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1 - 211. 창박골 (1)
다음날 이른 아침.
"아저씨, 정말 나랑 예린이가 안 따라가도 되겠어? 이번에도 세아 언니랑 둘이 보내기는 좀 그런데······."
"나도 마음 같아서는 다 같이 갔다가 빨리 오고 싶은데 세아씨가 느낌이 안 좋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느낌이 진짜 좋지 않아요. 여기에는 아이들도 있는데 누군가는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정 꺼려지면 지수씨가 현우씨랑 같이 다녀오실래요?"
나, 지수, 한세아, 김청수는 차고 안에 있는 험비 앞에 있었다.
예린을 포함한 다른 아이들은 어젯밤 늦게까지 시시덕거리더니 아직 잠에서 깨지 못했다.
지금 시간대가 이제 막 동이 틀 무렵이라 그런 것도 있고, 어린아이들은 꿈나라에서 조금 더 놀다 와도 될 시간이기도 했으니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언니는 제가 여기 남았으면 싶은 거 같은데, 맞아요?"
지수가 고개를 저으며 되물었다.
"그렇지는···아니, 그렇긴 해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저보다는 지수씨가 있는 게 대처하기도 쉽고, 오래 버틸 수 있잖아요. 제가 가진 건 총알 몇 발 밖에 없고, 이것마저 다 쓰면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알았어요. 대신 오늘 안에는 꼭 돌아오세요. 아저씨, 이번에도 둘이서 하룻밤 자고 돌아오면 진짜 가만 안 둘 줄 알아. 알겠어?"
그녀는 이름 모를 빌라에서 나와 한세아가 자고 왔던 당시를 회상하는 듯, 눈을 날카롭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수의 꼬리가 좌우로 휙휙 움직이며 내 대답을 채근했다.
"그때랑은 다르게 차 끌고 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튼튼하기도 해서 나무 인간들 공격에는 끄떡도- 아니, 조금은 버텨주겠지."
나는 점점 도끼눈이 되어가는 지수를 보며 황급히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가 또 뭐라 할 새라 곧장 김청수에게 말을 걸었다. 옆에서 지수가 불만족스럽게 팔을 툭툭 치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청수야, 네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지? 나랑 세아씨가 돌아오기 전까지 애들 설득시키거나 마음의 준비를 시켜 주는 거 말이야.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차에 시동도 걸렸겠다 식량도 떨어져가겠다 해서, 지금 당장 애들 데리고 여기서 나가고 싶어."
"······."
"그래도 그 짓은 애들한테 못 할 일이잖아. 너희가 여기서 수개월 동안 부모님을 기다려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곳에서 더 버틸 방법도 없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해서 미안해."
"형이 뭐가 미안해요. 하아···. 그동안 먹어왔던 게 사실 독? 검은 입자? 아무튼 그게 들어있던 거라니···. 그게 쌓이면 괴물로 변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막말로 저랑 동생들은 형 누나들이 차만 가지고 저희 버려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뭘. 끝까지 신경 써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렇게 말해주면 우리야 고맙지만."
나는 참지 못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본래라면 좀 더 시간적 여유를 줄 생각이었지만, 한세아가 하룻밤 사이에 주변에서 미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고 했었다. 그런 그녀가 많이 불안해하는 탓에 덩달아 나도 마음이 절로 조급해지고 만 것이다.
나와 한세아가 예비군 훈련장을 꼭 들리려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였다. 현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내가 가진 푸른 불꽃도, 지수의 푸른 스파크도 아닌 총이었으니까.
나와 지수가 가진 이능이 약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탄약 문제가 해결된 총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위력이 낮다는 이야기지.
적이 검은 입자로 오염된 상태면 푸른 불이 압도적이긴 하겠으나 오염되지 않은 일반 사물에게는 총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원거리이기도 하고.
하다못해 길 가다가 멧돼지라도 만나면 내가 믿을 것은 도끼밖에 없었다.
"형 말대로 동생들한테 잘 말해볼게요. 잘 될지 안 될지는 이미 알 것 같기는 해도 한번 해봐야죠. 진짜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제 동생들이니 제가 챙겨야 하고요."
김청수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여태까지 그가 동생들에게 해온 말이 있을 것이고, 동생들도 지금까지 형의 말을 믿어왔을 테지만 상황이 여의찮았다.
그리고.
"까마귀는 아직도 안 돌아왔지? 지수 너도 까마귀 소리 들은 적 없고?"
"응, 적어도 내 귀에는 안 들렸어."
슬슬 돌아와야 할 녀석이 캠핑장으로 복귀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캠핑장을 떠날 때 까마귀는 꼭 같이 데려가야 했다. 단순히 녀석이 아이들의 친구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녀석은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이동할 시에 몰려드는 나무 인간을 유인해주는 역할을 맡아줘야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매정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살려야 하는 생명이 늘어난 만큼 수단을 가릴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용해야 했다.
"금방···은 아니더라도, 오늘 안에는 꼭 돌아올게. 지수 너랑 약속했으니까. 혹시 총소리가 들리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알았어, 아저씨. ······다치지 말고 돌아와야 해?"
"오냐."
나는 지수의 귀를 살살 문지르면서 답했다. 귀를 부드럽게 풀어줄수록 그녀의 인상도 풀렸다. 꼬리도 다시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떼자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지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차에 탑시다, 세아씨. 일단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세아씨도 운전은 할 줄 아신다고 하셨었죠?"
"네, 능숙하지는 않아도 급할 때 바톤 터치하는 건 가능해요!"
나와 한세아는 차 문을 열고 각자 자리에 몸을 밀어 넣었다. 다소 딱딱한 쿠션감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청수야, 예비군 훈련장은 네가 지도에 그려 준 약도만 따라가면 돼지?"
"맞아요, 형.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요. 한 1km 조금 넘기만 할 걸요."
"그래, 동생들 돌발행동 하지 못하게 지켜보고 있어. 먹을 거랑 마실 거 왕창 들고 올 테니까."
-쿵!
마지막 당부를 끝으로 차문마저 닫고 나니 차량 내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천천히 내쉬고, 들이쉬는 나와 한세아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코에 맡아지는 것은 퀴퀴한 시트 냄새와 중독성 있는 기름 냄새.
"시동 걸리겠죠···?"
"어제도 걸렸으니까 오늘도 걸릴 겁니다. 계기판에 뜬 연료와 배터리 잔량도 충분했어요. 혹시 몰라서 오일도 한 번 더 갈았고요."
나는 바로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지수와 김청수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한 후, 곧장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끼기기긱···! ······부르릉!
달달달달달···
어제와 마찬가지로 엔진에서 시작된 살짝 불안한 소리가 이어지다가 이내 차체를 살살 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다행히 제대로 시동이 걸렸다는 신호였다.
'매연도 많이 안 뿜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기구에서 뿜어지는 매연을 맡은 지수는 괴롭다는 듯 눈초리에 눈물을 매달고 격한 기침을 했지만 말이다. 김청수도 손을 휘휘 저으며 공기를 밀어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게 조금 더 멀리 물러나라고 했건만.
"세아씨, 안전 벨트 하시고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출발···!"
나는 한세아의 신호와 함께 가속 페달을 살며시 밟았다.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지수와 김청수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서.
부르르르릉···
이윽고, 차량은 배기음을 토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
덜컹! 쿵-!
위로 크게 들썩거리는 차체.
"꺅!"
한세아가 보조 손잡이를 꽉 잡은 채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차량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흔들렸다.
"좁은 길목만 빠져나가면 덜 흔들릴 겁니다. 그전까지는 혀 깨물지 않게 입 벌리지 마세요, 세아씨."
"네엡···!"
캠핑장 관리사무소에서부터 정문 입구까지 연결된 아스팔트 도로는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인도가 옆에 바로 붙어 있는 탓인지 틈만 나면 솟아 있는 방지턱은 둘째 치고,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한 나무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군용 차량이라 차체가 흔들리는 것에 그쳐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조금 이동할 때마다 내려서 통나무들을 치워야 했으리라.
달달달달···
우지직!
덜컹!
그나마 길목이 좁은 만큼 길이가 짧았다는 것이 다행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무가 한차례 바스러지는 느낌과 함께 차량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캠핑장 도로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병목안캠핑장 개장
운영기간 3.1~12.31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 군데군데 찢어져 있는 현수막이 때가 탄 밧줄 하나에 간신히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옆에는 가공된 목재 기둥이 힘들게 서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밟은 나무가 입구에 세워진 정문 구조물이었던 모양이다.
"자, 진짜 출발합니다. 혹시 모르니까 총은 항상 꺼내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넵! 뭐가 나오더라도 제가 바로···는 아니고 상황 봐서 쏠 게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팍을 툭툭 치는 한세아를 보며 킥킥 웃은 나는 페달을 좀 더 세게 밟았다.
부아아앙-!
찍- 찌지직-
순식간에 속도가 붙은 험비는 도로에 잔뜩 깔린 넝쿨들을 짓이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는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할 차례였다.
그와 동시에.
부스럭!
갈색의 무언가가 수풀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앞길을 가로막았다. 고라니였다.
"어?! 현우씨! 앞에!"
한세아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경고를 해주었지만,
쿵!
운전이 너무 오랜만이었던 나는 곧장 대응하지 못한 채, 변종 고라니를 그대로 치고 말았다.
[끼에에에엑!]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발버둥치고 있는 놈의 모습이 앞유리 너머로 보였다.
"······."
내 의도는 아니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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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투디 정말 멋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