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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140화 (141/497)

Chapter 140 - 140. 하수도 (2)

이리저리 꺾이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지하 수로를 묵묵히 걷고 있을 때, 그리고 체감상 물류 단지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절반으로 좁혀졌다고 느껴지고 있을 즈음에,

콰콰콰콰콰━

졸졸졸··· 촤르르륵-

나와 지수는 어느 공동에 도착해 있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공동은 아니었다. 우리 앞에 있는 장소는 수많은 배관 파이프들이 한데 모이는 만남의 광장이었으니까.

비가 그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거센 물살을 뿜어내는 하수도, 흐르는 물을 미약하게 토해내는 하수도, 완전히 말라붙어 흙먼지만 남아 있는 하수도···.

다양한 상태의 하수도들이 중앙에 있는 공동에 각자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그것들의 중심지에 있는 것은 배관 목적에 따라 재질이 달라지는 배관 파이프들이었다. 동관, PPC관, PVC관, 메테폴관. 등등.

한때, 배변관, 우수관, 오수관, 하수관 같은 각종 역할이 나누어져 있었을 파이프들은 이제 허여멀건한 물만 내뿜고 있었다.

"······."

"······."

나와 지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포말이 일어나고 있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올 때부터 언제고 이런 장소가 나올 줄은 예상하였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

건너가서 맞은편에 있는 길목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

"······여기에 몸을 담가야 한다고?"

지수가 검은 물결이 치는 수면을 향해 손전등을 비춰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꼬리는 곧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예상이라도 한 듯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벌써 물에 젖은 것처럼 말이다.

하수도에서 떨어지는 물살에 의해 파문이 일어나는 수면은 대부분 흙탕물이었다.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기에 수면 아래가 마구 뒤섞인 탓이리라.

그러나 떠다니는 흙 알갱이들이 가라앉은 곳은 마치 자신들은 깨끗한 빗물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맑고 투명한 수질을 자랑하고 있기도 했다.

'그야 오물을 배출하는 사람이 없으니 물 자체는 깨끗하긴 하겠지. 악취는 하수도에 배인 냄새고.'

여기 모인 것들은 오염된 물이 아닌 그나마 깨끗한 축에 속하는 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 단지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 뿐.

그도 그럴게, 변기 물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그 물로 몸을 씻거나 하지는 않지 않은가.

이것도 그와 같은 이치였다.

하수도로 흘러 들어오는 물 자체는 더럽지 않다고 해도, 그 물들이 고인 장소가 문제다.

"후우···. 지수야, 업혀."

나는 바닥의 수위를 가늠하며 지수에게 말했다.

공동에 물이 찬 흔적들을 보니 지금은 수위가 많이 낮아진 상태인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들어가면 허리춤까지만 잠기겠지.

그 정도면 내가 지수를 업었을 때, 그녀는 물에 최대한 젖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수의 성격상 지금까지 별 불만 없이 하수도로 따라온 것만 해도 많이 참은 것이니, 이쯤 해서 당근을 던져줄 필요가 있었다.

비록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그녀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런 지수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검은 이끼를 밟을 때마다 꼬리털이 올올이 곤두설 정도로 질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뭐? 에이, 아저씨 몸이 다 나은 것도 아닌데, 됐어."

찜찜한 표정으로 물결치는 황토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지수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지수의 꼬리는 축 늘어진 상태에서 조금씩 기운을 되찾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야, 업혀. 여기 건너갈 때까지는 내가 업어 줄게."

"괜찮다니까."

"업히라니까?"

"에이, 그래도···."

본심을 숨기고 자꾸만 사양하는 지수.

"너 꼬리 흔들리는데."

"뭐? 에잇! 가만히 있어!"

애꿎은 꼬리만 퍽퍽치는 지수.

괜히 죄 없는 꼬리만 얻어맞고 말았다.

"아, 좀! 얌전히 업혀라, 지수야. 아니면 진짜 나 그냥 간다? 이대로 나 가, 진짜로?"

나는 그녀에게 혼자 물에 들어갈 것처럼 발을 수면에 집어넣는 시늉을 했다.

"아, 아! 자, 잠깐만! 알았어, 업힐게! 업힌다고!"

그러자 지수는 화들짝 놀라면서 급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내가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는지 손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자, 업혀."

"···응."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낮췄다. 지수는 그녀답지 않게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고, 이내 내 등에 훌쩍 올라탔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사양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잠시의 실랑이 끝에 상황이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건너편으로 건너가기만 하면 된다.

나와 지수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건너편 사다리까지의 거리는 대략 15m.

생각보다 긴 거리에 부지런히 발을 놀려야 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신중하게 발을 내디딜 필요도 있었다.

"망치는 네가 들고 있어. 여기 건널 때까지만."

"알았어. 근데 아저씨. 중간에 나 놓치면 안 된다······? 농담 아니야."

"걱정 하지마. 중간에 내가 물에 훅 빠지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망치나 도끼로 검은 이끼나 좀 밀어 줘. 아무리 나라도 그건 몸에 닿기는 싫네."

이윽고, 대강 준비를 마친 나는 지수를 업은 채로 콘크리트 길에서 벗어나 천천히 다리부터 수면에 집어넣었다.

······풍덩!

두 사람의 체중을 받은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빛을 받지 못하는 지하라서 그런지 수온이 장난 아니게 차가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수위가 내 예상보다 더 낮았다는 점일까.

허벅지까지만 오는 수위에 내심 안도하면서 나는 지수를 고쳐 업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니 말이다.

"흐앙! 아, 아저씨. 거기 좀 예민해···. 다른 데 잡아, 응?"

"······."

그런 과정에서 살짝 민망한 일이 있었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등에 업힌 지수가 약간의 물이라도 닿는 것이 싫은지 덜덜 떨면서 나를 두 팔과 두 다리로 옭아매듯 매달린 것이 더 신경 쓰였다.

"꽉 잡아. 출발한다."

나는 출렁이는 물살을 가르며 수로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거센 물살이 흐르는 소리가 하수도에 웅웅 울리니 점차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조차도 이 정도인데, 청각이 좋은 지수는 오죽할까. 실제로 그녀는 물에 들어왔을 때부터 귀를 최대한 막고 있는 중이었다.

툭- 툭- 툭- 툭-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검은 이끼 덩어리들을 밀쳐 내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지수.

분명 편하게 건너가게 해주려고 그녀를 업은 것이건만, 어째 나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이는 지수였다.

바로 그때.

"히약?! 아, 아저씨!"

"켁! 왜 그래?!"

지수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면서 내 목을 꽉 안았다. 아니,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조였다라는 표현이 더 옳았다.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기 때문에 심장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저씨, 진짜! 손이 왜 그렇게 음흉해! 내가 지금 업혀 있다고 그러는 거야? 꼭 지금 그래야겠어?"

"······?"

"왜 모르는 척해? 지, 지금 내 엉덩이 만졌잖아!"

"···무슨 소리야? 그런 적 없는데···?"

갑자기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는 지수에게 나는 억울함을 담아 항의했다.

기껏 생각해서 업어줬더니 돌아오는 게 저런 말이라니.

물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지수의 허벅지 외에 손댄 적이 없었다. 정말로.

"···아저씨가 아니라고? 지금도 툭툭 치는 거 아저씨 아니야······? 장난치지 마. 나 진짜 무서워서 그래."

"나 아니라-."

나는 재차 억울함을 토로하려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툭- 툭-

무언가가 수면 아래, 흙탕물 속에 있는 내 다리를 간을 보듯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지수야. 너 방금 내 다리 건드렸어?"

"···뭔 소리야. 지금 아저씨한테 매달리고 있는 게 최선인데. 아저씨 다리 건들 수도 없어. 잠깐만, 설마···."

지수는 말하면서 점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꿀꺽-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마른침을 삼킨 후 말없이 전방에 고정시킨 손전등을 사방으로 비추었다.

전방, 후방, 천장, 수면 아래, 좌, 우.

그러자.

······꿈틀!

우측 배관 파이프들 사이에 있던 검은 이끼 뭉치가 별안간 움직임을 보였다.

"······?"

나와 지수는 조금 전에 움직임이 포착된 곳을 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덜덜 떨리는 손전등 빛이 파이프 너머까지 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이끼 뭉치가 더욱 꿈틀거린다.

아니, 그것은 검은 이끼가 아니라 명백히 살아 있는 무언가였다. 정확히는 무언가들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그도 그럴게, 검은 이끼 뭉치가 저렇게 비정상적으로 크지도 않고, 기괴하게 생기긴 했어도 자의를 가지고 움직이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조금씩 퍼지자 그 안에 있던 또 다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똑!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만 내게 식은땀이 턱을 타고 흘러 수면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저씨···."

애처롭게 나를 부른 지수.

그녀가 들고 있는 손전등이 한층 더 떨리며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윽고.

[찌직- 찍!]

흔들리는 손전등 빛에 자극 받은 거대한 크기의 괴물 쥐, 알비노 뉴트리아 변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2m 정도의 크기, 물에 젖었지만 하얀색을 유지하고 있는 털가죽, 빛에 반사되어 새빨갛게 보이는 동공, 볼 옆에 기다랗게 난 수염 가닥들, 큼지막한 코, 몸 길이만큼이나 기다란 꼬리.

그리고 무엇보다 위협적으로 보이는 더럽고 커다란 앞니.

'이런 씹···. 잠깐만, 그럼 물에 있는 건 또 뭐야?'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에 나는 손전등 빛의 영향권에 있는 수면 아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스르르륵- 촤르륵-

그러자 외면하고 싶었던 풍경이 나와 지수의 눈에 들어온다.

수면에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가 바로 사라지는, 빠르게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들.

수면 아래에는 방금 보았던 거대한 알비노 뉴트리아 변종보다 크기는 작지만, 여러 마리가 물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분명 물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위험해 보이는 것들은 없었건만, 이것들은 우리가 물에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나 기절해도 돼?"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는지 이제는 초탈한 태도로 내게 묻는 지수.

"아직 안 돼."

나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을 묻는 그녀에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와 지수, 뉴트리아 주니어들과 거대한 뉴트리아 변종은 한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얼추 상대 파악을 끝낸 뉴트리아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지만 말이다.

푸화아아악!

풍덩···! 풍덩···!

수면 아래에 있던 작은 뉴트리아들이 나와 지수를 덮치기 위해 위로 솟구쳤다.

[찌직! 찍-! 찌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완전히 정신을 차린 거대한 뉴트리아 변종 또한 수면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지수야! 꽉 잡아!"

"꺄아아악!"

나는 지수를 빠르게 고쳐 업은 뒤,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죽어라고 내달렸다. 지수는 나를 놓칠 새라 꽉 안으며 비명을 질렀다.

풍덩! 풍덩!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첨벙-!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수많은 물장구 소리가 바싹 뒤쫓아 오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익!]

거대한 뉴트리아 변종이 내뱉는 괴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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