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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145화 (146/497)

Chapter 145 - 145. 진실 혹은 거짓2 (3)

"야,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로 가서 할 건데? 그냥 위에 자리도 많은데 아무 사무실 들어가서 하면 안 되냐? 밖에 나오니까 좀 추운데."

여자의 한쪽 팔을 꽉 붙잡은 채 불만을 토하는 덩치 큰 남자.

"털도 많은 놈이 뭔 추위를 타? 그리고 새끼야, 윗층은 보통 형님이 주무시고 계시잖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냐? 아오···. 어제 낮부터 엄청 예민해 보이더만. 괜히 거슬리게 했다가 '벌' 받게 되면 너랑 나는 그냥 뒤지는 거야, 시발."

덩치 큰 남자를 타박하면서 앞장선 채 걷고 있는 마른 남자.

"그래서 어디로 갈 거냐고! 나 춥다고!"

"아이 씹. 제발 소리 좀 죽여, 병신아! 저기 2층 당구장 가서 할 거니까 이제 좀 닥치고 있어. 당구대 올라가서 하면 되니까."

부스럭! 부스럭!

그들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움직이면서 나와 지수가 숨어 있는 수풀로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덩치 큰 남자와 마른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려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안전한 캠프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단단히 굳어져 있어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캠프에 침입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멀리 있는 가스관이 터진 건데 왜 형님이 예민해졌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그쪽엔 아무것도 없는데."

"가스관이 맞긴 하냐? 살면서 푸른 불을 본 적은 가스레인지 불밖에 없기는 하다만. 뭐가 됐든 간에 그것 때문에 형님 존나 날 서 있으니까 괜히 신경 건드리면 안 돼. 말만 잘 들으면 터치는 잘 안하시잖냐. 배은망덕한 새끼들 빼고."

"형님이 화나면 무섭긴 하지···. 그렇게 화난 것도 처음 보고."

"그래도 그것 때문에 목숨을 연명한 년도 있잖아. 넝쿨 조종하는 년. 원래 오늘은 그 여자가 '벌'받는 날이었는데, 이름이···. 이름이 뭔지 기억도 안 나네. 뭐, 참 딱해. 제 언니는 벌 받은 상태로 쫓겨나서 뒤지고, 곧 자기도 언니따라 뒤질 예정이니까. 킥킥. 아, 이쁘장해서 아쉽긴 한데······. 미친 넝쿨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한입하는 건데! 그게 좀 아쉽네."

나와 지수는 긴장한 얼굴로 남자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우리가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를 애써 억누르고 있을 때, 그들은 킬킬거리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남자들이 화제로 삼은 것은 형님이라는 자의 상태, 가스관의 폭발 추정, 신아현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저들은 아직 모르고 있으나, 그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는 건 바로 나라는 것을.

내가 뿜어낸 푸른 불길이 하늘로 높게 솟구친 탓인지, 이곳 물류 터미널에서도 보여진 것 같았다.

불이 푸른색이라서 가스관이 터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캠프의 생존자들.

그리고 마냥 흘려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 하나 있었다.

'···푸른 불꽃을 박현일이 경계했다.'

검은 입자를 모조리 불태우는 푸른 불꽃.

반은 나무 인간, 나머지 반은 평범한 인간인 박현일.

만일 그 남자가 푸른 불꽃을 본 기점으로 상태가 이상해졌다고 한다면, 이유는 하나겠지.

놈 또한 다른 나무 인간들처럼 푸른 불꽃을 두려워한다는 것.

'그래서 캠프가 이렇게 조용해진 건가?'

나는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오는 남자들을 경계하면서 망치를 꽉 쥐었다. 그것은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한 도끼를 꽉 쥐며 곧 닥칠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으니까.

바로 그때.

"근데 형택아."

뒤따라 오던 덩치 큰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후미가 멈추니 여자를 붙잡은 선두도 멈추는 것은 당연한 수순.

"또 왜. 이제 건물 들어갈 때까지 입 좀 다물면 안 되냐? 하여튼 덩치도 산만한 게 정신도 존나게 산만해요. 걸음은 또 왜 멈췄어? 춥다면서! 후딱 들어가자."

"냄새난다."

"아, 존나 가지가지하네. 그거 네 인중 냄새니까 그냥 가자. 냄새라고 해봤자 하수구 냄새만 나는구만. 여기 널린 게 맨홀이야, 이 새끼야."

마른 체구의 남자가 한 말에도 덩치가 큰 남자는 꿋꿋하게 코를 킁킁 거렸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하수구 냄새가 아니라 마치 낯선 냄새를 맡은 듯한 행동을 보이는 덩치 큰 남자.

'···이런 씹.'

나는 속으로 탄식하며 지수와 신호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그들을 덮칠 계획을 세우긴 했어도, 그것은 거리가 좀 더 가까워졌을 때 이야기. 지금처럼 거리가 5m나 떨어져 있을 때는 계획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웠다.

하다못해 3m 정도까지라도 좁혀졌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보다 빨리 눈치를 채고 말았다. 아직 마른 체구의 남자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 명이 눈치챈 순간, 옆에 있는 다른 이들도 연이어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

최선의 선택지를 고를 수 없으니 그나마 나은 선택지를 골라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아직 완전히 들키지 않았어. 그러니까···.'

━들키기 전에 선수를 친다.

나는 지수의 손을 톡톡 건드렸다. 움찔 떠는 그녀. 지수는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곧 들킬 거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게 낫다는 것을.

이윽고.

부스럭! 타타탓-!

나와 지수는 몸을 숨기고 있던 수풀을 박차며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목표는 전방의 두 남자. 내가 덩치 큰 남자를, 지수가 마른 체구의 남자를 노렸다.

"······!"

"뭐야, 시발!"

마른 남자의 발걸음에 질질 끌려오는 덩치 큰 남자와 사이에 낀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여자는 황급히 입을 막으며 몸을 수그렸다.

비명을 지르면 어찌하나 싶었건만, 알아서 소리를 죽이니 다행이었다.

나는 망치 머리가 내 쪽으로 향하게 만든 다음, 자루를 덩치 큰 남자에게 크게 휘둘렀다.

후우웅-!

습한 공기를 가르며 남자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쇄도하는 우레탄 자루.

파악······!

단단한 우레탄 막대기가 거구의 머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퍼억!

지수가 도끼날 옆으로 마른 체구 남자의 머리를 강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남자는 상황 파악도 끝내지 못한 얼굴 그대로 머리를 후려친 충격에 의해 기절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수는 마른 남자를 제압하는 것을 성공했지만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일까.

"······!"

내가 휘두른 망치 자루는 제대로 가격하긴 했으나 거구의 남자에게 수북하게 난 털에 의해 충격이 고스란히 흩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고작 몸에 난 털 때문에 타격점이 빗겨나가게 될 줄은. 그것은 나도, 기습을 당한 남자도 몰랐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마치 설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구의 남자는 어벙한 얼굴로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아저씨!"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지수가 다급히 방향을 틀어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도끼를 옆으로 세운 상태로 높게 쳐들었다.

이번에도 제압하지 못하면 당하는 것은 나와 지수이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꽈악!

그리고 곧장 남자의 등 쪽으로 가 팔로 그의 목을 꺾어 졸랐다. 지수가 휘두르는 도끼가 빗나가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었다.

"읍! 으으읍! 끄윽!"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거구의 남자. 그는 입과 목을 꽉 누르고 있는 내 팔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세게 몸부림을 쳤다.

"큭!"

몸을 이리저리 휘두르던 남자는 이내 내 팔목을 붙잡아서 손아귀가 터질 정도로 강한 힘을 주었다. 악력에 의해 팔의 근육이 뒤틀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다행히도 오래 버티지 않아도 되었다.

뻐억-!

으직!

날랜 몸놀림으로 한 달음에 달려온 지수가 도끼로 냅다 머리를 후려쳤으니 말이다. 머리가 움푹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얼굴에 난 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꺽!"

덩치 큰 남자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눈을 까뒤집었고, 잠시 비틀거리다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고 했다.

쿵!

"악!"

이내 뒤로 서서히 넘어가면서 나를 깔아뭉갠 남자. 나는 등을 타고 흐르는 알싸한 충격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아잇! 아저씨! ······괜찮아?"

나를 타박하려던 지수는 한숨을 내쉬고,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발로 남자를 밀어내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후···, 미안. 털 때문에 미끄러질 줄은 몰랐네. 뭔 털이···."

나는 한결 편해진 호흡에 투덜거리면서 일어났다. 이 남자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뻔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실패하면 큰일이지 않겠는가.

바로 그때.

"아저씨, 일어났으면 저 여자부터 어떻게 하자. 저기요! 숨어 있지 말고 나오세요. 어차피 위치 다 아니까."

지수가 바로 옆 수풀 더미를 도끼로 툭툭 건드렸다. 도끼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수풀은 눈에 띄게 흔들렸다.

"힉···! 사, 살려 주세요···."

이윽고 나오는 것은 몸을 사정 없이 떨고 있는 여자. 나와 지수가 제압한 남성들이 강제로 범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죽이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조용히만 하세요."

"히, 히이···. 네, 네!"

지수 딴에는 해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겠지만, 이름 모를 여자는 무슨 상상을 했는지 수풀에서 나오던 자세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반항 한번 못할 만큼 심성이 유약한 듯했다.

휘이이이잉-

"흑! ···히끅!"

바람을 타고 들리는 여자의 애처로운 울음 소리.

"···지수야, 저 여자분은 일단 내버려 두고, 이 사람들 어디에 옮겨 놓자. 갑자기 깨서 소리라도 지르면 곤란하잖아."

한동안 여자를 지켜보던 나는 우리가 남자들을 옮기느라 잠시 한눈을 팔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나와 지수가 여자를 감시할 시간에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나야 했고, 감시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것도 한몫 했으니까.

"알았어, 아저씨. 저기요. 아까도 말했지만 괜히 큰 소리 내면, ···아시죠? 처신 잘해요."

지수는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경고를 날린 뒤, 한 곳에 모아둔 남자들을 향해 움직였다.

쫑긋- 쫑긋!

아직 그녀의 귀가 여자가 있는 방향으로 쫑긋거리는 것을 보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건 아니겠지···?'

나는 힘없이 축 늘어진 남자들의 팔을 잡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얼추 판단하기에 이놈들은 같은 생존자들을 억압하는 위치에 있는 놈들인 모양이다.

나와 지수가 이놈들을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킨 것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드는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우유부단하고 말랑말랑한 이유가 아니라 사방으로 퍼지는 혈향을 막기 위해서였다.

옷에서 나는 하수구 냄새를 넘어서 낯선 우리의 체향을 맡을 정도로 후각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지금은, 그런 선택을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쉬운 방법을 택했다면 지금쯤 나와 지수는 이놈들을 제압한 것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바로 도망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피 냄새는 유독 멀리 퍼지고, 지독하니까.

캠프에서 나는 혈향에 경계심을 가진 적대적인 생존자들이 우리를 포위했을 수도 있는 일이지 않은가.

이윽고.

"아저씨, 한 사람씩 끌고 가자. 혹시 모르니까 이것들이 말한 당구장으로 가는 게 좋겠어. 어차피 바로 앞이기도 하니까 금방 가겠네."

"알았어. 목적지 앞에서 돌아가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대로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

정신을 잃은 남자들을 끌고 갈 준비를 마친 나와 지수는 곧장 당구장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저기요! 안 따라오고 뭐 해요? 이왕 따라오는 김에 그쪽도 도와요."

"네, 네!"

그 전에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여자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자는 눈가를 거칠게 비비더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리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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