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73화 (174/497)

Chapter 173 - 173. 정리 (4)

'지금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손에 올려진 투명한 수정은 상황에 맞지 않게 이질적으로 보였다.

반으로 정확히 쪼개진 다각형의 수정을 보고 있자니 내가 망치로 유해를 변종의 몸체에 박아 넣었던 것이 떠오른다.

유해가 뽀각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를 부순 느낌이 들더라니 그때 박살 난 것이 이 조각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변종을 태우기 전에 느꼈던 검은 입자가 들어 있던 결정체일 가능성이 컸다. 중심지에 뭐가 느껴지긴 했으니까.

"음···."

이상하게 기분이 복잡했다.

한세아의 푸른 조각을 대신할 수 있어 보이는 수정이 발견이 되어 좋아해야 할지, 검은 입자가 담겨 있었던 수정 조각을 경계해야 할지 모르겠다.

워낙 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다.

그것도 잠시,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거미 변종을 정화했을 때, 검은 나뭇가지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누더기 변종을 정화하고 얻은 전리품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 아니던가.

어차피 푸른 불에 의해 검은 입자가 완전히 날아간 상태의 수정은 단순히 입자 보관함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기도 했고, 실제로 푸른 불을 살짝 집어넣어 보니 그 안에 푸른 입자가 모이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마침 두 조각으로 나뉜 수정 조각.

하나는 한세아에게, 나머지 하나는 지수에게 주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지수가 지금, 이능을 사용하지 못 하는 이유는 아직 육체가 푸른 입자를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겠지. 임시방편으로 조각을 건네주면 배터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비록 내가 충전을 해 줘야 하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 상관없었다.

'세아씨도 좋아하겠네.'

다만 몇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은.

이러한 조각이 나와 박현일의 몸에도 있는가?

예전에 예린이 내 가슴팍을 가리키면서 푸른 입자가 한곳으로 모이고 있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예린이가 본 것이 조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박현일의 조각에 대한 궁금증은 이따가 확인해 보면 될 일이고.

이어지는 두 번째 의문.

그동안 속삭임이 들려왔던 것은 이러한 조각을 품고 있기 때문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어머니의 조각을 자네가 가지고 있었군!'

푸른 입자로 화해 사라진 남자는 내가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겉에 두르고 있는 한세아의 푸른 조각이 아닌 명백하게 내 심장을 가리키면서.

과거의 기억이 일부 사라진 것과 내 심장에 알 수 없는 조각이 들어 있는 이유는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가 주었던 알약밖에 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롯이 내 의지로 남산으로 향하는가?

어쩌면 푸른 입자가 강제로 내 몸을 조종하려고 했던 것처럼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그런 느낌이 전해져 온 탓이었다. 나를 자극하는 속삭임은 변종과 박현일이 죽자 사라졌지만 끝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에휴···."

간만에 생각 좀 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실 이렇게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이런 생각들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건 내 몸이 편해졌다는 증거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살아남았으니 잡생각이 드는 거겠지.

주변에 일행없이 혼자 남아서 더욱 그런 듯했다.

그리고 뭐가 어찌 되었든 나는 연구소로 향할 것이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변치 않았다.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고.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다시 일할 때였다.

'수정 조각은···.'

일단 이것들은 한세아와 지수에게 바로 전해주지 않고 내가 좀 더 가지고 있다가 정말로 안전하다 판단되었을 때 선물로 주면 될 것이다.

그리 판단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리에 묻은 재를 툭툭 터는 그 순간.

저벅- 저벅-

"현우 동생! 내가 왔다네!"

힘 있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김태민이 L동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조금 전까지 고된 일하고 온 모양이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나는 급히 손가락만한 크기의 수정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지금 쉬는 시간이거든! 그래서 동생에게 필요한 게 있나 물어볼 겸, 무리하고 있지는 않나 확인도할 겸 와봤지! 이야, 그 무시무시한 괴물 녀석의 사체가 감쪽같이 사라졌구만! 아직 그놈은 처리 안 했지? 사실은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온 거네."

"이제 막 정화 해 보려고 했습니다. 어째 타이밍이 잘 맞으셨네요."

"이거 운이 좋구만! 이제 와서 묻기는 그렇지만 내가 구경 좀 해도 되겠나?"

"상관없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십쇼."

누더기 변종을 처리해 보니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민은 이마의 땀을 슥 훔치고,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태민의 목적이 단순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눈치챘으나,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이윽고, 나와 김태민은 L동 창고에서 나와 박현일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빠각- 빠드득-

충격이 누적되어 있던 차량의 유리 조각들이 밟힐 때마다 힘없이 바스러진다.

찰박- 찰박-

물웅덩이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기가 신발에 달라붙는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창고 앞은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죽처럼 아스팔트가 벗겨진 도로, 원형의 흙구덩이, 찢어진 화물 트럭, 뒤집어진 차량들, 휘어진 가로등, 널브러진 셔터 문, 굴러다니는 콘크리트 조각, 도로에 박힌 쇠 파이프.

그리고 그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크기를 부풀린 소화제의 포자 덩어리들과 모든 것의 중심지에 놓여 있는 시체 한 구.

"···저기 있구만."

김태민은 시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제가 먼저 앞장설 테니 조심해서 따라 오세요."

"혹시 그놈은 마지막에 해 줄 수 있겠나? 힘들면 어쩔 수 없지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정말 고마우이."

김태민의 부탁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화마가 미친 영향의 크기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가장 자리부터 정리해야 했다.

빠각! 빠가각-

나는 가장 앞에 있는 포자 덩어리부터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화륵-

아침과 동일하게 작게 피어오른 푸른 불꽃. 그것은 천천히 포자 덩어리를 없애기 시작했다.

스르르륵-

솜사탕이 물에 녹는 것처럼 공기에 녹기 시작한 소화제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다시 보이지 않는 가루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완전한 소멸. 푸른 불꽃이 포자 덩어리 제거에 효과가 있어 다행이었다.

울퉁불퉁해진 도로에 고인 체액 웅덩이를 증발 시키고, 찌그러진 차량에 달라붙은 포자 덩어리를 없애 버리고, 녹아내려 끈적해진 변종의 내장 조각들을 태워 버렸다.

그렇게 작업을 하나씩 끝마치다 보니, 어느새 남은 것은 박현일의 시체 한 구뿐.

"···끝났습니다."

"대단하구만. 대단해. 불이 뜨겁지 않고 따뜻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김태민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는 불에 손을 가까이 대보았으나 신아현처럼 손을 집어넣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감탄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

김태민은 이내 가라앉은 표정으로 죽어 있는 박현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으니까.

나무 껍질이 완전히 바스러져 인간의 형태만 남아 있는 박현일. 그의 가슴팍에는 유해가 꿰뚫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화륵-

나는 오늘의 마지막 작업을 마치기 위해 푸른 불을 일으켜 박현일의 몸을 향해 날렸다. 비록 인간의 모습만 남았다 하더라도 그 안에 검은 입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았다.

타닥- 타닥-

불길은 확 치솟지도, 크게 타오르지도 않은 채 박현일을 천천히 태워나갔다. 그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들이 회색이 아닌 하얀 재로 변한다.

그때였다.

"······딸이 하나 있었네."

김태민이 바람에 휘날리는 재를 보며 조용히 입을 연 것은.

"늘그막에 얻은 어린 딸이었어. 조잘조잘대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온 가족의 이쁨을 독차지했었지."

그는 재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사이로 스쳐 지나갔을뿐.

"말썽도 부리지 않고.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항상 반겨 주고. 두 팔 벌려 안아주면 각자 오늘 있었던 일 말해주고···."

그가 잡으려고 했던 것은 눈앞의 재가 아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일까.

"······이제는 다 옛말이지만 말일세."

"······."

"한 가족이 캠프에 왔는데, 이제는 나 혼자 남았군."

"······."

"이 빌어먹을 놈이 죽으면. 뭔가 속이라도 풀릴 줄 알았거늘. 그것도 아니구만. 허허···. 정말···, 정말 미친 세상이야. 그렇지 않은가, 동생?"

김태민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이 흘리는 감정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맞아요. 미친 세상이죠."

참으로 야속한 세상이다.

대체 내가, 우리가, 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괜히 머리를 위로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상관도 없는 듯, 짜증 나게도 매우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예승아···. 미안하다, 미안해. 여보,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오···."

이런 모습은 보기 싫다.

그래, 사실 이런 게 보고 싶지 않아서.

이런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해서.

그게 내가 연구소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오롯이 내 의지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