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3 - 153. 투쟁 (1)
[꺄하하하하하하!]
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
"······!"
"아, 아저씨···!"
나와 지수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직감했다.
지금 들리고 있는 웃음소리의 주인은,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내는 것은,
수많은 손이 바닥을 짚어 대는 소리를 내는 괴물은.
바로 우리를 수원역에서 허겁지겁 도망치게 만든 누더기 변종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명백하게 나를 노리고 있었다.
단순히 허기가 져 다른 무언가를 잡아 먹기 위해 캠프에 온 것이 아닌, 푸른 입자를 휘감고 있는 나만을 죽이기 위해 오고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내 위치를 알고 변종이 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렇게 멍하니 서있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수야. 위험하니까 신아현씨랑 건물 안에 들어가 있어."
나는 손을 쥐었다 피며 힘이 돌아오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지수에게 말했다.
당장 도망친다고 해도 누더기 변종이 우리를 붙잡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는 판단에 나온 말이었다.
당장 아무 창고 셔터를 열고 쥐 죽은 듯이 숨는다고 해도 자신에게 적대적인 푸른 입자를 인지하는 누더기 변종에게 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싸울 거면 같이 싸우고, 도망칠 거면 같이 도망쳐야지!"
지수는 덜덜 떨면서도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녀의 안색은 차가운 비에 노출된 상황과 변종이 주는 짙은 두려움 탓에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신아현은 처음 맞닥트리는 변종의 소름 끼치는 소리에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어 보였다. 그녀들이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당장 나조차도 손이 떨리고 있었으니까.
「하나가 되자.」
나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뇌리를 계속 울리는 속삭임으로부터.
곧 모습을 드러낼 누더기 변종으로부터.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럴 수도 없었고.
"안 돼. 내 말 들어, 지수야. 시간 없어, 빨리 들어가! 넌 어차피 날 못 도와!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밀려오는 초조함에 지수를 억지로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녀는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억지로 버텼다.
"싫어! 또 아저씨 혼자 둘 수 없단 말이야! 나,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수씨! 일단 현우씨가 시킨 대로 해요! 들어갔다가 상황 봐서 행동하면 되잖아요!"
그런 지수를 막아 세운 것은 신아현이었다.
휘리릭!
신아현은 넝쿨로 지수를 꽁꽁 묶어 간이 창고 안으로 강제로 집어넣었다. 지수는 거세게 몸부림치면서 넝쿨 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넝쿨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윽고.
쿵- 달칵-
"이거 놔! 놓으라고! 당신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가 누구 때문에 여기에 왔는데, 당신이-! 아, 안 돼. 닫지 마! 아저씨! 아저씨!!"
창고 문이 완전히 닫히면서 지수가 애절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미안, 지수야.'
나는 속으로 지수에게 닿지 못할 사과를 전했다.
누더기 변종을 상대하기에는 평범한 인간이 휘두르는 도끼 정도로는 역부족. 푸른 불꽃이라는 이적 없이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수를 전투에서 배제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상처받은 표정을 그녀를 보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실제로 몸이 찢어지는 걸 보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그것이 내가 되었든, 지수가 되었든.
쿵! 쿵! 쿵!
문 너머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용해졌다. 신아현이 지수를 문에서 떨어트리는 조치를 한 모양이다.
"······저도 알아요, 지수씨. 그러니까 대신 제가···."
신아현은 문 앞에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창고 안에 들어가서 숨은 것은 지수 하나뿐. 신아현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현우씨, 저는 도움이 될 거예요. 도와 드릴게요. 그러니까 같이 싸워요."
신아현은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기껏 회수한 넝쿨을 주변에 뿌리기 시작했다. 넝쿨은 바닥에 닿는 것이 무섭게 아스팔트 도로에 파고들어 고정되었다.
쏴아아아아아아-
꾸드드득! 꾸득!
거세게 내리는 빗물을 양분삼아 급성장한 신아현의 넝쿨들은 간이 창고 전체를 뒤덮었던 제 위용을 다시금 뽐낼 준비를 마쳤다.
"···지금 오는 게 뭔 줄 알고요?"
"무시무시한 괴물이겠죠. 당신이 저번에 말해주었던 괴물이요."
"···죽을지도 모릅니다."
"현우씨 아니었으면 어차피 전 죽었겠죠. 언제고 은혜 갚으려고 마음먹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갚게 될 줄은 몰랐네요."
신아현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두려움에 떨리고 있기는 했어도 단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후우···, 감사합니다."
그게 끝이었다.
나와 신아현의 대화는.
더 말할 이야기도 없었고, 더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없었으니까.
[끼아아아아악!]
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과 굵은 빗방울을 헤치고 달려오는 변종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꽈악-
나는 망치를, 신아현은 넝쿨을 있는 힘껏 잡으면서.
이윽고.
[찾았다아아아아아-!]
기괴하고 끔찍한 외형을 가진 누더기 변종이 커다란 입을 벌린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쏴아아아아아아-
번쩍! 쿠르르릉···
한순간 주변을 밝히는 번개에 의해 그것의 형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수원역에서 봤을 때랑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누더기 변종의 모습.
질척질척한 밀가루 반죽처럼 흘러내리는 몸통은 더 이상 없었다.
대신 오밀조밀하게 뭉친 매끈한 피부를 가진 거대한 몸통이 있었다.
질서없이 마구잡이로 붙어 있던 팔다리는 더 이상 없었다.
대신 몸통을 따라 규칙적으로 붙어 있는 길고 새하얀 팔들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 달려 있는 사람의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대신 정면이라고 추정되는 부위에 수없이 달린 눈들이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입.
커다란 입.
몸 크기만큼이나 큰 입은 여전했다.
입안에 여러 갈래로 갈라진 새빨간 혀가 있는 것도 여전했다.
[아, 아아-, 아그-그그그극! 너어-!]
누더기 변종은 수많은 눈을 동시에 깜빡거리며 나와 신아현을 번갈아 보더니.
"현우씨, 피해요!"
콰-앙!
파아앙!
내가 서 있는 도로를 새하얀 팔로 냅다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도로에 고인 물웅덩이의 물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나를,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수없이 두드렸다.
후우웅-
비바람이 아닌 누더기 변종이 만들어 낸 풍압은 내가 쉽게 정신 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단 한 번, 겨우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건만.
누더기 변종은 압도적인 괴력을 자랑하며 사냥감이 저항 의지를 잃어 버리도록 만들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손이 덜덜 떨린다.
주륵-
조각난 아스팔트 파편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 것인지 일선으로 그어진 상처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가 되자아아아!]
쉬지 않고 재차 달려드는 누더기 변종. 놈은 나를 잡기 위해 활짝 핀 가느다란 손가락과 넓은 손바닥을 높게 쳐들었다.
쏴아아아아아-
나는 빌어먹게도 차가운 빗물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망치를 꽉 쥐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면서.
누더기 변종이 다시 한번 손바닥으로 나를 내리치려는 순간.
촤르르륵!
"흐읍!"
나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슬라이딩하는 것처럼 앞으로 몸을 던졌다. 물웅덩이가 처음에는 쿠션감을 주었지만, 이내 울퉁불퉁한 아스팔트가 내가 입고 있는 옷을 긁었다.
지지직-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옷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응당 뒤따라 들려야 할 변종이 만들어 낸 파괴음이 들리지 않자,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답을 알 수 있었다.
휘리리릭! 꾸드드득!
넝쿨이 무언가를 강하게 휘감는 소리로 말이다.
"현우씨! 제가 묶어둔 틈에 빨리···!"
신아현이 넝쿨을 조종해서 누더기 변종의 팔과 몸통을 묶은 것이었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면서 온 신경을 넝쿨을 조종하는 데에 쏟고 있었다. 능력의 과부하가 온 것인지 입가에서 붉은 피를 뚝뚝 떨어트리면서.
[이거 놔아아아악!]
하지만 그 덕분에 누더기 변종은 아주 잠시뿐이지만 훤하게 제 몸통을 드러내게 되었다.
망치에 푸른 입자를 두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푸른 입자는 심장에서 뿜어지다가 망치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후웅-!
하지만 결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양손으로 쥔 망치로 새하얀 팔만큼이나 하얀 몸통을 푸른 입자없이 그냥 후려쳐야만 했다.
터어어엉-!
망치가 누더기 변종을 가격한 것과 동시에.
"크으윽?!"
망치 머리를 튕겨 내는 강한 반발력이 팔을 타고 흘렀고, 놈의 몸체에 검은 입자로 이루어진 얇은 장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막?!'
내가 수원역에서 만들어낸 적이 있었던 푸른 장막이 이번에는 검은 장막이 되어 누더기 변종을 지키고 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아, 안 돼! 물러나요! 넝쿨이!"
신아현이 내게 경고를 끝마치기도 전에,
[끼아아아아아!]
뜨드드득-!
누더기 변종은 검은 입자를 빗물이 타고 흐르는 몸통에서 격하게 뿜어내며 움직임을 제한시키고 있던 넝쿨들을 모조리 끊어 버렸다. 한계까지 조여진 넝쿨은 순식간에 탄력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휘이이이이-
찰박- 찰박- 찰박-
거미 변종이 그랬듯이, 누더기 변종도 검은 입자를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검은 입자가 회오리 치며 다가오는 모습은 절망이라는 단어가 실체화를 한 듯했다.
바로 그때.
쐐애애액!
넝쿨에 잡혀 있던 놈의 팔이 자유를 얻고 공기층과 빗줄기를 가르며 휘둘러진다.
퍼어억-!
"커헉!"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나를 강타한 변종의 손바닥.
쿵-쿵-! 드그그극- 쾅!
콰장창!
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으며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튕겼고, 화물 트럭에 부딪치고 나서야 몸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세운 것이 아닌 그마저도 강제로 세워졌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아으으윽···!"
온몸을 굳게 만드는 고통에,
눈앞이 흐려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진다.
볼에 난 상처가 더 벌어졌다.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우웨엑!"
내장이 상한 듯 토해지는 핏물에 작은 고기 조각들이 섞였다.
그러다가 문득.
목에 걸린 푸른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한세아가 안녕을 기원하며 내게 건넨 푸른 조각.
'···약속, 지켜야지.'
나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겨우 일어섰다.
본능적으로 푸른 입자를 전신에 둘러 누더기 변종의 공격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내 목숨은 여기서 끝이었겠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후두둑- 빠직- 빠드득-
후들거리는 다리 밑으로 깨진 유리 조각이 밟힌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심장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감각을 집중했다.
그렇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 내가 다룰 수 있는 푸른 입자의 양이 많지 않다는 것.
흡수한 푸른 입자가 적었기도 하거니와 검은 입자에 의한 오염이 진행 중이던 남자였기에, 입자로 화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푸른 입자가 유실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입자로 변했고, 그 남자가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당장은.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주민 센터에서 해냈던, 망치에 불티를 휘감아 주변으로 퍼트리는 짓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땅울림을 몇 번 사용하고 나면 전부 바닥날 정도로 매우 적은 양의 푸른 입자. 그렇기에 처음에 내가 변종을 망치로 후려쳤을 때, 푸른 입자가 망치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말았다.
상태를 알아볼 시간이 부족한 탓에 일어난 내 실책.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망가진 심장이 고쳐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치료조차 되지 않았다면 나는 누더기 변종을 상대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망치가 통하지 않는다면, 망치에 불티를 입힐 수 없다면, 주먹에 두르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아직 안 끝났어. 케흑-! 이제 시작이야. ······괴물 새끼야."
나는 그 말과 동시에 심장에서 푸른 입자를 뿜어냈다. 누나가 알려준 방법대로 입자를 회전시켜 제대로 된 푸른 불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티를 내 주먹에 둘렀다.
화르르륵!
미약하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 푸른 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