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35화 (136/497)

Chapter 135 - 135. 신아진 (3)

나, 지수, 한세아는 도서관 문을 열고 나란히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책장 사이에 숨어 있던 예린이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도도도도-

"언니들! 오빠!"

우리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예린은 곧장 경계를 풀고 도도도 달려왔다.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꼬리도 같이 살랑거렸다.

포옥-

우리는 냅다 품에 달려든 예린을 마주 안아주었다.

"흐잉···. 오빠 많이 다쳤어요? 많이 아파요? 언니, 언니도 많이 다쳤어? 세아 언니는 왜 그래요?"

우리를 봤을 때는 얼굴이 환해진 예린이었지만, 나와 지수, 한세아의 꼴을 가까이서 보고 난 지금은 울상만 남았다.

다다다 뛰어온 것만큼이나 다다다 걱정을 내뱉는 예린을 보며, 우리는 멋쩍게 웃으면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얼굴에 가득 고인 피로, 후들거리는 지수의 팔과 다리, 그녀들에게 들린 채 몸을 축 늘어트린 나, 계단에서 구른 탓에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한세아.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 예린이 얼굴에 걱정을 한가득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예린아. 조금 쉬면 금방 나을 거니까."

"그럼 빨리 이쪽으로 와요! 앉아서 쉬어요! 그, 다친 언니도 거기 있어요."

나는 지수와 한세아의 부축을 받으면서 예린이 이끄는 길을 따라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옆 아파트에 있던 거목이 무너져서 그런지 도서관 내부는 이제 여과 없이 햇빛을 전부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보다 한층 밝아진 도서관이었지만, 나는 걸으면 걸을수록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수와 한세아도 마찬가지였고.

아마도 소파를 하나로 이어 붙여 충분히 누울 수 있게끔 만든 자리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신아진이 보이기 시작한 탓이리라.

그녀는 온몸을 붕대로 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상이 많았다. 주위에는 핏물이 푹 배어 있는 천들이 널브러져 있어서 괜히 상태가 더 심각해 보이는 것 같았다.

신아진 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리들의 상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정확한 상태를 아는 것보다 당장은 소파에 앉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계속 걸었다. 앉아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파를 향해서.

이윽고.

"끄응···."

우리는 침대 대용으로 썼던 소파에 나란히 붙어 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역시 딱딱한 바닥보다는 푹신한 쿠션이 있는 소파가 더 나았다. 비교 선상에 올려놓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예린이 한세아의 다리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지수는 뒤로 벌러덩 누워 숨을 고르는 상황이 한동안 이어졌다.

"후우, 그래서 신아진씨 상태가 어떻습니까? 저랑 지수는 바로 내려가서 잘 모르니까 설명 좀 해주십쇼."

그렇게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잠시, 나는 신아진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한세아와 예린에게 물었다. 아직 핏자국이 마르지 않은 것을 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처에서 나온 핏물을 닦았던 것 같았으니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처음에는 이것보다 더 심했어요. 현우씨랑 지수씨가 1층으로 내려가고 나서 저랑 예린이는 우선 이 사람을 안으로 들였거든요. 바닥의 핏자국들을 닦는 것도 닦는 거지만 다친 사람이 계속 흘리는 피를 막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한세아는 침음을 흘리며 자신과 예린이 취한 조치들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피가 안 멈추더라구요. 급한 대로 붕대로 감아도 피가 계속 나왔어요."

"상처가 그렇게 심했습니까? 아니, 그야 심해 보이긴 했지만요."

내가 신아진을 다시 한번 둘러보며 작게 의문을 표하자,

"아뇨, 상처의 경중이랑은 다른 느낌이었어요. 귀를 제외하고 겉에 난 상처는 그렇게 깊지 않기도 했고, 보통 피를 흘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응고되기 마련인데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거든요.

꼭 혈소판이 없는 것처럼? 근데 또 바닥에 떨어진 피는 응고가 돼서 그건 아닌 것 같았구요···. 근데 저는 마냥 이 사람 피만 닦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그 뒤는 예린에게 맡기고 나가 가지고 여기까지밖에 몰라요.

"

한세아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비상 계단에 있는 핏자국들을 정신없이 치우다가 갑자기 푸른 불꽃이 보여서 현우씨한테 급하게 간 거예요. 혹시 일이 잘못 되었을까 봐요. ···그러다가 거하게 넘어지고 말았지만."

피가 멈추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신아진을 보았으나, 현재 상처에서 나오는 피는 멈춘 상태였다.

'···뭐지?'

지금은 피가 멈춘 상태이건만, 결국 시간 문제였던 것인가?

정상인의 경우, 출혈이 멈추는 시간은 대체로 2~8분 정도이다.

신아진이 계속 움직여서 피가 제대로 굳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가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그 정도의 시간은 진작에 지났을 것이다. 지나고도 남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피가 응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나는 무언가 놓치고 있는 느낌에 골머리를 싸매며 생각에 생각을 이어 나갔다.

바로 그때.

"오빠! 그 부분은 제가 알아요!"

나와 한세아가 나누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예린이 손을 번쩍 들면서 외쳤다. 아이의 눈은 어느새 고양이 눈으로 변해 있었다.

"······? 아, 세아씨가 나가고 나서 예린이 너 혼자 이 사람을 돌봤다고 했지?"

"네! 다친 언니를 처음 봤을 때, 언니 상처에 검은 입자가 보였어요. 많지는 않고 아주 조금이었지만요! 그게 언니를 계속 피 흘리게 만들었어요. 창문 밖에서 푸른 불꽃이 보이더니 언니 상처 주변에 있는 검은 입자가 싹 사라지고 나서야 피가 멈췄어요. 제가 봤어요!"

"······!"

"그거 오빠가 한 거죠? 완전 대단해! 친구도 대단하대요!"

"친구······? 어어, 맞아."

나는 그제야 뭘 놓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 검은 입자.

'그걸 왜 생각 못했지?'

당장 내가 푸른 불꽃으로 검은 입자를 가진 나무 인간들을 불태우고 온 참이거만.

나는 경우가 다르지만, 지수, 한세아, 예린 같은 경우는 수인이 되면서 회복력이 강화되었으면 되었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확실했다.

전체적으로 향상된 감각과 체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깊지 않은 상처의 피가 쉽게 멎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요인이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결국 지속적인 출혈을 유발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것은 검은 입자라고 할 수 있겠지.

다만 문제는 신아진의 상처에 묻은 검은 입자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였다.

나무 인간들이 아주 약간 품고 있는 검은 입자인지, 변종들이 사방으로 뿜어내는 검은 입자인지.

그것도 아니면···.

"하아-."

나는 서서히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고비를 넘기면 바로 다른 고비가 연이어 나타나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툭-

내 미간을 건드리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아저씨, 너무 인상 쓰지 마. 주름 져."

지수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적어도 꼬리가 살랑거릴 정도의 체력을 회복한 그녀는 이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찌푸려진 내 미간을 피기 위해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안 잤어? 아까 보니까 자는 줄 알았는데."

나는 그녀의 바람대로 찌푸린 미간을 피면서 입을 열었다. 정신을 차리고 옆을 곁눈질로 보니 한세아는 어느새 예린을 안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예린도 마찬가지로 눈을 끔뻑끔뻑 뜨면서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듯했다.

"그냥 눈만 감고 있었던 거야. 세아 언니랑 예린이가 한 이야기도 들어야 했으니까. 괜히 두 번 말하게 하면 미안하잖아. 다들 힘든데."

"그렇구나."

"그래서?"

"······?"

"대충 결론은 지었을 거 아니야?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 상처에 왜 검은 입자가 있는지, 동생은 어디 가고 왜 혼자 남았는지. 이런 것들 있잖아."

지수의 물음에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은 후, 내 생각들을 하나씩 내놓았다.

"우선···. 언뜻 보이는 상처를 봤을 때는 나무 인간들한테서 입은 상처는 아니라고 판단했어. 긁힌 상처이긴 했지만 놈들에게 긁혔다고 하기에는 너무 깔끔했거든. 그렇다면 더더욱 변종들에게 당한 것도 아니겠지. 나무 인간도, 변종들도 아니라면 남은 것은···."

"···의왕시 생존자들."

지수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대신 말을 이었다.

"그래. 그게 제일 가능성이 크지.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이야."

"아니, 이해가 안 되네. 이 사람들이 우리보고 캠프 사람들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대체 뭘 했길래 붙잡혀서 이 사달을 만든 거야?"

"아마 캠프 생존자들보다 반인 나무 인간이고 반은 그냥 인간인 박현일이라는 남자가 그런 거겠지."

"그게 그거잖아! 어차피 그 남자가 여기 캠프 대장이라면서."

"···뭐, 아닐 수도 있잖아. 우리가 완전히 헛다리 짚는 것일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정보는 신아진씨가 일어나야 들을 수 있을 텐데···."

이번에는 내가 잔뜩 찌푸려진 지수의 미간을 살살 펴주며 말했다. 그녀는 내 손이 이마에 닿자 표정을 풀고 머리를 기대왔다. 지수의 쫑긋거리는 귀가 손을 톡톡 건드렸다.

"나, 이 사람 맘에 안 들어. 사정이 어떻든 간에 이 여자 때문에 아저씨가 다칠 뻔했잖아. 아니, 실제로 다치기도 했고, 그걸 넘어서 다 죽을 뻔했다구······."

뭐라 꿍얼거리며 내게 바싹 달라붙는 지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녀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옅은 숨소리를 겨우 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신아진을 바라보았다.

우리와 헤어진 기간인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겨우 단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아진의 얼굴에는 갖은 고초가 어려 있는 모습.

그녀가 한시라도 빨리 눈을 떠야 무슨 이야기라도 들어볼 텐데, 신아진의 의식은 쉽사리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 이상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휴식을 취하는 것뿐.

나는 조금씩 환기가 되어 빠져나가고 있는 락스와 세제 냄새를 맡으며 어느새 내 품에 안긴 채 잠에 빠진 지수, 예린, 한세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색- 색-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서관 내부에는 조용한 숨소리만이 남게 되었다.

***

신아진이 정신을 차린 것은 날이 넘어가기 전,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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