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54화 (155/497)

Chapter 154 - 154. 투쟁 (2)

쏴아아아아-

거센 비가 내리는 물류 터미널 한복판.

"허억···, 허억···."

나와 누더기 변종은 기묘한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끼르르르륵···]

내가 주먹에 푸른 불꽃을 둘렀을 때부터 놈은 멈칫하더니 처음과 달라지지 않은 위치에서 나를 보기만 했다. 움직이지도 않고, 수많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면서.

화르륵-

나는 빗물이 들어와 가물가물 해진 시야로 손을 바라보았다. 손에 빗물이 타고 흐르는 것이 무색하게 홀로 타오르고 있는 푸른 불꽃이 보인다.

"빨리···, 흐윽-."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신아현은 누더기 변종이 끊어 버린 넝쿨을 다시 제어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변종으로부터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지고 있던 넝쿨을 전부 쏟아 부었지만, 예상치 못한 검은 장막의 등장에 한 방 먹이기는커녕 대부분의 넝쿨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넝쿨은 어차피 끊어졌을 테지만, 여러 줄기로 묶은 것에 비해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최소한 약간의 피해라도 줬어야 했건만.

그녀가 조종할 수 있는 특별한 넝쿨들이 무력화된 이상, 신아현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내가 처음부터 푸른 입자를 주먹에 둘렀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저지른 실책이 뼈아프다.

바로 그때.

우웨에엑!

누더기 변종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무언가를 토해냈다.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지 않는 악취가 다가온다.

철퍽- 철퍽-

아스팔트 도로 위에 쏟아진 그것. 주변을 밝히는 푸른 불꽃에 의해 변종이 무엇을 토해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누더기 변종이 게워 낸 것은.

···자기만큼이나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시체였다.

누더기 변종이 캠프에 들어왔을 때 잡아먹힌 생존자인 모양이다.

후두둑- 후두둑-

아직 소화액에 녹지 않은 인간의 살점, 뼈, 옷가지 따위가 품고 있던 핏물이 물웅덩이를 스멀스멀 잠식한다. 탁한 붉은색이 투명한 물을 물들인다.

그 순간,

쾅!

으직! 철퍼억!

놈이 손바닥을 내려쳐 토해낸 시체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마치 자신에게 접근하면 이 꼴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하나가··· 되자··· 키킥! 꺄하하하하하!]

데굴데굴 눈을 굴리면서,

커다란 입을 크게 벌리고,

입안에 뾰족하게 난 이빨을 위협적으로 드러내며,

누더기 변종은 폭소를 터트렸다.

"······후우."

그리고 나는 놈이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놈이 기껏 배를 채운 시체를 도로 토해낸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자극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내가 가진 푸른 불꽃이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누더기 변종.

놈이 알아차린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푸른 불꽃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에 몸이 굳은 내가 알아서 포기할 수 있도록.

결국 이대로 대치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가진 푸른 입자가 바닥나기만 해도 나는 죽겠지.

어쩔 수 없이 먼저 접근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나.

움직이지 않으면 끝내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도 나.

언제나 그렇듯이 돌아가는 상황은 결코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나는 누더기 변종을 죽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캠프에서 물러나게 만들어야 했다. 어떻게든.

그것만이 내가, 지수가, 우리가 살 길이다.

그리 생각한 나는.

타탓- 타타탓-!

찰박찰박찰박!

주먹을 꽉 쥔 채로 곧장 몸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망치는 들고 있어 봤자 쓸모가 없으니 바닥에 던져두었다. 몸을 가볍게 해야 빠르게 움직이는 변종의 팔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신아현씨! 뭐가 됐든 준비되는대로 뭐라도 해 보십쇼!"

나는 신아현이 있는 위치를 향해 소리쳤다. 대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나와 누더기 변종이 이루고 있던 기묘한 대치는 끝, 이제 생존 경쟁의 시작이니 간단한 대답마저 들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끼아아아악!]

누더기 변종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팔들을 전부 위로 치켜들었다. 나를 짓이기 위해 가늘고 하얀 팔들이 치솟는 모습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두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물러설 것 같았으면, 달려들지도 않았어.'

나는 언제든지 구를 준비를 하며 달리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기필코 한 방 먹이고 말 것이다.

이윽고.

[꺄하하하하하핫!]

쐐애애애액!

무수히 많은 팔들이 지면을 향해 내리쳐진다.

뒤이어 일어나는 것은.

푸화아아악!

물웅덩이에 고인 물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모습.

쾅! 쾅! 쾅! 콰직!

쩌저저적-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스팔트가 갈라지는 모습.

끼기기기긱!

콰장창-!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화물트럭의 차체가 우그러지고 유리가 깨지는 모습.

파괴만이 가득한 풍경 속에서.

촤르르르륵-

"크으윽!"

나는 누더기 변종의 몸통 아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놈의 팔이 나를 강타하기 직전, 몸을 뒤로 젖혀 물을 쿠션 삼아 슬라이딩을 하듯이 팔을 피해낸 것이다.

촤촤촤촤촤-

좌우로 갈라지는 물살이 사방으로 튄다.

쿵! 쿵! 쿵!

강하게 박동하는 심장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그 소리는 위험을 알리는 본능의 경종 소리였지만,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공간도 없었다.

어느새 느릿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으아아아아!"

나는 시야를 가득 메운 변종의 하얀 몸통을 향해 푸른 불꽃이 아른거리는 주먹을 내질렀다.

내 주먹이 놈의 무방비한 몸통에 맞닿는 순간.

화르륵!

파지지직!

꺼질 듯 일렁이는 푸른 불꽃과 함께 검은 장막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외부의 침입을 막으면서 생긴 반발력이 느껴진다.

퍼석!

푸우욱-

검은 장막이 내 주먹을 밀어내나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 푸른 불꽃이 회오리치는 내 주먹은 장막을 뚫고 누더기 변종의 몸체에 깊숙이 박혔다.

그와 동시에.

[아파아아아아아-!]

괴물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순간적으로 빗줄기를 역으로 밀어낼 정도로 아주 커다란 비명이었다.

삐이이이이이-

머리를 울리는 이명.

우직- 우지직- 콰드드득!

화르르륵!

나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팔을 더 깊게 밀어 넣었다.

철퍽- 철퍽-!

내가 주먹을 밀어 넣을 때마다 놈의 몸통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장이 내 위로 쏟아졌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우웨에엑!"

나는 지독한 악취를 뿜어내는 내장을 온몸으로 맞으며, 헛구역질을 애써 참지 않았다. 대신, 변종의 몸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몸통에 강제로 밀어 넣은 팔을 미친 듯이 휘적거렸다.

화르르륵!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푸른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를수록 뿜어지는 검은 입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프다고···! 했잖아아아아악!]

당연하겠지만, 누더기 변종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큭?!"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나를 떼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누더기 변종. 놈은 필사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나를, 정확히는 내 다리를 붙잡아 끄집어냈고, 하늘 위로 던졌다.

쏴아아아아아-

휘이이이이!

느껴지는 것은 위로 올려졌다가 추락하면서 생기는 아찔한 부유감과 굵은 빗방울.

보이는 것은 아래에서 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독한 살기와 증오를 풀풀 흘려 대는 괴물.

그리고.

"······!"

변종의 등에 반쯤 박혀 있는 유해.

내가 거미 변종을 죽인 후 얻을 수 있었던 나뭇가지.

한세아가 김태진의 가슴팍에 꽂아 넣었던 검은 유해.

그것이 형태를 유지한 채로 누더기 변종의 등 한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저것이 왜 놈에게 박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당장은.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누더기 변종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거미 변종의 유해는 나무 인간들에게 꽂기만 해도 치명상을 안겨 주었으니 누더기 변종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유해를 더 깊숙하게 박아 넣을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지금처럼 모호하게 박힌 상태의 유해는 누더기 변종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까득!

승산을 올려주는 무기를 발견한 기쁨도 잠시, 나는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하나가!!! 되자!!!!]

누더기 변종이 다시금 무수히 많은 팔을 휘둘러 나를 노려 왔으니까. 공중에서 추락하는 나는 사방에서 쇄도하는 팔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심장에서 닥치는 대로 뽑아낸 푸른 입자로 주먹에 두른 푸른 불꽃을 최대한 크게 키워 타오르게 하는 것뿐.

화르르르륵!

욱신!

푸른 불꽃이 좀 더 커지는 것과 동시에 치료되자마자 무리를 한 심장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어.'

나는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곧 몸을 강타할 고통에 대비했다. 한 방. 그래, 한 방 정도는 몸이 버텨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바로 그때.

휘리리릭!

한 줄기의 넝쿨이 내 몸을 휘감아 내가 변종의 손아귀에 붙잡히기 전에 뒤로 빼냈다.

탁-!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던 나를 붙잡은 넝쿨. 통통한 줄기를 가진 넝쿨은 내가 다치지 않게 살며시 도로 위에 내려주었다.

[아아아아아아악! 또오! 또-!]

쾅! 콰앙-! 끼기기기기긱!

누더기 변종은 나를 놓친 것이 매우 분한 듯 괜히 주변에 화풀이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현우씨! 괜찮아요?!"

간이 창고 앞에 있던 신아현이 큰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나는 말없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감사를 표했다. 신아현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서 있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분명 넝쿨은 다 소비한 거로 알고 있었는데, 아직 조종할 수 있는 넝쿨이 남아 있었나 보다. 어찌 되었든 나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쏴아아아·········

거셌던 빗줄기는 점차 약해져 가늘어지고 있었지만.

[으극! 아그그그그극! 아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악!]

쾅! 쾅! 푸화악! 콰장창!

분노에 가득 찬 누더기 변종은 그 기세를 더해 가고 있었다. 변종이 휘두른 팔에 주변이 또다시 파괴되고 있었다. 눈앞에서 나를 놓친 것이 매우 분한 모양.

[끄르르르륵···]

주변의 기물을 파괴하며 화풀이를 하던 누더기 변종은 지독한 증오를 눈에 담아 나를 노려보았다.

철퍽- 철퍼덕- 뿌지직! 뿌즈즉-

구멍이 송송 뚫린 복부에서 흘러내리다 못해 쏟아지는 검은 내장. 온갖 고기 조각과 배출되지 않은 배설물들이 아스팔트 도로를 더럽힌다.

화르르륵!

타닥- 타닥-

그리고 그 안에서 잔불처럼 남은 푸른 불꽃. 그것은 안에 담긴 푸른 입자가 전부 소모될 때까지 검은 입자를 소멸시키고 있었다.

뜨득- 찰박!

푸른 불이 제 몸과 팔을 이어 주는 관절에 닿을 때면, 새하얀 팔들은 도마뱀이 꼬리를 떼어내는 것처럼 똑 떨어졌다. 그 결과, 변종이 자랑하던 수많은 팔들은 듬성듬성 자리가 비워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허억- 허억-."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서 있는 내 꼴도 꼴이지만, 놈의 꼴도 결코 좋지는 않았다. 푸른 입자와 검은 입자가 가진 상성 탓에 한 방, 한 방이 서로에게 치명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라···. 여기서 나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끝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누더기 변종에게 크게 한 방 먹인 것은 사실이다.

누더기 변종이 크게 상처를 입어 내게 섣불리 달려들지 못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은 아니었다. 각자의 목숨이 걸린 저울이 내 쪽으로 기울기는 했으나 놈은 여전히 매우 위협적이었으니까. 오히려 극도로 끌어올린 경계심에 의해 내가 변종을 죽이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변종의 등에 놈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유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도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나 또한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내가 등을 타고 오를 동안 가만히 두고 볼 변종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지금 나와 변종의 대치 상태는 누더기 변종이 지레 겁먹고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걸로 끝나는 것이 가장 최선의 결과다.

"흐윽-."

나는 욱신거리는 고통을 무시한 채로 변종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놈이 무슨 짓을 해도 바로 대비할 수 있도록.

[모자라··· 모자라··· 모자라······ 저건 안 돼? 저게 더 많은데!]

누더기 변종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변종이 시선이 주로 머무르는 것은 컨테이터가 쌓여 있는 곳과 커다란 물류 창고.

[그럼··· 그럼 이거.]

놈이 괴물답지 않게 내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는 고통, 분노, 초조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찾았다.]

변종은 시선을 한곳으로 고정시키더니.

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찰박!

여전히 많은 손으로 바닥을 짚어 대며 어느 창고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L'이라고 표시된, 캠프의 생존자들이 숨어 있는.

······바로 그 창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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