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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21화 (222/497)

Chapter 221 - 221. 아이들. 그리고··· (3)

"으아아앙! 까악이가···!"

"어떡해···!"

박채연, 박수린, 김대현, 최민수가 울상을 지으며 힘없이 축 처진 상태의 까마귀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은 핏물이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광경에 겁에 잔뜩 질려 있었지만, 가까이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거! 구급 상자 가져와! 거기 약 있으니까 그걸로 치료하면 될 거야···!"

눈물이 핑 돌았으나 흘리지는 않은 김대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 하지만······."

다친 부위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순간 멈칫거리며 망설인 이유는 구급 상자에 담긴 약품의 양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간신히 남아 있는 분량의 약품은 언젠가 돌아올 부모를 위해 따로 남겨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다급하게 외쳤던 김대현도 알고 있었던 사실. 아이의 눈가에는 좀 더 많은 눈물이 돌았다. 하지만 여전히 울지는 않았다.

"세아씨! 저희 가방에 지혈제랑 붕대 남은 거 다 가져와주십쇼!"

나는 머리를 털어 잡념을 털어낸 후 서둘러 한세아에게 말했다. 상비약을 가지고 있는 건 캠핑장의 아이들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비록 우리가 가진 지혈제가 애완용이 아닌 사람용으로 나오긴 했어도 당장은 그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지혈 성분만 들어 있는 것이니 면역이나 이물질 거부 반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아니, 부디 그렇기를 바랐다.

"네, 넵!"

"세아 언니! 저도 도와줄게요!"

한세아가 곧장 일어나 관리사무소 안에 있는 짐 가방으로 가지러 갔고, 예린이 바로 뒤따라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급할 때 합을 맟춰 본 그녀들이니 손발이 착착 잘 맞겠지.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김청수와 아이들을 조심스레 밀어냈고, 빈자리를 내가 차지했다. 그리고 일단 급한 대로 손으로 상처 부위를 틀어막았다.

주르륵-

압박을 가하자 상처 부위에 고여 있던 핏물이 손등을 타고 바닥으로 줄줄 흐른다.

[······깍]

피가 계속해서 빠지는 탓에 기운이 없어 보이는 까마귀. 녀석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김청수와 아이들을 보더니 이내 안도한 듯 눈을 감았다.

"······!"

"까악아···!"

순간 까마귀가 죽은 줄 알고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겨우 삼킨 김청수와 그의 동생들이 화들짝 놀랐다.

"···안 죽었으니까 너무 놀라지마. 그냥 기절한 것뿐이야."

나도 까마귀가 생을 달리한 줄 알았으나 상처를 누르고 있는 손에 아직 맥박이 전해지고 있는 덕분에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피가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까마귀가 살아 있는 것은 변종으로 탈바꿈하면서 얻게 된 강인한 생명력 덕분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상처를 입고 온 거냐···.'

거진 이틀 만에 복귀한 거나 다름없는 까마귀. 하늘도 날 수 있는 녀석이 어쩌다가 이런 부상을 입게 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불리해지면 날갯짓으로 도망가면 될 터인데, 무엇으로부터 다쳤다는 말인가.

타닥- 타닥-

주변을 밝히고 있는 모닥불에 의해 핏물이 주홍빛으로 일렁거린다.

바로 그때.

"···아저씨. 이거 뭐야?"

까마귀의 상태를 본 순간부터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던 지수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녀가 어느 곳을 가리키고 있는 중이었다. 가만히 시선을 따라가자 지수가 말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늘?"

그보다는 쭈글쭈글한 비닐에 더 가깝게 보이는 무언가가 까마귀 깃털 사이사이에 박혀 있었다. 손바닥보다 훨씬 큰 그것은 무언가의 조각인 것처럼 보였다.

바스락···

그것을 손에 들자, 얇은 막 너머로 피가 잔뜩 묻은 내 손이 그대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심장을 콱 조이는 불안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거 설마···.'

지금 이 순간, 뜬금없이 썩은 거목에 식흔이 잔뜩 있었다는 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우씨! 약 가져 왔어요!"

"붕대도요, 오빠!"

이어지는 내 상념은 짐 가방을 들고 돌아온 한세아와 예린에 의해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방에서 파우더 통과 멸균처리포장이 되어 있는 붕대 뭉치를 내밀었다.

그래, 일단은 까마귀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른 것도 아니지만, 시간은 꾸준히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특히 날개 부위에 상처를 입은 만큼 조속한 치료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까마귀가 다시는 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해 보이는 부상이기도 했고.

촤르륵!

나는 깨끗한 물을 까마귀의 날개에 흘려 보내 일차적으로 핏물을 씻어 내었다. 선홍빛의 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상처의 형태가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깔끔하게 베인 아니, 갈라진 상처였다. 잡다한 파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툭- 툭-

파우더 뚜껑을 여는 것과 동시에 안에 들어 있던 가루를 환부에 뿌렸다. 지혈제가 자글자글 녹으며 상처의 핏물을 막기 시작했다.

꽈악-

마지막으로 붕대로 둘둘 감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다고 할 수 있었다.

[······.]

상당히 쓰라리고 아플 터인데, 까마귀는 그저 미약한 숨만 내쉴 뿐이었다. 체력이 방전이 된 것도 한몫하고 있겠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돼."

"흑···, 까악이 괜찮은 거예요···?"

걱정스러운 눈으로 기절한 까마귀를 바라보는 아이들. 녀석들은 만지면 까마귀가 아파할까 싶은 마음에 손대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래, 괜찮을 거야."

나, 지수, 예린, 한세아, 김청수는 불안에 떠는 아이들을 달랬다.

붕대로 감기 전에 연고도 살짝 뿌려 놓았으니 이제 남은 몫은 까마귀의 몫이었다. 녀석의 재생력이 제대로 활성화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리고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었다.

"아저씨, 여기 바로 뜨자. 이 녀석이 뭘 하고 다녔던 건지는 몰라도 그게 안전한 일은 아니었겠지. 그게 아니면 이렇게 다쳐서 돌아올 리가 없었으니까."

"네?! 하지만···!"

그녀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려던 김청수. 그는 말을 잇지 않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입을 막은 것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두려움을 달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상처. 단순히 긁힌 게 아니야. 잡아 뜯긴 것도 아니고, 찔린 것도 아니야. 무언가에 물린 거지. 정확히는 집혔다고 해야 하나. 뭔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산에서 빠져나가야 해.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절대로 여기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니까."

지수는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위기를 감지한 그녀의 꼬리털이 서서히 부풀기 시작했다.

"······그럼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한세아가 침음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문제였다. 어디로 가느냐.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남산으로 가야 하는 건 변함없는 목표.

그러나 거기에 김청수와 그의 동생들을 포함해서는 안 되었다. 몸이 약한 아이들은 힘든 여정을 버틸 수 없을 테니.

다 같이 빠르게 이동하려면 차량을 통해 가는 방법뿐인데, 험비의 배기음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비록 낮에 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낮에 한정되는 이야기이고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지금이 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밤에 이동하지 않은 이유는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이 아니던가.

아무리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있다고 해도 주변이 어두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배기음이 걸리적거린다고 차량을 포기하고 가는 것도 안 된다. 그럼 또 다친 까마귀를 어떻게 운반하느냐 라는 문제가 생기고 마니까.

결국 차량을 타고, 시야를 제한하지 않는 낮이 되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오전에 보았던 아파트 단지?'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던 근처의 아파트 단지. 건물의 상태가 폐건물 수준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가건물인 관리사무소보다는 내구성이 훨씬 좋겠지.

하지만 나와 한세아는 그곳을 지나치기만 했을 뿐, 건물 내부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그 아파트 단지 또한 산의 영역에 포함되므로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수리산의 영역에서 벗어나기에는 좀 더 멀리까지 가야 했다. 그리고 병목안골을 넘어서는 장소는 완전히 미지의 장소나 다름없기도 했다.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캠핑장에 도착한지는 이제 이틀째에 불과하건만, 숨통을 조여 오는 위험은 우리의 생각보다 한 박자 빠르게 찾아오려는 듯했다.

아무래도 겨우 이틀이 아닌 무려 이틀이나 지났다고 해야하는 모양이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건 자명했지만, 섣불리 이동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는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까마귀를 치료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긴 했어도 서둘러 움직이는 것만이 살 길이리라.

쉽게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을 속으로 원망한 나는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애들은 차에 태우고, 그러고 나서━"

그 순간,

드-드-드-드-드-드!

산이 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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