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8 - 178. 정리 (9) - 최예린
오빠가 푸른 조각을 언니들에게 준 이후, 먹는 식단이 달라졌다.
오늘 아침은 내가 그토록 기대하던 계란.
그것도 그냥 삶은 것이 아닌 기름 두른 팬에 구운 후라이인 것이다.
반숙으로 툭 튀어나온 계란 노른자를 보니 눈이 부시다. 특히 노른자 위를 타고 흐르는 참기름의 향기가 너무 자극적이었다.
꼴깍-
나는 자꾸만 차오르는 군침을 삼켰다.
"자, 예린아. 오늘은 특별히 후라이로 해봤어. 이거 혼자 다 먹어도 돼."
"네!"
씩씩하게 대답한 나는 잠시 기다렸다. 어른들이 먼저 한입 먹은 뒤에 밥 먹는 거라고 배웠으니까.
내가 입맛을 다시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아까부터 느껴지고 있는 위화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바라보았다.
현우 오빠랑 세아 언니를 말이다.
요즘 오빠가 이상하다.
세아 언니도 같이 이상하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아침 사이에 둘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것이다. 지수 언니는 여전한데.
언제부터였을까.
'역시 그때야···!'
곰곰이 생각해 본 나는 역시 답은 하나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오빠랑 세아 언니가 새벽에 뽀뽀했던 그날이다, 라고.
자꾸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실눈을 떠봤더니 시야에 똑똑히 들어온 그 광경.
'···그런 건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랬는데.'
나도 모르게 안된다고 중얼거렸을 때, 둘은 화들짝 놀라면서 급하게 몸을 떨어트렸고 아무 일도 없는 척 누워서 잠을 잤다.
그 뒤로, 숨소리만 들렸으니 잠에 든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졸음을 꾹 참으며, 한동안 귀를 쫑긋 세우고 나서 얻은 확신이었다.
"얼른 먹어, 예린아. 식겠다."
"네에."
우물우물-
나는 계란 노른자만 수저로 푹푹 떠서 꼭꼭 씹었다. 그러면서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눈에 담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이어 나가고 있는 오빠, 지수 언니, 세아 언니.
"현우씨, 오늘은 뭘 할 거예요?"
오빠 옆에 착 달라붙은 세아 언니가 묻는 말. 역시 평소보다 거리가 더 가까웠다.
"오늘은 여기 사람들 좀 도와줄 것 같습니다. 몸도 다 나은 데다가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요."
"그럼 지수씨는요?"
"저는 저번에 썼던 이능 어떻게 사용하는지 좀 알아보려고요. 아저씨가 준 푸른 조각도 있으니까 이걸 써서 연습해 보면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새벽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은 잡았으니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오빠 팔에 꼬리를 휘감고 있는 지수 언니가 하는 답.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조각 보기에 바빴다.
"세아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여기서 챙겨 갈 물자 좀 정리해야죠. 떠날 준비하긴 해야 하니까요."
"부탁합니다."
"저만 믿어요."
어느 때와 똑같은 아침인데, 역시 다르다.
아니, 다르게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세아 언니랑 지수 언니 목에 푸른 조각이 걸린 목걸이가 매여 있었으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푸른 입자가 들어 있는 조각 말이다.
덕분에 내가 아침으로 계란 후라이를 먹을 수 있었지.
우물우물-
나는 노른자에 이어 살짝 바삭한 느낌이 드는 흰자 부분을 천천히 씹었다.
'이게 행복이지.'
짭조름함과 고소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은 내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바로 그때.
"끝! 전 다 먹었으니 이만 나가 볼게요!"
지수 언니가 벌떡 일어나면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오빠 팔에 휘감았던 꼬리를 순식간에 풀면서 붕붕 휘두르는 모습은 언니가 얼마나 신이 났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푸른 조각으로 이것저것 해볼 생각에 마음이 급했나 보다.
"지수야! 잠깐만! ······갔네. 빠르기도 해라."
오빠가 언니를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나간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현우 오빠는 주머니에 넣어 둔 뭔가를 만지작거리면서 낭패 어린 표정을 지었다.
'바보 언니.'
평소에는 오빠한테 그렇게 달라붙어서 뭐 좀 하나 싶었는데. 언니는 그냥 오빠만 옆에 있으면 만족하는 모양이다.
"현우씨도 이제 나갈 거죠? 가기 전에 저 한번 봐 봐요. ···응, 됐다."
"감사합니다."
"매번 말하는 거지만 무리는 절대 금지! 이제 곧 여기를 떠나야 하잖아요. 계속 여기서 지낼 수는 없으니까, 다치면 안 돼요. 알았죠?"
"네, 알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세아씨."
이것 보라.
지금 세아 언니는 오빠를 계속 만지고 하는데 지수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이러다가 지수 언니는 닭··· 닭··· 뭐였더라?
아!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말 거야.
'균형은 유지되어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빠 주머니에 있는 게 뭔지는 몰라도 그건 지수 언니를 위한 물건일 것이다.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게다가 곧 지수 언니 생일이니까 몰래 준비한 거겠지.
그러니까.
자꾸 망설이는 오빠에게 말해서 오늘 언니에게 주게 만들어야겠다. 나머지는 언니 몫이다.
"···어? 세아 언니, 오빠 어디 갔어요?"
하지만 큰 마음먹고 고개를 들고 보니 오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현우씨? 진작 나갔지. 나간 지 이제 5분쯤 되었을려나?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으잉."
나는 철렁하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곧장 뒤로 돌아 문밖으로 나섰다.
"어어?! 예린아! 어디 가! 아니, 나가더라도 양치하고 가야지!"
"이따가 할게요!"
"······아휴, 너무 늦게 들어오면 안 된다? 우리 하기로 한 거 까먹으면 안 돼!"
뒤에서 세아 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죄송해요, 언니.
지금은 양치보다 더 중요하게 할 일이 있단 말이에요.
무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에요.
그리고 지수 언니도 양치 안하고 나갔잖아요.
나 최예린.
최강의 14살.
처음으로 언니 말 안 듣고 일탈을 꾀하다!
어차피 혼나는 건 지금의 내가 아니다.
잔소리 듣는 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 줄 것이다.
***
호기롭게 바깥으로 나온 것도 잠시.
"······이잉."
나는 금방 되돌아가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따사로운 햇볕, 선선한 공기, 와글와글 북적북적거리는 사람들, 넓게 탁 트인 공간.
산책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으나, 몸에 고양이 귀와 꼬리가 생긴 이후부터는 가만히 앉아서 햇볕을 쬐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바깥의 날씨가 좋으면 나도 좋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물류 단지가 넓어도 너무 넓다 보니 언니랑 오빠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상황.
이렇게 큰 공간은 왠지 모르게 몸이 불안함을 느낀다.
그 탓에 자꾸만 몸이 옆에 있는 종이 박스에 들어가서 숨자고 재촉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그때.
"응? 여기서 뭐 하니?"
배불뚝이 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태민 아저씨였다.
"휴우···, 누구 찾고 있니? 어디 보자, 꼬마 아가씨 이름이··· 아! 최예린! 맞지? 허허."
등에 여러 짐들을 올려놓고 있던 아저씨는 이마의 땀을 슥 훔쳤다.
"아저씨! 우리 오빠 어디 갔는지 알아요?"
"현우 동생? 어···, 미안하구나. 조금 전까지 일하다 온 거라서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 아마 저쪽에 있지 않을까?"
배불뚝이 아저씨는 애매한 얼굴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잉."
결국은 확실하게 모른다는 말에 입이 절로 삐죽 나왔다. 이러면 아저씨랑 대화할 필요가 없어졌다.
"참, 여기 우리 애들이랑은 이야기해봤니? 마침 또래 아이들이라 같이 놀면 좋을 것 같은데."
도리도리-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앗!"
그러다가 순간 눈에 포착된 푸른빛에 탄성을 내뱉었다. 천천히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는 푸른빛.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면 떠나기 전에 서로 인사라도━ 어어? 예린양! 천천히! 도로에 미처 치우지 못한 유리 조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뛰거라! 다치면 큰일 나요!"
탓- 타타탓-
배불뚝이 아저씨의 외침을 뒤로 하고, 나는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푸른빛을 향해 냅다 달렸다.
푸른빛과 검은빛이 있는 장소 불문하고,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는 친구들.
처음에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고, 나한테만 보이는걸 알고 나서 무서운 이야기에 나오는 귀신인 줄 알았다.
이내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는 빛무리가 나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경계를 풀 수 있었지만.
내가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말없이 달라붙어 위로해준 순간부터 나랑 이 빛무리들은 서로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들은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
수줍음이 많은 친구들이니까.
'변덕도 -아니, 친구 뒷담은 나쁜 일이야···!'
그러니 서둘러 붙잡아서 오빠의 행방을 물어야만 했다.
이윽고, 점점 거리가 좁혀지면서 내 접근을 눈치챈 친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느릿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도마뱀 형상을 한 푸른 빛무리는.
[앨랠레-]
나를 보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예전에는 놀리는 건가 싶어서 화가 났지만, 이제는 저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안녕!"
[앨랠레···]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
"아, 잠깐만!"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 쌍의 반지.
소중한 유품을 잃어 버리지 않게 그동안 꽁꽁 숨기고 있었던 것들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꺼낼 때마다 기분이 울적해지지만,
푸르르-!
곧장 고개를 휘휘 저어 털어냈다. 얼굴이 안 좋아지면 오빠랑 언니들이 걱정하니 말이다.
짤랑-
나는 목걸이에 걸린 반지를 조심조심 꺼내어 손가락에 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지에 푸른 입자가 점점 달라붙었고, 말이 통하지 않던 친구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으니까.
"됐다! 안녕!"
[안···녕···]
이번에는 느릿하지만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우리 오빠 어디 있는지 아니? 푸른빛이 가득한 사람이야!"
나는 허리를 숙여 친구를 들어 올렸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친구는 가벼운 정도가 아니라 아무런 무게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마 친구가 수백이 있어도 손쉽게 들 수 있을 것이다.
예고 없이 들어 올린 것에 화가 났는지 뚱한 얼굴로 변한 도마뱀.
내가 아차 싶은 마음에 급히 사과를 전하자,
[저기······]
친구는 이내 표정을 풀며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친구를 다시 도로에 내려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윽고.
[앨랠레-]
친구는 다시 느릿한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산? 산으로 가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목적지였지만 그것도 잠시,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번에는 마음이 넓은 친구라서 내 사과를 받아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삐져서 도망갔을 거야.
그리고.
"이잉! 아저씨 바보!"
나는 도마뱀 친구가 가리킨 방향을 보며 아저씨 말을 듣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배불뚝이 아저씨가 가리켰던 방향과 친구가 알려준 방향이 정반대인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