 도끼날은 우리에게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휘이이이이···

부스스스······

한 줄기의 바람이 수풀을 뒤흔든다.

타닥- 타닥-

전신주에 달린 여러 가닥의 전선줄이 자기들끼리 부딪힌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도룡마을→ 월암IC]

홀로 외로이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다 어디 갔을까요. 이렇게 차들이 많은데."

한세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마침 나도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표지판 보면 의왕시에 진짜 다 온 것 같은데 버려진 차들만 많아지고 나무 인간들은 안 보이네요."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도로를 점거하는 폐차들이 많아져만 갔다. 이제 그것들은 좌측과 우측을 가리지 않았다.

유리창이 깨지고 반쯤 불타 있기도 한 차량들.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여전히 주변은 고요하기만 하다.

아무 일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안심이 되어야 마땅하건만, 내 본능은 서서히 경종을 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다들 몸 숙여요!"

지수가 다급하게 속삭이듯 외쳤다. 그녀는 눈을 날카롭게 만들며 전방을 주시했다.

부스럭!

우리는 황급히 몸을 낮춰 수풀 더미 속에 숨었다. 억센 풀이 얼굴을 사정없이 긁었다. 강하게 따끔거리는 감각에 작은 소리라도 낼 만도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지수의 경고와 함께 차량들 틈을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 하나를 보고 말았으니까.

[끄륵- 끄르르륵···]

푸른색의 포터 짐칸에 가만히 누워 있던 그것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몸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헛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나무 인간보다 몸집이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나무 인간이 두르고 있는 나무 껍질보다 더 두터운 나무 껍질이 마치 갑옷처럼 몸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수야, 너랑 나랑 최대한 접근해서 조용하게 처리해보자. 덩치가 크긴 해도 머리만 부수면 괜찮을 거야."

"알았어."

"세아씨랑 예린이는 저희가 신호 보낼 때까지 여기서 대기해주십쇼. 절대 움직이면 안 됩니다. 혹시 저것이 세아씨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요."

"넵. 조심해요. 예린이는 제가 잘 지키고 있을게요."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지수와 함께 파란 포터로 천천히 걸었다.

부스럭···

수풀도 조심스럽게 헤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내가 있던 곳과 포터와의 거리는 대략 10미터 정도로 짧은 거리였으니 천천히 걷는다고 해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까극! 까드드득-

나는 몸이 불편한 듯 관절을 이리저리 꺾어대는 나무 인간을 보며 망치를 꽉 쥐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일자로 들어 지수, 나 순으로 가리켰고,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끄덕- 휘이이잉-

지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조용하게 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도 역방향이라 우리의 냄새가 들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윽고.

아직 나와 지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나무 인간을 향해,

쐐애애액-

지수가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날은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공기층을 날카롭게 가르며 곧장 나무 인간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쩌억-!

푸쉬익!

이번에도 지수의 도끼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도끼날은 무사히 나무 인간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라놓았고, 체액을 사방으로 뿜게 만들었다.

털썩!

텅···

"하아···."

나무 인간이 포터 짐칸에 다시 몸을 뉘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와 지수는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지수의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면 내가 바로 차례를 이어받아 망치를 휘둘러야 했을 텐데━

뿌득-

"······!"

그 순간, 생각을 끊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착각이 아니었는지 지수 또한 나와 같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어느 한 곳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기묘한 소리는 바로 방금 지수가 죽인 나무 인간에게서 들려오고 있었다.

뿌득- 빠드드득!

나무 인간의 배에 붙어 있던 껍질이 이리저리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의 배는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며 무언가의 전조를 알렸다.

"무슨?!"

"엎드려!"

나는 지수를 감싸며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나무 인간의 사체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가가각!

그것의 피부에 달라붙은 나무 껍질이 완전히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예상하던 폭발은 없었다.

다만.

[끼아아아아아아아악━━!]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을 따름이었다.

쿵! 쿵! 쿵!

심장이 강하게 점점 더 강하게 박동한다.

삐이이이이-

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리를 강하게 뒤흔든 소리가 잔불처럼 남아 계속 웅웅 울렸다. 초점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아흑-. 아파···."

지수는 귀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운 듯 몸을 말았다. 나는 시야가 흔들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파란 포터 짐칸을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괴성이 왜 들렸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지수가 죽인 나무 인간은 여전히 포터 짐칸 안에 쓰러져 있었다. 그것의 복부가 터지듯 찢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

······.

터진 복부에는 쭈글쭈글한 피부를 가진 작은 살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살덩어리가.

'······임산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죽은 아기. 태어나기도 전에 괴물이 되어 잠들어 있던 아기.

모체가 죽자 양분 공급이 끊긴 그것은 살기 위해 복부를 뚫고 머리를 내밀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 같았다.

그것이 내지른 소리는 탄생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처절한 단말마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유롭게 상황을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아기, 아니 나무 인간의 단말마가 도로에 울려 퍼지자 잠들어 있던 다른 나무 인간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아악!]

[그르르르르-]

[아극! 아기기기긹!]

[끄━아아아아아악!]

나무 인간들의 괴성이 도로 전체에 울려 퍼졌다.

"뛰어어어━━!!"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한세아와 예린에게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얼굴이 터질세라 크게,

내 경고가 충분히 전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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