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19화 (120/497)

Chapter 119 - 119. 탐색 (6)

콰앙! 콰가각-

나무 인간의 괴력이 담긴 장도리는 내 턱 끝을 스쳐 지나가며 바로 옆에 있는 벽면을 강타했다.

장도리의 뾰족한 부분, 그러니까 못뽑이 역할을 하는 부분이 벽을 파고들어가며 박혔다.

털썩-

나를 죽이겠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나무 인간은 장도리가 벽에 깊숙이 박히고 나서야 바닥으로 몸을 뉘이게 되었다.

뚝- 뚝-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나무 인간의 몸체를 타고 부서진 머리통에서 뿜어진 체액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허억!"

나는 장도리가 스치고 간 턱을 매만지며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만약 망치를 끝까지 누르듯이 찍지 않았더라면,

이만하면 됐다며 중간에 망치를 회수했었더라면,

나무 인간이 휘두른 장도리는 턱 끝이 아닌 내 관자놀이를 가격했을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닌 연약한 피부를 뚫고 머리 깊숙하게 박히고 말았겠지.

"현우씨! 괜찮아요?! 어디 봐요."

급하게 달려온 한세아가 내가 상처를 입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내 얼굴을 주물럭거렸다.

"저 안 다쳤어요, 세아씨."

"쓰읍! 가만히 있어 봐요! 제가 직접 볼 거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뱉은 말은 한세아의 일갈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양쪽 볼을 움켜잡았다.

"읍!"

"여기 상처 났잖아요! 안 다치긴 뭘 안 다쳤다는 거예요!"

한세아는 가방을 뒤적거렸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참. 연고랑 반창고···. 다 예린이한테 주고 왔지······."

"에이. 뭘 약까지 발라요? 걱정 마십쇼. 이 정도면 그냥 침 바르면 나아요. 피도 안 나잖아요. 진짜 살짝, 아주 살짝 스친 것뿐이니까."

나는 한세아의 불안감을 달래주기 위해 짐짓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별것 아닌 상처이기에 가만히 두면 자연스럽게 나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말한 거였는데.

"알았어요."

"······?"

한세아는 가늘고 흰 손가락 끝에 침을 묻히더니 살짝 부은 상처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내가 그런 움직임을 취하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톡- 톡-

한세아의 손길이 상처 위를 지나갈 때마다 열감이 느껴졌다. 그 열기는 얼굴 전체로 점점 번져 내 얼굴을 붉게 물들게 하였다.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상처를 살핀지 얼마나 지났을까.

포옥-

얼추 만족한 한세아는 옅은 숨소리를 내며 나를 꽉 안았다. 그녀의 소담한 가슴이 부드럽게 뭉개지면서 말랑한 감촉이 전해졌다.

"다치지 마요, 현우씨. 걱정되니까."

"조심한다고 조심한 건데···. 갑자기 뒤돌아볼 줄은 몰랐지 뭡니까. 하하···. 그래도 놈이 소리는 안 질러서 참 다행-"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변명했다.

"조용히 하고 안아주기나 해요. 저 불안하니까."

"넵."

서슬 퍼런 그녀의 기색에 나도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잠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체감한 나와 한세아.

이내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떨어졌다. 한세아는 멀어진 온기가 야속한지 아쉬운 얼굴을 했으나 이제는 마저 탐색을 이어갈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죽인 나무 인간이 메고 있던 가방을 빨리 뒤져 보고 싶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 건물을 털었던 사람 아니, 나무 인간이니 가방에 뭐라도 들어 있지 않겠는가.

'···비록 죽었지만.'

죽은 이 나무 인간도 나와 한세아가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요긴 하게 쓰길 바랄 것이다.

'···죽어서 말은 못 하지만.'

아무튼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세아씨, 잠시만 기다려요. 아니다, 놈이 메고 있던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먼저 확인하고 있어요. 저는 먼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알았어요."

뜨둑-! 뜨드득!

나는 나무 인간이 가지고 있던 가방을 그대로 뜯어내 한세아에게 건넸다.

거친 나무 껍질 표면에 계속해서 긁힌 가방의 어깨 끈은 해질 대로 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세아가 가방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잠시 본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죽은 나무 인간이 있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서진 머리통에서 떨어지는 체액,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체액 웅덩이, 살점에서 떨어진 나무 껍질 조각들.

그리고 대(大)자로 뻗은 자세를 하고 있는 나무 인간.

우선, 나무 인간의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놈이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무 인간으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생전에 남아 있던 몸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으니 껍질을 제거하면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 판단한 나는 망치 끝으로 아직 나무 인간에게 붙어 있는 나무 껍질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파삭- 짜각- 쩍-

완전히 목숨을 잃은 나무 인간이라 그런지 나무 껍질은 큰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툭툭 건드릴 때마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바스러졌다.

이윽고, 검은 이끼가 붙은 나무 껍질이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살색과 약간 푸르딩딩한 색이 섞여 있는 피부가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치밀어오른 욕지기를 겨우 억누르며 시선을 놈의 몸체에 고정했다.

"······!"

망치 끝으로 나무 인간의 몸체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나는 칼로 그어진 듯한 흉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흉터는 목 부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미처 떨어지지 않은 나무 껍질이 흉터를 꽉 조이고 있기도 했다.

'···이래서 소리를 못 지른 건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니 사실에 가장 가까운 추측이라고 판단했다.

문득, 성균관대역에서 본 외팔이 남성이 떠올랐다.

외팔이, 외눈, 그리고 목의 깊은 흉터.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신체적으로 결손이 있는 사람이나 나무 인간들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냥 그런 직감이 들었다. 순식간에 뇌리를 스쳐 지나가서 사라지는 그런 직감 말이다.

뭐, 말 그대로 직감일 뿐이라 여기서 더 알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나무 인간이 괴성을 지르지 못한 이유를 대강 파악한 나는 한세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 갔다.

지이익-

부스럭- 부스럭- 탈탈탈!

조심스럽게 닫힌 지퍼를 열어 내부를 확인하던 한세아는 가방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감질이 난 것인지 아예 가방을 뒤집어 바닥을 향해 터는 중이었다.

퉁- 툭- 와르르-

가방을 털자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닭가슴살, 참치, 연어, 스팸 같은 각종 통조림들, 생수나 주스 같은 음료수들, 컵라면과 햇반 같은 인스턴트들.

가방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식량들이 담겨 있었다. 소중한 식량 하나가 밖으로 꺼내질 때마다 한세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편의점에서 식량을 구할 수 없어 아쉬웠던 기분이 충족된 것 같았다.

그렇게 가방에서 나온 것은 전부 합해서 통조림 5개, 생수 2병.

주스는 진작에 상해 있었고, 컵라면과 햇반은 포장하는 겉 비닐이 뜯어져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만 했다.

그나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단단하게 봉인된 캔과 뚜껑이 열린 적 없는 생수뿐.

물론, 한세아의 표정이 다시 우울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힝···."

"기운 내요, 세아씨. 아직 저희 건물 탐색도 제대로 안 했으니까."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달랬다.

"···현우씨 말이 맞아요. 그러고 보니 아직 시작도 안했었죠···. 뭔가 많이 하긴 한 것 같은데 정작 제대로 한 건 하나도 없었네요."

한세아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가 가방을 고쳐 메었다. 식량이 담긴 가방은 그래도 좀 채워졌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는지 살짝 묵직해 보였다.

"아까 지나가면서 보니까 적어도 3층에는 저 나무 인간말고 다른 놈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닫힌 문 너머는 모르겠지만 열려 있는 문 안쪽에서 특별한 게 없어 보였어요."

나는 아까 지나가면서 확인한 것들을 한세아에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곧장 내게 달려왔으니 열려 있는 문틈을 확인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럼 바로 앞에 있는 문부터 시작해볼까요?"

한세아는 307호 앞에 서며 말했다.

굳게 닫힌 문은 302호, 303호, 305호, 307호.

열려 있는 문은 301호, 304호, 306호, 308호.

즉, 나와 한세아가 털 수 있고, 털어야만 하는 방은 총 4개라는 소리다. 우리가 털 수 없고, 털 필요 없는 방도 총 4개이고.

- 삼동 601~604, #0150#

나는 이 빌라의 마스터 비밀 번호를 떠올렸다.

"샵 공일오공 샵이 맞겠죠?"

"맞을 거예요. 만약 아니면 종이에 적힌 번호 다 눌러보면 되죠."

한세아는 가슴팍에 묻혀 있던 푸른 조각을 꺼내 들었다. 옅게 휘날리는 푸른빛무리를 보니 바싹 긴장했던 몸이 안정을 되찾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할게요?"

한세아가 푸른 조각을 전자 도어락에 가까이 대려고 할 때,

"자, 잠깐만요!"

나는 그녀의 손을 급하게 붙잡아 멈춰 세웠다. 갑자기 손이 붙들리자 한세아는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힉! 왜 그래요?!"

"혹시 경보음이 울리면 어떡합니까? 가끔 오작동 일으키면서 시끄럽게 울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건전지가 거의 다 닳아서 교체 알림음을 낼 수도 있고요."

"그때는···. 바로 도망가거나 숨어야죠. 근데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어요."

한세아는 내 우려 섞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이런 방법이 아니면 온전한 식량을 구하기가 힘든데···."

"···그렇긴 합니다만. 뭐, 세아씨 말대로 어쩔 수 없긴 하네요. 그냥 저희가 더 조심하는 수밖에는요."

나는 한세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괜찮을 거라며 나를 다독인 후에 푸른 조각을 다시 전자 도어락에 가져다 대었다.

툭- 파앗-

조각 안에 담겨 있던 푸른 입자가 도어락 주변을 떠다니다가 이내 소멸한 듯 사라진다.

그만큼 조각 내부에 들어 있던 푸른 입자의 양도 줄어들었지만, 내가 채우겠다고 마음먹자 금방 원상 복구되었다.

다행히 나와 한세아가 걱정했던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철컥-

한세아는 도어락 뚜껑을 열어 키패드가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LED 알림판에 불이 들어오며 정상 작동을 알렸다.

"그럼 입력할게요."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가 마스터 비밀 번호를 입력하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띡- 띡- 띡- 띡-

한세아가 키패드를 누를 때마다 버튼음이 들린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전자음 소리가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머리를 잠식하는 건 평화로웠던 과거 일상의 기억들.

나는 재빨리 고개를 흔들어 과거에 수몰되지 않게 상념을 모조리 털어냈다.

지금은 한가하게 추억을 곱씹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당장은 눈 앞의 현실에 온 신경을 쏟아부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고비를 운 좋게 겨우 넘긴 탓 일까?

억지로 잊으려고 할수록, 외면하려고 할수록 그것은 더더욱 고개를 쳐들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모든 번호를 누르고 뚜껑을 닫자,

띠리링-

경쾌한 전자음과 함께 도어락의 잠금이 해제되며 문이 열렸다.

307호 문이 개방된 것과 반대로 나는 막아야만 했다.

상황에 맞지 않게 흘러 넘치려고 하는.

···내 기억의 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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