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8 - 138. 신아진 (6)
"뭐? 아래라니, 어디를 말하는 거야? 아래, 아래···, 아래···? 설마······하수도? 아저씨 지금 하수도 말하는 거야?"
지수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내 고개를 확 들며 말했다.
"···어, 맞아."
"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지수가 노성을 내지르려는 순간,
"지수씨! 잠, 잠깐만 참아봐요! 아직 이야기 좀 더 들어 보구요!"
한세아가 급히 지수를 끌어당기며 달랬다. 갈수록 심상치 않아지는 그녀의 기색에 마른침을 삼키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잠시,
"현우씨, 밑에 도롱뇽 변종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하시고 말한 거죠? 저랑 현우씨가 지하 터널을 통과하면서 봤던 놈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날카로운 눈을 한 한세아의 기세에 밀려 몸을 움츠려야만 했지만 말이다.
"그것도 염두해 두긴 했지만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지상에 나무 인간들이 그대로 돌아다니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의왕시 밑에 저수지가 있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해도 그게 제일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차피 가야만 한다면요."
"그래서 물류 단지까지 하수도로 가겠다는 거군요···. 적어도 돌아다니는 나무 인간들이 길거리보다는 수가 적을 테니까. 확실히 상대적으로 안전하긴 하겠네요. 물류 단지에도 맨홀이 있을 거고, 바로 내부로 들어갈 수도 있기까지."
"그렇-"
"어디까지나! 도롱뇽 변종들이 없다는 가정하에만! 맞는 말이잖아요. 만약 그것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면 지상보다 위험한 게 지하인데. 하아······."
한세아는 긴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덩달아 같이 한숨을 쉰 지수가 물었다.
"···아저씨,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그래, 만약 성공적으로 물류 단지에 몰래 들어갔다고 치자. 거기 사람들한테 안 들키고 그 여자도 구하고, 조각도 빼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심으로?"
"조각은 가서 일단 확인만 해볼 거야. 사람들은 잘 피해 봐야지. 밤에 움직이거나 넝쿨 체액 묻히고 다니면 냄새랑 기척은 좀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그 여자는?"
나는 식은땀이 맺힌 손을 바지춤에 슥 닦았다.
"신아현씨는···. 도와줘, 지수야. 네가 필요해. 너 그 여자 냄새 기억하고 있지?"
내 생각대로라면 지수는 신아현의 체향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나와 같이 새벽에 도서관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까.
비록 중간에 잠들었다고 해도 말이다.
"······!"
지수는 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그대로 멈췄다.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나쁜 놈."
"어?"
"나쁜 놈! 아저씨는 나쁜 놈이야! 이 나쁜 놈! 나쁜 노옴···! 흑, 진짜 짜증 나아···."
"어어?"
나는 당황스러웠다.
울어? 왜?
아니, 울어도 지수와 한세아에게 두들겨 맞은 내가 울 거로 생각했건만. 지수가 나보다 먼저 울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톡- 톡-
나는 옆에 있는 한세아가 보낸 신호를 받아, 훌쩍이는 지수를 끌어당겨 안았다. 다행히 옳은 선택이었는지 지수는 부드럽게 끌려와 내 품에 안착했다. 그녀의 귀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꼬리도 마찬가지.
내가 지수의 등을 토닥이며 달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하늘에 잔뜩 낀 구름에 의해 달이 완전히 가려졌을 때,
"···나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우리가 아무리 말려도 아저씨는 거기 갈 생각인 걸 알고 있단 말이야. 푸른 입자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예전부터 아저씨는 간혹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었으니까."
지수가 코맹맹이 소리로 입을 열었다.
"······."
"게다가 머릿속에 들린 게 아저씨 누나 목소리였다고 하니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하려는 것도 이해···하진 못 하지만. 아무튼!"
그녀는 나를 더 꽉 안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내가 뭐라고 아저씨를 말리겠어? 아저씨가 캠프의 조각을 확인하려는 것도 결국 우리를 위해서인걸. 하지만 아저씨에게 누나가 소중한 것처럼, 나뿐만이 아닌 언니랑 예린이에게도 아저씨가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해."
"···응. 미안."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모르겠는가.
지수와 한세아는 신아현을 구하고 싶지 않아서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녀들이 계속 반대 의견을 내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나 때문이다.
그녀들도 신아현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위험한 일들을 필연적으로 겪을 내가 걱정되어서 반대한 거겠지.
조각이니 뭐니 앞서 잔뜩 늘어놓았던 이야기들은 그저 변명에 불과했다.
심장의 푸른 입자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휴식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누나의 목소리가 전해준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목소리가 정말 누나가 맞는지 확신하고 싶어 하는 내 고집이 제일 컸다.
그들의 조각이 대체 무슨 조각을 말하는 건지 확인하지 않으면 계속 생각이 날 것 같았으니까.
'그들'이라는 것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아 내야만 했다. 왜 굳이 '그들'이라고 지칭하는지도.
차라리 속 시원하게 알려 줬더라면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워 찾아볼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바로 그때.
"···현우씨, 밤에 움직인다는 건 역시 지금 갈 생각인 거죠?"
한세아가 갈수록 안색이 어두워지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거 가져가요. 중요할 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또 혹시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이건-."
"쉿! 가만히 있어요. 조각 없으면 손전등도 오래 못 쓰는데, 그 긴 하수도를 어떻게 지나가려고 그래요? 아직 몸도 성치 않으면서."
내 입을 막은 그녀는 조각이 매인 목걸이를 풀어 내 목에 걸어 주었다. 푸른 조각은 여전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현우씨 말대로 이번이 조각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현우씨가 마지막으로 쓰는 게 낫겠죠. 그렇지 않아도 또 저만 남아서 속상해 죽겠는데, 그러니 제발 거절하지 말아요."
"···감사합니다."
"이게 뭐야···. 도움이 될 거라고 으스대면서 따라왔는데 정작 중요할 때는 다 빠지고···."
가만히 두었다가는 한세아마저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기색에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안아주기 위해 한쪽 팔을 벌리니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다가오는 한세아. 그녀가 가슴팍에 몸을 기대자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전해졌다.
아직 내 품에 있던 지수는 떨어질 생각하지 않고 눈치껏 옆으로 움직여 빈 공간을 만들었다. 지수의 꼬리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많이 안정된 듯 하건만.
"하아···. 미안해요, 둘 다. 제가 앞에서 싸울 줄만- 아니, 이것도 그냥 변명이네요."
"아뇨, 매번 말하는 거지만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겁니다. 예린이랑 신아진씨 상태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데요. 세아씨는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십쇼."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현우씨.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혼자 끙끙 앓지 마요. 당신 탓이 아니니까."
한세아는 내 말을 부정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촉촉해진 눈가에 일렁거리는 촛불이 비치니 한층 더 애처롭게 보였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서 조각 꼭 돌려 줘요. 약속해요. 반드시 그러겠다고."
"네. 약속 하겠습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했다.
징표.
그래, 이것은 징표였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라는 징표.
수원역에서 재회한 지수에게 내가 도끼를 돌려주었던 것처럼, 한세아도 내가 무사히 돌아와 조각을 돌려주기를 바라며 건넨 하나의 약속.
나를 믿어 주는 한세아를 위해서라도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겠지. 아니, 무조건 지키고 말 것이다.
"···아저씨, 지금 움직인다고 했지? 정말 더 쉬지 않아도 괜찮겠어?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지수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가지 말자고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몸은 괜찮아. 한숨 자고 나니까 피로도 좀 풀렸고. 그리고 지금 가야 안 늦을 것 같아.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그래, 가자 그럼. 언니랑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까 바로 가면 되겠네."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수는 묘하게 해탈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뭐든지 알았다면서 해 줄 것 같은 느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도와서 후딱 끝내버리자는 생각인 것 같았다.
이윽고, 나와 지수는 최소한의 물건만 챙긴 채 도서관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애초에 많은 짐을 들고 갈 필요도 없거니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므로 몸이 가벼워야 했으니까.
"아, 현우씨! 이것도 가져가야죠. 하수도 길도 모르는데 나침반이라도 있어야 방향을 찾을 꺼 아녜요. 지하 수로 지도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건 못 찾았으니 어쩔 수 없죠."
한세아가 도구 가방에서 나침반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녀의 말대로 미로처럼 길이 얽혀 있을 하수도에서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방향을 알려줄 길잡이가 필수였다.
네비게이션의 GPS가 작동하는 것도, 스마트폰의 지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는 나침반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것도 잘 쓰고 돌려 드릴게요."
"······잃어버려도 괜찮으니까 다치지나 마요."
"예린이가 일어나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최대한 동이 트기 전에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최대한 잘 숨어 계십쇼."
"알았어요. 저는 걱정말고 현우씨나 조심해요. 여긴 제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한세아에게 감사를 표한 나는 그녀의 걱정을 뒤로하고 지수와 함께 도서관 밖을 나섰다.
그래도 비교적 단시간 만에 지수와 한세아가 내 고집을 들어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