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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188화 (189/497)

Chapter 188 - 188. 군포역 (4)

뚝- 뚝-

식은땀이 폭포처럼 흘러 열차 바닥에 둥근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은.

"으아···."

"후우···."

나뿐만이 아닌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지수, 예린, 한세아는 평판차 사이에 있는 연결 고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정확히는 거기에 단단한 매듭이 져 있는 군용 로프였다.

휘이이이이···

사방에서 우리 몸을 흔드는 바람이 겨우 품고 있었던 열기마저 앗아간다. 순간적으로 내려간 체온 탓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세아씨, 이제 군용 로프에 줄 연결해서 묶읍시다."

"네, 네."

한세아는 허리춤에 묶인 밧줄로 고리를 만들어 두 번째 생명줄인 군용 로프에 감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그녀의 손은 불안 해 보였지만, 무사히 작업을 끝마쳤다.

원형의 고리는 우리가 앞뒤로 이동하면서 저절로 따라오겠지. 설사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중심을 잡고 올라오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아, 하아."

바람이 멎은 지금은 우리 숨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똑똑히 들어올 정도로 적막했다.

나는 땀이 가득 배인 손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은 뒤, 앞을 바라보았다.

'···미치겠네.'

정말 많이 걸었다고 생각했건만, 실상은 이제 20m 정도 걸은 것이 현실. 아래로 길게 늘어진 화물 열차들은 여전히 내 감각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절반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다들 줄 확인해요."

우리는 각자 로프에 줄이 제대로 묶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살살 당겨보았다.

꽈악-

미동도 하지 않는 두꺼운 군용 로프.

느슨한 듯 살짝 팽팽해진 상태의 로프는 불안한 마음속에 안도감을 더해주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줄 하나가 늘었을 뿐이지만, 이 줄은 압박감이 가득한 주변에 의해 콱 틀어 막힌 숨통을 조금이나마 트이게 하는 숨구멍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군용 로프에 몸을 맡긴 이상 우리에게 돌아갈 길은 없었다. 뒤로 물러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온 것은 아니었으나 물러나기 위해서는 생명줄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이미 로프가 주는 안정감을 맛본 우리로서는 줄을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니 결국 남은 것은 전진뿐.

이윽고,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바람이 또 불수도 있으니까 균형 잡기 쉽게 몸 낮추면서 갑시다. 예린이도."

"네···!"

"흐으···, 알고 있어···."

그녀들이 엎드리다시피 몸을 낮추는 것을 본 나는 한 손은 군용 로프를 잡고, 나머지 한 손에는 열차 바닥을 짚었다. 머리가 아래쪽을 향하게 되니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찌익-

나는 평판차 바닥에 붙어 있는 검은 이끼들을 떼어내 옆으로 던졌다. 바싹 뒤따라 오는지수, 예린, 한세아가 혹여 이끼에 미끄러질까 걱정되어 한 행동이었다.

무엇보다 내 안전을 위해서 한 행동이기도하고.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제일이지 않은가.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건너편 절벽가 도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로프의 고리가 제대로 걸려 있는지 확인하면서.

···툭

바닥에 딱 달라붙는 한걸음.

···후두둑

바닥에 닿지 않는 자갈들.

···지직

마찬가지로 어둠에 먹혀 사라지는 검은 이끼들.

···툭

다시 내딛는 한걸음.

숨소리조차 죽인 채로 일련의 행동들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던 그때.

휘이이잉-!

우리가 그토록 경계했던 바람이 눈 깜빡할 새에 들이닥쳤다.

"으아앗!"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운 예린이 순간적으로 허공에 떴지만,

"예린아!"

다행히도 아이를 묶고 있던 생명줄과 곧바로 예린을 감싸 안은 한세아 덕분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헤엑··· 헤엑···, ···괜찮니?"

······끄덕

예린은 어찌나 놀랐는지 한세아의 물음에 답도 하지 못하고 간신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순식간에 부푼 꼬리의 털은 아이가 많이 긴장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쿵쿵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아이의 무사함을 확인한 우리는 아주 천천히, 전보다 더 신중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어느덧, 남은 거리는 이제 절반 정도. 느리지만 거리는 꾸준히 좁혀지고 있었다.

"···춥다."

멍하니 내뱉어진 지수의 중얼거림에는 미약한 떨림이 담겨 있었다.

휘이이···

두 번째 강풍이 지나간 뒤로, 그것보다 강한 바람은 불지 않고 있었지만 대신 약한 바람이 지속해서 불기 시작한 탓이었다. 땀에 푹 젖은 옷과 계속 부는 바람의 조합은 우리가 자그마한 온기를 유지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조금만 참아. 아니다, 이거라도 입어."

나는 겉에 두르고 있던 옷을 벗어 지수에게 건네주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미리 껴입은 옷이었다. 이렇게 상상 이상으로 추위에 떨게 될 줄 알았다면 옷을 더 입을 걸 그랬다.

하늘에서는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건만, 우리는 그 온기를 간직할 틈도 없었다.

"하, 하지만 아저씨도 춥잖아."

"난 참을만 하니까 괜찮아. 얼른 입어. 세아씨, 가방에서 미리 꺼내둔 옷가지들 있죠? 그거 예린이랑 나눠 입어요. 괜히 버티다가 감기 걸리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지수는 뭐라 말을 더 하려다가 얌전히 내가 건넨 옷을 받았다. 잠깐 사이에 서로 맞닿은 손끝에 전해진 것은 지독한 냉기였다. 긴장감과 떨어지는 체온에 의해 손이 차갑게 변한 것이다.

"하아, 알았어요."

한세아는 손을 비비면서 입김을 불었다. 그녀는 이내 가방 겉에 달려 있는 옷들을 예린에게 입혀주었다.

차라리 수십의 나무 인간들과 싸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우리가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무력하게 당하기만 할 수 있을 뿐.

폭 2.5m, 길이 200m 상당의 출렁 다리.

밑바닥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하물며 충분한 안전 장비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감기까지 얻게 된다면 그것만큼 억울하고 서러운 일도 없겠지. 여기서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푸른 입자로 몸을 강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다.

겉옷을 한 겹 더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다.

만약 아무것도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출발합시다. 이제 반도 안 남았어요."

이윽고, 우리는 중간 지점에 도달함에 따라 경사가 좀 더 완만하게 변한 화물 열차 다리를 걸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드드드드드드━!

별안간 다리를, 정확히는 지상을 뒤흔드는 진동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지진?!"

"일단 줄 꽉 붙잡아요!"

나는 군용 로프를 붙잡은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휙휙 돌려보았다. 지진이라기에는 전해져 오는 진동의 방향이 일정한 까닭이었다.

"현우씨! 저기! 앞쪽말고 뒤쪽 봐 봐요! 뿌리가···!"

한세아의 다급한 외침. 나는 곧장 그녀가 말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동의 진원지를 알 수 있었다.

암벽에 튀어나와 있던 나무뿌리.

그것이 활동을 시작한 탓에 땅이 울리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끼-기기기기긱!

화물 열차가 뒤집어질 듯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끼긱! 끼기기긱!

좌우로 기우뚱거리기도 하고,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은 덤이었다.

"어어?!"

"꺄아아악!"

그렇지 않아도 패닉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지수는 재빨리 내게 온몸을 맡겼다.

덜덜덜덜-

"힉! 흐끅···!"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숨만 계속 들이켰다. 이러다가 다리보다 지수가 먼저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나는 황급히 그녀를 품에 넣어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다리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탓에 그다지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지수의 떨림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으니까.

후우우웅-!

우리가 떠난 지상에서 일어난 흙먼지가 아래로 밀려나면서 화물 열차를 뒤덮는다.

툭- 투둑-

간혹 몸을 두드리는 알맹이들이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유독 크게 느껴졌다.

끼이익-! 그그극! 쿵!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전철주들과 도로 위에 방치되어 있던 차량들이 절벽 아래로 기울어지다가 아래로 떨어진다.

무거운 질량을 가진 그것들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휘릭- 타다닥!

오직 허공에 휘둘러지는 끊어진 전선줄만이 잔상처럼 남았다.

"으흐으으으···!"

지수를 안고 있는 나와 같이 예린을 안고 있는 한세아가 필사적으로 로프에 매달려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지금 조금이라도 손을 떼었다가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움직일 수도 없었다.

"세아씨! 조금만 버텨요!"

내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한세아에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터어엉!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위쪽이 아닌 아래쪽에서.

다리 하단부를 지탱해주고 있던 선로가,

열차의 비틀림을 막아주고 있던 선로가,

사방으로 뻗치는 나무뿌리의 힘에 의해 탄성 한계를 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중간 부분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기기기기긱···

평판차들이 비틀리면서 끊어진 선로쪽으로 점점 기울어 가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기울어진 각도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기껏 해야 2도 정도 틀어졌을까.

다만.

"아, 아저씨!!"

줄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있던 우리 처지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잡을 수 있는 것들을 죄다 붙잡았다. 로프나 바닥의 홈을 넘어서 우습게도 옷까지.

의미가 없다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전례없이 미칠 듯한 불안감을 느끼는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쐐애애액!

고지대에서 튀어나온 뿌리는 이내 건너편 땅덩어리로 뻗어졌다. 우리가 밟고 있는 열차보다 훨씬 두터운 뿌리가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비껴 나간다.

이윽고.

콰앙! 콰쾅!

그그그극!

저지대에 도달한 나무뿌리는 그곳에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다리 양 끝에서 전달되는 진동에 의해 생긴 충격이 무력한 우리를 덮친다.

"꺄아아악!"

"으아악!"

위아래로 출렁이는 객차가 우리 몸을 훅 허공에 띄웠다. 디딤판을 잃은 다리는 힘없이 허우적거리고, 두 눈은 밑에 끝없이 펼쳐진 어둠을 담았다. 그것이 입을 크게 벌린 채 우리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휘이이이이-

'······어?'

복부를 간지럽히는 아찔한 부유감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팽!

허리춤에 묶여 있던 생명줄에 의해 급격하게 당겨지며 제동을 걸었다.

그드득- 드그그그극!

후두두둑-

당겨진 로프가 바닥을 휩쓸었고, 그 위에 달려 있던 검은 이끼들을 모조리 긁어 떨어트린다. 바닥이 평탄하고 줄이 두꺼웠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을 정도로 긁는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티디디디딕!

···터억!

관성에 의해 앞으로 밀려 나가다가 서로 엉킨 매듭에 의해 다시 한번 걸리는 제동.

쿵!

텅━!

"악!"

"꺅!"

"윽!"

우리는 곧장 단단한 금속 바닥에 몸을 부딪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온몸에서 욱신거림이 느껴졌다.

고통은 심했지만, 그나마 머리 부분을 부딪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뇌진탕이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균형을 잡지 못 하는 탓에 더 심하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드드드······

뿌리가 건너편 지상에 완전히 자리를 잡는 것을 끝으로 진동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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