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5 - 155. 투쟁 (3)
"······!"
처음 누더기 변종이 다친 몸을 이끌고 움직이려고 했을 때.
돌아가는 상황이 처음으로 내 편을 들어 주나 싶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놈이 도망가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누더기 변종이 캠프 바깥이 아닌 L동 창고로 향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돼···, 안돼안돼안돼! 멈춰!"
나는 필사적으로 놈을 뒤따라 달려 나갔다.
이대로 변종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된다. 놈이 향하는 L동 창고와 그 옆에 있는 간이 창고에는 생존자들이 숨을 죽이고 숨어 있는 곳이었으니까.
다친 변종이 노리고 있는 것이 생존자들을 인질로 잡기 위함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지금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간이 창고에 있는 지수의 안전.
폐쇄된 공간에서 누더기 변종과 맞닥뜨린다면 결과는 죽음뿐이다. 사방이 뚫려 있는 바깥에서도 놈의 수많은 팔을 피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건만, 그것이 닫힌 공간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평범한 인간은 압도적인 괴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는 변종을 상대할 수 없었으니.
[끼아아아아아악!]
앞서 나가는 누더기 변종이 내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 내게 포효했던 소리와 조금 달라진,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괴성이었다.
턱-턱-턱-턱-턱-
놈이 검은 체액이 묻은 새하얀 팔로 도로와 차량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찰박찰박찰박찰박!
바닥에 고인 물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철퍼덕! 철퍽! 후두둑-
메워지지 않은 깊은 상처에서 온갖 고깃덩이들이 아래로 쏟아진다.
콰르르르르륵-
변종의 체액에 의해 검게 물든 빗물들이 와류를 형성하며 배수구로 빨려 들어간다.
타탓- 타타탓!
"크으윽!"
나는 놈을 따라잡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달렸지만, 거리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아 있는 체력의 상태와 체구의 크기 차이가 심한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동 속도가 비교할 수 없었다.
이윽고.
철그럭- 철그럭-
끼기기기기기긱!
창고 앞에 순식간에 도착한 누더기 변종이 창고의 출입을 막고 있던 셔터를 종잇장처럼 찢었다. 셔터를 이루고 있던 재질이 단단한 금속인 것은 분명하나, 변종의 기이할 정도로 강한 괴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와 동시에.
와르르- 콰직! 쿵! 끼기긱!
"꺄아아아아악!"
"시발! 저게 뭐야!"
"으아아아아앙!"
"다 비켜, 개새끼들아!"
창고 안에서 수많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셔터 쪽에 급하게 만들어둔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문 닫아! 누가 가서 셔터 내리라고!"
"셔터가 무너졌는데 닫기는 뭘 닫아, 병신 새끼야!"
"그럼 앞에 뭐라도 더 쌓아서 막아, 시바아알!"
물류 터미널의 생존자들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버틸 심산이었겠지만, 진정한 변종을 겪어본 적 없는 그들은 그것의 괴력을 간과하고 말았다.
[모자라··· 모자라-!]
누더기 변종은 구석으로 몰린 생존자들을 향해 포효하더니, 반쯤 찢어진 셔터를 완전히 떼어내 뒤로 집어던졌다.
빠지지지직! 끼기긱! 핑! 티티티팅!
터엉! 드드드득-
너덜너덜해진 방범 셔터를 간신히 고정시켜 두고 있던 굵은 나사들이 모조리 튕겨 나가며 사방으로 튀었고, 1층 입구 천장의 일부가 같이 뜯겨 나가 휑한 모습을 보였다.
"씨발! 죽기 싫어! 다 꺼져!"
구석으로 몰리다 못해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부 생존자들은 역으로 앞으로 뛰쳐나가며 누더기 변종을 피해 달아나려고 했다.
"아아악!"
옆에 누가 있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밀치며 앞다투어 나가려는 생존자들.
덥석! 와드득!
그런 그들을 멈춰 세운 것은, 당연하겠지만 유일한 입구를 지키고 있는 누더기 변종이었다. 변종은 제 발로 달려드는 먹잇감을 닥치는 대로 입에 넣고 씹었다.
"이거 놔아악! 끄아아아악!"
제일 먼저 누더기 변종에게 잡힌 남자는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오염이 진행되어 검게 물들고 있는 그의 눈을 물들인 것은 시야를 가득 메운 괴물에 대한 공포,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드는 절망, 변종의 송곳니가 피부를 찢으면서 생긴 고통.
날카로운 이빨이 빼곡하게 나 있는 커다란 입에 들어간 남자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어림없는 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지르는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으적- 우직- 빠드득- 빠각! 우적- 우적-
비명 소리가 사라진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살점이 으깨지는 소리와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
뚝- 뚝- 뚝-
검은 체액이 아닌 살아 있었던 사람의 새빨간 핏물이 변종의 몸체를 타고 흘러 바닥에 고인다.
이윽고, L동 창고에는 피와 비명이 어지럽게 뒤섞여 난무하기 시작했다. 보지 않아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절로 상상이 될 정도로.
"헉! 허억! 허억-!"
내가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더 이상 본래의 색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 흰색과 회색으로 페인트칠 된 창고.
창고는 입구, 바닥, 벽, 기둥, 천장을 가리지 않고 붉은 페인트가 아니, 핏물에 의해 덧칠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고.
바로 그때.
[끼이이이- 킥- 꺄하하하하하!]
으적- 으적- 우직-
내가 창고에 도착한 것을 알아차린 누더기 변종이 뒤돌아 나를 보며 웃었다. 놈은 입에 집어넣은 것들을 쉬지 않고 씹어댔다. 변종이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무언가가 뚝뚝 끊어지는 소리와 미처 삼키지 못한 핏물이 입 밖으로 튀었다.
그리고 나는,
"······시발."
허탈함에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 내 눈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면 변종은 상처 대부분을 회복한 모습이었으니까.
"흐으윽, 흑."
나는 창고 안에 아직 살아 있는 생존자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바닥에 바싹 엎드리고 패닉에 빠진 그들은 대부분 여자, 노인, 소수의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검은 입자의 침식이 진행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없어.'
없었다. 검은 입자에 오염되어 눈동자가 검게 물든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망가거나 숨은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사라졌었다.
그렇다는 것은.
누더기 변종이 창고를 습격해 닥치는 대로 입에 넣은 것이 오염된 생존자들이라는 말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품고 있던 검은 입자를 노린 것이겠지. 푸른 불꽃에 의해 사라진 검은 입자를 충당해서 몸을 회복시킨 것일 테고.
퉤에엣!! 철퍽! 즈즈즉-
누더기 변종이 질겅거리고 있던 사람의 팔을 뱉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살점은 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끼기기긱-
수많은 팔 중 하나가 올려진 금속 선반이 변종의 악력에 우그러지며 죽는 소리를 토해낸다.
[끼르르르르르···]
놈은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끝내 둘 중 하나가 죽는다고 해도, 누더기 변종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나도 물러날 수 없는 건 매한가지.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잃고 말아. 도망가는 건 내 자신이 용납하지 못해.
내가 나 살자고 도망친다고 해도, 변종이 나를 놓아줄지도 미지수.
만약 도망치는 것에 성공한다고 해도, 지수가 위험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러니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변종의 등에 박혀 있는 유해를 어떻게든 이용해 놈을 물리쳐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최소 3m 높이에 있는 유해에 어떻게 도달한다는 말인가.
창고에 설치된 선반을 타고 오르면 유해가 박혀 있는 높이에 갈 수는 있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누더기 변종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빠르게 선반을 오른다고 해도 놈이 팔이 움직이는 것이 훨씬 빠르겠지. 붙잡힌 이상 빠져나갈 길은 없으니 거기서 승부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가 한대씩만 때려도, 서로에게 치명상으로 이어지니까.
'···나는 한대라도 버티면 다행이고.'
바로 그때.
"혀, 현우씨···!"
어느새 근처에 자리 잡은 신아현이 나를 불렀다. 그녀는 내가 시켜지 않아도 알아서 잘 숨어 있었다.
"어, 어떡해요? 사람들이···."
신아현은 한순간에 벌어진 학살극을 믿지 못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아현씨. 남은 넝쿨 있습니까."
나는 변종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물었다. 놈 또한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하나 남았어요. 이제 진짜 마지막. 끊어진 넝쿨을 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요. 그리고-."
"쉿! 시간 없습니다. 제가 말한 게 가능하면 빠르게 단답으로 주십쇼."
신아현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었으니까. 다른 넝쿨이 준비되는 것을 기다릴 시간도 없었고.
"남은 넝쿨로 절 높게 띄울 수 있습니까? 제가 신호할 때 바로 해주셔야 합니다."
"······할 수 있어요. 어떻게든 해볼게요."
"후우···. 좋습니다.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나는 다시금 차오르는 긴장감에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남은 넝쿨도 단 한 줄기.
내게 남은 기회도.
······단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