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199화 (200/497)

Chapter 199 - 199. 수리산 (3)

"이게··· 내 힘?"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지수.

따콩!

"악!"

"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그런 지수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방금 그녀의 행동 탓에 산길 좌측이 쓸려 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건만. 철없는 소리를 하기까지 하니 꿀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씨잉···."

지수는 맞은 자리가 아픈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호박색 눈동자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은 덤이었다. 그래도 입만 삐죽 내밀었을 뿐, 이내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이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세아씨, 여기 이거 한번 와서 보십쇼."

나는 꼬리가 축 처진 지수를 막 혼낸 것이 무색하게 귀를 만져 주며 살살 달래는 한편, 한세아와 예린을 이곳으로 불렀다.

"갑자기 나무가 쓰러져서 깜짝 놀랐어요. 이거 지수씨가 한 건가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던 한세아가 예린을 데리고 나와 반 토막난 나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아뇨, 지수가 한 건 아니고 원래부터 썩은 나무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 보면 일반적인 나무 색하고 다른 게 보이죠?"

나는 한세아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정정해주었다. 내가 가리킨 것은 식흔. 벌레 유충들이 나무를 갉아 먹고 남은 흔적이었다.

즉, 유충의 배설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뭐예요, 오빠?"

예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애벌레 알지? 그것들이 먹고 싼 흔적이야."

"······."

나뭇가지로 밑동을 콕콕 찔러 보려고 하던 아이는 입을 다물고,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표정이 안 좋아진 것을 보니 애벌레 종류를 싫어하는 듯했다.

하긴, 꿈틀거리는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나도 애벌레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애벌레요? 하지만···."

한세아는 의문을 표하다가 뒷말을 흐렸다. 비록 말을 끝맺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나와 지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애벌레는 결국 벌레의 유충이다. 성충이 되기 전 상태에 있는 벌레를 애벌레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확히는 번데기가 되기 전의 모습이지만.

그리고 유충이 나무를 갉아먹은 흔적인 식흔이 있다는 것은 지수와 한세아가 알고 있던 '모든 벌레는 죽어 자취를 감췄다.'라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일행의 뇌리를 스친 하나의 결론,

······벌레들이 살아 있다는 것.

"아저씨, 이거 정말 그, 뭐냐. 식흔? 그거 맞아? 애벌레라니···, 나는 날파리조차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잖아."

지수가 침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녀의 말은 타당한 면이 있었다. 당장 나조차도 갑작스레 벌레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 당황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러나.

"틀림없어. 내가 예전에 진지공사하면서 많이 본 게 이런 거라서. 한창 작업하고 쉴 때면 앉을 나무를 잘 골라야 했거든. 잘못 앉으면 지금 이 나무처럼 부서지는 데다가 좋은 꼴은 보지 못하니까. 특히 구멍을 무너트리기라도 하면 안에 들어 있던 애벌레가······여기까지만 말할게."

나는 잘못 보지 않았다.

결대로 갈라진 나무 기둥, 이질적으로 파인 구멍들, 일견 톱밥처럼 보이는 덩어리들.

그리고 건드리는 족족 무너져 내리는 나무.

무슨 벌레의 유충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은 확실하게 유충에게 먹힌 나무였다.

"아니, 거기까지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튼 구멍이 유충이 들어 있는 자리라고? 그럼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애벌레는 또 어디 있고?"

지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무를 가리켰다.

그래, 우리가 걸음을 멈춘 것은 단순히 나무가 쓰러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평범한 나무가 아닌 두 명의 사람이 감싸지 못할 정도로 두터운 나무가 쓰러진 탓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멀쩡해 보이건만. 속은 썩을 대로 썩은 것으로도 모자라 애벌레에게 파먹히기까지 한 나무였던 것이다.

지수가 도끼로 치기 전까지는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아마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무가 이상하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어쩌면 계속 모르고 있을 수도 있었겠지.

"···그러게."

나는 지수의 의문에 대해 답을 줄 수가 없었다. 나무에 남은 흔적이 식흔이라는 것만 알아챌 수 있었고, 나머지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지수가 말한 애벌레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닥이 막힌 나무 밑동만 보였을 뿐이다.

설마 하는 생각에 도끼로 쿡쿡 눌러도 보았으나 꽉 막힌 바닥은 뚫리지 않았다.

"혹시 이 주변 나무도 다 이런 건 아니겠죠?"

한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내용에 우리는 각자 시선을 한 번씩 맞추었다.

이윽고.

빠악! 쿵!

부스스- 부스스- 후두둑- 우지끈!

나무가 박살 나는 소리가 수리산에 울리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이 통한 것이다. 우리는 불안감과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근처 나무들에게서 정보를 뽑을 심산이었다.

그그그극!

쿵! 와르르···

한동안 수리산 산길을 가득 채운 도끼로 나무 패는 소리.

물론, 어디까지나 확인이 우선이기에 보이는 나무를 한 번씩 두드리기만 했다. 속이 썩은 나무라면 도끼질 한 번에 부서질 것이고, 그렇지 않은 나무라면 멀쩡히 버틸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이 틀렸다는 듯이 이상 현상이 생긴 나무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하아, 하아."

"후우···."

나, 지수, 한세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기껏 힘을 써서 도끼를 휘둘렀건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운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 언니들! 물 마셔요!"

도도도 달려온 예린이 우리에게 생수를 내밀었다. 우리는 아이가 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 돌렸다.

"···없네."

"···그러게요. 없네요."

"조금만 더 쉬고, 다시 갈길 갑시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하필이면 지수가 건드린 나무 하나만 이상한 것이었다니,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예린의 눈에도 별달리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쯤 해서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직 건드리지 않은 나무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더 이상 기력을 낭비할 여유는 없지 않은가.

잠시간의 휴식이 끝나고, 출발하려고 몸을 일으켰을 때.

[까악- 까아악···]

처음보다 가까이 다가온 까마귀가 빨리 움직이라며 채근했다. 단순한 울음소리였으나 마치 그렇게 말한 것처럼 들렸다.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진짜···."

안 그래도 지친 상태이건만.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는 녀석이 이동을 재촉하니 기가 찼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투덜거리면서 험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얽혀 있는 나무뿌리, 그사이를 메우는 흙, 흙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바위, 길 위를 덮는 나뭇잎, 낙엽을 그러모은 넝쿨 줄기.

갈수록 경사가 가팔라지고, 험해지는 것을 보니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다.

산길이 예전보다 험하게 변했어도 제대로 된 표지판이라도 보였다면 이동이 한결 나았을 텐데.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중에도 진한 아쉬움이 계속 들었다.

중간중간 올라가면서 등산로의 잔해인 철 기둥과 밧줄이 보였고,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송전탑이 보였다.

등산객들을 위한 운동 기구가 흙구덩이에 반쯤 파묻혀 있는 것도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바스락- 바스락-

저벅- 저벅-

툭툭 돌출된 바위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서로를 부축하면서,

[관모봉 426.2M]

삼성산악회 1990.7.15 수리산 정상으로 올라온 우리에게 봉우리 정상석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삐뚤어지기는 했어도 바위에 단단히 고정된 덕분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정상석을 제외하면 주변에 설치되었을 전망대, 깃대, 표지판 등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저 녀석 지금 자는 거야?"

"······자는 건 아니고 조는 것 같은데요, 현우씨."

피곤해 보이는 거대한 까마귀 하나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한 쌍의 반지가 묶여 있는 줄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바로 예린의 부모님이 유일하게 남긴 유품이었다. 아이의 소중한 보물이기도 하고.

까마귀는 아직 우리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줄 모르고 있는 듯했다. 거리가 좁혀지면 잡힐 새라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던 녀석이었으니까.

"······."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지수, 예린, 한세아의 걸음을 막았다. 그녀들은 눈치 있게 곧장 몸을 굳혔다.

바스···락······

흙 밟는 소리도 나지 않자,

휘이이···

주위는 바람이 살며시 부는 소리만 남았다.

"지수야, 몰래 반지 가져올 수 있겠어?"

나는 지수에게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까마귀에게 휘둘리는 것은 이제 사절이다.

우리가 녀석을 끝까지 따라가든 따라가지 않든 그것은 반지를 돌려받고 나서 결정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예린이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을 보기 힘든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이능을 발동한 지수라면 까마귀가 눈치채고 날아오르기 전에 반지를 낚아챌 수 있으리라.

"···가능."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지수.

"좋아. 아직 눈치 못 챈 지금이 기회야. 부탁할게."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대답에 이제 남은 일은 지수가 반지를 가져오는 일뿐이었다.

바로 그때.

"야!! 이 나쁜 새!! 내 보물 돌려 줘! 흑, 돌려주세요···. 흐에에엥···!"

위태롭게 바람에 흔들리는 반지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까 눈을 떼지 못하던 예린이 말릴 새도 없이 앞으로 쏘아졌고, 아이는 곧장 까마귀에게 앙증맞은 주먹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퍼억!

고사리 같은 손이 냈다고 하기에는 심상치 않는 소리에 우리는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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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SD화 하기 전에 그림 작가님과 먼저 토의를 나눴던 캐릭터 컨셉화 검열 버전...

컨셉화를 토대로 나온 예린이 SD...

위에서 나온 SD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모티콘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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