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28화 (129/497)

Chapter 128 - 128. 해후 (5)

[키에에에엑!]

[끄아아아악!]

[아긹! 아기기긹!]

[끄르르르르륵!]

처음에 한쪽 방향에서 들렸던 나무 인간들의 괴성 소리는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괴성은.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쿵쿵쿵쿵쿵쿵-!

수풀을 거세게 헤치는 소리, 땅을 강하게 박차는 발소리와 함께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부 신아진이 흘린 피 냄새에 반응한 나무 인간들이었다.

"······너무, 너무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쫑긋거리는 귀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변의 소리를 수집하고 있던 지수가 작게 말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손의 떨림을 감추기 위해 도끼를 꽉 쥐었다.

"아저씨! 넝쿨! 보이는 넝쿨 다 뜯어! 체액으로 피 냄새를 조금이라도 지워야 해!"

하얗게 변한 손만큼이나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던 지수는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도끼를 앞으로 내세우며 급하게 말했다.

"알았어!"

나와 지수는 담벼락에 붙어 있는 넝쿨 줄기를 죄다 뜯어내 체액을 뿜게 만들기 위해서 담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넝쿨 체액에는 온갖 냄새를 지워주는 효능이 있으니 그것을 사방으로 뿌리기만 해도 혈향을 지워주는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이윽고, 넝쿨 벽 앞에 도착한 우리는 고개를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면서 넝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뚝- 뜨득! 뚜드드득-!

푸쉬이익···!

지수는 도끼를 이용해서 줄기를 뭉텅이로 잘라 내었고, 나는 급한 대로 손으로 넝쿨을 붙잡아 줄기를 하나하나 찢었다.

투툭! 툭- 툭-

사방으로 튀는 끈적한 점성을 가진 체액이 나와 지수의 얼굴과 몸에 튄다.

"우욱-!"

간혹 체액이 입으로 들어갈 때면 속을 게워내고 싶게 만드는 역겨움이 한가득 올라왔지만, 애써 꾹 억눌러서 참았다.

지금은 헛구역질하는 시간조차 아까웠으니까.

한시가 바쁜 상황인데 속을 달랠 여유가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팍! 파악! 파박!

그리고 그것은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를 악문 상태로 계속해서 도끼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주민센터를 가려주는 넝쿨 벽은 줄기가 뜯어질 수록 휑한 모습을 보여 주며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있는 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다.

외부의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가림막인 넝쿨 벽.

그러나 어차피 주민 센터를 향해 나무 인간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기 때문에 겨우 시선만을 차단해주는 넝쿨 벽은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찌 되었든 나와 지수가 놈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저씨, 우리가 저걸 다 상대할 수 있을까?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가닥가닥 끊어진 넝쿨 줄기 사이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다수의 나무 인간들을 보며 지수가 중얼거린 말이었다.

[으기기기기긹!]

까득- 까가가가각!

어림잡아 스물은 그냥 넘을 것 같은 놈들은,

나무 껍질로 뒤덮인 관절을 이리저리 꺾어 대며 팔을 쭉 뻗고 있는 놈들은, 뿌연 눈동자에 오로지 살의 하나로 가득 채운 채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놈들은,

꿈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끔찍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가지다 못해 격하게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게 아니야, 지수야."

손이 떨리고 오금이 저렸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

"할 수 있을까, 가 아닌 반드시 해야만 해."

그래,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우리가 뚫리면 다음은 예린이랑 세아씨야. 그러니까 무조건 여기서 막아야 해. 놈들이 몰려오는 것은 저 방향뿐만이 아니었잖아. 갈 데가 없어."

나와 지수가 살아남기 위해서,

건물 안을 급하게 뛰어다니며 피 냄새를 지우고 있을 예린과 한세아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나무 인간들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내야만 했다. 모래성을 보호할 수 있는 단단한 방파제를.

"나도, 나도 알고 있어. 그냥 해 본 말이야. 난 절대 포기 안 해. 아저씨를 위해서라도, 예린이를 위해서라도."

지수가 마음을 다잡은 얼굴로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시피 지수 자신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무섭고 이겨 내기 힘든 고난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이겨 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이다.

나와 지수는 끝도 없이 차오르는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면서도 넝쿨 줄기를 뜯기 위한 손은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넝쿨의 체액이 얕은 웅덩이를 형성할 정도로 주변에 상당히 많이 뿌려졌을 때, 나무 인간들이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수가 예상보다 적었다면 담을 넘어서 상대했겠지만, 그러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몰려오는 나무 인간들의 숫자가 세 자릿수가 아닌 두 자릿수 라는 점일까.

수백이 몰려왔다면 나, 지수, 예린, 한세아 ······그리고 신아진까지 이 건물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어야 할 것이다.

여차하면 신아진을 버릴 생각도 염두해 두면서 말이다. 아니, 버려야만 했겠지.

정말로 안타깝고 미안했지만 우리가 이런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탓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생명에 차등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나, 우선순위로 따지면 신아진이 제일 아래다.

그녀 하나를 챙기기 위해서 지수, 예린, 한세아의 목숨을 저울질하고 싶지 않았다.

"조심해. 무리하지 마. 하나씩 상대하면 ···이길 수 있어."

"응, 아저씨. 난 아저씨 믿어."

"···그래, 나도 너 믿는다."

나와 지수는 각자 손에 무기를 꼬나쥐고 곧 이어질 상황에 대비했다.

이윽고.

······쾅!

담을 후려친 나무 인간에 의해 담벼락을 구성하는 철창이 강하게 울리며 요동쳤다.

투투툭- 툭-

간신히 달라붙어 있던 넝쿨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끼아아아아악!]

철창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그 손을 우리에게 쭉 뻗은 나무 인간들.

카강! 카가각!

날카로운 놈들의 손은 검은 이끼가 뒤덮여 있는 나무 껍질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흡!"

지수는 재빨리 도끼를 가시처럼 돌출된 나무 인간들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쐐애애액!

콰직! 콱- 콰지직!

그녀가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을 때마다 놈들의 팔에 붙은 나무 껍질이 부서지거나 쪼개진다. 그러다가 한계 이상으로 껍질이 부서지면 나무 인간의 몸체에서 팔이 분리가 되어 바닥에 쌓인다.

지수가 온 힘을 다해서 나무 인간들을 공격하고 있을 때, 나도 마냥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부우웅-!

퍼억-! 팍! 퍼어억!

창살에 끼인 채 몸부림치고 있는 나무 인간들을 향해 망치를 놈들의 팔, 머리, 어깨 같은 내가 타격할 수 있을 만큼 튀어나온 모든 부위들을 터트리기 위해 휘둘렀다.

쐐애액!

지수의 도끼가 공기를 매섭게 가를 때마다, 내 망치가 공기를 무겁게 밀어낼 때마다 담벼락 주위에 쌓이는 나무 껍질 파편과 지저분하게 뜯어진 나무 인간들의 팔들은 많아지고 있었지만.

'···안 돼.'

이래서는 끝이 나지 않았다.

여러 부위를 파괴한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부수는 것이 아니면 큰 의미가 없었다. 나무 인간들은 머리를 잃어야만 죽어서 행동을 멈추니까.

이런 식의 싸움은 나와 지수의 체력을 갉아만 먹을 뿐이었다.

나는 초조함에 이를 악물었다. 조금 뒤로 물러나기 위해 지수의 팔을 잡아당겼다.

"왜?!"

그녀는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눈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지수의 이마에는 벌써 땀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지금 이렇게 싸우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잖아. 팔을 떨어트린다고 해도 머리를 부수지 못하면 끝이 나지 않으니까."

"그럼 어떡하게? 그렇다고 저기 넘어가서 싸우는 건 더 말이 안 되잖아."

지수는 담 너머를 쳐다보며 말했다. 바짝 곤두서 있는 그녀의 꼬리는 현재 지수가 매우 예민한 상태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쾅쾅쾅쾅쾅쾅쾅!

담벼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채 나와 지수만을 바라보며 괴성을 지르는 나무 인간들.

지능이 낮아진 놈들은 담을 넘을 생각도 못하는지 그저 창살 사이로 머리나 팔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가 담을 넘어가서 나무 인간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수적 우위만이 아닌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도 압도적이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붙잡히면 게임은 바로 끝이다.

물량도 밀리고, 붙잡히면 벗어날 수 없다.

옅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빠져나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오로지 절망만 가득한 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최대한 안전함을 챙기면서 나무 인간들의 숫자를 하나씩 줄여나갈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뒤이어 벌어지는 일에 우리는 고민을 더 이어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아니, 필요는 여전했으나 여유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었다.

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

지성이 사라진 탓에 상대하기는 한층 수월해진 것은 맞지만 지금은 그게 독이 된 것일까.

두두두두-!

우회해서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는 나무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몸이 겹쳐졌고, 어느새 담의 높이만큼이나 층층이 쌓이고 있는 중이었다.

주민 센터로 몰려든 수많은 나무 인간들을 막고 있던 담벼락은 이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체감상 1분도 아니, 20초도 지나지 않아서 서로의 몸을 짓밟고 기어코 담을 넘은 나무 인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우리가 있는 담 안쪽 주민 센터로 말이다.

"······!"

"···지수야! 뒤로 더 와!"

나와 지수는 헛숨을 들이키며 황급히 담과의 거리를 좀 더 벌렸다.

그 순간.

[크아아아아악!]

[거어어억! 끼아아아악!]

까드득! 까각! 까가각!

바닥으로 떨어진 나무 인간들이 괴성을 지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놈들이 격하게 팔을 휘두르자 나무 껍질 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이런 씹···!"

나는 제일 선두에 있는 나무 인간의 머리통을 향해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놈이 넘어지면서 뒤따라오는 나무 인간들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도록.

부우우웅!

-뻐억!

푸화아악!

말 그대로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난 나무 인간은 엄청난 양의 체액을 뿜어내며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망치의 힘으로 뒤로 날아갔다. 놈은 그 뒤로 몸을 몇 번 경련시키다가 축 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를 처치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부웅-!

퍼억!

계속해서 달려드는 나무 인간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숨도 고르지 못한 채 연이어서 망치를 휘둘러야 했으니까.

쐐애애액!

콰직!

급박한 상황 속에서 곁눈질로 지수를 살펴 보니, 그녀는 나무 인간 둘의 머리를 쪼개고 세 마리 째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하나를 죽이면, 하나가 아니, 둘이 위협하고, 둘을 죽이면 뒤따라서 셋이 아닌 넷이 나오는 것이 현 상황.

개방된 곳에 있을 때, 사방에서 둘러싸이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질수록, 신경써야 하는 방향이 많아질수록 나와 지수가 살 확률 또한 낮아지고 또 낮아지니까.

그러니 최소한 한 번에 둘 정도만 상대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곳은···.

"지수야! 주민 센터 안으로 다시 들어가! 이제 1층 입구에서 싸워야 해!"

양 옆이 막히고 앞과 뒤만 뚫려 있는, 긴 복도가 있는 건물이 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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