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0 - 160. 투쟁 (8)
쐐애애액!
공기층을 가르는 푸른 불티가 휘감긴 도끼.
후우웅!
불길을 몰아내며 휘둘러지는 거대한 나무 팔.
···따앙-!
푸화악!
모루 위의 강철이 제련되듯 사방으로 튀는 불똥.
콰앙! 후두둑- 쩌적!
애꿎은 차량이 부서지고, 유리 조각이 튀고, 도로가 갈라지는, 나와 박현일이 수차례 맞부딪치며 내는 파괴음들.
까가각! 끼기긱-!
박현일이 도로를 굴러다니는 쇠 파이프들을 집어 들었다. 강한 괴력에 형편없이 구겨지는 쇠 파이프 다발. 일자가 아닌 구부러진 채 휘어진 쇠 파이프는 마치 갈퀴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카가가가강!
바닥을 쓸듯이 긁으면서 내 하단부를 노려왔다. 푸른 불티가 아닌 주황 불티가 튈 때마다 하얀 소화제가 모습을 드러내려고 했지만,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푸른 입자와 검은 입자의 기세에 밀려 덧없이 사라진다.
"헉!"
내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다리를 노리는 쇠 파이프를 피하는 순간, 박현일은 내가 그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나무 팔을 위에서 아래로 곧장 내려찍었다.
터어엉-!
쩍-
나는 숨도 고르지 못하고 도끼를 들어 올려 나를 압사 시키려고 하는 나무 팔을 막았다. 그러나 겨우 그것뿐. 공중에 뜬 상태와 기본적으로 가진 힘 차이에 의해 균형을 잃고, 뒤로 확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당탕! 촤지직!
촤르륵!
바닥을 구르지 않기 위해 두 다리가 도로에 어지럽게 깔린 차량 파편과 유리 조각들을 헤친다.
뚝- 뚝-
사방으로 비산하는 유리 조각에 온몸이 긁혔는지 얇은 실선이 생긴 곳에서 피가 송골송골 맺혀 떨어진다.
쿵! 쿵! 쿵!
비명을 지르는 육체를 위해 심장과 폐가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한다.
하지만.
"허억! 허억-!"
모자랐다.
숨, 체력, 입자. 모든 것들이.
「정화하라.」 「하나가 되자.」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속삭임들도 회복을 방해하고 있었다.
"키킥. 네 머릿속에도 들리나 보지? 속삭임 말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내게, 박현일이 비웃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뭐라고 하대? 응? 죽이라고 하지? 킥, 나는 그렇게 들리는데. 너를 죽이래. 엄마가. 그러니까 죽어 주라. 나를 위해서. 어차피 약한 새끼는 뒤지는 게 당연한 거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나는 말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아니, 내가 휘두르는 것보다 박현일의 발길질이 내 복부를 강타하는 것이 먼저였다.
퍼억!
촤르르륵!
"끄흑!"
기껏 일어난 것이 무색하게 나는 박현일의 발차기 한 번에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조각조각 나뉜 아스팔트 도로가 나를 긁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인정해야 했다.
나는 약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푸른 입자가 줄어들수록 더 약해질 것이다.
실제로 내가 도끼를 있는 힘껏 휘둘러도, 처음 보다 놈의 나무를 파고들기가 힘들어졌다. 중간까지 베는 수준에서 이제는 겨우 껍질만을 찍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이유로는 내가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더욱, 더욱 더 몸부림을 쳐야 하지.
시간이 끌릴수록 내가 불리해지는 것은 사실.
이렇게 대치만 하다가는 내게 패색이 짙어지는 것도 사실.
그러나 그것은 박현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현일이 뿜어내는 검은 입자 또한 내가 휘감고 있는 푸른 입자에 의해 끊임없이 정화되고 있었으니까.
그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탁한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깃든 상태였다. 박현일도 아는 것이다. 자신이 마냥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서로에게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승부가 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니, 당장은 승패를 확정 지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접근해서 푸른 불꽃을 꽂아 넣어야 하는데···.'
박현일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좁혀 도끼를 휘두를 수는 있었으나, 그는 그 이상으로 거리를 좁히는 걸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체구 차이와 괴력으로만 밀어붙이는 누더기 변종과 달리, 인간에 더 가까운 박현일은 주변의 물건을 활용할 줄 알았기에 거리를 좁히는 데 까다로웠다.
하물며 체구는 더 작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괴력이 누더기 변종과 차이가 없어지고 있었으니 오죽할까.
끄그극- 끄그극-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놀아주는 것도 질렸어. 이제 그만 끝내자."
박현일은 비대해진 나무 팔을 질질 이끌며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그와 거리가 최대한 좁혀졌을 때, 기회를 노리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바로 그때.
파아아앗!
L동 창고에서 한순간 시선을 뺏길 정도로 눈부신 푸른빛이 폭사되더니.
쐐애애애액!
푸욱-!
검은 형체가 날아와 박현일의 몸체에 기다란 무언가를 순식간에 박아 넣었다.
"······커헉!? 우웨엑!"
박현일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몸을 관통한 것에 의해 검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묽은 체액이 떨어지며 도로를 더럽힌다.
"아저씨, 지금!"
나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믿기 힘든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갑작스레 생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노릇이니까.
타탓! 타타탓!
쐐애액!
나는 발을 크게 내디뎌 앞으로 내달리는 것과 동시에 도끼를 휘둘렀다. 이 한 방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내가 노리는 것은 주저앉아 피를 토하는 박현일의 머리.
하지만.
휙!
서걱-!
박현일도 필사적인 것은 동일하기에 그는 최대한 머리를 틀었고, 대신 팔을 내주었다. 아직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팔을 말이다.
툭-
"끄아아아악!"
연결고리를 잃고 떨어진 팔과 함께 박현일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아저씨! 뒤로 물러나!"
나는 재차 도끼를 휘두르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곧장 뒤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행동은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
콰아아앙-!
위기감이 극도로 오른 박현일이 나무 팔을 내려찍어 전방의 모든 걸 박살 냈으니까.
쩌저저적!
파바박! 후두둑- 후두둑-
부서진 나무 껍질, 조각난 아스팔트 따위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지수야!"
나는 위에서 떨어지는 파편들을 막아주기 위해 급하게 지수를 품에 넣고 몸을 돌렸다.
뿌려지는 파편은 많았지만, 천장 역할을 해주고 있는 넝쿨망 덕분에 대부분은 속도를 잃은 상태였다. 다행히 약하게 툭툭 두드리기만 하는 파편들.
"어떻게···! 지수야, 몸은 괜찮아? 응? ······어?"
박현일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지수가 살아 있다는 생각에 크나큰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뭐야! 너 눈이···!"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지수의 호박색 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도 금색으로.
파직- 파지직-
그것뿐만이 아니라 전신에 미약한 푸른 스파크가 튀기까지 했다. 서로 착 달라붙은 상태인데도 따끔거리지 않는 걸 보면 단순한 정전기는 아닌 듯했다.
'그러고 보니···.'
지수가 창고에서 유해를 들고 뛰쳐나왔을 때, 나와 박현일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매우 빨랐다는 것이 기억났다.
"···아저씨야말로 괜찮아? ······많이 다쳤잖아."
지수가 걱정스러운 눈망울을 하며 물었다. 그녀도 심하게 다친 상태인 건 마찬가지이건만, 지수는 오직 내 상태만을 물어왔다.
"나, 나는 괜찮아."
나는 환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홀린 듯이 바라보며 떠듬떠듬 답했다. 원래도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호박색 눈이었지만, 지금은 예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지수도 무슨 능력을 각성한 것인가?
그러한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크흐으으···. 이 개년이···."
외팔이가 된 박현일이 나무 팔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난 까닭이다.
뚝- 뚝-
유해가 나무 껍질을 강제로 비집고 들어간 곳에서 검은 피와 함께 검은 입자가 줄줄 새어 나와 떨어진다.
"···포기해, 박현일. 이제 너에게 승산은 없어."
여기서 포기하라는 건 결국 죽으라는 이야기다.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그가 정신적으로 몰리기를 바랐으니까.
정신적으로 몰린 그의 시야가 짧아지기를 원했으니까.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놈이고, 저년이고···. 쫑알쫑알 시끄럽게···. 고작 한 명 늘어났다고- 케흑! 개소리를 당당하게도 지껄이는구나."
박현일은 몸 한가운데를 관통한 유해에서 피가 뿜어지면서도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숨이 경각에 달할수록 눈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흐흐···, 포기 하라고? 병신아, 포기하면 뒤지는데. 넌 포기할 수 있냐?"
당연한 현상이다. 누가 사는 걸 쉽게 포기하겠는가.
세상이 변했을까.
세상이 변하지 않았을까.
약육강식은 여전했다.
삶을 강하게 갈망하는 박현일은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끄윽···."
박현일은 몸에 박힌 유해를 뽑기 위해 남은 손으로 그것을 잡았지만. 가슴팍을 뚫고 등 뒤로 튀어나온 유해는 중간에 뿌리라도 내린 것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순간에 역전된 상황 속에서.
"나는···. 살 거야···. 안 죽어···."
무어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박현일. 그의 동공은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누구에게 말하는 것일까.
"나는···! 커흑! 살아, 남을, 거야.]
나? 지수? 곳곳에 숨어 있는 생존자들? 아니면.
···본인?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제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리 생각한 나와 지수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박현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헉! 아, 안돼! 아저씨, 뒤로! 위험해!"
갑작스레 꼬리털을 곤두세운 지수가 급하게 나를 뒤로 잡아 끌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말 거라고!]
까드드드드득!
들끓는 목소리로 말하는 박현일의 몸에는 어느새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몸의 절반을 뒤덮은 나무 껍질.
그것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마치 갑주처럼, 길거리의 나무 인간들처럼 몸을 둘러싸고 있는 중이었다.
"······!"
나와 지수는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휘이이이이이!
내가 가진 푸른 입자가, 지수가 발하는 금안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검은 입자의 거센 회오리가 주변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화르륵···
검은 입자에게 침식당하지 않기 위해 푸른 입자를 최대한 둘러보았지만, 종이보다 얇은 푸른 빛무리는 금방이라도 갈기갈기 찢어질 듯 흔들렸다.
거친 풍랑 앞의 성냥 불이 이러할까.
휘오오오-!
나와 지수는 숨을 참은 채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자연적인 바람이 아닌 인위적인 바람에 의해 머리칼이 휘날린다.
휘몰아치는 검은 입자의 소용돌이 속에서 들리는 처절한 박현일의 외침.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게!! 내 소원이니까!]
까드드드득!
[근데 네가 뭐라고! 대체 뭐라고! 너희는 얼마나 대단하길래 나를 막아!]
까드득! 끼기기긱!
[왜 나를 방해해! 왜 어머니의 소원을 망치려고 해!! 왜! 왜!!]
그래, 살아남는다는 것은 모든 숨탄것들의 숙명이다.
그리고 저 남자의 말대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것도 보잘것 없는.
나도 박현일처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중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저 남자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아남기 위해서.
이미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시기는 지났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누가 더 강하게 치느냐의 문제였으니까.
[죽였으면! 망쳤으면! 약하면-!! 전부 죽는 거야!!]
내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 남자를 이겨야만 했다.
[···그러니까 너도 죽여주마. 어머니의 복수다.]
아니, 죽여야만 했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