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93화 (194/497)

Chapter 193 - 193. 금정역 (4)

예고 없이 터진 포탄이 폭발하는 소리에 순간 바싹 엎드린 것도 잠시.

"······이런 씹! 앞으로 뛰어요!"

나는 곧장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끼에에에에엑!]

[끄아아아아악!]

뒤따라 들리는 나무 인간들의 괴성에 지수, 예린, 한세아는 바로 이해했다. 한순간에 변해 버린 상황의 심각성을 말이다.

그리고.

쿠구구궁-

시야의 끝에 있던 건물이 갑작스레 무너지는 광경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강제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드드드드···

딛고 있는 지상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진동 또한 상대할 수 없는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타탓- 타타탓-

우리는 무작정 앞으로 뛰었다.

포탄이 터진 후방으로 간다는 것은 애초에 상정하지도 않았다. 지금이야 한 발만 터진 듯했으나 폭발의 영향권 내에 있었던 다른 포탄들이 이제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게다가 화염을 잡아먹은 소화제 포자가 그 범위만큼 큰 덩어리를 형성했으니 더더욱 가서는 안 되었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포자 덩어리가 주변의 모든 나무 인간들을 유혹하는 중이기도 하고.

"아저씨! 멀리는 못 가! 그럴 시간이 없, 어! 일단 급한 대로 숨어야 할 것 같은데···!"

지수가 끊임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순간 당황했을지언정 이내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며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현우씨! 저기 앞에! 열차!"

한세아가 전방의 파란 화물 열차를 가리키는 순간.

휘익!

······콰직!

철도 우측에 있는 고층 쌍둥이 빌딩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곤죽으로 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한 시선에 보이는 것들은,

반 토막난 빌딩, 햇빛을 반사시키는 유리 조각, 흙먼지가 내려앉은 콘크리트 파편, 흔들리는 전선줄.

그리고 연이어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는 나무 인간들이었다.

그러한 나무 인간들은 고층 빌딩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역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포격을 수차례 받아 완전히 붕괴된 건물 내부에서도,

검게 탄 차체들과 이리저리 뒤엉킨 넝쿨 줄기 아래에서도,

[끄-아아아아악!]

[크르르르륵!]

그동안 조용했던 것이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갖 울음소리를 토해내면서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 껍질이 붙어 있는 팔을 하늘로 치켜든 채.

뿌옇게 변한 동공을 데굴데굴 사방으로 굴려 가면서.

최대한 적게 잡아도 수백은 가뿐히 넘길 것 같은 물량에 마른침이 삼켜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기에는 일렀다.

하나같이 나무 껍질들이 다닥다닥 자라 있는 나무 인간들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놈들은 그저 폭음이 들렸던 금정역으로 무작정 돌진하는 중이었다.

쿵쿵쿵쿵쿵-!

다만 수백의 나무 인간들이 모조리 한 방향으로 달리면서 생긴 발걸음 소리는 우리에게 강한 압박감을 주었고, 그 탓에 몸이 긴장으로 바짝 굳은 것이 느껴졌다.

'···건물은 안 돼.'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자, 한세아가 가리킨 열차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선로 위에 방치된 지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듯 잔뜩 녹이 쓸어 있고 파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상태의 화물 열차.

바로 호퍼형 무개차였다.

"세아씨! 지금 제가 보고 있는 화물차 말하는 거 맞습니까?!"

나는 한세아에게 확인용 질문을 던졌다. 지금부터는 행동에 낭비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 무엇보다 선로에 정차된 화물 열차가 한둘이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맞아요! 헤윽-!"

가쁜 숨을 내쉬며 확답을 내려 준 한세아. 그녀의 볼을 타고 구슬땀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다 저기로 들어가요!"

멀리서 점차 이곳으로 다가오는 진동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급하게 피해야 할 위험인 나무 인간들의 무리 때문에 당장 눈앞의 열차에 일단 몸을 숨겨야만 했다.

거대한 무언가가 오고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문제가 그것 하나뿐만이 아닌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먼저 수백의 나무 인간들로부터 숨지 않는다면 그대로 놈들의 파도에 휩쓸리고 말뿐이건만.

우리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강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수백의 물량은 감당할 수 없는 벽이었다.

이윽고, 죽어라고 내달린 우리는 파란 무개차 후미에 도착했다.

KORAIL

하중 50

자중 25.6

용적 42

계산 0.9

환산 영 1.7 공0.6

파란 배경에 흰 글씨로 쓰인 문구는 간신히 알아볼 수만 있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다지 필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신경을 껐다.

"세아씨! 예린이랑 먼저 들어가요!"

나는 매우 지쳐 있는 그녀들 먼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헉?! 현우씨, 여기 안에 자갈로 꽉 차 있어요···!"

예린의 손을 놓칠 새라 꽉 붙잡고 있던 한세아가 무개차 내부를 들여다본 직후, 당혹성을 내뱉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바로 그때.

"아저씨, 이거! 핸들같이 생긴 거 돌리면 될 것 같아!"

지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녀는 객차를 이어 주는 연결기 위에 올라탄 채 무언가를 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객차 양 끝단에 존재하는 크랭크 핸들은 아마도 측면하화구를 조작할 수 있는 설비일 것이리라.

텅- 터텅-

"세아씨는 예린이랑 여기 있어요!"

나는 발판을 밟고 단숨에 지수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흐읍···!"

"끄읍···!"

지수와 함께 핸들에 손을 올리고 방향을 돌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끼긱······!

그러나 핸들은 생각만큼 쉽사리 돌아가지 않았다. 아예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방치된 지 오래된 터라 연결부에도 녹이 잔뜩 쓸었기 때문이었다.

부스스···

금속에 붙어 있던 녹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드득- 투둑-

피부 트러블처럼 일어나 있던 페인트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콰직! ······콰직! ······콰직!

[그아아아악!]

[끼르르르르륵!]

후방에서 아니, 사방에서 나무 인간들이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힘 좀 더 써봐!"

쫑긋거리는 귀의 움직임이 점점 가까워지는 나무 인간들의 소리를 포착하자 지수는 한층 더 다급한 외침을 내뱉었다. 그녀의 금안에는 옅은 빛무리가 생긴 상태였다.

초커에 끼워진 푸른 조각 속의 입자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것을 보니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우씨! 같이 돌려요!"

"저도 도울게요!"

내 뒤를 따라온 한세아와 예린도 핸들에 손을 얹고 힘을 보탰다.

"흐압···!"

나도 심장 속의 푸른 입자를 있는 대로 가져다 쓰며 전신으로 돌렸다. 양팔에 약간 징그러워 보이는 혈관들이 소소소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근력이 한층 더 강화된 것이 느껴졌다.

끼기긱! 끼이이익-!

도합 4명분 이상의 힘을 받은 핸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녹 조각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나마 핸들 채로 부러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끼익- 그그극!

꿈쩍도 안 할 정도로 뻑뻑했던 핸들은 돌려질수록 부드럽게 풀렸고.

와르르!

후두둑- 투두둑-

이내 측면하화구가 서서히 열리면서 무개차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들을 모조리 선로 위로 토해냈다. 화차 내부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자갈들은 이제 객차 주변에 층층이 쌓이게 되었다.

"됐다! 어서 들어가요! 저는 이거 다시 돌리고 나서 들어갈 테니까!"

내용물을 빼는 것에서 끝이 아니었다. 열려 있는 측면하화구를 다시 닫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돌렸던 만큼 핸들을 도로 돌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핸들이 한번 풀렸으니 되감는 것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 판단했다.

"네, 네!"

"알았어! 빨리 와야 해! 얼른 와요, 언니! 예린이도!"

지수, 예린, 한세아는 무개차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발을 밀어 넣었다.

텅- 터텅- 텅···

끼이이익···

그녀들이 발을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내가 필사적으로 돌리는 핸들에서 나는 소리가 섞여 불협화음을 낸다. 여전히 뻑뻑한 크랭크 핸들. 그러나 처음 보다는 확연히 부드럽게 돌아갔다.

끼긱···쿵!

이내 측면하화구가 완전히 닫히자.

"아저씨, 얼른! 얼른! 빨리!"

나도 그녀들의 뒤를 이어 무개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나를 재촉하던 지수는 근처에 있는 넝쿨 줄기를 잡히는 대로 뜯어 그것들의 체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꼼꼼하게 뿌릴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체향을 어느 정도 숨겨줄 수 있을 것이리라.

펄럭-!

마지막으로 한세아가 바닥에 깔려 있던 파란 방수포를 무개차 위로 넓게 펼쳤다. 그러자 객차 내부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기게 되었다. 객차를 이루고 있는 금속에서 서늘한 냉기가 전해져 온다.

"허억···, 허억···."

"후우-, 후우-."

빛이 사라진 자리는 가쁜 숨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거센 심장 박동에 자꾸만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흡······!"

우리는 숨구멍조차 틀어막아야만 했다.

잘그락잘그락잘그락잘그락잘그락!

인정사정 없는, 묵직하고 거친 발걸음에 의해 자갈밭이 파헤쳐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니까.

[그아아아악!]

[키에에에엑!]

쿵쿵쿵쿵쿵!

나무 인간들의 괴성이 우리가 숨어 있는 객차를 스쳐 지나간다.

까드득- 까각-

놈들의 관절이 비틀리는 소리.

기긱! 끼기긱-

나무 껍질이 금속을 긁으면서 나는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

끊이지 않고 들리는 소리에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객차 근처에 있는 나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리고 그것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되도록 우리의 위치를 들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만약 놈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나는 여차하면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강제로 돌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앞뒤가 전부 나무 인간들의 무리로 막힌 이상 우리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된 상태.

놈들이 그저 이곳을 지나가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겠으나, 아예 이곳에 자리를 잡아버리게 된다면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뒤주에 갇혀 죽는 운명이 되고 만다.

'···그래도 일단 숨을 죽이고, 버텨야 해.'

지금 당장은 나무 인간들이 최대로 격해져 있는 상태일 테니, 놈들을 여기서 더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은 최대한 지양해야 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이미 최악으로 변한 상황이 한층 악화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말이다.

한껏 흥분해 있는 놈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

드드······

다행히 불길하게 지상을 울리는 진동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잠잠해졌다.

나는 어두운 무개차 내부를 울리는 소리를 최대한 귀담아 들었다. 옆에서 미약하게 들리는 숨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지수가 귀를 조심스럽게 쫑긋거리고 있었다. 그녀 또한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킁킁- 킁킁킁!

나무 인간들이 냄새를 맡는 소리에 한세아는 예린을 더 깊숙하게 품에 넣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것은 나와 지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까아아악! 까악!]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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