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19화 (220/497)

Chapter 219 - 219. 아이들. 그리고··· (1)

부르르릉···

험비 한대가 병목안캠핑장 입구로 들어선다.

하늘 위에 떠 있는 해는 조금 기울어지긴 했어도 아직까지는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새벽에 나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무사히 캠프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나와 한세아가 타고 있는 차량 덕분이었다.

차량이 아니었다면 짐을 얼마 챙기지도 못했을 것이고, 왕복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겠지.

서서히 캠핑장 안쪽으로 진입하니 주변을 빼곡하게 채운 나무들의 가지 사이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빛이 눈을 자극했다.

그리고.

"아저씨!"

진작부터 자동차 배기음을 감지하고 있었던 지수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우리를 반겼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축 가라앉아 있던 그녀의 꼬리도 기운을 차리고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나는 어색했던 첫 출발과 달리 한결 자연스러워진 운전 실력으로 차를 세웠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운전 조금 했다고 뻣뻣하던 몸이 풀린 모양이다.

"약속대로 최대한 빨리 왔어. 챙긴 것도 꽤 많아서 한동안 먹을 거랑 마실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더라."

"그래? 다행이다···. 무엇보다 아저씨가 무사히 돌아온 게 제일 다행이지만. 언니도 고생 많이 했어요."

한창 나와 한세아의 상태를 살피던 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내 뒷좌석에 실린 상자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뭐야. 진짜 잔뜩 챙겨 왔네?"

"절반은 휴지 같은 생필품이고, 나머지 반은 과자나 음료수야. 아쉽게도 캔은 별로 없더라고."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 참치나 닭가슴살 캔은 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참치 크래커 팩에 들어 있는 참치 샐러드뿐이었다.

PX가 작아서 그런가 황금마차에서도 있었던 단백질 보충제 또한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에이, 이것들만 해도 어디야? 수고 많았어. 위험한 건 없었지?"

"아하하···."

어색하게 웃는 한세아의 모습에 미간을 좁히는 지수.

"뭐야? 뭔 일 있었지? 아니, 있었네!"

그녀는 미약하게 돌던 웃음기를 싹 빼고 물었다.

"푸른 입자가 있어서 엄청 위험하지는 않았어. 예전에 수원고등학교에서 봤던 가시 넝쿨이 크게 변한 것들이 있었을 뿐이야."

운전석에서 내린 나는 뒷좌석 문을 열고 상자 사이에 파묻혀 있는 총기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변명 아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넝쿨 변종인 봉오리도 있었는데 그건 세아씨가 강화탄으로 넉다운시켜 버렸지. 마무리는 내가 했고. 그놈이 휘두르는 줄기에 달린 가시가 좀···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입안에 들어 있는 총기를 얻고 싶었거든."

"그러고 보니 총도 구해왔네···. 총알도 있고···.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강화탄은 무슨 소리야? 가시는 또 얼마나 위험했길래? 대체 뭘 하다가 온 거야?"

"그건 제가 설명해 줄게요, 지수씨."

가만히 눈치를 보던 한세아는 훈련장으로 가는 길에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와 훈련장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지수에게 전해주었다.

푸른 입자를 총알에 입힐 수 있다는 것,

그런 총알은 기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만 사격시에 발생하는 열이 너무 높고 푸른 입자 소모량도 만만치 않다는 것,

넝쿨에 달린 가시에서 나오는 독을 주입 당한 변종 고라니의 몸이 폭발했다는 것, 그리고 가시 넝쿨을 푸른 불로 태우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연기가 배출된다는 이야기까지.

한세아는 조심스럽게 다 추측이라는 말로 끝맸었지만,

퍽! 퍽!

"폭발?! 미쳤어! 미쳤어! 내가 위험하면 바로 돌아오라고 했지! 그런데 그런 넝쿨하고 싸우면 어떡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듣나 싶던 지수는 독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참지 못하고 주먹을 들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한창 기분 좋을 때 슬그머니 말해주려고 했으나 그래서는 안 되었다.

나와 한세아만 알고 있어도 될 정보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특히 변종과 관련된 정보는 확실치 않더라도 빠르게 일행과 공유해서 대비해야 하지 않겠나. 이런 건 숨기면 결국 독이 된다.

비록 그 과정에서 내가 좀 맞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퍽! 빠악!

···나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지수의 주먹이 너무 매웠다.

"악! 지수야! 화난 건 알겠지만 잠깐만 참아봐! 예린이랑 청수는 어디 갔어? 까마귀는? 꼬맹이들은?"

"그래요! 일단- 꺅! 아파요! 일단 멈춰 봐요···!"

나와 한세아는 지수의 손목을 잡으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지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예린을 필두로 캠핑장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올 줄 알았건만.

지금 캠핑장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지수 혼자뿐이고, 아이들의 조잘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까마귀의 울음소리 또한 들리지 않았다.

"······아. 에휴-, 안 그래도 말해주려고 했었어. 아저씨랑 언니가 나가고 나서 김청수가 일을 제대로 벌였지. 다짜고짜 잠도 덜 깬 애들에게 여기를 떠날 거라고 하는데 그게 수습이 되겠어?"

"······."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애들은 난리가 났고. 그 뒤로 밥도 안 먹고 탈의실에 들어가서 문 잠그고 버티고 있네. 김청수랑 예린이는 애들이 혹시 이상한 곳으로 도망칠까 봐 문 앞에서 감시중이야. 그걸 감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수는 눈가를 주무르면서 말을 이었다.

"꼬맹이들이 얼마나 잽싼지 처음에는 사방팔방으로 도망갔다니까? 내가 없었으면 한 명도 못 잡았을 걸."

"···그렇구나. 너도 고생 많이 했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수의 턱 밑을 살살 긁어 주었다. 어쩐지 지수가 조금 피곤해 보이더라니 그런 이유였던 것이다.

대체 깡마른 체구 어디에서 힘이 솟아나는 건지 몰라도 아이들의 달음박질이 매우 빨랐기 때문에 그녀가 아니었다면 잡는 것조차 힘들었겠지. 그녀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 뭔데. 하지 마. 내가 개도 아니고······하지- ···뭐야. 생각보다 느낌이 좋···네······. 하으···. 아저씨, 거기말고 좀만 더 밑에······."

낯선 느낌에 질색하던 지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턱을 들어 올리며 역으로 달라붙어 왔다.

옆에서 한세아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지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에 얼굴을 마구 비벼댔다. 그녀의 꼬리가 붕붕 돌아갔다.

바로 그때.

"거짓말쟁이! 형은 거짓말쟁이야! 엄마랑 아빠 꼭 돌아온다고 그랬잖아!"

관리사무소 옆자락에 붙어 있는 탈의실 겸 샤워실에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 지수, 한세아의 몸이 바싹 굳어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세아씨, 짐은 그대로 두고 간단하게 애들 먹을 간식거리랑 총, 수입도구만 챙겨서 갑시다."

"알겠어요, 현우씨."

굳이 짐을 바깥에 놔둘 필요는 없었다. 험비의 튼튼한 차체만으로도 훌량한 창고가 되기 때문이다.

나, 지수, 한세아는 오늘 먹을 분량의 식량만 꺼내 김청수와 예린이 있는 탈의실 건물로 움직였다.

저벅- 저벅-

이윽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탈의실.

"···형."

"오빠!"

우리의 발소리를 들은 김청수와 예린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는 지수보다 더 피로한 낯빛이었다.

"아침부터 쭉 이러고 있었던 거야?"

나는 탈의실 문을 보며 물었다.

예상외로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고, 살짝 열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청수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진 것처럼.

"······네. 제가 요령이 없어서 일이 이렇게 됐네요. 죄송해요."

"죄송할게 뭐가 있어.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근데 까마귀 녀석 아직도 안 돌아왔다던데, 맞아?"

"후우-, 그러네요. 까악이도 아직 안 돌아왔었네요···."

김청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은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의 온 신경이 동생들에게 쏠려 있는 듯했다.

까마귀는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이곳에 온 첫날을 제외하고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하는 나름 규칙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던 까마귀가 해가 지고 있는 와중에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일단은 눈앞의 아이들을 달래는 것이 먼저였다.

"세아씨, 아까 들고 온 사탕 있죠? 그거 들고 안으로 같이 들어가봅시다. 지수랑 청수는 쉬고 있어. 예린이 너도."

내 말을 들은 김청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없이 몸을 돌려 관리사무소 건물로 들어갔다.

"아저씨, 괜찮겠어? 언니랑 아저씨가 우리보다 힘들었을 텐데."

"저는 괜찮아요, 지수씨. 현우씨도 그렇죠?"

"네, 저도 멀쩡합니다. 지수야, 우리는 괜찮으니까 차에서 가져온 거 먼저 먹고 있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지수는 예린을 챙겨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그들에게 얼른 가라며 손을 휘적였다. 이내 그녀들 또한 관리사무소 안으로 사라졌고 이제 남은 것은 나와 한세아 그리고 탈의실 안에 있는 아이들 뿐이었다.

끼익···

나는 심호흡을 한 후, 탈의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누렇게 변한 하얀 벽지, 엉망으로 문이 열려 있는 락커,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옷가지들, 불투명한 유리 너머에 있는 샤워실.

어느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탈의실의 광경.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이 어떤 상자를 멍하니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

나와 한세아가 들어오자 아이들은 몸을 움찔 떨었다. 손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보는 모습은 우리가 혹여 혼이라도 낼까 무서워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혼낼 생각은 전혀 없건만. 내가 뭐라고 혼을 내겠는가.

우리는 말없이 아이들의 옆에 조용히 앉기만 했다.

"······."

"······."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자니, 바싹 몸을 웅크린 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박채연과 박수린이 슬쩍 다가왔다. 김대현과 최민수는 여전히 하얀 상자를 보고만 있었다.

상자 겉면에 십자가 표시가 있는 걸 보니 구급 상자인 것 같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지?"

한세아가 자매의 등을 토닥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냥 저번처럼 정신없이 달리다가 넘어지지는 않았나 해서."

"안 다쳤어요."

기분이 상한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을 툭 내뱉은 김대현.

"그럼 다행이구. 아픈 곳 있으면 바로 말해야 한다? 마침 구급 상자도 있으니까."

"언니야···, 이건 못 써요···."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어느새 바짝 붙어 앉아 있던 박수린이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박수린의 얼굴은 아이답지 않게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말없이 앉아 있던 박채연, 김대현, 최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응? 왜?"

"······."

뱁새 아니, 흰머리오목눈이는 대답 대신 조용히 구급 상자를 앞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달칵-

구급 상자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안에 잔뜩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 열이 날 때- 맨 밑에 있는 노란 상자, 오렌지 맛 시럽.

※중요! 딱 한 숟가락씩만! 하루에 3번! 아프다고 많이 먹으면 오히려 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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