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2 - 152. 반푼이 (3)
털썩-
코너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게 끝이었다.
콰직-
이어서 들리는 건 낡은 폴더폰이 부서지는 소리.
그것은 믿음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박현일이 가지고 있던 상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소리는.
······이 세상에 더 이상 그의 어머니가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흡! 흑-, 끄흑···."
박현일은 한 손으로 입을 강하게 틀어막았다. 입을 막느라 목발을 짚을 수 없었던 그는 골목길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있는 상태였다.
소리를 최대한 죽인 박현일은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거죠?
우리는 도움이 필요했을 뿐인데.
왜 엄마를 죽였어요?
군인이잖아요. 나라를, 국민을 지키는 군인들이잖아요.
엄마랑 나는 사람이 아닌가요?
제 몸이 조금 이상하긴 해도 사람이란 말이에요.
저희가 괴성만 지를 줄 아는 사람들처럼 보이나요?
웃을 줄도 알고, 울 줄도 알고, 화낼 줄도 알고, 무서워할 줄도 알아요.
전 지금 무서워요.
저랑 엄마는 사람이라고요.
근데.
······근데 왜 엄마를 총으로 쐈어요?
"끄으흑···."
박현일은 눈을 가득 흐리게 하는 눈물을, 끝없이 흐르는 피눈물을 계속해서 닦아냈다. 그는 여전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군인들을 찾았고, 군인들이 엄마를 죽였다.
일기로 쓴다면 그저 몇 줄 띡 하고 적힐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 상황.
홀로 나서는 엄마를 말릴 새도 없이,
엄마에게 총구를 겨누는 군인을 말릴 새도 없이,
별다른 말을 남기지도 못한 채 쓰러진 엄마를 챙길 새도 없이.
박현일은 눈과 귀를 꽉 닫아야만 했다. 경계를 풀지 않은 군인들이 그가 있는 골목길로 들어오려고 했으니까.
"···야야! 어디가?"
"일행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일행이 있다면 비슷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까."
"그렇게 처리하면 끝도 없어, 임마. 그냥 빨리 복귀나 하자. 곧 해도 떨어질 텐데, 어두우면 존나 위험하니까. 박 하사님이 그렇게 지시하셨잖아."
"알겠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군인들은 박현일이 숨어 있는 골목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군인들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새빨간 화염을 주변으로 방사했다.
화르르륵!
타닥- 타닥-
불길이 지나가는 곳마다 그 흔적이 남아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지핀다.
지독하게.
***
군인들이 전부 떠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끄윽······."
박현일은 그의 어머니가 있는 아니, 있었던 곳으로 기어갔다. 점점 형태를 갖춰가는 나무 껍질 탓에 맞춤형으로 제작된 보조 기구는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규격이 맞지 않았으니까.
까드득- 까득-
그그극- 그그극-
그가 움직일 때마다 확연하게 자라 있는 나무 껍질이 울퉁불퉁한 아스팔트에 긁힌다.
이윽고, 박현일은 산산조각 나버린 낡은 폴더폰 앞에 도착했다.
"······."
박현일은 까맣게 탄 숯이 되어 버린 그것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에는 언뜻 보면 메말라 보이지만, 여전히 여러 감정의 격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분사구에서 뿜어진 불길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화마(火魔).
그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화염이 모든 걸 지워 버리는 광경.
「······키킥. 아가, 엄마가 너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단다. 무지개를 그렇게 갖고 싶어 했잖니.」
웃음을 간신히 참는 것 같은 속삭임이 말을 걸었다.
"······무지개."
박현일은 작게 중얼거렸다. 소원을 들어 준다던 무지개. 속삭임은 그것을 선물로 줬다는 말을 했다.
「주변을 보렴.」
그는 속삭임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바닥에 고인 피.
저물고 있는 해.
부서진 폴더폰이 난반사시키는 햇빛.
시체를 둘러 감싸기 시작한 넝쿨.
불에 그을려 칠이 벗겨진 차량.
어느새 어둑해진 밤하늘.
피가 통하지 않는 손.
「네가 바라던 무지개란다.」
[끼에에에에엑!]
[끄아아아악!]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
회색 연기를 내뿜는 차량들.
무너진 건물, 갈라진 도로, 깨진 유리창.
「네가 원하던 현실이란다.」
'아니에요. 이런걸 바란 게 아니었어요.'
어느새 팔과 다리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는 나무 껍질들.
주먹을 쥐면 까드득 소리가 날 만큼 강해진 비정상적인 근력.
온몸에 흐르는,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체력. 다만 느껴지지 않는 생기.
「네가 갖고 싶어 했던 육체란다.」
'달라요. 이런 이상한 몸을 원한 건 아니었어요.'
「어때? 마음에 드니?」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자기 전에 항상 나쁜 생각해서 죄송해요. 돌려주세요. 제 엄마를 돌려주세요. 저 두 발로 안 걸어도 좋아요. 두 팔이 없어도 괜찮아요. 두 눈이 안 보여도 참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선물은 필요 없어요. 그저 돌려만 주세요. 만약 이게 꿈이라면 꿈에서 깨게 해주세요. 제발요.'
「이 모든 게 너를 위한 선물이란다.」
"······아니야. 아니야아니야, 아니야!!!"
박현일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머리를 웅웅 울리는 속삭임을 계속 듣기가 괴로웠다. 그는 이내 두 손으로 검게 탄 것을 들어 올렸다.
"어, 엄마. 내가 잘못 생각했어. 집으로 돌아가자.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데, 엄마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여기서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잖아. 나가자고 해서 미안해, 엄마. 엄마 말 잘 들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가 들어 올리려던 것은 형체를 유지하고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퍼석- 후두둑-
겨우 손에 남은 것은 몇 줌의 검은 재뿐.
"······하하, 엄마가 아니었네. 내가 왜 여기 나와 있지? 이상하네. 벌써 밤이네, 곧 엄마가 돌아올 시간인데. 너무 늦게 집에 가면 엄마가 걱정하겠다. 그러면 안 되지. 빨리 돌아가야겠다."
깨진 건물의 유리창에 그의 모습이 비친다. 박현일은 괜스레 나무로 이루어진 손을 올려 유리창을 만졌다.
쩌적-
순식간에 균열이 생긴 유리창. 어스름한 달빛에 비치는 그가 여러 명이 되었다.
"···집에 가야겠다. ···응, 집에 가야지."
박현일은 비틀거리며 일어났고, 집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크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악!]
까득! 까드드득!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
그와 달리 온몸이 나무 껍질로 뒤덮인 사람들.
그들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팔을 마구 휘저으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덩실덩실, 너울너울.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자신들만의 세상이 열린 것이 너무 기쁜 것처럼.
박현일은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외면한 채 멍하니 계속 걷기만 했다.
이윽고.
쿵- 달칵-
박현일은 좁은 단칸방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와 어머니의 작지만 소중한 보금자리로.
째깍- 째깍- 째깍- 째깍-
몸이 변한 탓일까.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오후 9시 50분. 곧 그의 어머니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올 시간이었다.
「하나가 되자.」
박현일은 매트리스 위에 이부자리를 깔고 가만히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다.
10시.
오지 않았다.
11시.
오지 않았다.
12시.
오지 않았다.
01시.
오지 않았다.
02시.
"······."
오지 않았다. 박현일은 문득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돌리면 언제나 자리 잡고 있던 엄마가 없었다. 옆 이불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
왜 없지?
왜 안 보이지?
왜━
···없지?
박현일은 억지로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이것이 꿈이라면 빨리 깨야 하니까.
꿈에서 깨고 나면.
눈에 보이는 것은 아침을 알리는 밝은 햇빛과 옆에 누운 그의 어머니일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반드시.
***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모르겠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초침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은지도 오래다. 바닥에 깔린 먼지는 층을 더해 갔다.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흐흐. 으흐흐흐···. 으하핫- 으하하하하핫!"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반푼이였다. 아니, 세상이 바뀐 이후, 몸의 반이 새로 생겼어도 여전히 반푼이였다.
이 세상은 불합리하다.
꿈, 희망, 미래.
그런 것들은 박현일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 하나만을 위해 살아온 엄마, 그녀가 베푼 하해와도 같은 은혜를 언제고 갚고 말겠다는 결심은 이제 이룰 수가 없었다.
어머니, 서현경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네가 약했기 때문에 그렇단다.」
속삭임이 대신 답을 내려주었다.
「네가 강했다면 군인들에게 나를 잃지 않았겠지.」
그리고 그 속삭임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얕잡아 보여서는 안 돼.」
「네가 강해지고 싶다면, 역겹게 살아 숨 쉬는 것들을 고통스럽게 죽여라.」
「아들, 너는 그들에게 화낼 자격이 있단다. 그것이 이 어미가 너에게 준비한 두 번째 선물이란다.」
"···선물이요."
박현일은 제 손을 휘감고 있는 검은 입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검은 입자는 누가 보더라도 불길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상은 그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 살아야지."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되풀이 되고 있었으니까. 그의 목숨은 이제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겨우 살려 준 목숨이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박현일이 살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역겨운 것들을 죽여야만 했다. 그것들이 자신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이윽고.
타닥- 타닥- 탁
현실을 인정한 박현일은 수개월 만에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가 보는 세상은 처음 눈을 떴을 때보다 좀 더 초록빛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 전에 보이지 않았던 아파트 단지 위에 자리 잡은 거목이 보였고, 좀 더 무성해진 넝쿨들이 보였다.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들은 따로 있었다.
가스 공급관이라도 터진 것인지 쩍쩍 갈라진 도로 틈 사이에 하얀색의 덩어리가 보인 것이다. 하얀 덩어리에 끼어 있는 시체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문득.
고기 냄새가 났다.
죽어서 시체가 된 인간에게서.
문득.
고기 냄새가 났다.
속살을 드러낸 나무 인간에게서.
문득.
···군침이 돌았다.
입에 침이 한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뚝- 뚝-
박현일은 무심코 침이 흥건해진 입가를 닦았다. 그러고 보니 방에서 누워 있는 동안 먹은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한 그는, 천천히 바닥에 널린 사체들에게 다가갔다.
왜인지 모르게 넝쿨이 치우기 전에 먼저 먹어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리지 말고 먹어야지.」
그냥.
그냥 별 이유는 없었다.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먹으렴.」
아니.
따지자면 이유는 있었다.
「내가 바꾸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무나. 내 아가.」
어머니가 그렇게 하길 원했으니까.
한동안 거리에는 살점이 찢기는 소리와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삶을 다하지 못한 죽음은 비통하다.
하지만.
······죽을 때를 놓친 삶은 비참하다.
그 뒤로, 포식으로 힘을 일부 회복한 박현일은 물류 터미널에 있는 생존자 캠프로 가서 그곳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군인들이 없는 캠프를 차지하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그는.
약해 빠진 주제에 겁없이 달려드는 생존자들을 무참하게 죽이면서, 생존자들을 고통스럽게 죽일수록 조종할 수 있는 검은 입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공포와 폭력으로 약한 것들을 억누르면서 살아남았다.
***
[끼아아악! 아파-! 으아아앙!]
회상에 잠겨 있던 박현일을 현실로 끄집어낸 것은 '어머니'가 준비한 세 번째 선물이 내는 괴성 소리.
어느새 그놈과의 싸움이 막바지에 이른 듯했다.
"···나는 살 거야. 안 죽어."
박현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새삼 깨달았다.
역시 누워서 보는 세상보다 앉아서 보는 세상이 좋다.
아니, 앉아서 보는 세상보다 두 다리로 서서 보는 세상이 좋다.
그러니까.
불합리하지만 이제 마음에 들기 시작한 세상을 더 보기 위해서는 끔찍한 푸른 불을 쏘아내는 남자를 죽여야 했다.
이윽고.
끼이익-
판단을 끝마친 박현일은 컨테이너 문을 살짝 열어 수확물의 뜸이 충분히 들 때까지 기다렸다.
싸움이 끝나고 놈이 방심하고 있을 때. 그때가 자신이 나설 차례라는 걸 되새기면서━
「하나가 되자.」
······기회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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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 기념으로 므밍님이 그려주신 팬아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