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라포밍-222화 (223/497)

Chapter 222 - 222. 흰개미 (1)

드-드-드-드-드-드-드━!

거세게 울리는 땅의 진동.

"꺄아아악!"

"으아앙! 형아!"

"오빠야···!"

그것은 나, 지수, 예린, 한세아, 김청수와 그의 동생들의 발밑을 강하게 흔들고 있었다.

사방으로 퍼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흔들림은 점차 가까워지며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타닥- 타다닥-

덜덜 떨리는 땅에 의해 모닥불의 장작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주홍 불씨를 사방으로 토해낸다.

"큭-! 아까 말한 대로 일단 차에 타! 애들부터 태워! 예린이 너도 들어가! 어서! 세아씨가 옆에서 도와주십쇼!"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도끼 자루를 지지대 삼아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외쳤다.

땅이 울린 순간 '벌써?'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언제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이미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넵···! 가자! 손 절대로 놓치면 안 돼!"

한세아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좌우로 휘청거리는 그녀는 어떻게든 박수린, 박채연, 김대현, 최민수, 예린을 데리고 굳게 닫혀 있는 차 문을 향해 움직였다.

"끄으윽! 까악아! 눈 좀 떠 봐···!"

근처에는 응급 처치만 간신히 끝낸 까마귀를 일으키려는 김청수가 있었다. 그는 기절한 까마귀를 질질 끌어서라도 가려는 듯했지만, 무게가 무게인지라 까마귀는 쉽게 끌리지 않았다.

"야! 비켜! 한 쪽씩 잡아당기게! 하나, 둘 하면 신호 맞춰서 끄는 거야!"

아이들을 한세아와 같이 챙기던 지수가 그 모습을 보다 못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녀는 까마귀의 날갯죽지 부분을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비록 날개에 상처가 있긴 해도 지금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이대로 두고 가면 까마귀는 결국 죽고 말겠지. 그때 가서 후회하면 늦는다. 붕대로 동여맸으니 조금은 버틸 수 있을 터다.

드드드드드-!

지진이 점점 강해진다.

콰드드드득!

단단한 아스팔트와 지각을 쩍쩍 가르는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후우-!"

내가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땅을 헤집으면서 접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아니, 확실하게 위험할 것이 분명한 그것을 곧장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도 했고.

덜컹!

"어서 들어가! 상자는 대충 한쪽에 치워 두면 돼!"

"네에···!"

"아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수린아···!"

"응···!"

한세아와 꼬맹이들은 이제 차 문을 열고 타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뒷좌석에 실려 있는 짐들을 최대한 밀어내며 빈자리를 만들었다.

"김청수! 사정 봐줄 것 없이 꽉 묶어! 가다가 떨어지지 않게! 괜히 아플 것 같다고 느슨하게 묶으면 떨어지니까!"

"알겠어요, 누나!"

지수와 김청수도 까마귀를 차 천장 위에 올려놓고 밧줄로 칭칭 묶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매듭 묶는 실력은 일 전에 본 적이 있었으니 알아서 잘 할 것이라며 당장은 그리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해서 사방을 경계하는 것뿐. 모든 인원이 차에 타고 나면 그제야 내가 운전석으로 오를 차례였다.

나는 겨우 균형을 잡아가며 조금씩 차량으로 이동했다.

분명 시간은 까마귀를 치료하고 나서부터 10분도 채 흐르지 않았을 터인데, 체감상 흘러가는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 마음이 조급해진 탓에 그렇게 느껴지고 있는 모양이다.

"됐다! 아저씨! 됐어! 아저씨도 이제 얼른 차에 타! 빨리 여기 빠져나가자!"

"현우씨! 애들 다 태웠어요! 얼른 와요!"

지수와 한세아가 다급하게 손짓하면서 나를 불렀다.

휘청-

나는 바로 몸을 돌려 차량 운전석으로 뛰었다.

돌연 지각이 비틀려 어긋난 탓에 넘어질뻔했지만, 지팡이로 쓰고 있는 도끼 덕분에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달릴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쾅! 콰앙-! 쾅!

사방으로 퍼지고 있던 무언가가 기어코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를 헤집고 다니는 것의 정체는 바로 나무뿌리. 우리가 있는 곳이 산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정체였다.

하지만 나를 당황시킨 것은 그것의 정체가 아니었다. 지면을 터트리면서 솟아오른 나무뿌리들이 한 개나 두 개에서 그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터어엉-!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심지어 그것들은 험비의 하단부를 가격해 육중한 차체를 한순간 붕 뜨게 만들기도 했다. 나무뿌리는 다행히 차체를 뚫지는 못했어도 가진 힘이 원체 강했기에 차를 위로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덜컹! 덜컹!

쿵━━!

"아흐으윽!"

이질적으로 허공에 띄워졌던 험비는 곧장 지상으로 추락하게 되었고,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부스스······

후두둑- 후두둑-

주변에 휘날리는 흙먼지들 사이로 희미하게 아른 거리는 불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감추기를 반복한다. 나무뿌리가 솟은 직후, 파괴된 모닥불이 사방으로 퍼트려진 흔적이었다.

"콜록! 콜록!"

입을 가리고 잔기침을 토해내는 지수.

"지수야!"

나는 서둘러 다가가 그녀의 몸을 살폈다.

하필이면 차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 험비가 나무뿌리에게 가격을 당한 탓에, 살짝 걸친 상태에 있었던 지수가 바깥으로 튕겨 나가게 되고 말았다.

그녀의 옆에 있던 까마귀는 어찌어찌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차체 천장에 단단히 묶여 있었던 덕분에 튕겨 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무사한 건 그뿐이었다.

"아야···."

"으앙···, 아파요···."

옆으로 넘어진 험비로 인해 차량 안에서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니까.

"괜찮아?!"

"어흑-. 어, 어찌어찌 괜찮은 것 같은데. 콜록!"

다행히 지수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바닥에 부딪치기 전 재빠르게 몸의 방향을 바꿔 착지한 덕분인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착지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는지 그녀는 자꾸만 앓는 소리를 흘렸다.

"세아씨! 괜찮습니까!"

"네엑···! 애들도 괜찮아요!"

"청수야! 나와서 차 세우는 것 좀 도와줘!"

"알았어요, 형!"

"지수야, 일어나! 차를 원래대로 일으켜야 해!"

"콜록-! 알고 있어···! 콜록, 콜록!"

나는 일행의 무사함을 확인한 후 지수와 함께 거리가 벌어진 험비로 마저 달려 나갔다.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넘어진 차량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차량없이는 산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변을 쭉 훑어보았다.

사방을 가득 메운 둘레 3m가량의 나무뿌리들, 흙먼지와 함께 떠다니는 작은 불씨들, 펄럭이는 방수포, 매달린 로프, 무너진 관리사무소.

어둑어둑한 밤이 되었어도 위에서 해를 대신해서 내려오는 환한 달빛 덕분에 참상을 똑똑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엉망으로 변한 병목안캠핑장의 모습을 말이다.

이윽고.

"밀어어-!"

"흐아앗!"

험비 뒤편에 도착한 나, 지수, 김청수는 뭐라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차량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앞으로 밀었다.

내가 일부러 내리지 못하게 막은 한세아와 아이들도 일말의 도움을 주려는 듯 우리가 힘을 주는 방향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예전이었다면 남성 둘과 여성 하나로 육중한 군용 차량을 밀어 바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매우 힘든 일이었겠지.

하지만 푸른 입자로 몸을 강화시킨 지금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충분히 단시간 내에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정확히는 그래야만 했다.

파지직!

스파크를 튀기던 지수는 차체를 앞으로 미는 와중에도 주위를 메운 나무뿌리들을 계속 노려보았다.

"···서둘러야 해. 빨리! 더 빨리! 나온다고!"

그녀는 귀를 쫑긋거리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꼬리의 털이 순식간에 부풀어 크기를 키웠다.

왜, 라는 의문은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지수만큼 청각이 좋진 않은 나와 김청수에게도 그녀가 들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미친 듯이 나무가 갉히는 소리가.

끼기기긱-

쿵!

귓가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우리는 필사적으로 있는 힘껏 차량을 들어 올려 두꺼운 네 개의 타이어가 땅을 딛게 만들었다.

"꺅!"

먼지가 잔뜩 묻어 불투명해진 유리 창문 너머로 머리를 감싸 쥔 한세아와 아이들이 보인다. 크게 흔들리는 차량에 있었던 탓에 머리를 보조 손잡이에 부딪힌 모양이다.

그리고 그 순간,

쩌어어억······

땅 위를 뚫고 나온 두터운 나무뿌리들이 기다렸다는 듯 전부 갈라졌다. 마치 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달깍- 짤깍짤깍-

곧게 뻗은 더듬이 한 쌍이 불쑥 위로 올라왔다. 날카로운 검은 집게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거의 동시였다.

"······이런 씹."

이어서 제 존재를 완전히 드러낸 것을 보고 아연실색해진 나는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옆에 있는 김청수와 지수는 헛숨을 크게 들이켰다.

염주가 수십 개씩 이어 붙여진 듯한 곧게 뻗은 더듬이, 무언가를 집고 자르기에 특화된 날카로운 검은 집게, 붉은 기가 맴도는 머리, 통짜로 이루어진 가슴과 배 부분, 세 쌍의 다리에 촘촘하게 나 있는 강모.

찌르르르르르!

흰개미였다.

···그것도 변종으로 변하면서 거대해진 흰개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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