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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00화 (201/497)

Chapter 200 - 200. 수리산 (4)

[까윽! 까아악!]

불시의 기습을 받은 까마귀가 기침을 토하면서 옆으로 넘어졌다.

파닥- 파닥-

부스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하는 날갯짓은 흙먼지만 일으킬 뿐이었다.

"돌려 줘! 나쁜 새는 혼나야 해! 빨리 반지 돌려 달란 말이야!!"

예린은 녀석의 몸깃을 꽉 붙잡아 달라붙었다. 체중을 실어 까마귀가 날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인 듯했다.

그런다고 까마귀가 날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잘못 하다간 녀석이 예린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게다가 한 대 얻어맞아서 화난 까마귀가 부리로 예린을 쪼기라도 한다면 아이는 큰 상처를 입고 말겠지.

그러니까 까마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다.

"예린아!"

그리 판단한 나, 지수, 한세아는 아이에게 달려 나갔다. 고민은 순식간에 끝났고, 이어지는 행동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잡았다! 놓치면 안돼, 지수야!"

"나도 알아!"

우리는 이내 예린과 까마귀를 함께 붙들 수 있었다. 나와 지수는 언제든지 도끼를 내려칠 준비를 했고, 한세아는 울먹이는 아이를 달래는 한편 허리춤에 있던 총을 꺼낼 준비를 마쳤다.

당장에도 까마귀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

황급히 격한 날갯짓을 해 하늘로 도망치려던 녀석이 예린이 우는 것을 보자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수그린 것이다.

고개를 바싹 낮춘 까마귀의 모습은 어째선지 녀석이 미안함을 표현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이윽고.

"흑···. 흐윽-."

까마귀는 부리 안에 숨기고 있던 반지를 예린에게 내밀었다. 다행히 줄만 끊어졌을 뿐 반지는 멀쩡해 보였다.

"···훌쩍."

잠시 경계어린 눈으로 보던 예린은 녀석이 돌려 준 반지를 돌려받는 것과 동시에, 잽싸게 우리의 뒤에 숨었다. 까마귀에게 또 뺏길 새라 한 쌍의 반지를 꼭 쥔 채였다.

이제 남은 것은.

[······.]

"······."

우리와 까마귀의 대치 상황이었다. 녀석은 여전히 가만히 앉아 나, 지수, 예린, 한세아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날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우리가 까마귀를 따라온 것의 주목적은 녀석이 들고 나른 예린의 반지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반지를 되찾게 된 지금은 어찌해야 하는가?

산 정상에 오르게 하는 것이 녀석이 원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어서 우리를 유인한 거겠지.

우리가 일단 녀석을 따라간 것은 까마귀에게 우리를 해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죽일 수 있었다.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면 고작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야, 임마. 너 내 말 알아들으면 고개 끄덕여봐. 알았어?"

나는 미친 짓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까마귀와 대화를 시도하자 옆에 있던 지수와 한세아가 해괴한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쇼. 혹시 압니까? 말이 서로 통할지?"

까마귀가 가져온 것이 구조 신호가 맞을 시에 녀석이 메시지의 내용과 의도를 안다고 가정할 수 있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밑져야 본전이지 않은가. 해서 손해 볼 일은 없었다.

바로 그때.

끄덕-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아들은 거 맞아? 진짜 알아들었으면 다시 한 번 아니, 두 번 끄덕여 봐."

눈이 휘둥그레진 지수가 까마귀를 보며 말했다.

끄덕- 끄덕-

확실하게 알아듣고 있는 것이 맞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두 번 까딱이는 녀석. 중간에 지수가 말을 꼬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허. 너 그럼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뭐야? 아니지, 말은 안 통하니까 이것만 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아니면 네가 도움이 필요한 거야? 앞이 맞으면 한 번 울고, 뒤가 맞으면 두 번 울어."

[까악-]

뚜렷하게 딱 한 번만 우는 녀석.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까마귀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천에 적힌 것이 SOS라고 했던 한세아의 말이 맞았다는 것도.

녀석이 행동한 바를 토대로 추측을 해 보니, 아무래도 이 산 어딘가에 구조를 바라거나 필요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저 녀석이 한 말··· 아니, 행동이 맞다고 치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쭉 따라갈까요?"

나는 지수와 한세아에게 의견을 물었다. 혼자 마음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일행을 무시하는 처사이니까.

"···으음. 어차피 저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랑 까마귀가 이끄는 방향하고 비슷한데 그냥 따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 아저씨. 세아 언니 말처럼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끝까지 따라가 보자. 어차피 방향도 같다면서. 방향이 달랐다면 얄쨜 없었겠지만."

그녀들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일단 따라가자는 의견이었다.

"······예린이는?"

"······."

내 뒤에 숨은 예린이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슬며시 끄덕인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우리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의미였다.

"야, 까마귀. 네가 원하는 대로 가 볼 테니까. 제대로 안내해, 알았어?"

얼추 의견이 하나로 통일된 후, 나는 까마귀를 보며 말했다.

[까아아악!]

대화를 듣고 있던 녀석은 울음 소리와 함께 날개를 크게 펼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마도 잘 따라오라는 의미이리라.

구조를 요청한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고, 얼마나 있는지도 모른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그들을 모른 척 지나가도 뭐라 할 사람들도 없다.

버리는 것은 쉽다.

챙기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낯선 사람들을 향해 가는 것은 그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가는 길이 어렵고, 힘들다며 하나씩 버리기 시작한다면, 그 끝에는 자신의 목숨마저 버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선을 지키는 것이 결국엔 스스로를 지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윽고.

펄럭- 푸드더덕-

"다시 힘내서 출발합시다. 내려갈 때는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잊지 마시고."

"넵. 걱정하지 마세요, 현우씨."

"예린이도 이제 반지는 그만 보고 앞 보고 걷자. 알았지?"

"네에···."

"지수 너도 그만 도끼 집어넣어."

"혹시나 해서 들고 있던 거였어. 이제 집어넣을 거야."

큼지막한 날개로 이내 높게 날아 오르는 까마귀를 보며 우리는 내리막길로 변한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스럭! 바스락!

나는 정상에서 내려가기 전에 탁 트인 주변을 훑어보았다.

구름이 조금 낀 푸른 하늘,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깔끔한 공기,

지평선을 채운 산등성이,

무너진 아파트와 빌딩,

갈라진 지각과 아스팔트 도로,

군데군데 존재하는 포자 덩어리,

도시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나무 인간들,

그 틈에 숨어 있는 위험한 변종들.

모든 것이 망가지고 부서진 풍경이 보인다.

그러나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관악산의 뒤쪽에 아른 거리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방향으로 따지면 관악산 너머에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남산이 있을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남산까지는 금방이다.

그러므로 지금 시야에 간신히 보일락 말락 하는 것은 현 사태의 원흉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는 놈을 끝장 내고 말 거다.

다시는 일어설 수도 없게,

다시는 이따위 짓을 할 수도 없게.

'이제 곧이야···.'

나는 그리 생각하며 지수, 예린, 한세아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

부스럭- 부스럭!

아래로 내려가는 산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더 험했다.

고지가 낮아지면서 돌출된 바위의 면적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잔뜩 뒤엉켜 있는 나무뿌리들이 빈자리를 채운 탓이었다.

"후우···."

숨을 크게 들이쉬니 상쾌한 느낌은커녕 오히려 텁텁한 느낌을 줄 정도로 독한 풀 냄새가 맡아진다.

기도에 한동안 달라붙어 있을 정도로 진한 풀 냄새 탓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까아아악-]

바스락!

위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소리와 아래에서 들려오는 마른 나뭇잎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걷고 있을 때.

빗물을 막는 나무 지붕, 떠받치는 기둥, 바위에서 졸졸졸 나오는 물줄기, 굴러다니는 바가지, 물이 고인 바닥.

우리 앞에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던 약수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식수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다. 나는 땀도 식힐 겸 목도 축일 겸 해서 물을 뜨기 위해 약수터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니, 다가가려고 했다.

"오빠! 잠깐만요!"

예린의 외침과 함께 불쑥 눈에 들어온 문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백영 약수>

이 먹는물 공동시설(약수터)은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해서 수질을 오염시키거나, 시설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약수터 명칭을 알려주는 철제 팻말.

그리고.

<약수터 수질부적합 안내>

◈이 약수터는 수질검사 결과 총대장균이 검출되었기에 음용하기에는 부적당합니다. (미관리대상)

◈생수로 먹으면 수인성 전염병 등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생활용수로 사용하시기 바라며 음용을 하시기 전

"반드시 끊여서 먹도록"

하셔야 합니다.

수질검사성적서 평가: 부적합

음용을 금지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부착된 경고문.

"······마시지 말라고 쓰여 있네요."

지친 얼굴의 한세아가 조용하게 말했다.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는 이제 크게 말할 기운도 없는 모양이다.

"이럴 거면 바가지는 왜 있는 거야? 바가지가 있는 걸 보면 사태 전부터 구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구만."

시원한 물을 마실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반색했던 지수가 투덜거렸다.

"그래도 이거 끓여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물에서 검출된 미생물이다. 이러한 미생물들은 단순히 끓이는 것만 해도 박멸할 수 있어서 문구에 적힌 것처럼 끓여 마시기만 하면 몸에 악영향은 끼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오빠. 저 물 뭔가 이상해요."

예린이 나를 불렀던 것은 그 이유가 아니었나 보다. 아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을 바라보았으니까.

"물에 막 이상한 것이 들어 있어요. 검은 입자랑은 조금 다른데···. 아무튼 이거 이상해요. 그래도 정 마실거면 오빠가 푸른 불로 한번 태우고 마시는 게 좋을 거예요. 아니, 그래야만 해요."

아이가 그렇게까지 극구 반대하니 나, 지수, 한세아는 굳이 물을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아직 식수가 부족한 것도 아니니 고집을 부려서 약수를 마실 이유가 없지 않은가.

"뭐, 물이 급한 건 아니니까 여기 위치만 외워 두고 가는 게 어때요? 물은 마시지 못하더라도 생활용수로는 사용 가능하잖아요. 빨래나 설거지 할 때 쓰면 되겠죠.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도 하고."

한세아의 제안에 우리는 동의했고, 몸을 돌려 다시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경사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0.65km 관모봉

↓병목안 시민공원(제1만남의 광장)

우리는 처음으로 틀리지 않은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나무 팻말이 일부 부서져 있기는 했으나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은 것이다.

[까악-]

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까마귀가 우리를 병목안 시민공원으로 이끄는 것이 맞는 듯했다.

바로 그때.

쫑긋!

"아저씨, 저기 앞에 누가 있는데? 발소리가 작은 걸 보니까 덩치는 작은 것 같아."

지수가 전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은 맞지? 막 나무 인간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응. 간혹 말소리가 들려. 사람은 확실해. ······잠깐만. 뭐야."

걱정하지 말라며 내게 고개를 젓던 지수가 순간 멈칫하며 손을 들었다. 잠시만 조용히 해 달라는 신호였다. 나는 물음을 이어가려던 행동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여기로 오고 있어. 아직 우리가 여기 있는 줄은 모르는 것 같아. 그리고··· 아니다. 이건 직접 보는 게 낫겠어."

한동안 귀를 쫑긋거리던 지수가 말한 내용에 우리는 몸을 긴장시켰다. 숨을 죽이고 곧 모습을 드러낼 사람들을 일단 피하기 위해 수풀 속에 숨어 기다렸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섣불리 다가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니 말이다.

이윽고.

부스럭-! 부스럭-!

"채연아! 여기 도토리 많다!"

"진짜? 오늘 운이 좋네···! 운수대통이야···!"

초록 나뭇잎이 무성하게 달린 나뭇가지가 앞으로 밀쳐지고, 뒤이어 아이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힘든 기색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한창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아이들.

"이따가······아?"

그 중 하얀 날개와 검은 꼬리깃이 달려 있는 여자아이가 숨어 있는 우리를 바로 간파했는지 말을 흐렸고,

"야! 왜 그래···어······?"

여자아이가 이상해진 것을 느낀 다람쥐 꼬리를 달고 있는 한 남자아이가 잽싸게 뛰어와 불렀지만, 남자아이 또한 별반 다르지 않게 당혹성을 내뱉었다. 놀란 아이들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후두둑- 두두두둑-

옆에 꼭 붙어 있던 여자아이가 품에 들고 있던 밤, 도토리 따위와 유사하게 생긴 열매들이 와르르 떨어져 흙바닥 위를 나뒹군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열매들은 아이가 얼마나 놀랐는지 대신 알려주었다.

기껏 턴 흙들이 다시 열매에 달라붙었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는 예상치 못한 서로의 존재를 보고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이윽고,

타타타탓-

"야, 도망치자! 형!! 형!!! 누가 왔어!!"

"오빠야!!"

다람쥐가 뱁새를 데리고 부리나케 뒤로 돌아 내달렸다. 누구를 격하게 부르면서.

"······."

"······."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멍한 얼굴로 벌써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는 두 명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까마귀가 인도한 곳의 끝.

그곳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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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선만 잡혔다고만 이해해주세요! 자세나 잡다한 물품같은 건 바뀔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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