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6 - 116. 탐색 (3)
"···돌 한번 던져볼까요?"
한세아가 흙이 묻은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며 제안했다. 그녀는 입바람을 후후, 불며 돌멩이에 붙어 있는 흙을 털어냈다.
"도로처럼 차 밑에 나무 인간들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까···. 아니, 그럼 돌을 던지면 더 안 될 것 같기도 하구···."
한세아는 흙먼지가 가라앉아 뿌옇게 변한 차량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골머리를 싸매며 전방의 상황을 훑어보았다.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빈 부지.
빌라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주차 공간이 넘쳐나는 차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주민들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공터가 여분의 주차 공간으로 변모한 모양새였다.
아무리 봐도 정식 주차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공터에는 수풀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나는 PVC 재질로 된 원뿔 모양의 주차콘과 충돌 방지 기둥만 세워져 있을 뿐이었으니까.
문제는.
"음···."
그 탓인지 무분별하게 주차된 차량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급발진하다가 다른 차량에 박고, 건물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간 자동차들.
이곳저곳에 박았다고 하더라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에 성공했다면 모를까.
어지럽게 놓여 방치된 차량들은 하나같이 탈출하는 데 실패한 모습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나와 한세아에게도 영향을 미쳐 편의점으로 쉬이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고 말이다.
'어떻게 들어가지?'
의왕시 주민이었다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곳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갔을 테지만, 이곳 지리를 잘 모르는 우리로서는 바로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멀쩡해 보이는 편의점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언제 또 편의점이 나올지도 모르고, 우리에게는 당장 내일 먹을 식량도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세아가 말한 것처럼 돌을 던져서 밑에 무언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가?
하지만 불필요한 소음은 나무 인간들에게 생각보다 큰 자극을 줄 수 있었다. 신아현이 말했듯 나무 인간의 괴성은 또 다른 나무 인간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니까.
그렇기에 괜히 돌을 던져서 일부러 나무 인간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차량 틀을 밟고 위에서 이동할까,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다.
금속 보닛을 밟는 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 분명하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돌을 던지는 것이 더 나았다.
결국,
"그냥 조용히 지나갑시다, 세아씨. 괜히 자극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로를 지나갈 때도 수풀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골랐다. 단순하지만 가장 지켜야 할 방법을.
"주변에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들도 없으니 조용히만 가면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알았어요. 어서 가죠! 아니, 조용히 가죠!"
이윽고,
나와 한세아는 심호흡을 한 뒤 발걸음을 편의점이 있는 방향으로 돌려 걷기 시작했다.
부스럭···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다리에 억센 수풀이 휘감겼다가 풀어진다.
파삭···
잘그락···
조심히 내딛는 발밑으로 뭉친 흙덩이가 뭉개지는 느낌과 아주 작은 돌 알갱이들이 밀려나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대부분의 차량들은 짙게 썬팅이 되어 있었지만 금이 가거나 산산이 깨진 유리창 덕분에 그 너머로 차량 내부가 훤히 보였다.
핸들 중앙을 뚫고 나온 에어백, 그 위를 장식하는 핏자국, 부서진 네비게이션, 뜯겨진 서랍 사이로 길게 늘어진 전선줄, 뒷좌석에 설치된 어린이 전용 카시트.
그리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작은 백골.
나는 거기까지 확인한 후 고개를 애써 돌려 외면했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차량들 사이의 틈.
지금은 차량 내부를 관찰하는 것보다 차량을 섣불리 건들지 않도록 내딛는 발걸음을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부스럭··· 부스럭··· 부스스···
흰색 모닝, 검은색 아반떼, 회색 스포티지, 흰색 카니발.
여러 자동차들을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편의점과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휘이이이이-
바람이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들 위를 휘감았다가 온 탓인지 퀴퀴한 냄새가 맡아졌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에 흙먼지가 달라붙기 시작했다.
잘그락··· 잘그락···
부스스··· 부스스··· 꼴깍-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않고 미로처럼 얽힌 차량들 틈 사이로 얼마나 걸었을까. 흔들리는 수풀 소리 사이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뒤로 돌려 보니, 한세아가 입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미안한 눈빛을 보내는 그녀에게 나는 말없이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많이 불안해 보이는 한세아의 손을 꽉 잡아주며 달랬다. 그녀의 손은 긴장으로 인해 차갑게 변해 있었다.
맞잡은 손으로 한세아를 달래주는 와중에 내 눈은 쉴 새없이 움직였다.
차량, 수풀, 차량, 수풀, 다시 차량.
무언가 갑자기 튀어나와도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움켜잡은 망치 자루를 더 꽉 쥐었다.
바닥에 돌출된 나무뿌리나 넝쿨 줄기에 발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쏟아 부어야 했다.
부스럭···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나와 한세아는 GS25 편의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하지만 문을 바로 열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편의점 문에는 기본적으로 문열림 종이 달려있어서 종을 떼어놓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기껏 별일없이 자동차 미로를 통과해서 왔는데, 마지막에 와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은 문을 바로 열었을 것이고, 동시에 딸랑딸랑하는 종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결코 좋지 않았겠지.
나는 한세아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을 풀어 잠금장치가 있는 위쪽으로 길게 뻗었다. 내가 손을 놓자 빈자리가 아쉬운 듯 내 손을 따라왔다가 힘없이 물러나는 한세아의 손이 보였다.
'나중에 다시 잡아주면 되니까.'
그리 생각한 나는 최대한 종이 울리지 않게끔 편의점 문을 살짝 열었고, 조금 생긴 틈으로 종을 움켜잡았다.
땡······
종이 문의 흔들림에 따라 울리려다가 공명을 막는 손에 의해 둔탁한 소리로 바뀌었다.
소리가 아예 나지 않았다면 좋았겠으나, 보통 문열림 종은 내부에 달려 있어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후···. 제가 종 잡고 있을 동안 먼저 들어가십쇼, 세아씨. 여기에서는 안에 별것 없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시고요."
나는 곁눈질로 편의점 내부를 대강 확인한 후 한세아에게 말했다.
"넵···!"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좀 더 벌어진 문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 과정에서 한세아의 가슴이 문에 걸리는 일이 있었지만 애써 못 본 척 넘어갔다.
먼저 들어간 한세아가 대신 종을 잡아주고 나서야 나도 편의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종을 잡은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문에서 분리를 시켜 놓았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니 애초에 문에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닌 못에 걸려 있는 형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뭔가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흐아···. 다행히 별일 없이 들어왔네요. 근데······."
한세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다가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망한 표정을 감출 수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게, 편의점 내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각종 맥주와 주스 같은 음료수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을 냉장고는 전원이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핫바, 삼각 김밥, 계란이 진열되어 있어야 할 신선식품 매대, 컵라면이나 봉지라면, 과자가 올라가 있어야 할 매대들도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었다.
'전원은 당연히 꺼져 있을 거고, 금방 상하는 신선 식품 같은 것도 냄새 때문에 전혀 남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편의점 내부의 매대는 형태만 멀쩡할 뿐, 삭막하게 느껴질 정도로 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니, 일부 매대는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 날카로운 단면을 뽐내고 있었다. 아마도 식품이 썩어가는 냄새를 맡은 나무 인간들이 저지른 일인 듯했다.
그 와중에도 편의점 유리 벽이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나와 한세아가 들어올 때도 편의점 문은 잠겨 있지 않았으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세아는 포기하지 않고 매대 사이사이를 뒤적거렸다.
"아예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거예요. 뭐라도 찾으면 나오겠죠. 흐읍···!"
"세아씨, 그러다가 허리 다쳐요. 매대보다는-"
"앗! 찾았다! 찾았어요!"
나는 그녀를 만류하다가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한세아가 매대 틈 최하단에 끼어 있던 참치캔 하나를 꺼내 든 것이다.
뭔가 다시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저 잘했죠?"
"잘하셨습니다."
"제가 최고죠?"
"네, 세아씨가 최곱니다."
한세아는 히히 웃더니 어렵사리 구한 참치캔 하나를 가방에 고이 담았다. 지퍼를 꽉 닫고 나서도 가방을 툭툭 쳐 내용물을 확인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소중한 듯했다.
하긴, 오늘 첫 수확이니 그녀가 크게 기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만도 했다.
어렵게 차량 미로도 뚫고 들어온 편의점에서 얻은 것이기도 했고.
하지만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고 하던가.
그 뒤로 나와 한세아는 매대를 계속 뒤적거렸지만 별다른 수확을 얻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