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01 - 201. 수리산의 아이들 (1)
탓- 타타탓-
재빠르게 도망치는 아이들.
"···현우씨."
한세아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를 조용하게 불렀다.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저씨, 당장 보인 건 쟤들뿐이야. 어떻게 할래? 쫓아갈까?"
지수도 복잡미묘한 얼굴을 하며 내게 말했다. 그녀의 꼬리는 무언가를 직감한 듯 축 처진 상태였다.
"일단··· 따라가 보자. 어차피 들킨 거 계속 숨어 있는 것도 이상하고."
우리가 수풀 속에 숨어 있는 걸 어떻게 바로 알아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
무엇보다,
[까아악- 까악-!]
근처에서 날고 있는 까마귀가 어서 오라며 재촉하는 울음소리를 냈던 것이다. 녀석이 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저 아이들인 것이 분명했다.
어른들 없이 아이들끼리 돌아다니는 모습은 나, 지수, 예린, 한세아의 마음속에 수많은 파문을 만들어내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일 수도, 단순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도 스스로가 짐작하는 것이 틀렸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지나도 보호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은 의문을 품은 파문을 크게 키우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나, 지수, 한세아는 수풀 속에서 빠져나왔다. 오늘의 목적지인 병목시민공원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 예린아, 뭐 해?"
나는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예린을 불렀다. 아까 아이들과 마주친 직후부터 저런 상태가 된 아이는 무언가를 보는 듯 휙휙 고개 돌리기에 바빴다.
또래 아이들을 본 탓은 아닌 것 같았다. 예린은 아이가 아닌 더 넓은 주위를 보았으니 말이다.
"아! 가, 갈게요!"
숨을 작게 들이키며 정신을 차린 예린. 아이는 이내 쏜살같이 튀어나와 한세아의 손을 붙잡았다.
"뭐 있어?"
"···으음, 친구들이- 아니다. 나중에 말해 줄게요, 오빠!"
내 질문에 뭐라 답하려던 예린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당장 대답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알았다며 수긍할 뿐이었다.
아예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말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윽고, 우리는 어느덧 완만하게 변한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자아이가 떨어트린 열매를 줍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아니, 곧 다시 만나게 될 아이들이 힘들게 모은 것이니 열매를 돌려주는 것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 심산이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들을 밟으며 걷다 보니 우리 앞에 반쯤 무너진 두 개의 석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탑의 무덤 사이에 검은 꼬리깃이 끼어 있는 것은 덤이었다.
"이거 까마귀가 아니라 아까 그 여자애 깃털 같아요."
한세아가 깃털을 집어 들면서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까마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짧았으며 색도 회색에 가까웠으니 이름 모를 여자애의 것이 맞을 것이다.
하얀 머리카락과 검은 스크래치가 있는 날개, 뒤쪽에 길게 나 있는 꼬리깃을 가진 여자애.
밤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있는 머리카락, 뒤쪽에 두툼하게 털이 부푼 꼬리를 가진 남자애.
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우리를 보자마자 뒤도 안 보고 뛰어가더라니 아무래도 정신없이 도망가다가 석탑 파편에 걸려 넘어진 모양이다.
"쭉 갑시다."
"넵."
이제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아이들이 도망친 곳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아이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지수가 미리 알아차린 덕에 미리 대비할 수 있긴 했으나 큰 소용은 없었다.
"······그, 안녕?"
어색하게 웃으면서 건넨 인사에,
"······."
"······."
돌아오는 것은 경계심이 어린 눈초리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아이들의 옆에는 거대한 까마귀가 앉아 졸고 있었다.
우리를 이곳으로 유도한 까마귀는 제 할 일을 끝냈다는 듯 꾸벅꾸벅 졸고만 있는 것이었다. 길은 제대로 안내했지만 마무리 서비스가 영 부실했다.
여기까지 데려왔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속으로 녀석에게 닿지 않을 원망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게 솟은 나무들, 어렴풋이 들리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 바닥에 설치된 텐트고정용 데크, 바람에 휘날리는 찢어진 텐트 천 조각, 부서진 철제 개수대.
그리고 나무 뒤에 숨은 아이들.
나는 이내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이 캠핑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기 이거 아까 어떤 여자애가 떨어트린 건데···. 우리가 주워 왔거든? 다 돌려줄게. ···그리고 혹시 다른 어른들은 안 계시니?"
한세아가 품에 들고 있던 열매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
흙 위를 굴러다니는 열매에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층 더 강해진 경계심을 보내며 말없이 몸을 숨겼다.
'···어차피 다 보이는데.'
눈만 가리면 자신들이 보이지 않을 거라 판단했는지 그저 얼굴만 숨기기에 급급한 아이들이었다.
그중 일부가 간혹 뒤를 흘깃거리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바로 그때.
쫑긋!
"아저씨, 또 누가 온다. ···이번에는 애가 아닌 것 같은데?"
지수가 전방을 가리키면서 한 말에 어설프게 숨은 아이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주위였으니 그녀의 말이 조금 떨어진 아이들에게도 들렸나 보다.
모두의 시선이 지수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헉- 허억-, 허억···!"
그곳에서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마른 체구의 남자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갓 성인이나 되었을까.
"형아!!"
"오빠!"
그 남자를 본 아이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씩씩하게 외쳤다.
"형! 도끼를 든 사람들이 우리 쫓아왔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나와 지수는 들고 있는 도끼를 얼른 뒤로 숨겼다. 그런다고 가려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바로 앞에서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아니무새다! 앵무새랑 합쳐졌나 봐! 검은 머리 앵무새야···! 나는 오목눈이인데···!"
한 번만 말했을 뿐인데. 앵무새 취급을 받다니 억울했다. 숨어 있던 아이들은 자신들의 편이 늘어나자 기세등등하게 변했다.
그것도 잠시,
"야! 저 까마귀 너희가 키우는 거야? 그럼 사과해! 저 나쁜 새가 내 반지 훔쳐갔었단 말이야!"
"히익!"
"히끅···!"
살벌하게 하악질을 하며 소리치는 예린에 의해 다시금 겁먹은 얼굴이 되었지만 말이다. 언뜻 봐도 예린이 저 아이들과 비슷한 체구거나 더 작아 보이는데 기세만큼은 꼬맹이들을 압도했다.
"후우···, 다들 잠깐 진정하고. 그런데 누구세요? 여기는 어떻게 오셨고요?"
울상을 지으며 도도도 달려온 아이들을 뒤로 숨긴 남자가 나, 지수, 예린, 한세아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남자는 그다지 좋은 꼴은 아니었다. 물장구라도 친 것인지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보호자이십니까?"
언뜻 봐도 그렇게 보였으나, 나는 확인차 물었다.
"보호자······. 네네, 제가 보호자예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남자의 눈에는 순간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저희는 저 까마귀 따라서 왔는데······."
남자에게서 대화를 거부할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까지 온 경위를 천천히 하나씩 말해주었다.
금정역에서 까마귀와 조우한 이야기.
까마귀가 나무 인간들을 유인해준 이야기.
녀석이 예린의 반지를 가지고 도망친 이야기.
그러다가 결국 여기까지 따라온 이야기까지.
우리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남자의 낯빛에는 미안함, 어이없음이 번갈아 스쳤다. 한 번에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일 텐데 남자는 의심 없이 믿어 주는 눈치였다.
대신 졸고 있는 까마귀를 보며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동안 녀석이 해온 행동을 보아왔던 탓에 우리를 믿어 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 천에 적힌 거 SOS 맞죠? 사실 이것 때문에 까마귀를 따라온 것도 있습니다."
나는 남자에게 알파벳이 적힌 천을 내밀었다.
저벅- 저벅-
우리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남자는 조심스럽게 천을 받았다.
"이게 어디 갔나 싶었는데 까악이가 가져갔었나 보네요. 혹시 도시에서 오신 구조대이신가요···?"
"구조대는 아닙니다. 그리고 ······바깥에 멀쩡한 도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아니, 당연하겠죠. 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안쪽으로 들어가서 마저 얘기하실래요?"
심한 경계심을 보낸 아이들과 달리 나, 지수, 예린, 한세아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남자.
"따지고 보면 저희는 외부인인데 그래도 됩니까?"
쉽게 풀리는 상황에 나는 속으로 의심을 품고 물었다. 혹시 함부로 들어갔다가 함정에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 까닭이었다.
우리가 사람을 돕기 위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보같이 당해주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보이는 건 넷의 아이들과 성인 남성 하나뿐이지만 방심은 금물이었으니까.
그러나.
"어······? 안 되나요?"
오히려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는 남자의 말에 우리는 역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지수와 한세아 또한 예상치 못한 답이었는지 입을 살짝 벌렸다.
'아니···.'
안 된다기 보다는 외부인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행동이 아니던가.
특히 세상이 바뀌고 나서는 낯선 이를 배척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남자의 태도는 사람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이 할 법한 반응이었다. 약간의 경계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아저씨. 일단 가 보자. 가서 이야기해보자. 다른 사람이 숨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함정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때려 부수면 되잖아?"
"그래, 알았어. ···세아씨, 총은 되도록- 아니다, 그냥 세아씨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넵! 예린아, 다시 언니 손 잡아."
당장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확신할 수 없으니 우리는 남자를 따라 가보기로 했다.
"채연아, 수린아. 이리 와. 대현이랑 민수도 나오고."
마른 남자는 아이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렀다. 아이들은 어느새 우리가 내려놓은 열매를 잽싸게 챙기고, 나무 뒤편에 몸을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나가도 돼? 괜찮아?"
남자는 우리의 눈치를 한번 보았고, 나는 안심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어, 괜찮아."
"야! 괜찮대! 다 나와!"
청솔모의 외침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뱁새 둘과 다람쥐.
이윽고.
우르르-
앞장서는 남자의 뒤에는 아이들이 착 달라붙게 되었다. 그가 물에 푹 젖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니 아이들이 남자를 얼마나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그를 온전히 믿고 따른다는 것은 적어도 남자가 그들을 나쁘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저희가 지내는 곳이 있어요. 조금 좁아도 이해해주세요."
나, 지수, 예린, 한세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부디 그가 악한 사람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부디 우리가 예상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부디 아이들끼리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가 별것 아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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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변기]님이 그려주신 팬아트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