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3 - 213. 창박골 예비군 훈련장 (1)
"······!"
나는 9mm 탄환 주위에 아른 거리는 푸른 입자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하마터면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지만, 간신히 다리에 힘을 줘 페달을 누르지 않은 채 물음을 이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 입자를 다룰 수 있었던 겁니까?"
"이렇게까지 눈에 띄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건 얼마 안 됐어요. 끽해야 바로 이틀 전?"
이틀 전이라고 하면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안양 고가교 위에서 밤을 보냈을 때였다.
어쩐지 불침번 초번을 설 때 푸른 조각을 자꾸만 만지고 있더라니.
어쩐지 불침번 교대할 때 푸른 입자의 잔량이 떨어져 충전해 달라고 하더라니.
가스도 쓰지 않았건만. 평소보다 확연하게 푸른 입자가 줄어든 것이 그러한 이유였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비몽사몽 잠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기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고, 한세아가 바라는 대로 조각을 충전해준 다음 매우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빠르게 재워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럼 무슨 효과가 있는지 알 것 같습니까? 단순히 입자만 코팅되는 게 끝이 아닐 것 같은데."
"음···. 일단 총알 그만 보고 다시 앞 보고 운전해요. 운전하면서 들어요."
나는 한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18 창박로 14]
어느새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온 험비는 이제 안양서중학교 담벼락 앞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부르르릉··· 담벼락의 높이가 꽤 높은 탓에 학교 건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제48회 한국중고연맹회장기 전국 남·녀 중·고 양궁대회경 안양서중학교 우승 축
전봇대와 가로등에 걸려 펄럭이고 있는 잔뜩 헤진 현수막이 학교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김청수가 큰 지도를 축소해서 그려 준 약도와 비교하니 지금 나와 한세아가 지나치고 있는 근처의 건물은 학교가 확실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현우씨처럼 막 푸른 불을 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수씨처럼 막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요. 정확히는 쏘기 전까지는 모른다가 맞겠네요."
한세아는 총알을 다시 탄창에 끼워 넣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거 단순히 푸른 조각처럼 입자를 총알 안에 담는 건데 소모량이 꽤 커요. 권총에 약실 포함해서 총 13발이 들어가는데 그것들마저도 전부 코팅하지 못할 정도거든요."
"푸른 입자 다시 회수는 못합니까?"
나는 의아함을 가지고 물었다. 당장 한세아의 말대로라면 한 탄창도 코팅하지 못한다는 말이었으니까.
대체 무슨 효과가 생겨나길래 소모량이 그 정도라는 말인가.
"그게 문제예요. 한번 코팅하면 좀 오래가는 대신에 제가 다시 빼 올 수가 없어요. 그냥··· 딱 총알에 자리를 잡아버리는 느낌? 그래서 제가 현우씨한테 충전해 달라고 자꾸 조른 거예요. 덕분에 한 탄창 정도는 푸른 입자로 코팅할 수 있었구요."
"······."
"지금 탄창이 3개 있으니까 일단 탄창 하나만 채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푸른 입자를 더 입히지는 않았어요. 혹시 모르잖아요."
"뭐, 일단 알겠습니다. 총알이 어떻게 바뀌는지 훈련장 가서 쏴보면 알겠죠. 그동안은 웬만하면 사격을 자제했지만, 이 근처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아끼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쓸 때는 써야죠."
"넵! ······근데 진짜 하나도 없네요. 살아 있는 사람도, 나무 인간들도요."
한세아는 당차게 대답하다가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찜찜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깨진 유리창,
갈라진 도로,
무성한 넝쿨,
적막한 주변,
늘어진 전선,
구겨진 간판,
부식된 차량,
붕괴된 건물,
찢어진 철판.
이런 요소가 한데 모여 풍기고 있는 분위기는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마치 황폐해진 도시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한세아밖에 없다는 듯이.
주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와 상가 건물들을 보면 유동 인구가 생각보다 많았을 터인데, 그 인구들이 전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김청수의 형이 이곳을 지나 예비군 훈련장으로 갔었을 때도 이미 이러한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푸른 조각도 없고, 이능도 없는 일반인인 그가 나무 인간들이 잔뜩 포진한 영역을 무사히 돌파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물며 그는 무기도 들고 가지 않지 않았던가.
게다가 예비군 훈련장도 아파트 단지처럼 기간병들이 존재하지 않았겠지. 군인들이 있었다면 군용 차량을 가져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김청수의 형 혼자 돌아올리가 없었을 테니까.
"아, 현우씨. 여기서 좌회전이예요. 저 위로 올라가는 길. 네, 거기요."
음산한 분위기를 질색하는 한세아가 슬며시 한 손으로 내 팔을 잡아 오며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니 꽤 넓은 부지의 공영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다양한 차량들이 주차장에 방치된 건 이제는 당연한 모습이었다. 잔뜩 부식되어 무너지기 시작하는 광경은 덤이었고.
부르릉···
차량은 다시 폭이 좁아진 길목으로 향한다. 이제 일직선으로 쭉 올라가기만 한다면 예비군 훈련장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확실히···.'
경사가 진 도로를 따라 올라갈수록 그나마 고층에 가까웠던 건물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고, 대신 1층 건물이나 4층짜리 빌라들이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연식이 오래되었다는 걸 알려주듯 각 건물들의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덜컹- 덜컹-
빌라를 이루고 있던 빨간 벽돌들이 타이어에 걸릴 때마다 차체가 약간씩 흔들린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절간처럼 보이는 건물도 나타났었는데, 기와 지붕이 폭삭 주저앉은 모습은 괜스레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종교과 관련된 건물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듯했다.
"세아씨는 종교 믿습니까?"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저 시답잖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물음에 불과했건만, 한세아는 팔짱을 낀 채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진지한 물음이 아니라 그냥 물어본 겁니다."
"···저는 종교도 안 믿고, 신도 안 믿어요. ···그 말이 그 말인가? 종교인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사후세계는요?"
"그것도 안 믿죠. 어차피 죽어서 가게 될 세계라면 결국 죽기 직전까지는 모른다는 말이잖아요? 착하게 살면 천국, 나쁘게 살면 지옥. 개인적으로 이런 말들은 아이들에게 도덕심을 심어 주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이거죠. '제발 부모님 말 좀 잘 들어라!' 이런 거?"
한세아는 킥킥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뭐, 어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지만요! 아무튼 제 생각은 그래요. 현우씨는 신이 있다고 믿어요?"
"저는······."
사람들이 신에 대해 가지는 관념은 실로 천차만별이다. 그중 일부는 전지하기를 바라고, 전능하기를 바란다. 또 그중 일부는 단순히 상벌만 내리는 존재로 보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러한 인식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종교에 깊숙이 귀의하지 않는 자들 대다수에게는 그것 혹은 그것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사람들이든 간에 인간은 커다란 시련과 위기에 봉착한 순간, 무의식적으로 기도를 올리니까.
무엇에게 무엇을 비는지도 모르는 채.
"아니, 저도 그다지 믿는 편은 아닙니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한세아에게 말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정말로 존재한다면,
하지만 단순히 지켜보기만 할 뿐인 신이라면,
혹은 우리를 죽이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신이라면,
내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신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신이라면 없느니만 못하니 말이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뭐, 믿든 믿지 않든 뭐가 중요하겠어요. 결국 중요한 건 현재인 걸요. 응? 제가 예전에도 이런 말한 적 있었나요? 뭔가 데자뷰가···."
내 대답을 들은 한세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한차례 덜컹거리는 차체와 함께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말은 했었습니다. 저희 수원역 AK플라자 탐색했을 때요."
"아, 그때! 와···, 벌써 2주 전일이네요. 아니, 2주보다 좀 더 지났나? 막상 생각해 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 싶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예비군 훈련장의 입구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진 탓에 나와 한세아는 대화를 중단하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풍경은 우리가 지나온 도시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하게 변하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세워진 가건물들이 완전히 폐가로 변한 탓이었다.
회색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에 널려 있는 이불은 누리끼리해진 상태였고, 빨랫줄에 간신히 걸려 있는 세탁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분을 더 달려서.
창 박 골
예비군 훈련장
제 25XX부대 X대대
-조국은 예비군 여러분을 믿습니다.
나와 한세아가 탄 차량은 예비군 훈련장의 입구를 통과했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넝쿨 밭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