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9 - 179. 정리 (10)
사람들이 없는 N동 창고 앞.
"하아···."
나는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본래라면 바삐 움직이는 캠프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어야 하지만 지금 내가 이곳에 멍하니 앉아 있는 까닭은 사람들이 도움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거부가 아닌, 사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았다.
곧 떠나야 하는데 벌써 체력을 빼려고 하느냐고 오히려 남들이 더 성화를 부렸던 것이다.
정작 나는 일단 몸 좀 움직이면서 이것을 지수에게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 좀 하려고 했건만.
나는 신아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내게 내밀었던 상자를 보며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
"···뭐예요, 이게?"
"뭐긴 뭐예요. 현우씨가 말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선물이죠."
조심스럽게 포장을 푼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버클 형식의 가죽끈이었다.
"···개 목걸이 아니에요?"
나는 황당한 눈으로 신아현을 바라보았다. 뭔가 내 예상을 훌쩍 넘어가는 내용물에 말문이 턱 막혔다.
지금 이걸 사람에게 주라고 가져온 것인가?
힘들게 지수의 선물을 찾아준 것은 고맙지만 이건, 이건 뭔가 아니었다.
"현우씨! 그 말은 좀 실례네요! 현우씨가 패션을 알아요? 이건 개 목걸이가 아니라 초커라고 하는 거거든요?"
내 말을 들은 신아현은 되려 기세를 높였다.
"초커요?"
"그래요! 초커! 어휴, 현우씨. 패션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이런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처음 보는데요. 애초에 전 단벌 신사였어서···."
"현우씨! 그건 신사가 아니라 패션 고자라고 하는 거라고요!"
신아현의 일갈에 마음이 아프다. 내가 기죽은 사이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자, 봐요. 목에 딱 달라붙어서 움직임에 방해가 안 되죠? 신체 일부를 뚫는 것도 아니죠? 막 달랑거리는 장식품도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이 홈!"
신아현은 목걸이를 들어 이리저리 돌리며 내게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목걸이 중앙에 살짝 움푹 파여 있는 부분이었다.
"여기에 푸른 조각 넣으면 딱 맞을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완전 대박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아현의 말이 일견 맞기는 하나, 그 홈은 초커를 개 목걸이로 보이게 하는 것에 일조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름표 칸이 없다는 것이 다행일까.
"···딱 맞을 것 같기는 하네요. 근데 이 개 목걸━"
"초커!!"
"하아······. 그래요, 초커.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적어도 제가 현우씨보다 패션에 더 잘 아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저만 믿어요! 한번 믿어보세요. 누가 알아요?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할지?"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는 기억에 입을 열었다.
"그럼 신아진씨가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초커의 일종이었던 건가요?"
짧은 사슬이 철그럭 거리는 목걸이를 신아현의 언니도 하고 있었으니, 아마 그것도 초커인가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서로 디자인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아뇨? 그건 개 목걸이 맞는데요. 언니는 제 멍멍이니까 개 목걸이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언니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으니까 괜찮아요 그건."
"······."
***
그 뒤로, 신아현은 내 손에 냅다 목걸이를 쥐여주고 도망갔다.
할 일이 산더미라는 말로 자리를 자연스럽게 피한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역시 그것은 도망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꾸 뒤돌아서 내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아···."
나는 한숨을 참지 못하고 또 내쉬었다.
바로 그때.
도도도도-
"오빠!"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예린이 다다다 뛰어와 내게 안겼다.
"예린아,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받으며 다리 위로 올렸다.
"친구가 알려 줬어요!"
히히 웃으며 외치는 예린.
혼자 생각 좀 하고 싶어서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 있었건만, 캠프 아이들 중 한 명이 내가 있는 위치를 말해 준 모양이다.
"너 양치 안 하고 왔구나?"
"······핫!"
내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예린은 다리를 앞뒤로 살살 흔들다가 내 말에 몸을 딱 굳혔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아이의 입가 묻은 기름기를 쓱 닦아주었다.
"이러다가 충치 생기면 큰일 난다? 치과도 못 가서 치료도 못하잖아."
"···이따가 할게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것보다 저 오빠한테 할 말 있어요! 그래서 여기 온 거라구요!"
평소에는 방에 몇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예린.
처음에는 가만히 있는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으나,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서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
가끔 혼자 잔뜩 신나서 우다다도 하고 그랬으니 말이다. 꼭 무언가를 쫓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뭐가 궁금해서 내게 왔을까.
"······? 뭔데?"
나는 에린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이거!"
예린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목을 착 붙잡았다. 미처 숨기지 못한 작은 상자를 쥐고 있던 손이었다.
"이거 왜 지수 언니한테 안 줘요? 어제 오후부터 갖고만 있고!"
회색의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묻는 예린에게 나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제부터 알았다는 것은 거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과 동일했다.
"이게 지수 선물인 걸 어떻게 알았어?"
"제 눈은 못 속이거든요? 오빠가 자꾸 지수 언니 한번 보고 한숨 쉬고, 주머니 바라보고 한숨 쉬고 그래서 알았죠. 지수 언니는 조각에 정신 팔려서 모르는 것 같지만요."
"음···."
역시 나는 뭔가를 숨기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이에게도 들킬 정도만 말 다 했지.
어쩐지 예린이가 나랑 지수를 주시하고 있더라니, 이러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이거 그거죠? 생일 선물?"
"······지수 생일이었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소리에 나는 멍하니 되물었다.
"그래서 선물 준비한 거 아니었어요? 모르고 있었어요, 오빠? 나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몰랐다. 내가 지수에게 그런 걸 물어본 적도 없었고, 지수도 별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생일이 언젠데? 이미 지난 건 아니지?"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급하게 물었다.
"아직 안 지났을걸요? 생일이 9월 3일이거든요. 지금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9월은 아직인 것 같아서요."
"와, 알려 줘서 고맙다. 하마터면 그냥 넘어갈 뻔했네. 세아씨도 알고 있니?"
"네! 제가 말해줬어요! 오늘 지수 언니 몰래 생일상 준비해 보겠다고 했어요. 깜짝 파티! 언니도 좋아하겠죠?"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이제라도 안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예린의 귀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이건 왜 준비한 거예요?"
마사지를 받으면서 갸르릉 소리를 내던 예린이 눈을 살짝 뜨며 물었다. 당장 죄를 실토하라는 눈초리에 나는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내가 지수한테 좀 잘못한 게 있거든. 그래서 준비 아니, 아현씨에게 부탁해서 받은 건데···."
"그럼 빨리 줘야죠! 뭐가 되었든 지금 아니면 줄 기회가 없잖아요. 우리 내일 아니면 내일모레 떠나기로 했으면서."
그래, 예린이 말이 맞다.
내가 이렇게 고민할 시간도 충분치 않았다. 당장 내일 이 캠프를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언제까지고 여기에 눌러살 수는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남산으로 향한다는 목표가 있지 않던가.
이제 나와 지수의 몸도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었으니 여기에 더 머무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지수와 둘이서 대화하는 일도 오늘 아니, 지금 끝내야만 했다. 목걸이를 주든 주지 않든 결국, 그녀를 만나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목걸이를 받은 지수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라 망설여지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오빠. 안에 들어 있는 것 뭔지 봐도 돼요? 눈으로만 볼게요, 네?"
꼬리를 흔들면서 눈을 빛내는 예린.
혹시 예린이라면 다른 반응을 보여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고민하다가 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정말 별것 아닌 일이건만, 옆에서 확신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굳을 것 같았다. 강한 확신도 필요 없었다. 아주 약간의 긍정이라도 보여 준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을 듯했다.
"감사합니다!"
예린은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상자를 받았다.
이윽고.
"······오빠."
기대감을 가지고 상자를 연 예린이 대번에 떨떠름해진 얼굴로 나를 불렀다.
"···응."
나는 아이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도 있었다는 것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린의 말에.
"······다른 선물은 없어요?"
마음이 꺾였다.
***
"오빠, 괜찮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잠시 서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와중에 예린이 꺼낸 첫말이었다. 아이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연이어 입을 열었다.
"진짜예요! 예전에 엄마랑 아빠가 밤에 하는 거 본 적 있어서 이게 막 이상하게 보이진 않거든요. 이 개 목걸━"
"초커."
"네?"
말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예린.
"개 목걸이가 아니라 초커라고 하는 거래."
나는 아이에게 부연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실제로 변명이 아니라 초커라는 이름이었으니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초커···, 초커. 그럼 더 상관없는 거 아니에요, 오빠? 아진 언니가 차고 있는 거랑 다른 거잖아요?"
예린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자신이 본 것이 개 목걸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모양이다.
"이거 줘도 괜찮겠지? 영 마땅한 선물이 없네. 이게 그나마 움직이는데 방해도 안 되고 해서 딱 이긴 한데."
"네! 그리고 언니는 오빠가 뭘 줘도 좋아할걸요? 특히 오빠가 하루 종일 가지고 있었으니까 더 좋아할 것 같아요!"
"···그래?"
어찌 되었든 괜찮다는 예린의 말에 살짝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 초커는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다. 신아현도 그렇게 말했고.
"그래도 오빠. 미리 말하는 거지만 나중에 제 생일 선물은 목걸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순식간에 침몰한 자신감. 허리도 피지 못하고 죽었다.
"아무튼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서 언니한테 가요! 빨리이-!"
"어어? 알았어, 알았다니까."
핫, 하고 정신을 차린 예린은 벌떡 일어나더니 내 등을 낑낑거리며 밀었다. 아이의 힘은 미약했으나 나는 못 이기는 척 예린이 미는 대로 밀렸다.
"언니는 그쪽으로 쭉 가면 나올 거예요!"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예린에게 답하는 것과 동시에 지수가 이능을 연습하고 있는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