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0 - 170. 정리 (1)
달그락- 달그락-
"······."
"······."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나란히 붙어 앉아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방이 좁은 것도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앉게 되었을까.
시작은 지수였다.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코를 킁킁 거리더니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누워서 꼼짝도 못하던 신세에서 스스로 앉을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된 지수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며 중얼거렸고.
'···왜 이렇게 냄새가 진하지? 같은 방에서 자서 그런가.'
묘하게 심기가 불편해진 지수는 혼자 끙끙 앓다가 나와 한세아가 있던 자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국 그것뿐. 그녀는 무언가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다만.
스륵-
지수는 살랑거리는 꼬리를 내 팔에 휘감아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소리를 내면서.
그리고 그것은.
한세아가 아침 식사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도, 한세아가 비몽사몽 한 예린을 깨워 수저를 손에 쥐여줬을 때도, 지금 이렇게 다 같이 나란히 앉아서 아침 식사를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우씨, 이것 좀 더 먹어요. 혼자 앉을 수 있는 걸 보니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니니까요."
무의식적으로 스카프를 고쳐 맨 한세아가 자기 캔에 담겨 있던 닭가슴살 한 덩이를 집어 반 정도 비워져 있던 내 캔에 얹어 주었다. 다시 새것처럼 변한 닭가슴살 캔.
"나, 나도! 내 것도 먹어, 아저씨!"
어째서인지 나와 한세아를 계속해서 번갈아 보고 있었던 지수도 한세아와 똑같이 행동하려고 했으나.
"아뇨. 지수씨는 그러면 안되죠. 지수씨도 많이 먹어야 하는데 거기서 덜어 준다니요? 아침이라 입맛 없어도 참고 먹어둬요.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먼저 먹었거든요. 그래서 덜어 준 거예요. 남기면 아까우니까."
"······그으, ···알았어요."
손을 들어 막는 한세아에 의해 몸을 움찔 떨며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한 말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닌지라, 지수는 얌전히 고개를 수그리고 수저를 입에 물었다.
"······."
나는 멍하니 부드럽게 움직이는 한세아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기억. 하지만 아직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기억. 그것이 자꾸 떠오른다.
어제 입술을 맞대어 왔던 한세아.
'하움···. 츕-. 움···.'
처음에 긴장에 휩싸여 내 머리를 두르던 그녀의 팔은 맞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드럽게 힘이 풀렸고, 자연스럽게 끌어안은 채 키스를 이어 나갔다.
어색하게 톡톡 건드리는 혀,
서투름에 톡톡 부딪치는 이,
한 번씩 주고받는 뜨거운 숨.
그렇게 서로의 입술을, 혀를, 숨결을 탐했다. 여정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참자고 각자 다짐한 것이 무색하게.
그러다가 한세아가 나를 더 지그시 누르고, 그녀의 가슴의 첨단이 빳빳하게 굳은 것이 느껴졌을 때.
이쯤 해서 멈춰야 한다는 것 정도는 둘 다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나아가면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둘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한세아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가 옳은 표현이었다. 오히려 서로가 도망칠까 두려워 더욱 열성적으로 서로를 쫓았다.
한번 고삐가 풀린 이상 억눌러왔던 본능을 통제할 힘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불행이라고 할지 나 스스로조차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선을 조금씩 넘고, 또 넘다가 아예 끊기 직전까지 갔을 때, 마침 예린이 뒤척거리지만 않았다면 사달이 나도 단단하게 났겠지.
'안대······.'
예린이 잠꼬대를 한 그 순간, 둘만 있다고 느껴지고 있었던 공간은 깨어지고 우리는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이제 자죠···?'
'네, 네···.'
여전히 확 달아오른 얼굴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한세아는 내 위에서 내려와 옆에 누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잔향처럼 남은 그녀의 체온과 입술의 촉감이━
"···씨! 현우씨!"
"헉! 네? 왜, 왜요?"
멍한 정신을 뚫고 들어오는 부름에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나를 부른 것은 한세아였다.
"많이 피곤해요? 좀 더 주무실래요?"
한세아는 걱정스레 날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제 일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물거리는 입술을 보니 또 무심코 그 감촉을 떠올린 사이에 한세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어떻게 할 거냐고 신아현씨가 물어봐 달랬어요. 사람들이랑 작업하고 있을 테니 한동안 푹 쉬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요. 아, 그 사체 처리 방법도 물어보던데요."
"여기 사람들 벌써 일어났습니까?"
나는 창문 너머를 보며 말했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으나,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는 모습은 지금이 이른 아침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요. 다들 바쁘게 움직이던 걸요. 그동안 창고 정리 못한 것도 해야 하고, 물품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지금 창고에 물건은 많은데 그게 다 뭔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아···. 제가 나가서 직접 전하겠습니다."
"현우씨가 직접요? 더 쉬어도 되는데···."
"아뇨, 몸을 완전히 못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좀 힘들더라도 사체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내가 속으로 몸 상태를 가늠하며 내뱉은 말에 한세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온몸을 강타한 고통에 부들부들 떨었건만, 고작 하루 푹···.
'아니, 푹 자지는 못했지.'
아무튼 간만에 마음 놓고 잔 덕분인지 몸은 기이할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장에서도 조금씩 푸른 입자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기도 했고.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는 듯 지수는 여전히 거동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크게 마음 졸일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물류 터미널의 위험은 제거한 상태이니 맘 놓고 쉬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뿐만이 아닌 다른 일행들의 안전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터미널 중앙에 방치되고 있는 누더기 변종과 박현일의 시체를 푸른 불로 태워야만 하니까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정화 작업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기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아저씨, 미안."
지수가 귀를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자신은 여기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풀이 죽은 모양이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고생했으니 쉬어야지. 나도 막 무리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 수도 없고. ···그러니까 꼬리 좀 풀어 줄래? 언제까지 팔을 묶고 있으려고?"
나는 복슬복슬한 느낌이 전해지는 팔을 살살 흔들었다. 집요하게 팔을 감싼 꼬리는 풀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말 잘 들으면서 쉬고 있을 테니까 빨리 와야 해."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마지못해 꼬리를 풀어 주는 지수.
스윽- 스윽-
"알았어. 그건 걱정 하지마."
나는 손으로 지수의 귀를 쓱쓱 문질러 마사지해주었다. 잠깐 이루어진 마사지가 끝나자 지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조심해서 일어나요. 온종일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현기증이 날 수도 있잖아요."
"감사합니다, 세아씨."
그리고 한세아의 부축을 받아 안전하게 일어나며 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갑작스레 예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본 질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근데, 세아 언니. 목에 그건 왜 둘렀어요?"
고양이 세수를 하던 예린이 대수롭지 않게 물어본 것. 실제로도 별로 대단한 물음은 아니었다.
"······!"
하지만 예상외로 그건 나와 한세아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물음이었다. 그도 그럴게, 한세아가 목에 두르고 있는 스카프는 붉은 흔적을 가리기 위한 용도였으니까.
바로 어젯밤에 생긴 키스 마크 말이다.
기껏 내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그러게? 나도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언니, 갑자기 웬 스카프?"
의심스럽다는 듯 가자미 눈을 뜬 지수와 함께 예린이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마냥 넘어가기에는 이미 이목이 집중된 상태.
"비···와서 그런가. 밖이 좀 쌀쌀하더라구요···. 그래서 두른 거예요."
"그럼 나시 말고 긴 팔 티 입으면 되잖아요? 근데 왜 스카프?"
"그러니까 그게···."
"언니 아까 들어올 때 외투도 벗고 있었잖아요. 근데 왜 스카프?"
"······."
"언니. 그거 잠깐 벗어 볼래요? 별 뜻은 없어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정말이에요. 그냥 뭔가 거기에서 아저씨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확인만 하고 돌려줄게요. 진짜로."
태연하게 대처했으나 돌아오는 반응이 영 시원찮은 탓에 나와 한세아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죄지은 기분에 마음이 콕콕 쑤셨다.
"아하핫, 지수씨.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빨고 와야겠네요. 그럼 예린아, 지수씨 잘 돌보고 있어? 언니는 잠깐 밖에 갔다 올게."
천천히 심호흡을 한 한세아가 이내 선택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퇴장하는 것.
자신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어필하며 은근슬쩍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벌컥-
"어어? 언니, 어디 가요? 언니? 언니!"
나는 그녀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문을 열었고.
"언니! 아저씨! 스카프 주고 가!"
뒤따라 나온 한세아가 문을 닫았다.
달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