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0 - 130. 해후 (7)
[크아악?!]
[아긹?!]
우당탕! 우르르-
팔을 이리저리 휘적이다가 넘어지는 전방의 나무 인간들.
"······아저씨?! 이게 무슨?!"
꼬리를 바싹 곤두세운 채 나무 인간을 상대하고 있던 지수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그녀는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으나 나는 해 줄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냥 바닥을 찍었을 뿐인데 나무 인간들이 넘어졌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무엇보다 지금은 전신을 감도는 탈력감에 말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기도 했고.
"허억! 허억!"
당장은 터질 듯 박동하는 심장과 꽉 조여지는 폐부를 진정시킬 수 있는, 숨을 돌릴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으으! 나중에 이야기해 줘! 꼭!"
지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나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엉망진창으로 자기들끼리 얽혀 있는 나무 인간들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 도끼를 들었다.
콰직! 콱!
나무 인간들을 휘저은 기묘한 파장은 놈들이 균형을 잃게 하는 것만이 아닌 일종의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지수가 손쉽게 도끼로 놈들의 머리통을 쪼갤 수 있었다.
그렇게 처리한 것은 8마리.
지금까지 나와 지수가 죽인 것은 최소 15마리.
하지만.
우리가 착실하게 눈앞의 나무 인간들의 수를 줄여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수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다수의 나무 인간들이 내는 소리는 또 다른 다수의 나무 인간들을 유인하는 소리이기도 한다는 신아현의 말처럼, 지금 우리는 그런 연쇄 반응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 전방의 나무 인간들을 전부 죽였어도 우리가 싸우는 소리와 놈들의 단말마 소리에 멀리 퍼져 있던 나무 인간들이 주민 센터로 오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
"아저씨,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그거 다시 할 수 있어? 망치 내려찍어서 저것들 넘어지게 하는 거 말이야."
지수가 볼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물었다. 그녀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은 숨기지 못했다.
싸우기 시작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조차 없었으나, 처음부터 전력으로 움직인 탓에 이제는 체력적으로 한계가 온 것이다.
"몇 번 더 할 수는 있지만···. 의미가 없어."
나는 심장에 담긴 푸른 입자의 양을 가늠하며 답했다.
내가 땅을 흔드는 이적을 발휘한 것은 분명 대단하고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은 단순히 시간을 버는 용도에 불과했을 뿐,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이 근처에 있는 나무 인간들을 한 번에 일소 시키지 못한다면 지금 이 싸움은 끝이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나무 인간들의 파도는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수몰되어 익사할 때까지 지속되겠지.
"헤엑···. 진짜 끝도 없네······."
질린 얼굴을 하며 중얼거리는 지수.
지금은 수북이 쌓인 나무 인간들의 시체에 의해 길목이 콱 틀어 막혀 있기에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들썩! 콱! 들썩!
동맥 경화에 걸린 혈관처럼 나무 인간들의 시체로 인해 막힌 통로는 금방이라도 뻥 뚫릴 듯이 들썩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와 지수는 서둘러 입구 주변에 있는 쓰레기통이나 도서관 반납함, 민원실의 소파를 끌고 와 문을 보강했다.
끼기긱! 끼긱!
석재로 된 바닥과 금속으로 된 상자가 마찰되자 고막을 날카롭게 찌르는 소리가 난다.
찌지직! 지지직!
무거운 물체에 의해 나무 인간들의 시체가 짓눌려지며 놈들의 육편이 검붉은 체액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지수야. 지금이라도 뒤로 빼면 도망칠 수 있을까?"
겨우 숨을 되찾은 내가 약간의 후회를 담아 지수에게 물었다.
"아니. 그 여자를 봤을 때부터 바로 그랬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안 돼. 도망 못 쳐. 이 주변에 나무 인간들이 쫙 깔렸으니까. 도로에 있던 놈들이 피 냄새에 유인 당해서 다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인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
"신아진. 그 여자를 버리는 게 아닌 이상 놈들은 우리를 끝까지 쫓아올 거야. 피가 계속 나는 상태니까. 한번 피 냄새를 맡은 나무 인간들은 먹잇감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기도 하고. 아저씨는 그 여자 버릴 수 있어?"
"······나는."
"됐어! 말하지 않아도 돼. 아저씨 성격상 그러지 못한다는 거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냥 해 본 말이야. 아잇! 다시 봐도 괜찮은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
우물쭈물하는 나를 보던 지수가 말을 이었다.
"뭐,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았지만 말이야. 아저씨가 그랬잖아. 할 수 있을까, 가 아닌 해내야만 한다고. 그러니까 자책은 그만해. 어쩌겠어? 일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수습을 해야 하는 걸.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지수의 말이 맞다.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제는 후회하기보다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코앞에 닥친 고난을 극복할 생각을 해야 했다.
이미 나도 알고 있었던 부분이 아니던가.
우리가 처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지고 있었기에 지수에게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던 것이다.
가까스로 발휘한 이적은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주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으니까.
[그르르르륵!]
[캬아아아아악!]
[그아악! 키에에엑!]
의왕역 쪽에 있었을 나무 인간들이 주민 센터를 향해 더더욱 많이 몰려오고 있었다.
먼저 주민 센터에 도착한 나무 인간들의 포효 소리를 듣고 더 멀리까지 있던 나무 인간들이 찾아온 모양이다.
쿵! 쿵! 쾅! 쾅!
[기아아아아악!]
간신히 보강한 문틈으로 놈들이 두드리는 소리와 괴성이 들려온다. 한계에 다다른 임시 바리케이드는 금방이라도 뚫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쐐애액!
콰직!
버둥버둥-
지수가 금속 보관함 사이로 삐져나온 나무 인간의 팔을 도끼로 잘라 내서 떨어트렸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빈자리를 곧장 다른 나무 인간의 팔이 채웠으니까.
뚝- 뚝-
뜯어진 나무 인간의 팔에서 악취를 풍기는 체액이 바닥의 타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바닥을 채워가는 검붉은 체액을 보면서 암울한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아닌 많은 수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아주 절실하게.
'···폭탄?'
무슨 얼어 죽을 폭탄이라는 말인가. 폭탄은커녕 수류탄도 가지고 있지 않건만.
'···불?'
우리가 상대하는 것들이 나무 인간들인 만큼 불을 피운다면 잘 타오르겠지만 소화제에 의해 불은 금방 꺼지고 말 것이다.
게다가 소화제가 만든 포자 덩어리에는 나무 인간들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으니 이 또한 답이 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빈대 잡자고 초가집을 불태우는 격.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정말 방법이 없나?
절망감. 그것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어떻게든 나, 지수, 예린, 한세아, 신아진이 모두 살아나갈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그때, 불현듯 예전에 한세아가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현우씨 손에서 푸른 불꽃이 쏘아졌다니까요? 거미 변종만을 불태운 푸른 불꽃이요.'
···불꽃.
그녀가 소화제에 대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보니 내가 만들어 낸 푸른 불꽃은 소화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체 어떻게 푸른 불꽃을 만들어내야 하는가?
지금 내가 망치로 나무 인간들의 균형을 잃게 해 넘어트린 것도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건만, 푸른 불꽃은 또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냐는 말이다.
그 순간.
터엉!
끼기기긱!
입구를 막고 있던 바리케이드가 앞에서 밀고 들어오려고 하는 나무 인간들의 근력에 의해 안쪽으로 밀려났다. 놈들의 시체와 온갖 가구로 이루어진 바리케이드는 지금까지 잘 버텨주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한계인 듯했다.
"아, 아저씨···!"
지수가 안절부절 못하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마치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지수야. 뒤로 물러나."
나는 망치를 질질 끌며 바리케이드 앞으로 움직였다.
"뭐? 아저씨는?!"
"나 믿지? 지수 너는 뒤로 물러나 있어. 여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하지만-."
"그만! 내 말 들어.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내 뒤로 와."
지수는 이를 악물더니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가득 채워지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할 수 있다.
나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이 상황을 극복 해내야만 한다.
쿵! 쿵! 쿵!
여전히 식지 않은 전투의 열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는 기세를 더해가며 내 몸을 덥히고 있었다.
앞은 수십에 달하는 나무 인간들이, 뒤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언제 뚫릴지 모르는 입구 앞에서 눈을 감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지만 내 심장에 있는 무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내가 이적을 쓸 수 있게 해준 원인이 내 심장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니까.
땅을 다시 흔들기 위해서든, 푸른 불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든.
우선 내 심장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