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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142화 (143/497)

Chapter 142 - 142. 하수도 (4)

"아저씨, 꽉 잡아! 나 놓치면 절대 안 돼! 끄으응!"

콘크리트 통로 난간에 몸을 반쯤 걸친 지수가 외쳤다. 그녀는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으헉!"

간발의 차로 지수의 손을 잡을 수 있었던 내 뒤로,

···풍덩!

[찌이이이익!]

쾅! 쾅! 쾅! 쾅!

기어코 박살 난 사다리가 수면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코앞에서 먹잇감을 놓친 뉴트리아 변종들의 화풀이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푸화아악!

휙! 휙! 파박!

발판을 잃은 두 다리가 이리저리 휘적거려지자, 거대 쥐들이 그것을 노리고 수면을 박차고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퍼억! 퍽-!

······풍덩! ······풍덩!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대부분의 뉴트리아 변종들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장화에 얻어맞거나 뛰어오른 높이의 부족으로 도로 수면으로 빠지게 되었다.

다만.

후두둑- 후두둑-

놈들이 수면 위로 떨어지면서 생기는 사방으로 비산하는 물방울들이 내 몸을 적실 때마다, 금방이라도 거대 뉴트리아가 흉악한 앞니를 내게 박아넣을 것 같은 긴장감에 심장이 거세게 박동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야야! 지수야! 빨리! 빨리···!"

나는 호들갑을 떨며 내 손목을 붙잡은 지수를 독촉했다.

이미 추락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거대 쥐떼들에게서 벗어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쉽게 진정이 되던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더라도 나를 노려보고 있는 수십 쌍의 검은 눈동자들이 자꾸만 오버랩되면서 계속 진저리가 처지고 있건만.

"으윽! 좀만 기다려 봐···! 나도오···! 열심히 당기고 있다고!"

그래도 위에서 끌어 올리는 지수와,

지직! 지이익!

발로 벽을 박차서 반동을 만들어내는 내 노력 덕분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난간에 발을 걸칠 수 있었고, 이내 콘크리트 길 위로 몸을 완전히 올렸다.

"와···."

"헤윽···."

나와 지수는 그대로 통로에 드러누웠다. 그동안 2km에 달하는 하수도 콘크리트 길을 걸었던 것보다 15m가 채 되지 않는 수로를 건너는 게 더 힘들었다.

이동한 거리로 따지면 비교하는 것조차 민망한 수준이었으나 뉴트리아 변종들의 습격 하나만으로도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 것이다.

졸졸졸-

통로에 형성된 옅은 물살.

방금 우리가 빠져나온 공동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옷을 적시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지금 죽다 살아났는데 물에 옷이 좀 젖는 게 대수겠는가.

지금 흐르는 물은, 맑은 것을 보니 단순한 빗물이지 않겠는가.

적어도 거대 쥐들이 목욕한 물은 아닐 것이다.

내가 몸을 뉘인 통로와 저 아래의 수면까지의 낙차는 꽤 크다. 사다리가 없으면 사람조차 쉽게 올라오지 못할 정도이니 쥐들의 몸이 아무리 커졌다고 해도 따로 길이 없는 이상 이곳으로 올라오지 못하겠지.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찍! 찌이이익!]

[찌아아아악!]

쾅! 쾅! 으직! 우드득! 끼기긱-!

한창 뉴트리아 변종들의 화풀이가 진행 중이던 아래 수로는,

[······]

보글··· 보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뚝 끊겨 버렸다.

다시 적막에 빠진 하수도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와 지수가 물에 몸을 담그기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거대 쥐들이 물속으로 몸을 숨기는 과정에서 일어난 기포들 소리를 제외한다면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더 이상 없었다. 물이 거세게 흐르는 소리까지도.

"······."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손전등을 집어 아래를 비추었다.

먹이 반응을 보이던 거대 쥐들이 요란스럽게 난리를 쳤던 곳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면은 잠잠하게 변한 상태.

이번에는 손전등을 아래에서 옆으로 좀 더 멀리 뻗어 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똑- 똑- 똑-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의해 파문이 일어나는 황토물.

둥- 둥-

수면 위를 얌전히 떠다니는 검은 이끼.

주르륵- 주르륵-

입구가 무너져 물살이 막힌 배관 파이프.

가장 거센 물줄기를 뿜어내던 통로였는데, 알비노 뉴트리아 변종에 의해 무너진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검은 이끼로 보여지는 것들 중 일부는 검은 이끼 흉내를 내는 거대 쥐들일 것이다.

일종의 위장을 한 상태에서 먹잇감이 감지되면 사방에서 덮치는 식으로 사냥을 해왔겠지.

바로 나와 지수가 당한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도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바로 그때.

"아저씨, 괜찮으면 이제 가자···. 하아···, 거의 다 와가는 것 같아. 여기가 마지막 고비였나 봐. 아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

지수가 힘없이 내 손을 잡아끌며 앞으로 걸었다. 그녀는 나침반이 나타내는 방향을 가늠해 보면서 말했다.

"그래? 이제 절반 정도 온 거 아니었어? 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야. 여기 건너오니까 확실히 알겠어. 방향도 확실하고, 물류 단지가 근처에 있다는 걸. 냄새가 나거든. 그, 화장실 냄새가. 으웩···."

지수는 코를 킁킁 거리다가 구역질을 참는 얼굴을 했다. 그녀가 화장실 냄새라고 표현을 했지만,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분변 냄새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아직 수로에 깊게 배인 물 때 냄새만 맡아지고 있었으나, 후각이 좋은 지수는 좀 더 멀리까지 있는 냄새를 인지한 것이니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은 생존자들이 모여 사는 캠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였건만, 비록 냄새는 좋지 않더라도 그것은 나와 지수를 내심 안심시켜 주는 희소식이기도 했다.

이윽고, 우리는 손전등을 전방으로 향한 채로 묵묵히 콘크리트 길을 걸었다.

저벅- 저벅- 찰박- 찰박-

뚝- 뚝- 뚝-

천천히, 그러나 앞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입은 옷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몸이 물에 푹 젖은 옷에 의해 으슬으슬 떨리고 있을 때.

"···지수야. 나는 네가 그렇게 놀랄 줄 몰랐다."

나는 허탈하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반응에 전염이 된 것인지 덩달아서 나도 같이 야단법석을 피우고 말았다.

물론, 거대 뉴트리아들이 끔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와 지수는 저것들보다 더 끔찍하고 기괴한 것들을 보거나 물리쳐 오지 않았던가.

예를 들면, 나무 인간들이나 도롱뇽 변종들, 좀 더 나아가면 거미 변종과 누더기 변종까지.

적어도 그때의 지수는 이번처럼 격한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었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혐오스럽다는 기색을 띠긴 했어도 지금처럼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미안, 아저씨."

아직 충격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지수가 멍한 얼굴로 사과를 전했다. 그녀의 귀와 꼬리는 미처 짜내지 못한 물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매우 처량해 보이는 지수의 모습.

"내가 따지려는 건 아닌데···. 왜 그렇게 놀란 거야? 징그럽긴 해도 저번에 본 도롱뇽 변종들이 더 끔찍하지 않았냐. 그건 사람이 도롱뇽으로 변한 건데, 저건 크기가 좀 크긴 해도 진짜 단순히 거대해진 쥐일 뿐이잖아. 정확히는 거대 알비노 뉴트리아랑 뉴트리아 주니어들이지만."

"···그게 문제야."

"뭐? 뭐가?"

"쥐가 커진 게 문제라고···."

어느새 걸음을 멈춘 지수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가는 그렁그렁해진 상태였다. 지수가 말을 이었다.

"나무 인간? 도롱뇽 변종? 그야 끔찍하긴 하지. 그건 당연해. 근데 그것들은 징그럽긴 해도 묘하게 실감이 안 났단 말이야. 하지만 쥐들은···, 쥐들은······."

"······아."

나는 지수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지수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우리가 지금껏 상대해왔던 것들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보기 힘든 아니, 볼 수조차 없을 만큼 흉측한 것들이었다.

기껏 해야 악몽 속에서나 볼까 싶을 정도로 기괴한 외형들을 가진 괴물들.

하지만 방금 우리가 상대한 거대 쥐들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흔치는 않지만, 가끔 볼 수는 있었던 낯이 익은 것들이었고.

요컨대 아마 현실감이 어느 정도로 다가오느냐의 차이였겠지.

거대 뉴트리아들은 낯이 익은 외형인 만큼 더욱 실감 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무 인간이나 도롱뇽 변종보다 더 말이다.

인간은 낯선 것보다 낯이 익은 것이 주는 위화감을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나저나 지수 너 옷이 다 젖어서 어떡하냐. 내가 업어 준 게 의미가 없어졌네. 나도 만만치 않게 젖었고."

나는 쫄딱 젖은 우리의 옷 상태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껏 지수를 생각해서 그녀를 업은 상태로 물을 건넌 것이건만, 그렇게 행동한 것이 무색하게 목욕하는 수준으로 몸을 푹 담그고 말았다.

"쥐···! 그 쥐들 때문에···! 이이익!"

도끼를 꽉 쥔 채 몸을 부들부들 떠는 지수. 금방이라도 도끼가 휘둘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어어? 쉬이···, 이제 괜찮아. 괜찮아. 지금까지 별일 없는 거 보니 쥐들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도끼 내려놔, 지수야. 빨리."

나는 황급히 지수를 달래기 위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떠는 지수를 가만히 두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이러다가 또 패닉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지수가 지금 화를 낼 수 있는 것도 근처에 쥐 변종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쥐가 또다시 습격한다면 그녀는 삽시간에 분노를 잃고 다른 의미로 부들부들 떨겠지.

그리 생각하긴 했으나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좀 더 오래 살고 싶었으니까.

내가 쥐띠이긴 했지만 진짜 쥐는 아니니까.

진짜 쥐가 아니니 지수에게 마구 깨물릴 수도 있었으니까.

"아저씨, 우리 돌아올 때도 여기를 이용해야겠지? 그럼 또 쥐들이랑 마주치겠지? 다른 길로 가면 안 되겠지···?"

"그건 상황 봐서 정하기로 했잖아, 지수야."

"그래, 그랬지 참. 흑···."

비록 상황을 봐서 정하기로 말은 했지만,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나와 지수, 거기에 더해 신아현과 함께 주민 센터로 돌아갈 때도 하수도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거대 뉴트리아들의 군집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좀 더 대비하면서 움직이면 되고, 최대한 조용하게,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는 하수도가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상에 돌아다니는 수십, 수백의 나무 인간들보다 수로에 있는 쥐 변종들과 싸우는 게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그렇게 묵묵히 발걸음을 옮긴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 코에도 지수가 말한 화장실 냄새가 맡아지기 시작했다. 흔히들 거름 냄새라고 하는 분변 냄새가 말이다.

"어후···."

속을 꽉 채울 만큼 가득 느껴지는 냄새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매캐한 가스에 숨 쉬는 것도 버거워지고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오래 참을 필요는 없었다.

"아, 사다리다."

물에 젖어 깜빡거리는 손전등이 비추고 있는 길 중간에 은색으로 빛나는 사다리가 보였으니까.

지상으로 통하는 사다리이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부식이 덜 진행된 철제 사다리. 적어도 내가 마지막으로 이용한 부서진 사다리보다 나은 듯했다.

"아저씨, 내가 먼저 뚜껑 살짝 열어서 주변 살펴볼게."

지수가 자신의 귀와 코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그녀의 후각과 청각으로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먼저 탐색할 심산이었다.

"좋아. 부탁한다."

"나만 믿어."

고개를 끄덕이며 사다리 발판을 밟고 한 칸씩 올라가는 지수.

이윽고.

턱- 턱- 턱- 턱-

발판이 눌리는 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지수의 날씬한 다리가 점점 위로 올라가 시야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각종 감각이 강화된 것은 아마도 지수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준이 미약하긴 하더라도 동물과 합쳐진 이상 감각의 향상이 없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의왕시 생존자들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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