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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159화 (160/497)

Chapter 159 - 159. 투쟁 (7)

화르르륵!

"······이런 씨발!"

당구 큐대를 던져 자신을 맞춘 이예솔을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던 박현일은 코앞에서 푸른 불길이 치솟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큭, 이예솔씨. 후우, 뒤로 물러나십쇼. 위험합니다."

나는 머리를 밟고 있던 박현일의 발이 치워진 덕분에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비틀거리는 몸.

여전히 폐를 찌르는 갈빗대.

여전히 죽은 피를 쏟아 내는 입가.

하지만.

내 몸을 휘감고 있는 푸른 입자들이 주는 충족감.

내가 어리석었다.

박현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곧장 조각을 깨고 전력으로 상대해야 했다. 고작 도끼 하나만 믿고 나설 것이 아니라.

'아니.'

오히려 지금 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다. 현재 내 몸에 흡수되지 않고 있는 푸른 입자는 오직 주변만 맴돌고 있었을 뿐이니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되면 시간제한이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축적이 아닌 해방된 상태의 푸른 입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흩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인 것은 내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하는 속삭임.

「정화하라.」

그러니까.

'···입자가 허무하게 사라지기 전에.'

내가 완전히 정신을 잃어 버리기 전에.

박현일에게 전부 쏟아붓는다. 하나도 남김없이.

"시바아알!"

급하게 뒤로 물러나는 중인 박현일.

그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짙은 두려움과 불에 닿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깃들어 있었다.

첫 등장에 자신만만하게 드러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화르르륵!

나는 그가 거리를 더 벌리기 전에 푸른 불길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허공에서 와류를 형성하며 빠르게 쏘아진 푸른 불길. 그것은 박현일이 흘리는 검은 입자를 모조리 태워 버리며 전진했다.

바로 그때.

"이 개새끼가-!"

박현일은 뒷걸음질을 멈추고, 방치되어 있던 차량을 붙잡았다. 그리고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의 괴력으로 들어 올렸다.

끼기기기긱!

콰직! 우지직!

그가 붙잡은 손모양대로 우그러지는 금속 차체.

콰장창-! 쩌적!

변형되는 차체를 버티지 못하고 깨져나가는 유리창.

"으아아아!"

박현일은 들어 올린 차량을 자신에게 날아오고 있는 푸른 불길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도끼와 달리 몸으로 막을 수 없으니 SUV를 던져서 불길을 흩어버릴 심산인 듯했다.

부우우웅!

퍼엉-!

이질적으로 허공에 뜬 차량은 박현일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전방을 가로막은 SUV에 의해 푸른 불길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사방으로 비산하고 말았으니.

후두둑- 후두둑- 두두둑-

수많은 작은 덩어리로 나눠진 푸른 불길이 멀리 퍼져 유성처럼 떨어진다.

치이이익-!

누더기 변종이 흘린 내장 조각과 검은 체액을 증발 시키는 푸른 불꽃.

"······!"

폭죽이라도 터진 것처럼 눈부신 광경이었으나, 나는 곧장 앞으로 굴러야만 했다. 박현일이 던진 SUV. 그것이 불길을 막다 못해 육중한 질량을 가지고 내게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콰앙! 콰드드드득!

내 뒤를 강하게 울리는 차량이 추락해 파괴되는 소리. SUV는 아스팔트를 긁으며 관성에 의해 길게 미끄러졌다.

"후우, 후우, 후우-. 빌어먹을 새끼가···."

박현일은 거친 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괴력을 낸 반동일까. 그를 잠식한 나무 껍질은 절반을 넘어서 있었다.

"별거 아니네. 씨발. 별거 아니라고, 개새끼야!"

박현일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는 주위에 널린 물건들을 들어 올려 내게 던질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 주위에 널린 것들 말이다.

화물 트럭, 경차, SUV 같은 각종 차량들.

쇠 파이프, 플라스틱 팔레트 같은 여러 자재들.

박현일이 던질 수 있는 것들은 주변에 널리다 못해 가득했다.

바닥에 박힌 표지판, CCTV가 설치된 가로등 같은 고정된 것들도 뽑아서 던질 수 있겠지. 이미 SUV를 높게 던질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괴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피하기 급급할 것이다. 내가 기껏 쏘아낸 불길도 번번이 막힐 것이고.

부우우웅-!

재차 하늘을 날아 내가 있는 위치로 곧장 추락하는 차량 1대.

나는 불길을 앞으로 쏘아 보내는 대신 앞으로 구를 준비했다. 어차피 푸른 불을 아무리 강하게 쏜다고 해도 결국은 박현일이 차량을 들어 막게 되니 소용이 없지 않은가. 괜히 낭비되는 푸른 입자만 아까웠다.

그렇기에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박현일과 거리를 최대한 좁히는 것.

좁혀서 지근거리에서 푸른 입자를 두른 도끼로 찍든 푸른 불을 쏘든 하는 것.

바로 그때.

휘리리릭!

터어엉- 출렁···

얼기설기 얽혀 있는 넝쿨 다발들이 그물망처럼 확 퍼지더니 추락하고 있던 차량을 막았다. 해먹에 사람이 누운 것처럼 넝쿨망이 출렁인다.

"현우씨! 가요! 묶는 건 힘들어도 날아오는 건 막을 수 있어요!"

후방에 자리 잡은 신아현이 크게 외쳤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가 너무 조용하다 싶더라니 끊어진 넝쿨들을 한데 모으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하늘을 가리는 넝쿨망 덕분에 박현일은 마구잡이로 물건을 던질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이, 이 빌어먹을 년이!"

하지만 박현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까기기긱!

부우웅! 철썩-!

-쿠웅!

그는 눈에 띄게 크기를 키워나가는 나무 인간의 팔로 차량을 집어 던졌다. 차량은 유리 조각을 흩뿌리며 더 강하게 날아갔으나 탄력 있는 넝쿨을 이기지 못하고 올라간 것보다 빠르게 도로로 떨어졌다.

타타탓! 타탓-!

나는 한순간 훤하게 뚫린 전방을 내달렸다. 푸른 입자로 강화된 육체는 내가 순식간에 박현일의 앞에 도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박현일의 눈동자는 여전히 내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왔다. 다급한 표정과 달리 아직 여유가 남아 있는 모양.

서로 눈이 마추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쐐애애액!

후우웅!

마주 휘둘러지는 소방 도끼와 놈의 나무 팔.

그리고.

따아아앙!

쩌저저적! 후두둑- 후두둑-

단단한 금속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비산하는 나무 조각들.

"······큭!"

강한 반발력을 받은 소방 도끼 탓에 손이 찌르르 울린다. 이번에 휘둘러진 도끼는 박현일에게 피해를 확실하게 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방금 내가 깨뜨린 나무 껍질들은 결국 겉 부분에 불과할 뿐, 핵심이 되는 내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괴물보다 좀 더 인간에 가까운 탓일까.

박현일은 무식하게 강한 힘과 육체를 무작정 들이미는 누더기 변종과는 달랐다. 그는 도끼가 최대한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일부러 내미는 팔의 각도를 틀어 도끼날이 안쪽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막았던 것이다.

그러니 도끼날에 푸른 입자를 많이 둘렀음에도 이 결과다. 그만큼 박현일이 품고 있는 검은 입자의 양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 주변을 도는 푸른 입자가 뜻대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한몫했고.

아무래도 푸른 입자들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그렇겠지.

"크으으···."

팔이 얼얼하다는 듯 탈탈 털어대는 박현일.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검은 입자가 나와 같이 휘감기고 있었다.

기껏 푸른 조각을 깨고 나서도, 신아현이 하늘을 막아주었어도.

겨우 박현일을 맞상대할 수 있는 것이 전부.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서는 빈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다못해 제대로 된 한방을 먹이거나.

「정화하라.」

'시끄러워.'

「저건 더러운 것.」 「저건 불결한 것.」 「저건 악(惡)한 것.」

'시끄럽다고. 내가 알아서 해.'

「의무를 다하라.」

한시라도 빨리.

내가 정신을 완전히 빼앗기기 전에.

***

L동 창고 안.

종이 박스같은 온갖 잡동사니 더미에 깔린 지수를 깨운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이었다.

쾅! 콰앙-! 화르르륵!

무언가 부서지고, 불타는 소리.

[크아아아아악!]

귀를 강하게 울리는 괴물의 괴성.

그리고 그런 소리들은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한 지수에게 어떠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예린의 부모님들과 같이 다니고 있을 때, 수십 수백의 나무 인간들이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광경을.

'허허···, 큰일이구만. 후우, ······그래. 지수야, 예린이 데리고 빠져나가라. 어서 가. 여긴 우리가 막아볼 테니.'

'아저씨랑 아줌마 겨우 둘이서 어떻게 막는다고 그래요···! 지금이라도-'

'안 돼! 빨리 가라고! 마음 바뀌기 전에! ···예린이 잘 부탁한다.'

'싫어-! 엄마! 아빠! 나랑 같이 가아!'

'지수야! 지금 가야 해! 안 그러면 늦어! 빨리 나가!'

불타는 건물.

몰려드는 나무 인간.

그리고 그곳에 남겨진 두 사람.

지수는 사태 초기에 만나 이제는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푼 예린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아저씨. 아줌마. 나 지금까지 예린이 잘 지켰어.

'수원역! 수원역으로 가!'

'···다음엔. 다음에는 웃으면서 보자.'

불길한 화원.

다가오는 거미 변종.

그리고 그곳에 남겨진 소중한 한 사람.

지수는 자신과 예린을 목숨 바쳐 구해 준,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은혜를 베푼 한 남자를 떠올렸다.

아저씨,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케헥! 콜록! 콜록! 아으으극!"

내가 빨리 일어나서.

일어나서 도와줘야 하는데···.

갈비뼈가 부러진 듯 가슴에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끊이지 않고 느껴지고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숨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수는 문득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자신을 엘트라라고 한 남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푸른빛은 너희를, 우리를 가엾게 여긴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반드시.'

지금 이 순간. 그 말이 기억나는 것은 어째서일까.

······.

······.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해?

왜?

푸른빛.

네가 뭔지는 모르겠어.

나는 네가 예린이처럼 보이지도 않아.

나는 네가 아저씨처럼 느껴지지도 않아.

하지만.

네가 정말로 우리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네가 정말로 우리를 불쌍하게, 가엾게 여기고 있다면.

도와줘.

제발.

살려줘.

우리를.

구해줘.

아저씨를.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단 말이야.

또다시 잃을 수는 없어.

절대로.

내게 힘이 있었더라면 아저씨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저씨를 구하고 말 거야. 이번에도.

아니, 이번만큼은 반드시.

뒤에서 구경만 하는 건 싫어.

뒤에서 지켜지기만 하는 건 싫어.

나도 구하고 싶어. 도와주고 싶어.

그러니까.

일어나.

제발 일어나.

움직여.

제발 움직여.

'제발 도와주세요···.'

지수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누구에게 비는지도 모르는 채,

끊임없이 몸을 일으키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그런 그녀에게 반응을 한 것은 푸른 입자.

그녀가 미약하게 품고 있던 푸른 입자가 빛을 뿜어내며 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의 순수하고, 간절한 소망을 들은 그것이 기도를 들어 주기 위해.

키이잉- 파지직-!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빛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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