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44화 (145/497)

Chapter 144 - 144. 진실 혹은 거짓2 (2)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조심스럽게 헤치는 소리.

"······."

"······."

그것은 나와 지수가 아스팔트를 뚫고 자란 수풀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소리였다.

조건만 맞춰진다면 건물 내부에서도 자라는 풀들은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만큼 어김없이 도로 위에도 자리 잡고 있었다.

풀이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할 정도로 억센 초록 풀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제초를 하는 사람도, 풀이 일어나지 못하게 밟는 사람도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

"후우···."

계속 걷던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단순히 몸을 낮춘 채 걷는 행위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심력이 소모되고 있었으니까.

희미한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나와 지수를 둘러싸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과도한 어둠은 사람의 몸을 굳게 만드는 것에 일조하니 말이다.

"지수야, 무슨 소리 들리거나 뭐라도 보이면 바로 말해야 한다?"

나는 뻐근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긴장한 상태로 망치를 계속 쥐고 있으려니 근육에 쥐가 나기 직전이었다.

"알았어, 아저씨. 나만 믿어. 아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저씨도 곧 눈치챌 거야. 넝쿨 냄새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거든."

지수는 코를 킁킁 거리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꼬리는 수맥을 찾는 수맥봉처럼 묘하게 꺾여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향하는 방향이었다.

지금 나와 지수가 있는 곳은 처음에 나왔던 후미진 구석에서 벗어난, 좀 더 물류 터미널의 중심지에 가까운 위치였다. 정확히는 중심지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은 2층 건물의 옆에 있는 도로라고 할 수 있었다.

희미하게 윤곽이 보이는 <카페테리아>, <24시 삼겹살>, <고봉 가든>, <당구장> 따위의 간판들.

아마도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상가건물인 듯했다. 직원들도 밥을 먹거나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 필요하니 마련한 건물이겠지.

다만 건물의 유리창이 대부분 박살이 나 있는 상태라 흉한 몰골로 변해 있었을 뿐.

그리고 많은 차량이 하루에도 수천 대씩 왔다 갔다하는 물류 터미널이라 그런지 아스팔트 도로는 1차선이 아닌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폭이 넓은 도로이건만, 도로를 나다니는 긴 화물 트럭이 없으니 엄청나게 휑한 모습이었다.

빈자리를 수풀이 드문드문 메우고 있기는 했으나 사실,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더 황량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휘이이이잉-

부스스- 부스스-

싸늘한 밤공기를 품은 바람이 나와 지수를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수구 물에 젖은 옷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차가워졌고, 그 탓에 체온을 뭉텅이로 빼앗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다. 지금 우리의 체향을 지워주는 것은 옷에서 풍기는 하수구 냄새였으니까.

'여분의 옷이 없기도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멈췄던 다리를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달이 떠 있는 위치로 현재 시간대를 얼추 특정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하늘 상태로는 까만 어둠만 보이니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러니 서둘러 움직여야 했고, 잠시 숨을 고른 정도로 쉬었으면 충분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에는 시간제한이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부스럭- 부스럭-!

도로에 방치된 화물 트럭을 여러 대 지나치고, 수풀을 헤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직원 복지 건물의 끝에 다다를 때쯤.

"아저씨, 잠깐만! 쉿!"

지수가 손을 들어 이동을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사거리 너머에 있는 거대한 창고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구름에서 겨우 벗어난 달빛에 비치는 것은 건물 외벽에 크게 칠해져 있는 Q와 L이라는 알파벳. 아마도 건물을 식별하는 코드인가 보다.

지수가 눈에 담고 있는 것은 Q동과 L동 중 L동에 해당하는 창고였다. 그녀는 이내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방금 살짝 L이라는 영어 보였지? 거기에 숨소리가 많이 들려. 저 건물에 다 모여서 살고 있나 봐. 넝쿨 냄새도 저 방향이야."

"얼마나?"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충 10명 이상···?"

지수는 끙끙거리다가 답했다. 그녀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눈빛을 보냈으나 나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그동안 빈 건물만 봐오다가 사람이 모여 있는 건물을 특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바로 그때.

드르르르륵!

나와 지수가 주시하고 있던 외벽에 'L'이라고 표기된 거대한 물류 창고의 셔터가 확 올라갔다.

"······!"

"······!"

우리는 화들짝 놀라면서 급하게 수풀 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와 지수의 다급한 몸짓에 수풀이 확 벌려지며 내부 공간을 만들어 냈다.

휘이이이잉-

부스럭!

빠르게 몸을 숨기기 위해 미처 소리를 죽이지 못했지만, 다행히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의해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로 둔갑할 수 있었다.

이윽고, 창고 건물에서 나오는 것은 두 사람. 아니, 억지로 끌려나오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렇게 총 3명이 물류 창고 셔터를 열고 나온 것이다.

"···. ······!"

"······. ···, ······."

그들은 셔터를 닫지 않은 채로 무어라 작게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창고와 우리가 숨어 있는 수풀 사이의 거리는 대략 50m 정도.

떨어진 거리도 거리였지만, 목소리도 워낙 작아서 내 청각으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들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라는 거야? 너는 들려, 지수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수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 중에 혹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희미한 단서라도 좋으니 뭐라도 알 수 있기를 바랐다.

「가까워지면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누나가 했던 말 중에 분명 내가 기억하기로는 가까워지면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물류 터미널의 중심지에 충분히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여기가 아닌가? 여기가 아니면 큰일인데···.'

신아현을 구하는 것도 구하는 거지만, 누나가 말한 '그들의 조각'이라는 것도 구해야 하므로 골치가 아파 왔다.

얼마나 더 가까워져야 하는지 정도만 알아도 좋으련만.

나는 괜히 한세아가 내게 걸어 준 목걸이에 달린 푸른 조각을 매만졌다. 조각은 푸른빛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천으로 꽁꽁 싸맨 상태였다.

"···저놈들이 너무 작게 말해서 나도 잘은 안 들려. 그나마 들리는 건···. 통조림? 한 판? 뭐라는 거야? '조용히 해!' 이건 확실하게 알겠네. 상황은··· 당연히 좋진 않아 보이고. 남자 둘이 데리고 나온 여자 협박하는 것 같은데?"

온 신경을 쫑긋거리는 귀에 집중하고 있던 지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열심히 귀를 쫑긋거려보았지만, 지수도 명확하게 들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나는 침음을 속으로 삼키며 캠프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L동 창고 내부를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나왔을 때는 금속 셔터의 움직임에 따라 미약한 빛이 흩뿌려져서 그들을 인지할 수 있었으나 거기까지가 한계였고, 그 너머를 볼 수는 없었다. 보이는 것은 여전히 지독한 어둠뿐.

푸른 수정이 나왔다는 신아현의 말을 떠올려보면, 창고 안 쪽에 주위를 밝히는 불이라도 피우고 있을 줄 알았건만. 하다못해 내부의 공기를 데우는 난로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거나.

밤이 되면 뚝 떨어지는 기온은 마냥 무시해도 될 것이 아니니 말이다.

아니면 박현일이라는 남자에 의해 사용 통제 명령이 내려진 상태일 수도 있겠지.

'역시 충전을 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이유?'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와 지수는 몸을 더 낮춰야 했다.

드르르르륵!

부스럭- 부스럭-

창고 바깥으로 나온 3명의 생존자들이 1층 셔터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자가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 듯, 여자를 가운데에 두고 움직이려고 하고 있었다.

"······."

지수는 그녀의 꼬리를 다리 사이로 말아 넣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꼬리가 고정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전방을 경계했다.

이윽고.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그들이.

"괜한 소리내지 말고, 얌전히 따라오면 좋잖아? 이제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슬슬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아, 넌 처음인가?"

"흑···. 토, 통조림 안 주셔도 되니까 그냥 보내 주세요···."

"거, 아까부터 존나 찡찡거리네. 우리가 너희들 지켜 주는 값은 받아야 할 거 아니냐? 좋게 좋게 가자. 겨우 허리 몇 번 흔드는 것 가지고 생색은 오질라게 내요, 하여튼."

"아니지, 임마! 허리는 우리가 흔드는 거지! 으하하학!"

"웃지 마, 병신아!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거 벌써 까먹었냐? 오늘 형님한테 들키면 좆되는 건 우리라니까."

나와 지수가 숨어 있는 수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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