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2 - 112. 자매 (6)
"잠깐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는데···. 마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언니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던 신아현은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물음을 이어 나갔다. 신아진은 완전히 녹아내린 표정으로 의자에 겨우 앉아 있었다.
"현우씨 일행이 남산으로 가는 이유는 이제 알겠어요. 제가 더 자세하게 묻고 싶은 건 나무 인간들 말고도 다른 괴물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뭐라고 했었죠? 변종?"
"예. 변종이요. 거미의 형태를 띤 변종도 있었고, 지하도에 사는 도롱뇽의 형태를 띤 변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순 변종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 기워 놓은 듯한 괴물도 있었습니다. 아, 넝쿨에 달린 봉오리도 변종이라고 하면 변종이겠네요. 또······."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말을 멈췄다.
넝쿨, 거미, 도롱뇽, 누더기.
내가 지금까지 겪은 변종들은 어느 하나 위험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하나같이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매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던 괴물들.
그리고 내가 지금 말을 잇는 것을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김태진의 존재를 아직 확정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의 탈을 쓴 변종이었을까.
가슴으로는 김태진은 인간이다 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머리는 김태진 또한 변종이나 다름없다 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원역 AK&몰 옥상에서 치솟았던 검은 불꽃은 김태진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
속삭임을 듣는 기준으로 변종과 사람을 나눈다면, 나도 변종일 것이고.
불꽃을 뿜어내는 것을 기준으로 나눈다면, 나도 변종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나는 인간이다.
괴물이 아니야.
내가 속으로 곱씹고 있을 때, 신아현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또···? 뭔데요? 왜 말을 하다가 말아요?"
"아, 변종들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녀에게 말했지만, 신아현은 석연치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톡- 톡- 톡-
"···거짓말. 끝이 아니잖아요.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변종에 대한 이야기는 다 했습니다만."
"여자의 감을 무시하면 안 되죠. 이런 위험한 세상에서 여자 둘이 어떻게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당신이 의도적으로 빼먹은 것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하지만 정말로 모르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 물어보긴 할게요."
"······."
"인간. 왜 괴물이 된 인간 이야기는 하지 않은 거죠? 정확히는 인간 형태를 띠고 있는 괴물이지만. 뭐, 거미나 도롱뇽 변종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도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기도 하고."
"······!"
나는 얼굴에 떠오른 당황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짓씹었다. 피로에 연약해진 입술이 터지며 입안으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신아현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의왕시에도 김태진 같은 존재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시간이 지나도 주민센터에는 원래 자리 잡고 있었던 신아현과 신아진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여자 둘이서 살기에는 위험한 세상이고, 인간은 무리를 이루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수원역이 그랬던 것처럼, 의왕역 근처에도 생존자 캠프가 있었을 텐데, 왜 이 여자들은 둘이서만 지내고 있는가.
'아마도 처음에 우리가 외지인인지 아닌지 따진 이유와 관련이 있겠지.'
머리가 멍하다.
휴식을 취하지 못한 몸이 비명을 지른다.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최적의 상태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니 어쩔 수 없이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김태진을 떠올리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에 놀랐을 뿐.
분명 저 여자들이 우리 일행을 적대하지 않고, 정보를 나누자고 선뜻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작해야 하룻밤의 인연이다.
나와 신아현은 신뢰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수원역 생존자들한테 크게 데인 적이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정보를 일부러 숨긴 것이 아니라고 애써 속으로 변명했다.
'그러면 성균관대역에서 자판기 속 남자는 왜 구하려고 한 거냐. 이 모순적인 놈.'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아현씨가 말한 인간의 탈을 쓴 괴물에 대한 이야기.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저는 얼추 다 말했으니 이제 당신이 말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그쪽이 왜 같은 내지인을 그토록 경계했는지, 넝쿨은 어떻게 조종했는지에 관해서요."
신아현은 나를 불만스러운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애초에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요. 음, 우선 가장 궁금하신 건 그거겠죠? 어째서 저희가 잘 아는 같은 주민 사람들보다 전혀 모르는 외지인을 보고 안심했는지."
"네."
"이건 제가 아까 말한 인간의 탈을 쓴 괴물하고 연관이 있어요. 시기상으로는 군인들이 떠난 직후 일까요. 세상이 변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존자 캠프에 모여 간신히 살고 있을 때 일어났어요."
"생존자 캠프가 있었습니까? 역 주변에 있는 건가요?"
나는 수원역을 생존자 캠프로 만든 군인들을 떠올리며 물었지만, 신아현은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아뇨, 오히려 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고, 대부분 의왕역 위 쪽에 있는 물류 창고 단지에 있을 거예요. 군인들이 그쪽으로 가라고 통제를 했었거든요."
"···그렇군요. 물류 센터라······. 아무튼, 그래서요? 왜 캠프에 있지 않고 여기 계시는 겁니까?"
나는 조바심을 내며 답을 재촉했다.
"아이 참, 다 말해 줄 테니까 기다려 봐요. 아까도 말했듯이 군인들이 떠나자마자 한 남자가 캠프로 들어왔어요."
"남자요?"
"네, 박현일이라고 하는 남자. 반은 인간의 모습이고, 나머지 반은···. 나무 인간의 모습을 한 남자요."
"······!"
"그 남자가 들어온 뒤로, 사람들은 그의 통제를 강제로 따라야 했어요. 반항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부 죽거나 심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고 말았죠. 그래도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은 캠프에서 쫒겨났어요. 그런 일이 계속 쌓이다 보니 오히려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
"힘이 없는 노인이나 여성은 그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게 일상이었고, 자기들끼리 뭉쳐 형님, 형님 하는 자들은 이성보다 본능을 앞세워서 살았고요. 약육강식이라나, 뭐라나?"
나는 속으로 침음을 흘려 소리를 죽였다.
반은 인간, 반은 나무 인간을 한 남자.
군인들이 떠난 생존자 캠프를 차지한 남자.
이성보다 본능을 앞세우게 된 캠프의 생존자들.
수원역의 생존자 캠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었다.
신아현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누가 들을까 봐 두렵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며 작게 말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2주인가 3주전에 지하에서 무언가 발견됐거든요. 나무뿌리가 헤집고 지나가서 생긴 땅의 틈에서 푸른 수정이 나왔단 말이에요. 불을 피울 수 있게 해주는 푸른 수정이."
"······!"
"처음에는 단순한 보석인 줄 알았는데 그것 근처에서 불을 피워도 괜찮다는 것이 알려지자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짜증나는 소화제가 안 생겼다고요."
갑작스럽게 나온 푸른 수정 이야기에 나는 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한세아가 갈라진 도로 틈 사이에서 얻은 푸른 조각. 그것이 이곳에서도 나왔다는 말인가?
게다가 얻은 시기도 3주 전으로 얼추 비슷하다.
순간 한세아의 가슴팍에 묻혀 있을 푸른 조각이 있는 곳으로 시선이 향할 뻔 한 것을 억누르며 신아현이 하는 말을 마저 들었다.
"그리고 반이 나무 인간인 박현일이 관심을 가졌을 때부터는 대부분의 인력을 땅을 파는데 쏟아부었어요. 쉬는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자그마한 수정 조각이 하나라도 나올 때까지 계속··· 계속··· 땅을 파내라고 지시했죠. 그 뒤로 손톱보다 작은 조각이 두어 개 정도 나오더니 더이상 안 나오더라고요."
"······."
"그런데도 계속 땅을 파라고 하길래 저랑 언니는 도망쳤어요. 노동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힘만 무식하게 센 남자들이 자꾸 저랑 언니를 노렸거든요. 칫, 도망칠 때 수정 하나라도 들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렇습니까···."
기껏 정리한 머릿속이 순식간에 다시 복잡해졌다. 살짝 부운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쓸어내렸다. 머리에 두통까지 느껴지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신아현의 말대로라면, 의왕시 생존자 캠프에 존재하는 푸른 조각은 하나가 아닌 최소 셋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이 도망치기 전에 그 정도 였으니 지금은 몇 개 더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아무튼 그래서 당신들을 경계한 거예요. 혹시 저랑 언니를 붙잡으라고 파견된 캠프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서요. 제가 넝쿨로 조인 부분 아프지는 않죠? 최대한 힘 조절한다고 한 건데."
"···네, 괜찮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넝쿨은 어떻게 조종하신 겁니까?"
"아, 그거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눈 뜨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된 거라서요. 순도 100% 진실! 굳이 따지자면 제가 꽃집을 운영했었다는 것 정도? 의왕역 근처에 카페랑 꽃집을 열었었거든요. 제 언니는 집에서 기르던 새끼 강아지랑 합쳐졌으니 저는 식물이랑 합쳐졌다고 보는 게 맞겠죠."
결합한 동물의 나이에 따라서 성격도 변하게 되는 건가?
그래서 신아진이 체형은 성인이지만, 약간 아이같은 말투와 행동을 하는 거고?
나는 이제 놀랄 힘도 남지 않아 허탈하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