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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09화 (210/497)

Chapter 209 - 209. 수리산의 아이들 (9)

"콜록! 콜록!"

"으엑! 콜록! 누, 눈 매워요···!"

나와 예린은 다급하게 팔을 휘휘 저어 주변을 잠식한 검은 매연들을 밀어내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아도 눈꺼풀을 따끔하게 만들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도를 텁텁하게 만드는 매연이 차량 후방 하단부에 있는 배기구에서 엄청나게 쏟아진 것이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동안 강제적으로 깨끗한 공기를 마셔왔던 터라 갑작스럽게 오염된 공기와 맞닥트리게 되자 몸이 크게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그저 눈살만 찌푸리고 말았을 정도이건만.

부르릉-

그나마 다행인 것은 뿜어지는 검은 매연의 양이 점차 줄어들다가 나오지 않게 되었고, 어느샌가 차량에 시동이 걸려 있었다는 점일까.

달달달달달달-

비록 엔진에서 시작된 다소 불안한 진동이 차체를 흔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동이 걸렸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바꾼 후 엑셀 페달을 살며시 누른다면 차량은 앞으로 나아가리라.

그것도 매우 튼튼한 험비가 말이다.

"콜록-, 엣치!"

"예린아! 시동 걸렸다!"

나는 잔기침을 내뱉고 있는 예린을 얼싸안으며 기쁨을 표했다. 아이는 아직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는 못했으나 신난 기색인 나를 보더니 같이 환하게 웃었다.

"와! 그럼 우리 이제 ?케헹! 이거 타고 다녀요?"

"그렇지! 생각보다 상태가 나쁜 것 같기는 해도 남산까지는 충분할 것 같아. 네 덕분이야, 예린아."

"오빠가 좋으면 나도 좋아요···!"

희희낙락해진 우리는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성공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뭐야! 아저씨! 예린아! 둘이 지금 뭐 해?!"

"현우씨! 이야기만 하고 오랬더니 뭔 일을 한 거예요?"

과거에는 분리수거장, 현재는 차고를 겸하는 곳에 지수, 한세아, 김청수와 아이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찌나 다급하게 왔는지 숨이 살짝 가쁘게 변해 있었다.

"이게 왜··· 시동이 걸리지? 이것도 형이 무슨 마법을 부려서 이렇게 된 건가요?"

김청수가 달달 떨리는 차량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는 현실감을 느끼기 위해서인지 손을 뻗어 엔진의 진동을 느꼈다. 그리고 그제야 헛웃음을 지으며, 차량에 시동이 걸렸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설명하자면 긴데··· 아니, 지수야. 도끼는 내려놔. 나 좀 무서워지려고 그래."

예린을 다시 품에 안은 나는 자랑스럽게 나와 예린이 이룬 업적을 말하려다가 슬그머니 입에 자물쇠를 채워야만 했다.

"······."

말없이 도끼눈을 뜬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지수가 심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그녀가 들고 있는 소방 도끼는 꽉 쥔 손아귀에 의해 차량만큼이나 달달 떨리고 있었다. 나와 예린의 몸도 달달 떨렸다.

"언니! 오, 오빠는 잘못 없어! 그러니까 오빠 혼내지마···!"

눈을 질끈 감고 외친 예린.

"어쭈?"

"히이···."

아이는 한 발자국 크게 다가오는 지수의 기세에 밀려 나를 꽉 끌어안았다.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야. 예린이는 잘못 없어."

"아주 그냥 둘이 죽이 척척맞네? 누가 보면 내가 아저씨랑 예린이 너 협박하는 줄 알겠다? 응? 나만 나쁜 사람이지? 그치?"

크게 치켜 떠진 금안에 나는 바로 겸손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예린을 꼭 마주안는 것뿐이었다.

"···현우씨."

그런 지수에게 바싹 굳은 나와 예린을 번갈아 보던 한세아가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넵."

"뭔가를 하려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셨어야죠. 지금 무슨 큰일 난 줄 알아서 다들 놀랐잖아요. 시동- 하아···. 일단 시동 끄고 나와요."

백번 옳은 한세아의 말.

"미안합니다···."

"죄송해요······."

나와 예린은 멍한 눈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사과를 건넸다.

캠핑장 아이들도 자다가 나온 듯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바로 근처에서 들린 차 소리에 아이들만 관리사무소에서 두고 올 수 없으니 다 같이 데리고 나온 모양이다. 잠이 덜 깬 아이들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거 보니 미안함이 한층 더해졌다.

달달달달달···쿠르륵-

열쇠를 좌로 돌리자 순식간에 꺼진 시동. 엔진의 잔 진동만이 조금 이어지다가 그것마저도 이내 완전히 멈췄다.

나와 예린이 얌전히 운전석에서 내린 이후, 우리는 다 같이 관리사무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럼 이제 말해 봐요. 어떻게 한 거예요?"

지수와 한세아에 의한 나와 예린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

"흐음···. 예린이가 이상한 걸 본다고요?"

나와 예린의 이야기를 들은 한세아가 내뱉은 첫 말이었다.

"이상한 거 아니에요···! 제 친구···들 중 하나!"

그녀는 발끈한 예린을 끌어와 달래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친구들. 아무튼, 저번에 현우씨가 말해주었던 입자를 보는 거랑은 다르다는 거잖아요? 현우씨도 예린이 반지를 끼니까 볼 수 있게 되었구요? 어쩐지 저번에 갑자기 반지를 한번 빌려주더라니··· 그것 때문이었구나."

"네, 단순히 푸른 입자나 검은 입자가 아니고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빛덩어리였습니다. 동물 형상에 따라 성격도 다 제각각인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아마 반지를 다시 빼면 저도 보지는 못할 겁니다."

"아저씨, 그럼 이 주변에도 그런 게 있어? 여기에서만 사는 건가? 그, 귀신? 유령?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숲에서 사니까 요정?"

"산에 특히 많은 거지 숲에만 있는 게 아니야, 언니. 이 캠핑장에 있는 친구들이 내가 지금까지 도시에서 본 친구들보다 많긴 해도!"

삐죽 솟은 꼬리털을 가라앉힌 예린이 지수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나는 지수의 물음에 답해 주기 위해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느덧 시간이 꽤 흘러 노을빛이 숲에 완연히 내려앉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보이는 것들은.

[저는기, 어다닐, 거예요.]

말을 뚝뚝 끊으면서 나무를 타고 있는 나무발발이 형상의 빛무리. 날개도 있는데 굳이 발로만 이동하는 걸 보니 고집이 만만치 않게 센 듯했다. 녀석은 중간에 미끄러져도 걷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뭘 봐요.]

노란 점박이 뱀보다 까칠해 보이는 해오라기 형상의 빛무리.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목을 길게 빼는 모습은 호러가 따로 없었다. 밤에 보았다면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

뭐가 그리 정곡에 찔리는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쥐 형상의 빛무리. 녀석은 재빠르게 움직여 도망갔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견 환상향에라도 온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빛무리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리를 잡은 광경이었다.

내가 본 것 이상으로 많은 빛 덩어리들이 있었지만, 더 볼 수는 없었다. 반지의 주인이 내가 아닌 탓인지 푸른 입자의 소모량이 만만치 않았고, 슬슬 현기증이 나려고 했으니까.

"어, 아마 지수 네 생각보다 많을 거야. 형상도 다양하고."

나는 중지에서 반지를 빼내며 말했다. 손가락에서 반지가 빠지는 것과 동시에 아른거리던 타칭 예린의 친구들의 모습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녀석들이 조잘조잘대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역시 내 피로감에는 반지의 영향이 컸나 보다. 고작 반지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눈을 압박하던 느낌이 한결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뭔가 좀 소름 끼치는데."

꼬리털을 곤두세우며 몸을 부르르 떠는 지수.

"이상하거나 무서운 친구들 아니야!"

내가 내민 반지를 조심스럽게 목걸이에 묶으며 외치는 예린.

"아무튼 일단 알았어요. 요정 덕분에 차에 시동을 걸 수 있었던 것도 이해했구요. 그래도 아까 말했듯이 미리 언질을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돌아가는 상황을 얼추 이해했다는 듯 한숨을 폭 쉰 한세아. 그녀가 한숨을 쉬자 가슴이 작게 흔들렸다.

"다음에는 꼭 먼저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세아씨."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재차 사과를 건넸다. 당시에는 단순하게 바람만 쐬고 들어갈 계획이었었다. 아이가 이상한 빛무리를 보지 못했거나 그런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랬겠지.

차에 배터리가 남아 있고, 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예린의 말에 너무나도 혹한 나머지 뒷일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것은 명백히 내 잘못이 맞다.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있기도 하고.

바로 그때.

"형, 그 차로 예비군 훈련장 가려고 한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차 빌려주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어차피 저희에게는 애물단지나 다름없었고, 시동을 건 것도 형이니까."

가만히 있던 김청수가 입을 열었다.

"근데 거기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혹시 잘못해서 그, 하아··· 아니에요."

그는 말하기 무섭다는 듯 끝말을 흐렸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수와 한세아도 김청수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는지 표정을 굳혔다.

"너무 걱정하지 마. 겉옷도 단단히 입고 갈 거고, 푸른 입자를 항상 몸에 두르고 있을 테니까. 그럼 웬만해서는 다칠 일이 없어."

-변종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지금도 걱정을 많이 하는데 그것까지 말한다면 못해도 10년은 늙게 변할 것 같았다.

예비군 훈련장이 위험할 가능성은 큰 것이 아니라 확실하다고 봐야 했다. 그곳에 갔다 온 김청수의 형이 시름시름 앓다가 한 줌의 액체로 몸이 녹아버렸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배고푸다."

"좀만 참아···."

"나 핫초코 또 마시고 시퍼···."

"너두? 나두···."

어른들 눈치를 보며 배를 살살 쓰다듬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가지고 온 식량도 하루 이틀이면 다 바닥날 처지다.

우리가 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해도 여분의 식량과 식수는 필수이지 않은가.

식량, 식수, 무기, 탄약을 한꺼번에 보충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대부분의 조건을 만족하는 예비군 훈련장 털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탐색 한번은 하는 것이 좋으리라.

그러니까.

"시간도 늦었으니 밥부터 먹자. 채연아, 수린아, 대현아, 민수야. 상 차리는 것 좀 도와줄래? 예린이는 쉬고 있어."

나는 묘하게 기가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한차례씩 불렀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확 들었고, 이어지는 내 말을 듣자 표정을 환하게 만들었다.

"네에! 할 수 있어요!"

이구동성으로 답하는 뱁새 자매와 다람쥐 형제를 보며 나, 지수, 예린, 한세아, 김청수는 굳은 표정을 풀고 웃었다.

그래,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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