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9 - 149. 진실 혹은 거짓2 (7)
쏴아아아아아-
내가 멋대로 박동하는 심장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콜록! 콜록! 흐으, ······속죄할 시간인가···."
겉으로 드러난 피부가 매우 흉측한 남자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하며 눈을 떴다. 남자의 몰골은 말로 이루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뜯겨진 귀, 아물 새도 없이 터져 피딱지가 잔뜩 생긴 입술, 칼로 그어진 여러 개의 붉은 선들, 으스러진 손과 발.
붕대만 겨우 감겨 있는 남자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적처럼 보였다. 그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박현일의 장난질에 시달린 결과이겠지.
남자가 기침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튈 만큼 부상이 심각했으나, 나는 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상태가 된 것은 눈앞의 남자와 관련이 있었으니까.
"다, 당신 뭡니까···."
나는 간신히 고개만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지금도 제멋대로 날뛰는 심장.
이것의 시발점은 나와 남자가 접촉했을 때부터였다.
그러나.
"콜록! 케흑! 벌···, 내게 벌을 다오···."
눈을 뜬 남자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해댔다. 검은 입자에 침식된 그의 눈동자는 매우 탁하게 변해 있었다.
모진 고문을 당한 탓일까. 신아현이 말한 것처럼 정신이 나간 듯한 남자.
지금 당장 그에게 대답을 듣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아, 아저씨! 일단 그 사람 업어! 아니다, 내가 업고 갈게. 아저씨 상태도 이상하고 지금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니까!"
나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지수가 말했다. 그녀는 불안한 눈초리로 나와 남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가슴팍을 부여잡고 주저앉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 지수 네 말이 맞아. 이럴 시간도 없었지."
지수의 말마따나 캠프에서 탈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나는 망치를 지지대 삼아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점 더 거세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바로 그때.
"······빠져나가···? 도망···? 안 돼···, 안 되지···. 나는 여기서 기다려야 해. 더 이상 도망가면 안 돼! 안 돼!!"
남자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내 남자는 눈을 부릅뜨며 몸부림을 쳤다. 성치 않은 팔과 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탓에 나와 지수는 그를 부축하기 위해 뻗었던 손을 급히 회수해야만 했다.
"······! 가만히 계십쇼···! 빨리 탈출해야 한단 말입니다! 시간이 없다고요! 여기 있다가는 죽을 겁니다! 지금도 부상이 심하잖습니까!"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 남자를 두고 갈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나는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이 남자가 위에서 내려왔다는 추측은 둘째치고, 대체 왜 내 심장이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알아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에게는 물어볼 것이 많았다.
비록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였지만 그나마 안전한 곳에서 시간을 들인다면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으리라.
물론, 남자의 협조적인 태도와 나, 지수, 신아현, 이예솔이 캠프에서 무사히 빠져나갔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크흐흐. 크하하하하학! 부상이 심하다고? 나는 이런 꼴을 당해도 싸지! 아니! 오히려 더 당해야지!"
그러나 남자는 도리어 광소를 터트리며 자기 처지를 인정했다. 아니, 인정하다못해 부상의 모자람을 피력했다.
'···그냥 두고 가야 하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데려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무색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검은 입자에 의한 오염이 시작된 사람이라 그런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나와 지수를 망설이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세상을 망하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죄인이 아니면 누가 죄인인가! 죄인이 벌을 받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거늘! 케헥! 콜록! 콜록!"
"······!"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헛숨을 들이키며 경악을 해야만 했다.
"뭔-."
방금 이 자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세상을 망하게 해?
죄인이라고?
남자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막힌 둑이 터진 듯 그는 쇳소리 가득한 목소리로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꺼냈다.
"아니야아니야아니야! 나는!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만들려던 게 절대로 아니었어!"
"아니었단 말이다! 우리는 실패했다, 실패했다실패했다, 실패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미안하다···, 미안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죄를 짓고 말았어···. 우리는 살고 싶었을 뿐이었건만···."
"차라리 실험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고향에서 그냥 죽었더라면···. 우리는 재앙이었다···. 크흑, 아아아아악! 아아악!"
"우리는 살고 싶었어! 죽음이 가득해진 고향을 등지고서라도! 비참하게라도 목숨을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치든!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단 말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어···. 콜록! 콜록! 아니지, 낙원을 우리 손으로 부순 거지! 멀쩡한 세상도 멸망으로 치닫게 만들었는데 내가 어찌 멀쩡하게 살 수 있겠나···!"
"그러니 벌을 다오···. 제발···."
남자는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속에 담고 있던 모든 것들을 토해냈다.
머릿속에 담긴 이야기든, 몸에 들어 있는 내장 조각이든.
"콜록! 콜록! 우에엑!"
그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질척하게 덩어리진 핏덩이를 입으로 쏟아 냈다.
의사가 아닌 이가 보더라도 이 남자의 목숨 줄은 얼마 가지 않아 끊어질 것이라고 자명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위독해 보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
"······."
나와 지수는 바싹 얼어붙은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쿵!! 쿵!! 쿵!!
여전히 아니, 갈수록 힘을 더해가는 심장의 고동 소리 때문일까.
아니면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방금 들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곱씹기 바빴다.
쏴아아아아-
번쩍! 쿠르르르릉···
거센 빗소리, 내부를 순간적으로 환하게 밝히는 번개, 뒤따라 울리는 천둥소리.
그리고.
후두둑- 두두두두둑-
빗줄기가 창고의 천장을 요란스럽게 두드리는 소리.
외부에서 나와 지수를 자극하는 소리들은 머리를 한층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멸망, 세상, 실험, 낙원, 실패, 저주, 벌.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말한 것들이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정신이 나간 자의 헛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
며칠 동안 진행된 고문을 이기지 못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이자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당신. 졸린사 연구원이야? ······그럼 당신은 지금 죽어서는 안 돼."
나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채며 이를 악물었다. 강제로 들어 올려진 탓에 숨이 막히는지 켁켁거리는 남자. 그 모습을 보던 지수는 손을 들어 올렸다가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래, 살아남은 졸린사 연구원이 없을 리가 없었다.
비록 연구소의 위치는 사태의 진원지인 남산에 제일 가까웠지만, 다양한 이유로 우연찮게 살아남은 연구원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 의왕시 캠프의 생존자들에게 잡혀 이 꼴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졸린사 연구원들이 무슨 실험을 실패했길래 세상이 이 꼴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의문들이 산더미다.
이자에게 반드시 물어야만 하는 것들이 산더미다.
그러니까 도망치게 두지 않아.
벌을 받는다고? 그건 누구를 위한 벌이지?
사태를 해결할 책임을 지려고 하지도 않은 주제에, 당신은 자기 혼자 편하자고 지옥이 되어 버린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고통에 기대고 있었을 뿐이잖아.
처음에 남자를 보며 느꼈던 안쓰러움과 동정의 감정들은 이제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속에서 들끓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느껴진다.
나라고 남산에 가고 싶은 줄 아는가?
위험할 것이 뻔한 여정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남산으로 향하는 이유는 하나.
나도 졸린사 연구원들이 그래야만 하듯이,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해 보아야 했다.
'그런데 겨우 이까짓 고통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
당장에라도 주먹을 들어 올려 화가 풀릴 때까지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그게 이 남자가 바라는 일일 테니.
그러니까.
"일어나. 눈을 떠. 그 눈으로 현실을 봐. 당신들이 씹창을 내놓은 세상을 보라고. 책임을 져. 도망치지 마. 아직 희망은 있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나는 잡은 남자의 멱살을 좀 더 높게 들어 올렸다. 남자는 내 말에 피를 토하면서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남자가 보는 것은 내 목에 걸린 푸른 조각.
"······조각. 조각을 가지고 있구나."
"지금 그게 문-!"
"자네도 최근에 무리를 했군···. 심장 속 조각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야. 하지만 부서지지 않았어. 누가 이어 붙인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달라. 자네 심장에 있는 건 평범한 조각이 아니라···."
어느새 검은 입자에 절반 이상 침식된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멍청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치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와 조각을 번갈아 보는 것은 연구원의 기질이 남아 있는 탓일까.
그리고.
"···아. 아아! 이제 알겠어!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가! 자네였어! 우리가 잃어버린 어머니의 조각을 자네가 가지고 있었군! 아아, 푸른빛이 우리를 인도하심이라···. 우리는 아직 버려지지 않았다. 자네 말대로 아직 희망이 있어! 아, 자비로우신 어머니시여···."
남자는 눈을 부릅뜨더니 다시 한번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염치없지만 부탁이 있네. 남산에 있는 연구소로 가게. 거기에 해답이 있으니."
"진짜 시발 아까부터! 더 말할 시간에 일어나서 나가야 한다고 했잖아! 나는 이미 남산으로 가고 있다고, 이 시발! 나도 책임을 질 테니, 당신도 책임을 져야지!"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남자를 완전히 일으켜 세웠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던 지수도 나를 도왔다.
하지만.
"뭐야. 이건 또 뭔···."
나는 이내 허망하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와 지수가 남자를 부축해서 일으킨 것은 확실하건만. 손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책임. 그래,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미안하네. 내게 허락된 시간은 여기까지인 듯 하군. 사라지기 전에 희망을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남산에 있는 연구소는 총 두 군데. 그중 한곳에 이 사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네."
"······."
"···내 이름은 엘트라. 나는 재앙으로부터 도망친 비겁자이지만, 내 동료들은 아직 위에서 버티고 있을걸세. 그들은 나와 달리 겁쟁이가 아니니까."
"그래서 겁쟁이에 비겁자인 당신은 편하게 도망치겠다고?"
나는 이를 악물며 되물었지만 이내 깨닫고 말았다. 남자가 말한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를.
츠츠츠츠츠···
남자의 몸이 말 그대로 입자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검은 입자에 오염된 탓일까. 푸른 입자와 검은 입자가 어지럽게 뒤섞이다 서로 충돌해 덧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것만큼은 명심하게. 푸른빛은 너희를, 우리를 가엾게 여긴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반드시."
다리부터 입자가 되어 사라진 남자는 순식간에 온몸이 입자로 변해 스러졌다. 끝까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진 남자. 오직 남은 것은 마지막에 남긴 말뿐이었다.
"시발."
나는 내 손에 들린 옷가지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신기루인 것처럼 남자의 육체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들이 있었다.
남자가 가지고 있던 푸른 입자들. 그것들이 나와 매고 있는 목걸이의 조각에 전부 흡수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어? 아저씨!"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를 애처롭게 부른 지수.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오히려 지수의 손을 잡아 내 쪽으로 이끌었다. 지금 이 과정은 해로운 것이 아니었고, 치료과정에 가까웠으니까.
키이잉-
나와 지수의 주위를 천천히 돌던 푸른 입자는 서서히 내 심장과 푸른 조각에 자리를 잡아 안착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폭주하던 심장이 외부에서 주입되는 푸른 입자에 의해 급격하게 안정되어 간다. 그와 동시에 땅울림이라는 이적과 미약한 푸른 불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츠츠···
아주 일부, 극히 일부에 불과했지만 지수에게도 푸른 입자가 흡수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때.
"저, 저기···.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사, 사람이 사라졌어······. 반짝이는 건 또 뭐야···."
어느새 징벌방으로 돌아온 신아현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녀는 진작에 일을 마쳤지만 끼어들 타이밍을 놓친 탓에 이제서야 우리에게 말을 건 모양이다.
"···이야기는 나중에. 돌아가서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뇌를 어지럽히는 상념 때문에 두통이 온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아현은 묻고 싶은 것이 매우 많은 표정이었으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동이 트기 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아침이 되면 캠프의 생존자들을 전부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 말이다.
흡수된 푸른 입자가 내게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조각이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 알아볼 틈 따위는 없었다.
나, 지수, 신아현은 복잡한 생각을 애써 털어내며 건물 바깥으로 나섰다.
쏴아아아아아-
바깥으로 나온 우리를 반겨 주는 것은 거센 빗줄기.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악!"
정문 쪽에서 길게 늘어지며 들려오는 어떤 남자의 단말마.
"······!"
"···뭐야?!"
우리는 쭈뼛 소름 돋게 만드는 비명 소리에 당황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급하게 주변을 살피는 내게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이제 보인다. 나의 아이야, 너를 찾아 다녔단다. 줄곧···! 이제 하나가 될 시간이야. 꺄하하하하!」
「현우야, 도망가!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