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22화 (123/497)

Chapter 122 - 122. 탐색 (9)

드드드드-!

진동이 점점 강해진다.

드드드드드드드-!

진동이 강해지는 것만큼 몸의 균형을 잡기 힘들게 건물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악!"

무거운 가방 탓에 나보다 더 심하게 몸을 주체할 수 없던 한세아.

그녀는 흔들리는 진동에 맞춰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겨우 버티다가 한계에 부닥친 듯 넘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세아씨! 이런 씹···!"

그녀가 앞으로 넘어질 뻔한 것을 팔을 잡아당겨 가까스로 막은 나는 방금 우리가 나온 방인 302호 문을 다시 열기 위해 도어락 커버를 부수듯 위로 올렸다.

띡- 띡- 띡- 띡- 띠리링-

급하게 키패드에 마스터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알림음이 들리자마자,

벌컥!

한세아를 부축해서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건물 내부인 것은 동일하지만 엄폐물이 없는 복도와 엄폐물이 있는 방의 차이는 꽤 크니까.

나무뿌리의 움직임이 언제 멈출지도 모르고, 여기서 더 심해진다면 건물에 균열이 생겨서 천장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최소한 나와 한세아의 머리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가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쿵!

현관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숨었다.

"세아씨, 어디 다친 곳 없죠?"

"네, 네···."

기분 좋게 있다가 갑작스러운 지진에 혼이 쏙 빠진 얼굴이 된 한세아.

그녀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가방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손이 하얘질 정도로 끈을 꽉 잡고 있었다.

내가 말없이 한세아의 손을 어루만져 주니 그녀는 그제야 자기 상태를 알아차린 듯 서서히 힘을 풀었다.

쾅! 콰쾅! 쿠구궁-

······비록 긴장을 풀어 준 것이 무색하게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나와 한세아를 다시금 바싹 긴장시켰지만 말이다.

드드드드드-!

쐐애애액!

콰직! 콰장창! 끼기긱···!

책상 밑에 숨은 상태라서 고개를 들어 창문 너머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귀에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예전에 지수, 예린과 같이 있었던 편의점에서 본 광경처럼 나무뿌리가 주변에 있는 것들을 부수고, 꺾고, 휘어지게 하고, 눌러 으스러트리는 중일 것이다.

쩌저저적···!

움직이는 나무뿌리에 의해 도로나 건물 외벽이 갈라지는 소리.

콰장창-! 콰득! 끼기긱- 쾅! 우직! 으지직!

차량 또는 건물 유리가 박살 나는 소리, 전봇대가 부러지는 소리, 차체가 우그러지는 소리, 숨어 있던 나무 인간의 몸이 터지는 소리.

바깥에서는 파괴음들이 한데 섞인,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소리가 지근거리가 아닌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다는 점일까.

'···애초에 나무뿌리가 난리를 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만.'

아니, 정말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 한세아가 건물 바깥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나와 한세아가 있는 빌라는 이 근처에서 그나마 제일 멀쩡했던 건물이지 않았던가. 여기를 벗어나면 안전하게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주민 센터로 복귀하는 도중에 나무뿌리가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면,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겠지.

어찌 되었든 일은 이미 벌어졌고, 나는 나무뿌리의 폭거가 우리가 숨어 있는 이 건물까지 덮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거대한 크기만큼이나 무거운 질량을 가지고 있는 나무뿌리들은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움직이는 거목의 뿌리는 이미 하나의 천재지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는 말이다.

쾅! 콰지직- 끄드드득-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은 나와 한세아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했다.

"···현우씨, 금방 끝나겠죠?"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한세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볼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요? 그래도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으니까 저희가 있는 곳은 괜찮을 겁니다."

나는 한세아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가방을 벗겨 주며 답했다. 뿌리의 이동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이왕 숨은 거 편하게라도 숨어야 하지 않겠는가.

"흐아···."

한세아는 메고 있던 무거운 가방이 사라지자 앓는 소리를 내며 팔을 돌렸다. 작게 쥔 주먹으로 어깨 부근을 툭툭 치는 걸 보니 많이 뻐근했던 것 같았다.

각종 통조림과 생수병이 한가득 들어 있으니 가방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내가 가방을 대신 들어 주려고 했었지만, 이건 자기가 할 일이라며 그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가방을 나눠 드는 것을 포기한 나는 잔뜩 뭉친 한세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세아씨, 뒤돌아봐요. 어깨 좀 주물러줄게요."

바깥에서는 나무뿌리가 활개를 치고 있었지만, 마냥 얼음처럼 굳은 채 가만히 있는 것보다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놓아야 바로 움직이는 것이 수월할 것이라고 판단한 끝에 나온 행동이었다.

"진짜요? 좋아요!"

앉은 자리에서 냉큼 뒤돌아 내게 등을 보이는 한세아.

"아프면 말해요. 남 어깨 주물러 주는 건 오랜만이라 서툴수도 있으니까."

"누구 해준 적 있었어요?"

"···누나가 있었거든요. 친누나는 아니었지만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아."

한세아는 몸을 움찔 떨더니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내게 어깨를 내밀었다.

나는 이제 얼굴도 희미해진 누나와의 기억을 가슴 한 켠으로 밀어내었다.

그리고 한세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어깨는 먼지가 묻었어도 하얀 살결을 자랑하고 있었다. 비록 하얀 피부에 지저분한 흉터가 있는 것이 옥의 티였지만 말이다.

내가 속상한 마음에 흉터를 손 끝으로 어루만지자 한세아는 몸을 다시 움찔 떨었으나 내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시작합니다?"

"넵!"

주물주물-

"흐앗! 힉! 헥! 흐윽!"

말랑한 피부가 눌러질 때마다 전기가 오른듯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한세아.

"······아파요?"

"아니욧···! 딱 좋아요! 히앗!"

내가 어깨를 움켜잡을 때마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한세아가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완전히 풀어진 얼굴을 하는 그녀를 보니 뭉친 근육이 제대로 풀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나와 한세아는 책상 아래에 숨은 채 한동안 원치 않았던 휴식 시간을 가졌다. 지진이 멎자마자 금방이라도 나갈 수 있게 마음의 준비하면서.

하지만.

······지진은 해가 완전히 저물고 달과 별이 밝게 빛날 때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

"······."

"······."

나와 한세아는 멍하니 창문 너머 어두워진 바깥을 바라보았다.

드드드드······

금방 진정할 줄 알았던 나무뿌리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듯 그 여파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점점 진동이 약해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러면 뭐 하는가.

이미 완전히 밤이 되어 버렸건만.

밤이 된 이상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보내야만 했다. 지수와 예린이 있는 주민 센터가 아닌 이름도 모르는 빌라에서.

"···현우씨."

한세아가 멍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네."

나도 멍한 얼굴로 답했다.

"밤이에요."

"그러네요. 밤이네요."

"······."

"······."

잠시 이어지던 침묵은 다시 입을 연 나에 의해 깨졌다.

"···지수가 많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러게요."

"돌아가면 저 잔뜩 깨물리는 거 아닐까요."

나는 무궁화호에서 지수에게 잔뜩 깨물렸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몸을 흠칫 떨었다. 농담 한 번에 그 정도였으니 이번에는 어느 정도일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왠지 그녀에게 물렸던 부위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물리기만 하면 다행 아닐까요······?"

"······설마 죽이겠어요? 그래도 오늘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미리 말은 해놨잖습니까···."

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멍하니 중얼거린 한세아의 물음에 답했지만,

"음.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요.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진짜로 못 돌아올 거라고 아무도 생각 안했을걸요? 저도 그렇고, 현우씨도 그랬을 텐데, 지수씨는 오죽 하겠어요? 힘내세요, 현우씨."

남 일처럼 말하는 그녀 탓에 희망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주민 센터에서 떠나기 전에 지수의 태도를 떠올려보면 어떻게든 오늘 돌아올 테니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 근데 왜 저만 당하는 것처럼 말하는 겁니까?"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물론, 건물을 털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탓도 있었지만.

중간에 한세아가 이제 돌아가자고 해도 지수랑 예린에게 뭐라도 더 챙겨 주고 싶은 마음에 조금만 더 챙겨 가자고 한 내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그다음부터는 나보다 더 신나서 방을 뒤지고 다닌 한세아가 아니었던가.

그녀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방을 뒤지면서 먹을 수 있고, 쓸 만한 물건들을 가방에 쑤셔 넣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랑 세아씨가 같이 나간 건데, 왜 저만···?"

한세아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그머니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뭐, 오늘 여기서 자고 가야 하는 건 변함이 없으니 밥도 먹고, 씻고 그래야겠네요~."

"세아씨?"

"현우씨 먼저 씻고 와요! 전 밥 준비하고 있을게요."

"···세아씨?"

"여기 무거워서 못 챙긴 생수 묶음 있었죠? 우리 그걸로 씻어요. 어차피 못 들고 가는 거 여기서 실컷 쓰고 가야죠. 미련 안 남게."

"······저기요?"

"아잇! 저 그만 부르고 얼른 씻고 와요! 그동안 밥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어어?"

내 애절한 부름을 계속 무시하던 한세아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등을 앞으로 꾹꾹 밀면서 화장실로 집어넣었다.

"모쪼록 지수씨랑 원만한 합의 보시길 기도할게요!"

이어서 그녀는 낑낑거리며 생수 한 묶음을 들고 오더니 장난스럽게 내뱉은 말을 끝으로,

-쿵

화장실 문을 닫고 사라졌다.

"······하아."

문을 닫고 편하게 씻으라는 의도였겠지만, 나는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 문을 완전히 닫자마자 오로지 어둠만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몸을 어떻게 씻겠는가.

달칵-

"세아씨, 손전등 좀 주세요.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아. 잠시만요!"

휴대용 가스 버너에 쌀과 참치를 털어 넣고 있던 한세아는 아차 싶은 얼굴을 하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딸깍! 딸깍!

"여기요! 그걸 생각 못했네요. 아하핫-."

그녀는 손전등이 제대로 켜지는지 몇 번 확인을 거친 후 내게 건넸다. 한세아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은 많으니까 아끼지 말고 써요. 아까 말했듯이 어차피 다 못 들고 가니까요. 알았죠?"

"알겠습니다."

이윽고, 다시 화장실로 돌아온 나는 손전등 빛에 의지하며 몸을 꼼꼼하게 씻기 시작했다.

거품 묻은 손이 움직일 때마다 오늘 하루가 고단했다는 증거가 사라지고 있었다.

툭- 스윽-

주변의 그림자만큼이나 검게 변한 거품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콰르르···

먼지를 가득 품은 물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간다.

묘하게 긴장되는 마음을 뒤로 하고, 나는 더러운 흔적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드드······드······

이제는 완전히 가라앉아 가는 여진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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