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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108화 (109/497)

Chapter 108 - 108. 자매 (2)

'······멍? 방금 입으로 멍, 이라고 한 거야?'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여자가 한 말에 몸을 휘청거릴 뻔했다가 애써 정신을 다잡았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건물에 갑자기 낯선 사람 두 명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 상황.

아니,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저 여자들은 원래부터 여기 있었고, 우리가 침입한 상황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옳았지만 말이다.

"···현우씨, 왜 안 들어가고 있어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나와 지수가 문을 열다 말고, 가만히 멈춰 있으니 뒤편에서 한세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일단 천천히 들어오십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세아와 예린을 비상구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비록 낯선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녀들을 언제까지고 서늘한 비상 계단에 세워 놓을 수 있는 노릇은 아니지 않은가.

땀이 식어가면서 체온을 빼앗기고 있을 테니 한세아와 예린을 안으로 들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달칵-

"······."

"······."

비상구 문이 닫히고, 한세아와 예린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있는 두 여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킁킁-

냄새를 맡는 듯 코를 살짝 내밀거나.

"으르르르···."

우리들의 옷에 묻은 먼지가 바닥을 더럽힐 때면 심기가 불편한 소리를 내거나 했다.

물론 위의 반응들은 전부 목줄을 매고 있는 동물 귀를 가진 여자가 낸 것들이다. 반으로 접힌 귀를 가지고 있는 여자는 쭈그려 앉은 채 나, 지수, 한세아, 예린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관찰하는 시선으로 보다가 예린을 봤을 때는 시선이 좀 더 오래 머물렀다. 꼬리가 좀 더 흔들리기도 했다.

"···사람이 있었네요······?"

한세아와 예린은 도서관에 있는 여자들을 보고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전적으로 내 결정에 맡긴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초록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

그 여자의 손에 들린 목줄에 매여 있는 동물 귀를 가진 여자.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침입자를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목줄은 또 뭐야?

왜 사람에게 개 목줄을 매게 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동물 귀가 달려 있다고 해도 사람이지 않은가.

개가 짖는 소리를 내는 여자는 또 뭐고?

재차 말하지만 아무리 동물 귀가 달려 있다고 해도 사람이지 않느냔 말이다.

꿀꺽-

옆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 곁눈질로 지수를 보니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수 또한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다.

또르륵···

겨우 멈춘 땀이 다시 이마에 맺혀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렇게 아무 말없이 대치만 하다가는 끝도 없겠다 싶어서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도서관 안에 있는 여자들은 도무지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여기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내가 침묵을 깨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멍하니 우리를 보던 초록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날도 어두워졌고, 밖에는 나무 인간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오늘밤만 보내고 내일 떠날 테니 여기서 머무는 걸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있는 게 불편하시면 다른 층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자세를 낮춰 허락을 구하는 식으로 말을 하나씩 꺼냈다.

수적 우위에 있는 우리가 강압적인 태도로 저 여자들을 압박해서 역으로 쫓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식의 행동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저들에게 있어 침입자에 불과한데다가 지금 당장 보이는 것만 두 사람일뿐,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다른 사람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건물 안 생존자가 있는지 몰랐고, 도서관 생존자들은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침입자에게 맞설 무슨 대비해 놓았을지 알 수 없으니 섣불리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일행의 체력이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한시라도 빨리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바로 그때.

"···외지인이신가 보죠? 밖이 많이 어수선하던데, 꽤 요란스럽게 들어오셨나 봐요."

초록 머리칼의 여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떠보듯 묻는 말이었다.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달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여자의 표정은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어조가 평온한 것으로 보아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네. 수원에서 왔습니다. ···혹시 저희 때문에 피해를 보신 게 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피해 본 건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뭐, 좋아요.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고 가세요. 더 머물러도 되시고, 저희는 내일 떠날 예정이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뭘요. 어차피 이 건물이 제 소유도 아니고, 저랑 언니도 잠시 머물다가는 건 피차일반이니까요. 하지만 그 전에."

마찰없이 무사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우리는 이어지는 초록 머리 여자의 말에 몸을 덜컥 굳혀야만 했다.

"제 언니가 당신들 냄새 좀 맡아야겠어요. 특히 저랑 이야기하신 남자분. 그쪽 냄새는 무조건."

"···예? 냄새요?"

"무슨?! 그거 꼭 해야 해요? 무슨 냄새를 맡아요?!"

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묻자, 지수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내 신호에 따라 잠자코 있던 그녀였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듯했다.

"지수야!"

"아저씨는 가만히 있어 봐! 올라오면서 보니까 건물이 작지도 않더만,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도서관이 아니어도 되잖아?"

"어려운 부탁이었을까요?"

거부 반응을 보이는 지수를 잠시 보던 초록 머리 여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꼭 들어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와 동시에.

스르르륵-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뒤편을 점거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예전에 편의점에서 들었던 넝쿨이 움직이는 소리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도서관 사서가 일을 했었던 데스크 쪽에서부터 넝쿨이 기어 오는 것이 보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움푹 들어간 데스크 쪽에는 달빛이 닿지 않아 상황 파악이 느렸던 것이다.

몸에 누적된 피로에 의해 시야가 가물가물했기도 했고.

"······!"

"꺅! 현우씨!"

"넝쿨?! 어떻게···!"

"언니···!"

비도 오지 않는데 넝쿨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둘째치고, 우리는 순식간에 발목을 휘감아오는 넝쿨에게서 벗어나기에 급급했다.

손이나 도끼로 넝쿨 줄기를 끊어보려고 했지만, 줄기 겉 표면에서 뿜어지는 점액질에 의해 자꾸만 헛손질로 이어졌다.

바로 그때.

휘리릭!

콰당!

"아윽!"

일행의 손목을 한순간에 휘감아 움직임을 제압한 넝쿨 줄기.

우리는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넝쿨에 묶였고, 뒤이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평소에는 고작 넝쿨에 당할 나와 지수가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해진 기습과 한계에 달한 체력적인 문제가 더해지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아,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냄새만 맡으면, 하아, 된다고요. 부탁이에요. 저도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요. 하아. 제발···."

아마도 넝쿨을 조종한 사람일 게 분명한 초록 머리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다시 한번 부탁해 왔다.

넝쿨을 조종하는 데에 부담이 많이 가는지 조종 시간이 긴 시간이 아닌 매우 짧은 시간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많이 지친 목소리를 냈다.

"끼잉···."

그 여자의 옆에 있던 또 다른 여자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여기 주민이 아닌 정말 외지인이라는 걸 확인만 하면 돼요. 저희도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내지인이 아닌 외지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 집착하는 초록 머리 여자.

이어서 붙여진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다.' 라는 여자의 말.

내지인들끼리 문제가 생겼나?

초록 머리 여자는 우리가 의왕시 주민이 아닌 외지인이기를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여자의 말처럼 그녀가 조종하는 넝쿨은 꽉 조인 것이 아닌 움직임만 봉할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하게 감겨 있었다.

실제로 저 여자가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는 이미 어디 한 군데 다쳐도 단단히 다쳤을 것이다.

넝쿨에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목줄에 묶여 있는 여자가 우리를 덮쳤다면 큰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또 살인자 중 어느 누가 제압당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역으로 부탁을 하겠는가.

빈약하긴 하지만, 초록 머리 여자가 우리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증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당신들을 적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아까 냄새 확인한다고 하셨죠? 가만히 있을 테니 와서 확인하고 가십쇼."

그리 생각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협조해 줘서 고마워요. 언니, 난 여기 있을 테니까 가서 확인하고 와줘."

"알았어! 멍! 기다려!"

초록 머리 여자는 손에 든 목줄을 느슨하게 만들어 강아지 귀 여자를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그녀는 킁킁거리며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탁- 탁- 탁- 탁-

엄연히 손이 있는데 저걸 발로 취급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네 발로 걸어왔다.

"멍! 가만히, 있어!"

반으로 접힌 강아지 귀 여자는 순한 눈을 애써 날카롭게 만들며 자그마한 위협을 가했다.

마치 무언가를 움켜잡는 듯한 자세.

"큽···!"

순간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이를 악물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그도 그럴게, 멀쩡해 보이는 여자가 코스프레한 것처럼 행동하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매우 정교한 동물 귀를 끼운 사람이 개 흉내를 내는 느낌이었다는 말이다.

고개를 돌려 한세아와 지수를 바라보니, 그녀들은 해괴한 것을 보는 것처럼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지수가 그러했다.

이윽고.

강아지 귀 여자는 차례대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킁킁-

질색하는 표정을 한 지수.

킁킁-

민망한 표정을 지은 한세아.

킁킁-

꾸벅꾸벅 졸고 있는 예린.

마침내 내 차례가 왔을 때,

킁킁킁- 스읍-

그녀는 내 목덜미에 코를 묻을 기세로 맡았는데 지수가 다시 난리를 치려는 걸 막는 것이 참 고역이었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냄새를 확인하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 4명의 냄새를 맡아봐야 뭐 얼마나 걸리겠는가.

내 냄새를 맡을 때는 좀 더 오래 맡는 듯한 모양새에 '지금 땀 냄새가 심한데 괜찮나?', '냄새를 괜히 맡게 했나? 이걸로 외지인이라는 걸 구분할 수 있다고?' 따위의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이내 안심할 수 있었다.

"멍! 안전! 괜찮은, 냄새 나!"

"하아···."

안전 인증 마크를 받은 우리는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일촉즉발이었던 상황이 일단락되자 안도감이 들었다.

스르르륵-

우리를 묶고 있던 넝쿨이 완전히 풀어졌고, 넝쿨은 다시 원래 있던 데스크 아래로 들어가서 모습을 감췄다.

"정말로 외지인이었네요."

"그렇다고 했잖습니까···."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지수, 예린, 한세아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1층에는 이상한 뿌연 먼지가 가득했지만, 4층 도서관은 이 여자들이 청소해 둔 건지 나름 깨끗한 바닥을 하고 있었다. 그 덕에 옷이 더 더러워지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편히 쉬세요. 이제 저희는 신경 쓰지 않을게요. 하지만 여기 도서관에서 쉬셨으면 좋겠어요."

"낯선 사람이 있으면 서로 불편할 텐데 제 일행은 다른 곳 가서 쉬겠습니다.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뇨. 이런 말 들어 봤어요?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내가 반문하니 초록 머리 여자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

여자가 재차 말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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