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6 - 216. 창박골 예비군 훈련장 (4)
뾰족한 가시가 잔뜩 나 있는 넝쿨 줄기가 교육장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처리하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카가가각!
"큭!"
다행히 나와 한세아는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곧장 들어 올린 내 도끼에 의해 줄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감당할만 했다.
빠가각- 빠직!
넝쿨에 달려 있는 검은 가시들이 도끼날과 부딪힐 때마다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중간이 뚝 부러진다.
푸쉭-
뜯어진 부분에서 검은 체액들이 물총처럼 찍찍 쏘아진다.
후두둑- 후두둑-
사방으로 튀는 불길한 액체에 닿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그중 일부가 직접 나와 한세아의 옷과 몸에 묻게 되었다.
"세아씨! 괜찮습니까!"
나는 우리에게 튄 검은 체액들이 푸른 입자에 의해 순식간에 제거가 되는 것을 보았어도 혹시 모르는 마음에 한세아에게 물었다.
"네! 조각 덕분에!"
한세아는 푸른빛무리가 서리기 시작한 조각을 보며 외쳤다. 그녀의 말처럼 조각에서 흩뿌려지는 입자가 나머지 독을 정화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결 안심이 된 나는 재빠르게 교육장 내부를 훑어보았다.
흉하게 떨어진 천장의 석고 보드, 그 사이로 드러난 철골, 그 너머에서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빛, 규칙적인 간격으로 세워진 의자들, 부서진 DVD 프로젝터, 기울어진 시네마 스크린.
그리고 방 안을 가득 채운 가시 넝쿨들.
1층의 강당과 비슷한 모습이었으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현우씨! 저 봉오리! 역시 저게 줄기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한세아가 다급하게 가리킨 그것. 바로 봉오리의 존재 말이다.
과거 지수, 예린과 있었던 편의점에서도 봉오리가 넝쿨을 조종했었으니 저 봉오리가 본체일 것이 확실하리라.
내가 공격을 막은 줄기는 전체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하나를 겨우 막아도 연이어 공격을 가하는 여러 줄기가 있어서 싸움은 쉽사리 끝나지 않겠지.
불로 한 번에 태운다는 선택지는 당장 고려할 수가 없었다. 연병장에서 극히 일부의 줄기를 불태운 결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때야 퍼지는 연기보다 푸른 입자의 양이 더 많았기에 이상이 없었던 거지, 지금 눈에 보이는 넝쿨을 전부 다 태우면 감당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까 일단 본체인 봉오리만 노려서 제거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그리고.
"세아씨! 줄기는 제가 막아볼 테니까 총으로 봉오리만 공격해요!"
그 방도는 한세아에게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총이었지만.
철컥-
"알았어요! 저만 믿어요!"
한세아는 일반 탄창에서 푸른 입자로 코팅된 총알이 들어 있는 탄창으로 바꿔 끼며 외쳤다.
그녀는 이참에 총알이 어떤 효과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볼 심산인 듯했다. 아니면 일반 총알로는 제압하기 힘들 것이다라고 판단했거나.
휘리릭!
나는 더 이상 한세아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가시를 품은 줄기가 내게 재차 휘둘러졌으니까.
"흡!"
그녀가 알아서 잘해주기를 바라며 나는 옆으로 굴러 봉오리의 공격을 피했다. 최대한 바닥에 흩뿌려진 부러진 상태의 가시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마치 유리 막대들이 와장창 깨진 것처럼 보이는 가시들은 살짝만 긁혀도 피를 철철나게 만들어 버릴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탓에 긴장감이 한층 더해졌다.
몸 주위를 떠다니기 시작한 푸른 입자들이 자잘한 공격은 막아준다는 걸 알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꾸득- 꾸드드득- [끼이이이이-!]
뱀처럼 똬리를 튼 채, 시각 기관이 없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봉오리. 꽉 닫힌 상태의 놈의 입에는 투명한 비닐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
눈을 찌푸리며 시선을 집중하자 언뜻언뜻 검은 막대기 같은 것들도 함께 보였다.
나는 이내 그것들이 총열인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끝부분에 소염기가 달린 것들은 총기밖에 없지 않은가.
나와 한세아의 목표였던 총기류가 저놈의 입안에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뒤로 물러날 이유도 사라졌다.
아직 비닐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총기 또한 멀쩡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콰직! 콱!
나는 계속해서 쇄도하는 넝쿨을 몸을 굴려 가면서 피했고, 틈이 날 때마다 도끼를 휘둘러 줄기를 인정사정 없이 끊었다. 봉오리의 신경을 내게 끌어 기회를 노리고 있는 한세아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간혹 검은 가시들이 피부를 파고들려고 했으나 다행히 몸에 둘러진 푸른 입자를 뚫지는 못했다.
어느덧 내 주위에는 잘려 나가 꿈틀거리는 넝쿨과 유리처럼 부서진 가시들이 층층이 쌓이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현우씨! 머리 숙여요!"
숨을 죽이고 빈틈을 노리고 있던 한세아가 크게 소리치며 총구를 봉오리에게 겨눴다.
내가 몸을 팍 숙이는 것과 동시에.
타-아아앙!
푸른 섬광이 앞으로 쏘아졌다. 분명 일반 총알일 터인데, 순간 섬광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푸른빛이 방 안을 가득 메웠던 것이다.
촤르르르륵!
[끼이이이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봉오리가 주변의 넝쿨을 전부 끌어다 모으며 벽을 형성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일직선으로 곧게 날아가는 푸른 탄환은 궤적이 비틀리지도 않은 채 앞을 가로막는 줄기, 가시 따위들을 전부 찢어발겼으니까.
퍼엉-!
그것은 이내 넝쿨벽 너머의 봉오리에게 직접 타격을 가했다. 크게 뻥 뚫린 구멍 너머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쿵!
이리저리 비틀리다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봉오리. 뭉텅이로 날아간 녀석의 몸체에서 끈적하고 투명한 체액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초탄 명중.
그러나 확실하게 끝장내지는 못했다.
"세아씨! 한 발 더! 빨리!"
"···안돼요! 앗뜨뜨! 총이 너무 뜨거워져서 잡는 것도 힘들어요!"
한세아는 바닥에 떨어진 총을 주우려고 손을 갖다 대었다가 황급히 떼어냈다.
권총은 자신이 열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일반 총알과 위력 자체가 달라진 탓에 과부하를 받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세아씨는 거기 있어요!"
내가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타탓- 타타탓-
그리 판단한 나는 곧장 봉오리를 향해 뛰었다. 지금 이 순간이 봉오리를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되었다.
······휘리릭!
꿈틀거리는 넝쿨들이 어떻게든 내 돌진을 막으려고 했다. 그 기세는 처음의 매섭던 것과 거리가 매우 멀었다. 본체인 봉오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 것 같았다.
쐐액!
콰직! 콱! 콰드득!
대각선을 그리며 접근하는 줄기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는 도끼날 덕분에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과거와는 다르다.
예전에는 줄기 하나하나 막기만 하는 것도 벅찼건만. 이제는 가시 넝쿨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쓸 수 있는 건 푸른 불만 있는 게 아니었다. 푸른 불 그 이전에 얻은 이능이 있지 않던가.
카앙-!
나는 도끼날의 뭉툭한 부분을 바닥으로 향해 돌린 후 내리쳤다. 도끼날 뒤편에 집중되어 있던 푸른 입자가 순간 빛을 내뿜었다.
후웅-!
바닥과 맞닿은 부분부터 전방으로 퍼지는 기묘한 파장. 예전의 망치만큼의 효율은 나오지 않았으나 봉오리를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이윽고, 꿈틀거리는 가시 넝쿨들마저 기운을 잃고 축 늘어지게 되었다.
"후우···!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도끼를 위로 치켜들었다. 내가 노리는 것은 봉오리와 줄기를 연결시켜 주고 있는 부분. 사람으로 따지면 목이겠지.
콱!
아래로 강하게 내려찍은 도끼날에 의해 질긴 가죽 같은 줄기가 형편없이 파인다. 끈적한 체액이 울컥울컥 솟아오른다. 하지만 아직 연결 부위를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다.
한 방으로 모자라면 두방으로 때리면 그만이다.
"흐읍···!"
나는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키고, 푸른 입자가 휘감긴 도끼를 재차 휘둘렀다.
콰드드득!
······뚝!
······캉!
거침없이 나아가던 도끼날은 줄기의 질긴 섬유를 가닥가닥 끊어 내다가 이내 봉오리를 완전히 분리시켜 버렸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도끼날이 바닥을 친 것도 거의 동시였다.
푸시이익···
잘린 부위에서 핏물이 빠지듯 체액이 쉴 새 없이 뿜어졌다. 미약하게나마 움직이려던 줄기들은 이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넝쿨을 조종하던 본체와 연결이 끊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겼다.'
지수가 선물해준 도끼로 넝쿨 변종을 끝장내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돌아가서 지수에게 예린을 납치했던 봉오리를 처리했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대단하다고 해 줄까, 뭐 하러 위험을 감수했냐고 타박을 할까.
어찌 되었든 기꺼운 일이었다. 물론, 편의점에서 조우했던 넝쿨 변종과 동일한 개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현우씨!"
한세아가 널브러진 가시들을 피하면서 내게 달려왔다. 그녀는 이내 내게 바싹 달라붙어 몸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천천히 오십쇼, 세아씨. 그러다가 넘어지면 큰일납니다. 다친 부분도 딱히 없으니 제 몸은 그만 만지시고."
"에이, 이미 다 왔는걸요. 그나저나 이거 확실히 죽은 거 맞죠?"
"네, 확실하게 죽었습니다. 줄기의 움직임도 완전히 사라졌고, 봉오리 부분 보면 쪼그라들었잖아요."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한세아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봉우리를 도끼로 툭툭 쳤다.
그것은 내 말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타 줄기와 마찬가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푸쉬이이익!
이질적으로 혼자 떨어져 있는 봉오리에서 투명하고 끈적한 체액들이 사정 없이 뿜어졌다.
"꺄아악!"
"세아씨!"
그것도 안심하고 다가오고 있던 한세아에게만.
그녀는 황급히 든 팔로 상체를 가리면서 뒤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이미 한차례 체액이 그녀의 몸을 뒤덮은 후였다.
또-옥 또-옥
위에서 덮친 투명한 체액들이 한세아의 옷을 타고 아래로 떨어진다.
"아흐··· 이게 뭐야···. 기분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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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애호가]님이 그려주신 지수 팬아트입니다! 지수는 암캐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