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41화 (142/497)

Chapter 141 - 141. 하수도 (3)

"흐아아앙! 저리 가아! 오지 마-!"

요란스러운 물소리가 퍼지는 지하 수로를 뒤덮는 젊은 여성의 비명 소리.

부웅! 퍼억!

[찌이이익!]

[찌아아아악!]

······풍덩! ···풍덩!

뒤이어 들리는 둔기가 휘둘러지는 소리와 그것에 얻어맞은 존재가 물에 도로 빠지는 소리.

하수도 통로를 길게 울리는 소음을 내는 범인은 바로 지수였다.

그것도 거대 쥐의 등장에 혼비백산하며 기겁을 하는 지수.

그녀는 얼굴을 내 머리에 파묻은 채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팔에 들린 망치와 도끼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

지수가 제대로 보지도 않고 휘두르는 무기에 나가떨어지는 뉴트리아 변종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만큼 물 속과 수면 위로 솟구치는 뉴트리아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나마 그녀가 팔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 다행일까.

만약 그런 행동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가떨어지는 것은 뉴트리아들이 아닌,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챈 지수의 손길에 의해 쥐어뜯기는 내 머리카락이었을 것이다.

첨벙-! 첨벙-! 첨벙-!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수를 업은 나는 정신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오직 앞만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릴 여유 따위는 없었으니까.

풍덩! 풍덩! 푸화아악!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지수가 휘두른 망치가 뉴트리아들이 아닌 수면을 때릴 때마다 하수도의 흙탕물이 사방으로 비산하면서 우리를 덮친다.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가 비처럼 내리는 황토물들이 그나마 물에 젖지 않고 있던 상의를 넘어서 얼굴과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꺄아아악!"

그 탓에 하수도 물에 닿는 것을 질색하던 지수가 나를 감싸고 있는 두 다리를 한층 더 조이는 것은 물론이고,

"어풉!"

나는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흙탕물들을 입안으로 들이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이를 악물면서 입을 다물었다.

불과 몇 분전만 해도 그나마 깨끗하긴 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물이 깨끗하기는커녕 거대 쥐 변종들이 몸을 푹 담그고 있던 물이었다는 생각에 욕지기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첨벙-! 첨벙-!

나는 발을 붙잡는 물의 저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좀 더 빨리 놀렸다.

퍽! 퍽! 찌익! 지지직-

강하게 물살을 가르며 내뻗는 다리에 수면 아래를 돌아다니고 있는 뉴트리아들이 발에 채인다.

내가 물의 저항력에 점점 뻐근해지는 다리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까닭에는 거대 쥐들의 위협도 한몫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전적으로 놈들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자꾸만 다리를 물어뜯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오고 있었으니까.

찌이익! 지지지직-

이것 보라.

방금도 달려드는 뉴트리아들을 충분히 밀쳐 내지 못해서 내가 입고 있는 바지가 찢어지고 말았지 않은가.

촤르르르르-

구멍이 뚫려 점점 넝마로 변해가는 바지 덕분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하수도 물이 맨살에 닿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찌이이이익!]

···풍덩!

나와 지수가 있던 콘크리트 통로에서 건너편 통로까지의 거리는 대략 15m 정도.

이제 남은 거리는 후하게 쳐줘도 불과 5m가 채 되지 않건만. 갈 길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지 모르겠다.

이윽고.

"지수야! 정신 차리고 저기로 올라가! 다 왔어!"

"흐으윽! 아, 알았어···!"

나와 지수는 콘크리트 길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뉴트리아 변종들의 습격의 끝을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는 서둘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놈들의 흉악한 앞니의 위협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으리라.

사다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와 지수는 거대 뉴트리아 변종들과 쉽게 끝나지 않는 추격전을 벌여야만 했을 테니까.

"망치랑 도끼 주고! 너 먼저 올라가, 지수야!"

나는 팔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지수에게 소리쳤다.

소름 끼치는 쥐의 외형이 주는 두려움 때문인지 하수도 물에 푹 젖은 옷이 체온을 가져가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지수는 당장 도움이 되지 않고, 동시에 올라갈 수 없는 상황.

결국 누군가는 먼저 올라가야 했기에 나는 그녀를 우선시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턱- 턱- 턱- 턱-

지수가 급하게 사다리를 오르는 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바로 뒤로 돌아 망치를 강하게 휘둘렀다.

부우웅!

퍼억!

그와 동시에 묵직한 망치 머리에 제대로 얻어맞은 뉴트리아 하나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수면 위로 솟구치는 자세 그대로 다시 물에 빠졌다.

둥··· 둥···

잠시 가라앉았던 놈의 사체는 이내 물 위에 떠오르며 선홍색 피를 물감처럼 물에 퍼트렸다.

[찍!]

[찌지지직!]

[찌이이이익!]

목숨을 잃은 동족이 흘리는 피의 냄새를 맡은 뉴트리아 변종들이 더욱 광분하며 달려들었다. 다만 그 방향이 나를 향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으직! 으지지직! 우득! 까드드득!

수면 아래에서 수없이 돌아다니는 검은 그림자들이 막 죽어서 아직 체온이 따끈따끈한 동족의 사체에 몰려들었고, 이내 살점이 찢기는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끝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수도가 검은 이끼를 제외하면 이상하게 너무 깨끗하다는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쥐들은 시체 청소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뭐든지 먹는 잡식성으로 유명했으니까.

'이래서 나와 지수를 노리는 놈들이 생각보다 적었구나.'

어쩐지 달려드는 거대 쥐들의 수가 각오한 것보다 적다 싶었더니 지수가 휘두른 무기에 얼떨결에 맞아 죽은 쥐들이 의도치 않게 미끼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하천이나 연못에 구멍을 파고 살아가는 뉴트리아들이 어째서 하수도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놈들이 이곳에 군집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죽은 동족을 순식간에 해치운 뉴트리아 변종들은,

딱! 딱! 딱! 딱! 딱!

물속에서 머리만 살짝 내민 상태로 나를 보면서 이빨을 딱딱 부딪치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기다리라는 명령을 들은 것처럼.

"이런 미친···."

갑작스럽게 벌어진 대치 상태에 숨 좀 돌리나 싶었지만, 나는 헛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못 배겼다.

그도 그럴게, 뒤에서 모든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거대 뉴트리아 변종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하, 가지가지 하네. 진짜.'

나는 산 넘어 산이라는 생각에 망치와 도끼를 꽉 쥐었다.

바로 그때.

"아, 아저씨! 아저씨도 빨리 올라와!"

어느새 사다리를 다 올라간 지수가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나를 불렀다. 나도 곧장 위로 올라가서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찍!]

내가 몸을 움찔 떨기만 해도 나를 노려보고 있는 수십 쌍의 눈동자들이 움직임을 고스란히 따라오고 있는 상황.

아마 내가 몸을 크게 움직이면 빈틈을 노린 뉴트리아 변종들이 흉측한 앞니를 내세우며 곧장 달려들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지수야, 내가 도끼 위로 던질 테니까 뒤로 물러나 있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아주 잠시만이라도 시선을 끌어 줄 미끼를 만드는 것.

양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상태로 사다리를 오를 수는 없으니,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지수에게 미리 건네야 했다. 그렇다면 그나마 각자 손에 익은 무기를 주는 것이 낫겠지.

"알았어···! 지금 던져도 돼!"

처음보다 좀 더 멀어진 거리감이 느껴지는 지수의 목소리에 나는 그녀가 뒤로 충분히 물러났다고 판단했다.

'좋아···. 후우···.'

수십 마리의 뉴트리아 변종들과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심호흡을 한 뒤, 나는 망설임 없이 도끼를 위로, 그러니까 먼저 올라간 지수가 있는 통로 속으로 집어던졌다.

휘이이익!

도끼날을 기준으로 삼은 도끼 자루가 원을 그리며 날아간다.

[···!]

[···!]

[···!]

[···!]

[···!]

[···!]

[···!]

[···!]

[···!]

[···!]

[···!]

[···!]

무심코 회전하는 도끼를 바라보게 된 수십 쌍의 눈동자들.

내가 놈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찰나의 순간, 무의식적으로 도끼를 바라보려고 하는 눈을 애써 억누르며 나는 곧장 뒤로 돌아 사다리를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턱!턱!턱!턱!턱!

필사적으로 사다리를 한 칸, 아니 두 칸씩 크게 오를 때마다 몸은 위로 쑥쑥 올라갔고, 물에 잠겨 있던 하체는 흙탕물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후두둑- 후두둑- 주륵- 주륵-

물에 푹 젖은 바지가 다리의 움직임에 쥐여 짜지면서 머금고 있던 물을 죄다 토해낸다. 수면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미약한 파문들을 수없이 만들어냈다.

티이잉-!

내가 던진 도끼가 콘크리트 통로의 천장에 닿으면서 둔탁한 공명음을 냈다. 부딪힌 충격에 부르르 떨리는 도끼날.

그리고.

[끼이이이이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허술한 미끼에 보기 좋게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은 알비노 뉴트리아 변종이 길게 울부짖으면서 내가 있는 사다리로 돌진했다.

촤르르르르륵!

물살을 매섭게 가르면서 곧장 사다리로 달려드는 거대 알비노 뉴트리아.

턱!턱!턱!턱!

"허억! 헉!"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느낌에 소름이 돋았지만.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벗어날 수 있다고,

나는 올라가지만 놈들은 올라오지 못할 거라고,

그리 희망찬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사다리를 올랐다.

바로 그때.

쾅! 끼긱!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냅다 사다리에 거구를 들이받은 뉴트리아 변종에 의해 사다리 밑단이 크게 우그러지는 소리를 냈다.

쾅! 쾅! 끼기기긱! 끼이이익!

파바바바박!

그그극! 그그극! 그그극!

설상가상으로 놈은 콘크리트 벽면에 고정된 사다리를 떼어내기 위함인 듯 강인해 보이는 손톱으로 벽을 긁거나 파헤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후두둑- 후두둑-

틱! 티틱!

집요함마저 느껴지는 뉴트리아 변종의 발톱에 벽면을 고정하고 있던 나사가 기어코 풀어지고, 콘크리트 벽면이 인정사정 없이 뭉텅이로 부서지고 있었다.

이윽고.

기우뚱-

하단 고정핀을 모두 잃은 사다리가 균형을 잃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좌우로 크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거의 다 올라온 상황이고, 좌우가 비틀리는 정도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않았어야 하건만.

부식과 마모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던 사다리가 밑을 받쳐주는 하단부를 전부 잃자, 그 여파가 내가 몸을 걸고 있는 상단부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티티틱-!

벽에 고정되었던 나사가 힘을 잃고 모조리 튕겨 나가며 서서히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 사다리 상단부.

"어?"

복부를 간지럽히는 아찔한 부유감에 나는 당혹성을 내뱉었다.

장난이지?

거의 다 왔는데? 이제 와서 사다리가 말썽이라고?

속으로 허탈하게 중얼거렸지만 이미 내 몸은 사다리와 함께 추락하는 중이었다.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하게 된 시선에 보이는 것은 위에서 먹잇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십 쌍의 붉은 눈동자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시선들에는 신선한 살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싶다는 식욕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내가 무방비하게 수면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뉴트리아 변종들에게 공격당해 살점이 무참하게 찢기고 말겠지.

터억!

"아저씨, 손! 내 손 잡아!"

뒤로 넘어가려는 나를 잡아챈 지수의 손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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