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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25화 (226/497)

Chapter 225 - 225. 흰개미 (4)

"콜록! 콜록! 채연아! 수린아! 대현아! 민수야!"

주위를 잠식한 흙먼지를 밀어내며 격한 기침하던 김청수.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동생들부터 찾았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구멍 안쪽을 향해 엎어져 있는 험비를.

"예린아!"

험비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지수는 다행히 솟구친 나무뿌리의 여파를 피할 수 있었고, 덕분에 상황 파악을 빨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곧장 차량에게 다가가 안쪽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예린을 우선 끄집어냈다.

"······."

예린은 총기수입을 하느라 기름기가 잔뜩 묻은 손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간신히 잡은 아이들의 손을 놓친 손이기도 했다. 눈앞에서 아이들을 놓친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했다.

"크으윽···, 세아씨. 괜찮습니까?"

나는 팔뚝을 깨물고 있는 검은 집게를 빼내며 물었다. 나와 한세아가 날아가는 와중에도 변종 흰개미들은 꿋꿋이 움직여 기어코 한 방 먹인 것이다.

후두둑-

푸른 입자로 보호한 덕분에 잘리지는 않았으나, 찢긴 피부 사이로 핏물이 주르륵 떨어진다.

"아흐으···. 저는 괜찮은- 혀, 현우씨! 피! 피 나요!"

머리가 흔들리는지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한세아는 코를 자극하는 혈향에 경악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흙먼지로 범벅된 상태였다.

나는 말없이 괜찮다는 손짓을 전했고, 턱짓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다각다각다각다각-

여전히 변종 흰개미들이 남아 있었다. 끝도 없어 보이던 그것들은 어느새 눈대중으로 셀 수 있을 정도까지 수가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파르르르···

겉은 매우 멀쩡해 보이나, 속은 체액이 빠질 대로 빠져 엉망이 되어 버린 놈들은 뒤집어진 채 경련하는 중이었다.

불투명한 갑피가 둥글게 말리고, 여섯 개의 관절 다리가 덜덜 떨리는 모습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광경이었다.

지수가 넝쿨의 원줄기를 끊어 내고, 내가 곁줄기를 상당수 불태운 성과였다.

"······."

"······."

나와 한세아는 힘겹게 일어나 변종 흰개미들을 노려보았다. 그런 우리 옆으로 지수, 예린, 김청수, 까마귀가 다가왔다. 멍하니 아이들의 흔적만 매만지고 있던 김청수는 까마귀에 의해 강제로 끌려왔다.

동생들을 잃은 충격에 정신 차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은 아직 살아 있는 흰개미들을 죽이는 것이다. 그래야 동생들을 구하러 갈 수 있지 않겠나.

살아 있는 채로 구멍에 빠졌고,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다. 빠르게 움직이면 아니, 빠르게 움직여야만 끔찍한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으리라.

후들후들 거리는 다리로 어떻게든 땅을 지탱하고 일어선 우리는 심호흡을 한 후, 각자 무기를 들어 병정 개미들에게 겨눴다.

바로 그때.

찌르르르르···!

찌르르!

살아남은 놈들이 배를 진동시켜 울림을 만들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진동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흰개미들은 몸을 돌려 나무뿌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곳에 더 이상 볼일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처럼.

다각다각다각-

철퍽- 철퍽-

그것들은 주변에 죽어 가는 제 동료들마저 외면한 채, 갈라진 뿌리 내부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내 마지막 한 마리까지 사라지자, 남은 건 놈들이 움직일 때마다 흘러내린 채액과 수분이 빠져나간 껍데기뿐이었다.

"하아···."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세아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방아쇠에서 빠져나온 손가락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상황이 일단락되었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 것과 동시에 몸에 힘이 풀린 모양이다.

타타탓-!

"얘들아!"

김청수는 땅을 박차고 문짝이 뜯어진 험비를 향해 내달렸다. 그는 손을 더듬거리며 차량 내부를 훑었지만,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청수야."

"흐윽, 저 때문이예요. 제가 자꾸 망설여서 동생들이 빠진 거라고요. 안 돼··· 제발···.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흑. 여기서 나가자고 할 때 빨리 나갈 걸···.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김청수!"

나는 두서없이 말을 하는 김청수를 크게 불렀다. 그가 큰 충격을 받은 건 이해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었다.

"······네?"

목이 잔뜩 쉰 소리로 멍하게 답하는 김청수.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야. 빨리 쫓아가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정신 차려. 가만히 울고만 있으면 상황이 해결 되냐?"

나 또한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잡했다. 허나 절대 티 내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면, 김청수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아니요···. 하, 하지만··· 저 혼자서는···."

김청수는 주변을 가득 메운 흰개미들의 사체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네가 왜 혼자야? 우리는 왜 빼? 아니면 이대로 그냥 갈 줄 알았어? 도와줄게."

이제 와서 내뺄 생각이었자면 처음부터 아이들을 돕지 않았겠지.

"그래, 우리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뚝 그쳐. 우는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어느새 예린과 함께 옆으로 다가온 지수가 말을 툭 내뱉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예린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강제로 동생들을 데려간 흰개미들에게 복수할 생각이 만만인 듯했다.

[까아아아악!]

자기도 빼놓지 말라는 듯 긴 울음소리를 내지른 까마귀.

"······."

김청수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 주저앉았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가 끅끅대는 울음소리와 함께 악문 이 사이로 새어 나온다. 나는 말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양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

"후우···."

도와 준다고 짐짓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말은 했으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사방을 점거한 변종 흰개미들의 사체이 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 수를 짐작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나, 지수, 한세아, 까마귀가 정신없이 해치우다 보니 이렇게 쌓인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나온 병정 개미들의 수가 이러할 진데, 굴 안쪽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수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미로처럼 얽혀 있을 굴에서 길은 또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현우씨, 죄송해요."

불쑥 한세아가 우울한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네? 뭐가요?"

"저기 차고에 휘발유통 있던데 거기에 총 쏴서 불이라도 지를 걸 그랬어요. 그랬다면 더 빨리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애들도 안 잃어 버리고요···."

"아."

나는 그녀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기름통에 총을 쏴서 화재를 일으키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거 총으로 쏴도 의미는 없었을 겁니다. 그냥 구멍이 뚫리기만 할 뿐이거든요."

영화는 영화일뿐, 현실이 아니었다.

실제로 휘발유통에 총알을 다다다 쏘아도 영화처럼 불이 옮겨붙지는 않는다. 액체 상태인 휘발유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그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간혹 휘발유에 불이 붙는 것은 충분한 열을 받아 기화된 것이 연소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밀폐된 공간이라는 가정 하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러니 한세아가 일반 탄이 아닌 강화 탄을 쏘더라도 결과는 같았겠지.

"그, 그렇구나···."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세아씨는 할 만큼 한거예요.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요."

"넵···!"

"근데 총알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제 6탄창 남았어요. 아, 권총까지 합치면 9탄창이네요."

"9탄창이라···."

권총의 3탄창 중 1탄창은 강화탄이 들어 있는 탄창이었다. 그 외 나머지는 전부 일반탄이 들어 있었다. 소총의 6탄창은 10발씩 들어 있었으니 한데 모으면 20발 들입 3탄창이 나오고.

'···강화탄이 많아도 결국 쏠 수 있는 건 한번에 한번뿐이야.'

억지로 잡고 쏘려면 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권총은 완전히 고장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일단 권총부터 쓰려고요. 아까 상태 잠깐 살펴봤는데 내구도가 확 떨어진 느낌이 들었거든요."

한세아는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세아씨가 잘 판단해서 써 주십쇼. 항상 믿고 있습니다."

"에이, 제가 뭘요. 아무튼 전 간단하게 정비하러 갈게요. 곧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하잖아요. 다른 장비도 챙겨야 하기도하고."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험비로 들어갔다. 구멍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차량은 진작에 나와 까마귀가 안전하게 빼낸 후였다.

바로 그때.

"형!"

김청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형! 역시 이것들 제 생각대로 불안정해요! 껍질이 이상하게 열을 잘 받더라고요! 그래서 낮에 안 보였나 봐요! 흰개미는 열에 약하니까!"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진정하고 말해 봐. 열에 약하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나는 우선 그가 숨을 충분히 쉴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허억, 허억-. 네! 흰개미들이 나무를 먹고, 그 나무를 소화하려면 배 속에 있는 특별한 미생물이 필요한데, 그건 또 고온을 받으면 죽어 버리거든요. 미생물이 죽으면 나무를 소화 시키지 못 하는 흰개미는 결국 굶어 죽게 되는 거죠."

우리가 그를 도와 아이들을 구하는 것에 힘을 실어 주겠다는 걸 들은 김청수는 자신이 아는 정보가 맞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확인 과정을 거쳤고, 지금은 그가 알아낸 것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원래는 체온이 30도가 넘어가야 체내 미생물들이 죽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흰개미들이 커지면서 버틸 수 있는 열 한계가 내려간 것 같아요. 지수 누나한테 도움받아서 가스 불로 지져 봤는데 순식간에 달궈졌으니 그럴 가능성이 커요!"

"······."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우리나라 흰개미는 수분 저장 능력이 없어서 반드시 습기가 있는 곳에서만 살 수 있고요. 그래서 대신 수분을 공급해주는 넝쿨이 있었던 거죠! 그것들이 날개를 노린 건 당연하겠지만 비행을 하려고 했던 거고요! 채연이랑 수린이 날개는 적은 힘으로도 몸을 띄우게 할 수 있으니까. 또··· 또···."

"좋아. 대충 알았어. 나머지는 내려가면서 이야기하자. 다 듣고 내려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잖아."

"네, 네!"

나는 흰개미의 외갑에 박혀 있던 넝쿨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꿀렁거리며 체액을 내부로 공급해주던 넝쿨 줄기. 마치 전기를 내보내 기계를 작동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비행을 위한 날개의 목적은 아마 다른 곳으로 세력을 퍼트리기 위함이겠지.

내가 위험을 감수하려는 이유 중 하나도 그거였다. 이대로 위로 올라간다면 사방으로 퍼진 변종 흰개미들이 번번이 우리의 앞길을 막을 것이 분명하니까.

미리 방제를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후우- 아저씨,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겼어. 챙기긴 했는데···."

"했는데?"

"저기 굴에 들어가면 숨은 어떻게 쉬어? 깊게 내려가면 숨쉬기 힘들 텐데."

내 부탁을 들은 지수가 휘발유가 들어 있는 드럼통과 관리사무소 한 켠에 방치되어 있던 부탄 가스통을 들고 오며 물었다.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저만 믿어요!"

지수의 물음에 예린이 손을 번쩍 들며 답했다.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가 재빨리 입을 연 것이다.

예린은 유리병에서 곧장 푸른 가루를 한움큼 집어 나, 지수, 한세아, 김청수, 까마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까지 뿌렸다.

확연하게 희미해진 달빛을 받은 푸른 가루들이 미약하게 반짝거린다.

그와 동시에.

휘이이이이-

한 줄기 바람이 우리의 몸을 휘감은 것이 느껴졌다. 허공을 떠다니는 흙먼지를 몰아낸 바람은 신선한 공기를 가져다주었다.

"······!"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꼭 동생들 되찾아 올 거예요! 제가 언니니까!"

예린은 다부진 얼굴로 일행을 둘러보았다. 아이는 한 명 한 명씩 눈을 제대로 맞추었다.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아이의 눈빛에 우리의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꼭 구하자."

"네!!"

[까아아악!]

예린과 함께 힘차게 울음소리를 내뱉은 까마귀의 등에는 잡다한 짐들이 들려 있었다.

본래 까마귀는 지상에 두고 가려고 했으나, 고집스레 따라오려는 몸짓을 계속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까마귀는 날개에 작지 않는 부상을 입었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에 합류했다. 녀석 또한 아이들을 구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김청수와 그의 동생들을 지켜 왔던 건 까마귀였으니까.

비록 말하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까마귀가 있어 다행이었다.

"가자. 내려가서 최대한 빨리 구하고 돌아오는 거야."

"넵!"

이윽고, 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끝마친 우리는 어두운 굴속으로 몸을 던졌다.

여전히 달이 높게 떠있는 하늘을 뒤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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