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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23화 (224/497)

Chapter 223 - 223. 흰개미 (2)

흰개미.

찌르르르-!

변종 흰개미가 나무뿌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친 듯이 나무 갉히는 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살이 잔뜩 오른 몸체를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넝쿨과 함께 말이다.

처음에는 오직 흰개미만이 보였으나, 뒤이어 외골격에 박혀 있는 줄기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라도 그나마 가시 넝쿨이 아니라는 게 다행일까.

"빨리 차에 타!"

"으, 응!"

나, 지수, 김청수는 곧장 정신을 차리고 마저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쿵!

낙하하듯 뿌리에서 빠져나온 흰개미 하나가 길목을 막지만 않았더라면.

츠르륵-

속이 텅 비게 된 뿌리에서 넝쿨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예전 수원역에서 보았던 명품관의 남자처럼 줄기가 몸체를 파고들어간 모양새였기에 변종 흰개미가 움직이자 같이 딸려온 듯했다.

"이런 씹! 김청수! 머리 숙여!"

"헉!"

나는 김청수가 황급히 몸을 숙이는 것을 본 것과 동시에 도끼를 휘둘렀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자리를 이탈해야만 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건 한 마리에 불과할 뿐이지만, 주변을 채운 다른 나무뿌리에서도 흰개미가 나타날 수도 있었으니까.

쐐애액!

콰직!

크기에 비해 연약해 보이는 외골격을 단숨에 박살 내며 파고들어간 도끼날.

푸우욱!

뚜우욱- 뚜우욱-

강제로 벌려진 틈에서 매우 끈적하고 누런 체액이 새어 나온다.

단단한 고무같은 질감과 찐득한 감촉이 도끼 자루를 통해 전해지면서 불쾌감이 오소소 일어났다.

코를 꽉 막히게 하는 텁텁한 냄새가 맡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변종 흰개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끼이이이이!]

도끼가 준 고통을 느낀 것인지, 쉴 새없이 빠져나가는 체액을 느낀 것인지 순간 몸을 동그랗게 말며 몸부림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흐읍!"

도끼를 회수한 내가 바로 이타를 날리려던 찰나,

"아저씨, 안 돼! 아래에서 오고 있어!"

지수가 나를 뒤로 강하게 잡아끌었다. 감각이 좋은 그녀가 지면 아래에서 접근하는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부스스스스···

배수구에 물이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자잘한 흙 알갱이들이 어느새 생긴 구멍 안으로 순식간에 우수수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요란하지 않고 조용했으나, 오히려 그 탓에 우리의 불안감이 가중되는 것이 느껴진다.

이윽고, 밤하늘보다 어두운 구멍이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부에 대기하고 있던 변종 흰개미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각다각-다각다각-

검은 집게를 짤깍-짤깍-거리면서,

염주 모양의 더듬이를 좌우로 흐느적거리면서,

체액이 빵빵하게 담긴 몸체를 버티고 있는 세 쌍의 다리를 번갈아 내디디면서.

"···진짜 가지가지하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래서 빨리 움직였던 건데, 이제 안전하게 도망치기에는 글렀다.

이미 우리는 완전히 포위된 상태.

그렇지 않아도 험비가 나무뿌리를 밀어버릴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서지 않았건만. 이렇게 된 이상 저 흰개미들을 전부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지수가 제때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저 구멍에 빠지고 말았겠지. 수많은 흰개미 변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바로 저 구멍에 말이다.

"대체 뭐야! 왜 갑자기 개미가···!"

소방 도끼를 손에 꽉 쥔 지수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는 흰개미 떼들을 보며 외쳤다.

"···이거 그냥 개미 아니예요, 누나. 흰개미예요."

입술을 잘근잘근 씹은 지수가 터트린 짜증을 김청수가 정정해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것은 그의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뭔 소리야. 이름이 그건데 개미가 아니라고?"

"······흰개미는 개미보다 바퀴벌레에 더 가깝거든요."

"바퀴벌레?!"

지수가 몸을 부르르 떨며 경악했다. 그녀의 꼬리털이 오소소 일어나 크기를 부풀렸다. 이미 있는대로 부풀어 있던 꼬리털은 이제 더 이상 부풀 여유도 없었다.

그래, 흰개미는 명칭만 개미일뿐, 사실상 바퀴목에 분류되는 곤충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처리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으니.

"청수야! 조용히 하고 너도 차에 들어가! 세아씨! 청수 들어가면 차 문 닫고 버티십쇼! 여긴 저랑 지수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네, 넵!"

김청수가 험비에 타고 차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나와 지수는 등을 맞댄 채 주변을 에워싼 흰개미들을 노려보았다. 바싹 굳은 지수의 등은 그녀가 잔뜩 긴장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것들이 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지금 우리의 퇴로를 막고 있는 흰개미는 병정개미라는 것이다. 붉은 기가 도는 머리와 특유의 검은 집게는 병정 개미의 상징이었으니까.

'···나무 속을 전부 갉아 먹었던 게 이것들 유충이었나?'

아니면 다른 흰개미들일 수도 있었다. 그것들의 주식은 나무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식흔이 보였으니 유충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저씨, 이거 다 상대할 수 있어?"

긴 숨을 천천히 내뱉는 지수.

파지직-

그녀의 몸 주위에는 스파크가 튀기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신호하면 지수는 언제든 뛰쳐나가 흰개미들을 죽일 수 있으리라.

나는 눈을 부릅뜨며 최대한 자세하게 녀석들의 모습을 살폈다. 가시 넝쿨. 내가 푸른 불을 피우는 데에 제한이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없어야만 했다.

'···없다.'

다행히 아무리 둘러보아도 송곳 같은 검은 가시가 붙어 있는 넝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어두워져도 놈들의 외형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주변을 인지할 수 있었기에 확실했다. 환한 달빛 덕분이었다.

"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불로 한마리씩 확실하게 태워 볼 테니까 지수 너는 차에 달라붙는 것들 위주로 처리해 줘."

"알았어, 해볼게."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몰라도, 나와 지수가 현재 인식한 수는 대략 20마리. 체고가 1m, 몸길이가 3m에 달하는 녀석들이지만, 갑피가 물렁한 탓에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는 판단이 섰다. 턱에 달린 검은 집게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았다.

찌르르르!

따다다다닥-!

변종 흰개미들은 섣불리 다가오지 않고 배를 떨어 진동 소리를 내기만 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귓가를 불쾌하게 간지럽히는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형!! 저것들 가만히 두면 안 돼요! 흰개미들은 진동으로 대화를 나눈다고요!"

굳게 닫힌 차 문을 살짝 열어 김청수가 크게 외친 것은.

"······!"

"······!"

나와 지수는 그의 말에 서로 눈을 마주쳤고, 뭐라 할 새도 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우리가 상황 파악을 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흰개미들이 몸을 떤 이유가 그거일 줄은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분명 우리에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겠지.

나와 지수가 간단하게 작전을 짜는 것처럼 흰개미 떼들도 우리 일행을 어떻게 상대할지 각을 재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간을 끄는 것은 서로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화르르륵!

파지직!

나는 푸른 불을, 지수는 스파크를 각자 들고 있는 도끼에 둘렀다.

파르르-!

우리의 접근을 알아차린 흰개미 떼의 더듬이가 흔들린다.

짤깍! 짤깍!

놈들의 검은 집게가 나무 대신 인간의 뼈와 살을 끊기 위해 닫혔다 벌리기를 반복한다.

쐐애애액!

콰직! 콱!

지수가 차량 주변을 빙빙 돌면서 대화를 중단한 흰개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녀의 도끼가 달빛을 반사시킬 때마다 변종 흰개미들의 몸체는 형편없이 찌그러져 끈적한 체액을 토해냈다. 겁없이 다가간 놈들이 픽픽 쓰러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뚜욱- 뚜욱- 뚜욱-

터진 갑피의 틈으로 송골송골 맺힌 체액은 이내 껍질을 타고 떨어져 흙 위에 안착했다. 찐득찐득한 체액에 흙, 먼지 따위의 알갱이들이 달라붙어 색을 완전히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화르르륵!

나는 푸른 불을 휘감은 도끼로 흰개미들을 하나, 둘씩 처리해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근처를 전부 불바다로 만들고 싶었으나, 그 정도 수준은 아직 내 능력 범위 밖이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가진 푸른 입자의 양이 제한되어 있는 이상 애매하게 불을 흩뿌리는 것보다 한마리씩 확실하게 끝장내는 것이 최선이리라.

[끼이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 불은 변종 흰개미들의 처리에 효과적이었다. 까마귀처럼 검은 입자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변종이면 어쩌나 싶었건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불쑥 고개를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나와 지수가 처리하는 흰개미들의 수만큼 흰개미들이 나무뿌리에서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변종 흰개미들의 사체가 끝없이 쌓인다. 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언덕이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나와 지수의 숨이 거칠어졌다. 압도적인 물량 앞에는 장사가 없다던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러했다.

변종 흰개미들의 각 개체는 약한 편이었지만, 뒤에서 보충되는 수를 나와 지수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갑피 안에 담긴 체액이 절반 이상 빠지기 전까지 움직이는 놈들인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만큼 생명력이 질기다는 이야기였다.

짤깍-짤각-

놈들은 여전히 집게를 움직이며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당장은 자신들이 밀려도 결국에는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 높게 떠 있던 달은 점점 뒤로 넘어가며 고도를 낮추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꺄아아아악!"

"으아앙! 엄마···!"

"저리 가, 이 벌레 새끼야!"

차량 내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끼기기긱!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에 흰개미 한 마리가 방향을 틀어 험비 차 문을 강제로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험비였기에 잠시나마 버틴 것이지, 일반 차량이었다면 진작에 차체가 통째로 찢겨 나갔을 정도로 집게의 무는 힘이 강해 보였다.

끼기긱!

이내 완전히 뜯겨 나간 차문.

쿵!

문짝을 물고 있던 흰개미는 머리를 흔들어 허망하게 분리된 문을 멀리 던져 버렸다. 놈은 더듬이로 차체를 살살 더듬다가 집게를 차량 내부로 집어넣었다.

그러나.

철컥-

흰개미가 차 안쪽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보다 한 박자 빠르게 놈의 머리에 대진 것이 있었다.

"청수야! 애들 귀 좀 막아줘! 현우씨랑 지수씨도 좀 더 물러나요!"

잔뜩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달랜 한세아가 묵빛의 권총을 들며 크게 소리쳤다.

그녀가 가진 푸른 조각의 내부에 있는 푸른 입자들이 회전하는 것이 보인다. 입자들은 얼핏 선으로 보일 정도로 맹렬하게 돌고 있었다.

"······!"

"으꺅!"

급하게 험비를 향해 움직이고 있던 나는 그 빛을 보자마자 지수와 함께 몸을 낮췄다.

그와 동시에.

타-아아앙!

순간 눈이 멀 정도로 밝은 푸른 섬광이 터져 나와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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