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92화 (193/497)

Chapter 192 - 192. 금정역 (3)

속절없이 굴러가던 포탄은 다행히 선로에 떨어지기 직전,

━━툭!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의 턱에 막혔다.

무거운 금속과 화약 덩어리가 떨어지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었더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으니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하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빠져나오는 한숨에는 짙은 떨림이 담겨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귓가를 어지럽히는 거센 심장 박동 소리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사람 팔뚝만 한 포탄이 어떠한 위력을 가졌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몸이 확 긴장이 되었던 까닭이었다.

바로 그때.

"하읏···. 아, 아파···."

내 밑에 엉망진창으로 깔려있는 지수가 고통을 호소했다.

"······?"

끙끙거리는 그녀의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내려보니 내 팔꿈치가 지수의 가슴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빠르게 엎드리기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들었던 터라 미처 자세를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헉! 지수야, 미안! 괜찮아?"

나는 곧장 그녀를 압박하는 팔을 치우며 사과를 전했다. 어쩐지 묘하게 말랑거리는 감촉이 느껴지고 있더라니.

"아으···. 그렇게 누르면 아프다고···."

지수는 몸을 일으키며 가슴팍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붉어진 상태였고, 꼬리는 삐걱거리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많이 아파 보이는 느낌에 나는 다시 한번 사과를 했고, 지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위급 상황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뺨을 맞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민망한 자세였건만. 다행히 지수는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넘겨 주었다.

그와 별개로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약간의 어리둥절함과 살짝 달아오른 숨으로 나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서 묘한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한 느낌은 그녀 스스로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순간 나를 멈칫거리게 만든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탓- 타타탓-

"현우씨! 지수씨!"

한세아가 예린을 데리고 급한 발걸음으로 나와 지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둘이 확 엎드리길래 저랑 예린이도 따라서 엎드렸었는데···. 잘 마무리된 거죠?"

한세아는 주변을 둘러본 후 물었다. 그녀의 복장에는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엣칭!"

한세아 옆에 꼭 붙어 있는 예린은 코를 훌쩍거리면서 재채기를 했다. 바닥 위를 떠다니는 먼지를 들이킨 모양이다.

"네네, 다행히 큰일은 나지 않았어요. 나무 인간이 이쪽으로 뛰어오면서 포탄 하나를 건드렸는지 저기 선로로 떨어지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엎드리고 본 거고요."

나는 점자블럭에 간신히 걸쳐져 있는 포탄을 가리켰다.

보다 커진 포탄의 두께와 더 커진 글씨로 새겨져 있는 고폭탄이라는 표시.

그것들을 보니 한시라도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단순히 포탄 하나라고 무시할 것은 절대로 되지 못한다.

하나가 터지는 것이 끝이 아니고, 뒤이어 일어나는 연쇄반응이 가장 큰 위험이었으니 말이다.

"하아, 어서 빠져나가죠. 이러다가 제 명에 못 살겠어요. 너무 조마조마해서 심장이 아프기까지 한다구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인데··· 까마귀는 어디 갔어? 그놈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마음 졸일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지수가 집채만 한 까마귀를 언급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까마귀의 존재는 찾을 수 없었다. 마치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그거 까마귀가 맞긴 하겠죠? 울음소리는 까마귀 소리가 맞던데 그렇게 큰 건 처음 봐요."

"저도 처음 봤어요! 까마귀 엄청 커!"

나는 우리 머리 위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던 새를 떠올렸다.

체구가 못해도 중형 SUV정도 되는 크기의 까마귀.

세상이 변하기 전, 일반적인 까마귀의 크기는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의 크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기네스북에 올라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온 세상의 관심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까마귀가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라도 해 보았겠는가.

'뭐, 애초에 상식이 유지되는 세상은 이미 끝장난 지 오래지만.'

그러니 커다란 까마귀 정도는 양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보다 더 강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변종들도 여럿 본 적이 있었으니까.

당장 지수가 처리한 나무 인간조차도 이질적인 존재였으니 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까마귀도 변종이라고 봐야지. 저번에 나랑 아저씨랑 하수도 통과할 때 봤던 거대한 뉴트리아처럼."

지수는 당시 상황을 회상했는지 꼬리와 함께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착 가라앉아 있던 꼬리털이 오소소 일어나 크기를 부풀리는 것이 보인다.

"에휴···."

"후우···."

나, 지수, 한세아, 예린은 일제히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이내 금정역 승강장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도 잠시, 우리의 발걸음을 잡은 것은 머리가 사라진 나무 인간이었다.

디지털 무늬의 군복, 찢어진 주머니, 전투 조끼에 달려 있는 각종 파우치, 옆에 굴러다니는 방탄 헬멧.

그리고 옷을 뚫고 바깥으로 툭 튀어나온 인식표.

육군 18-73008642

이 지 원

O

"이건 인식표가 남아 있네요. ···낙오된 사람이었나 봐요."

군번줄을 보고 의문을 표하는 한세아.

"그럼 혼자 숨어 있다가 죽은 건가?"

그녀의 물음을 지수가 받았다.

찰그락-

지수는 도끼 끝으로 인식표를 툭툭 건드렸다. 엉킨 줄이 비벼질 때마다 그녀의 귀가 쫑긋거린다.

"그만 보고 가자, 지수야. 얻을 만한 것도 없어 보이고."

"알았어. 그냥 잠깐만 본 거야!"

군인의 시체를 잠시 바라본 나는 지수의 손을 잡아끌며 걸었다.

저 군인이 왜 홀로 이곳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왜 앞서 본 군인들과 달리 인식표가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동료들이 살기 위해서 싸우고 있을 때, 무서워서 도망친 것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다 같이 도망치다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낙오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무슨 연유로 혼자 남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 또한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만 느끼고 있을 뿐.

본래대로라면 그는 아니, 그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곳에서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을 테니까.

이윽고, 우리는 금정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저벅- 저벅-

앞으로 걸을수록 주변에 널린 포탄의 양은 적어지고 있었지만, 선로에 화물 열차가 있는 것은 여전했다.

"근데 아저씨."

불쑥 지수가 나를 불렀다. 그녀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 왜?"

"이제 와서 말하기는 좀 그치만 그 군인 시체 말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

"뭐가 이상했는데?"

"아니, 그 있잖아. 인식표. 그게 왜 옷을 뚫고 나와 있었지?"

"······."

생각해 보니 그렇다. 보통 인식표는 움직일 때 걸리적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투복 안에 넣어 두는 편. 물론, 처음부터 바깥에 내놓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인식표가 군복을 뚫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 인간이 처음에 유리 깨고 나왔을 때 움직임도 이상했었어. 비가 안 와서 관절이 어색하게 움직였다는 걸 감안해도 뭔가 그거랑은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지수의 말에 나무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회상해 보았다.

역사 2층 유리창을 깨고 승강장으로 곧장 추락한 나무 인간이 팔다리를 어설프게 허우적거렸었던 것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나와 지수를 보고 나서야 자세를 바로잡고 돌진했었지.

그러한 모습은 마치 꼭···.

'무언가가 인식표를 강제로 끄집어냈다? 다른 것 말고 오직 인식표만? 나무 인간은 인식표에 딸려온 것이고?'

돌아가서 확인하면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는 있겠으나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기껏 포탄들의 밭에서 빠져나왔는데, 거기를 다시 제 발로 들어간다니?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었다.

"예린아, 좀 더 걸을 수 있지? 세아씨도 조금만 더 힘내 주십쇼. 어쩔 수 없이 명학역까지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젓고는 한세아와 예린을 바라보았다.

"걸을 수 있어요, 오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아직 거뜬해요, 현우씨."

예린과 한세아는 애써 웃는 낯을 만들어 보였다. 그녀들의 얼굴 한 켠에는 짙은 피로감이 숨겨져 있었다.

비록 이동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나온 경로가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험했기 때문에 우리들의 체력이 크게 소모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휴식이 간절했으나 금정역 주변은 쉴만한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명학역의 상황이 좀 더 낫기를 바라면서 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그리 생각하며 일행을 다독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거리가 2km 조금 안 되니까━"

바로 그때.

퍼━어엉!

후방에서 들려오는 폭음이 내 목소리를.

아니.

부스스···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소리.

잘그락-!

미끄러지는 자갈 소리.

끼익- 끼익···

녹슨 표지판이 삐걱거리는 소리.

주변의 모든 소리들을 모조리 잡아먹으며 온 도시에 퍼졌다.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불길과 함께.

꾸드드드득!

한순간에 치솟은 붉은 화염 줄기는 소화제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포탄이 터진 소리만큼은 메아리처럼 남았다.

퍼-엉··· 펑······

그리고 그 소리는.

[끄아아아아악!]

[키에에에에엑!]

[그어어어억! 그에에엑!]

[끼아아아악!]

잠들어 있던 도시의 눈을 기어코 번쩍 뜨게 만들었다.

[구-오-오-오-오━!]

지평선 너머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포효를 내지르는 존재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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