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9 - 129. 해후 (6)
콰직!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수가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그녀는 막 도끼를 휘둘러 달려드는 나무 인간 하나를 처리한 참이었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쉴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달려드는 또 다른 나무 인간 하나.
"아오! 진짜···!"
울상을 지으며 다시 도끼를 높게 든 지수.
"뒤 조심!"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며 지수의 뒤를 점거한 나무 인간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퍼억!
우당탕탕!
발에 저릿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뒤에서 지수를 노리던 나무 인간은 바닥을 나뒹굴게 되었다.
파바바박!
넘어진 놈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칠 때마다 흙 알맹이, 풀 쪼가리, 넝쿨 체액 따위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헤엑! 고마워! 헥!"
지수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녀의 긴 흑발은 땀으로 잔뜩 젖은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사방에 뻗쳐 오는 위협을 대부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좋은 지수였지만, 지금 상황은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섰기 때문에 팔이 네 개가 있어도 모자랐다.
아니, 팔이 얼마나 달려 있든 간에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빠아악!
[끼에에에엑!]
나는 거의 몸을 다 일으켜 가는 나무 인간을 다시 한번 발로 차서 넘어뜨린 후 다급하게 외쳤다. 정문 쪽 담벼락만이 아닌 좌우 담벼락에서도 나무 인간들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됐어! 지금 가야 돼!"
"알았어!"
타탓- 타타탓-
나와 지수는 곧장 몸을 돌려 주민 센터 1층 정문으로 내달렸다.
등을 보이고 후퇴하는 우리를 향해 나무 인간들이 손을 뻗어 붙잡으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지수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우웅-!
퍼억! 까가가각!
나는 어떻게든 망치를 크게 휘둘러 나무 인간들을 밀쳐 내는 식으로 벗어날 수 있었고.
쿵! 쿵! 쿵!
심장이 정도를 모르고 강하게 박동한다.
쿵! 쿵! 쿵!
잔뜩 긴장한 다리가 정도를 모르고 바닥을 강하게 내디딘다.
쿵! 쿵! 쿵!
나무 인간들이 정도를 모르고 아직도 담벼락 너머에서 쏟아진다.
이윽고, 나와 지수는 주민 센터 1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가 매우 힘들었기에 서로 눈빛만을 겨우 주고받을 수 있었다.
끼익! 끼익!
일단 급한 대로 문을 막아서 잠시 숨 좀 돌리자는 뜻이 통했는지 우리는 곧장 뒤로 돌아 이중으로 되어 있는 유리문을 전부 닫았다.
비록 얼마 버티지 못하고 깨질 것이 분명하지만 아주 약간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으면 족했다.
달칵!
문에 잠금이 걸리는 것과 동시에.
콰-앙!
주민 센터 유리문에 수없이 많은 손바닥 자국들이 들러붙어 그것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덜컹덜컹덜컹덜컹덜컹!
쾅쾅쾅쾅! 까드드득! 까각! 까각!
[기이에에에엑!]
[크아아아악!]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바싹 마른 나무 껍질이 비틀리는 소리, 나무 인간들의 포효 소리.
"허억! 허억! 큭, 헉!"
"하아! 헤엑!"
나와 지수는 끊임없이 몰려드는 나무 인간들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밀려 본능적으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쾅!
얼마나 죽였지?
내가 확실하게 죽인 것은 최소 셋, 지수가 죽인 것은 최소 다섯.
쾅!
얼마나 남았지?
당장 눈에 보이는 놈들만 대략 10 아니, 12. 아니, 14마리.
쾅!
선택을 잘못 했나?
수많은 나무 인간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우리가 처리한 나무 인간들 만큼 수가 늘어나 있었다.
쾅!
내가 너무 오만했나?
고작 근력이 늘어났다고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나?
피투성이가 된 신아진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망설이지 말고 바로 다른 건물로 이동해서 숨었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면, 아직 늦지 않았을까?'
내가 좀 더 옳은 선택지를 골랐었더라면,
내가 좀 더━━
쾅!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다.
하물며 목숨이 경각에 달한 시점에서의 후회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리고 신아진이 우리가 숨어 있는 도서관으로 왔을 때부터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신아진을 외면하고 곧장 도망치느냐, 고작 하룻밤의 인연에 값싼 동정을 던져 주며 신아진을 챙겨 주느냐 하는 두 개의 선택지뿐.
결국 바로 앞에서 식어가는 생명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나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고.
그것도.
···아주 혹독하게 말이다.
"━! ━━! ━━━━!"
비상구를 타고 위층에 있는 한세아와 예린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들은 나와 지수가 모두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만큼이나 쉴 새 없이 행동하며 상황이 일단락된 후의 미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콰앙-!
쩌적···
유리문은 금방이라도 깨져 나무 인간들의 출입을 허용할 것 같았다. 거친 파도가 모래성을 부수기 위해 몰아치고 있었다.
우리가 이런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은 결국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었던 내가 우유부단한 탓이다.
그러니까 내가 책임져야 해.
내가 한 선택이니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짊어져야만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막는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어떻게든. 반드시.'
세상을 구한다는 놈이 눈앞의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을 버린다는 것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이야기도 없다.
나는 누나에게 그렇게 배우지 않았어.
살아남는다는 것은,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숨탄것들의 숙명이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바로 그때.
티딕-
무언가 껍질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소리의 근원지를 찾지 못했다. 다만 망치를 꽉 쥘 뿐이었다.
······쨍! 콰장창! 탱-!
그와 동시에 금이 점점 많아지고 있던 유리문이 결국 산산조각이 나며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유리문에 붙어있던 금속 문고리가 바닥으로 거세게 튕겨지며 미끄러진다.
[아아아아아악!]
제일 선두에 있던 나무 인간 하나가 뻥 뚫린 유리문 너머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놈은 가장 먼저 살아 있는 먹잇감을 맛볼 생각에 머리를 넣었겠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흐압!"
쐐애애액!
쩌어억!
지수가 소방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내려찍으며 놈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 버렸으니까.
[그르르륵······]
내부의 속살을 활짝 드러낸 나무 인간은 몸을 격하게 경련시키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지수야! 뒤로!"
"알았어!"
부우우웅!
나는 이를 악물며 지수가 뒤로 살짝 물러나서 생긴 공간을 향해 망치를 강하게 휘둘렀다. 지금 빈 공간에 나무 인간이 있는가 없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빠-아악!
어차피 연달아서 머리를 밀어 넣으려고 하는 나무 인간들이 금세 자리를 채웠으니 말이다. 덕분에 내 망치는 타점에 머리통을 고스란히 가져다 바친 나무 인간 하나를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쿵! 쿵! 쿵!
거세게 박동하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게 울린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몸이 점점 강인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푸확!
좀 더 강해진 근력에 의해 펑 터진 머리통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촤악!
뿌연 먼지로 인해 불투명해진 유리문에 검붉은 체액이 확 튄다.
어린아이가 물감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처럼 흩뿌려졌지만 그 내막은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물감이 아닌 나무 인간의 체액이었으니까.
선두에 있던 나무 인간 둘이 나와 지수에 의해 단숨에 목숨을 잃고 힘없이 축 늘어지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무 인간들이 진입하는 속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겨우 두 마리가 죽었을 뿐이었지만, 그다지 넓은 길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콰직! 빠악! 콱! 콰지직!
숨을 꾹 참은 상태에서 연달아서 휘둘려지는 도끼와 망치가 다음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고 하는 나무 인간들의 숨통을 끊어 놓는다.
문 근처에 놈들의 시체가 쌓이면 쌓일수록 나무 인간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목은 점점 좁아져 갔고, 그것은 나와 지수가 숨을 돌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점점 눈에 띄게 지쳐가는 것이 보이는 지수와 달리, 알 수 없는 힘이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는 나는 전혀 지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지치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내가 한 번에 낼 수 있는 힘의 최대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말이다.
"흐아압!"
나는 바닥을 있는 힘껏 내려찍기 위해 망치를 높게, 아주 높게 치켜들었다. 망치 머리에 맺힌 체액이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나무 인간을 하나라도 더 노려도 모자랄 판에 애꿎은 바닥을 치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행동.
그런 행동은 힘만 빠지게 되는, 의미가 없는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했지만.
「······.」
영문을 알 수 없는 확신이 나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마치 뒤에 이어질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듯이.
쿵! 쿠웅! 쿠웅!
심장이 강하게, 더 강하게 박동하며 무언가를 뿜어낸다. 혈류를 타고 흐르는 그것은 내 몸 전체를 휘젓다가 손끝에 모였고, 이내 망치로 전달되고 있었다.
심장, 팔, 다리, 돌아와서 다시 심장, 손, 망치로 미증유의 힘이 이동한다.
이윽고, 망치 머리에 푸른빛무리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푸른빛이.
콰아앙-!
심장에서 무언가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나는 망치를 위에서 아래로 곧게 내려찍었다.
쩌저저적!
우우웅-!
육중한 망치 머리는 석재로 이루어져 있는 단단한 건물 바닥을 쪼개다 못해 파고 들어가며 기묘한 파장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파장은 바닥을 딛고 있는 나무 인간들의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쿠당탕-!
[크아아아악!]
[끼에에에엑!]
전방의 나무 인간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진다.
한 놈도 빠지지 않고.
···모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