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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30화 (231/497)

Chapter 230 - 230. 흰개미 (9)

타탓- 타타탓!

푸른 스파크를 튀기며 쏘아진 지수는 이내 크게 도약했다. 그녀의 발아래로 키틴질의 파도가 스쳐 지나간다.

지수의 머리에 있는 헤드 랜턴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려 공동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원형으로 넓게 퍼지는 빛은 그동안 시선이 닿지 않았던 곳을 비추며 어두운 공간을 잠시뿐이지만 환하게 밝혔다.

넝쿨 줄기에서 분사되는 수분이 빛무리를 어지럽게 반사시킨다.

"흐앗!"

그녀는 어느새 바닥을 점거한 변종 흰개미들의 머리통을 밟아가며 앞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콰직!

아래로 내디뎌지는 발은 밟은 병정 개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단단한 워커의 밑창이 놈들의 외갑을 인정사정 없이 눌러 비틀었다.

-펑!

단숨에 으깨진 키틴질 장갑. 균열이 생긴 그것은 이내 안에 담고 있던 체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지수의 몸 주변을 떠다니는 푸른 스파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찌르르르르르르!

사방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

짤각! 짤깍! 짤각! 짤깍!

귓가를 자극하는 집게가 벌어졌다가 닫히는 소리.

공간을 가득 메운 병정 개미들은 머리를 치켜들어 어떻게든 지수를 잡으려고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잡히지 않는 지수 탓에 여왕 개미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 고요했던 것이 마치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세아씨!"

그 모습을 본 나는 까마귀 등에 올려진 드럼통을 서둘러 내리며 한세아를 크게 불렀다.

한세아가 쏜 강화탄 덕분에 길이 열렸고, 지수가 병정 개미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는 지금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강화탄은 여왕 개미에게 유효타를 날리지 못했다. 그러나 내 예상보다 더 많은 변종 흰개미들을 처리해주었기에 충분히 만족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수가 조금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테니 말이다.

탕! 탕! 타앙-!

한세아는 재빨리 권총을 집어넣고 소총으로 변종 흰개미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놈들이 픽픽 쓰러진다.

그렇게 생긴 빈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흰개미에 의해 자리가 채워졌다.

"저는 여기서 애들 지킬 테니까 현우씨는 앞으로 가요! 가서 지수씨 도와줘요!"

"부탁합니다! 까마귀 너도 여기 남아서 세아씨랑 청수 도와줘! 할 수 있지?"

[까악!]

믿어보라는 듯 힘차게 대답하는 까마귀.

"끄응!"

나는 드럼통을 짊어진 채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묵직한 기름통에서 휘발유가 출렁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후각을 자극하는 휘발유 냄새.

그리고 사방에서 풍기는 끈적한 체액 냄새.

이것은 보험이었다.

혹시라도 왕을 죽이는 데 실패하고 왕을 죽였어도 내분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우리가 탈출하는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보험.

그러니 길이 열려 있는 동안에 드럼통을 최대한 깊숙이 옮겨 놓아야 했다.

중간중간 내 앞길을 가로막는 병정 개미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한세아의 지원사격에 죽어 나자빠졌다.

그렇게 꾸준하게 한걸음, 한걸음씩 꾸역꾸역 전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사사삭-

한세아가 처리해주고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변종 흰개미들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기름통을 내려놓고, 도끼를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쐐애액!

콰직!

검은 집게를 크게 벌리며 달려드는 병정 개미를 처리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장, 벽면, 바닥을 가리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흰개미들과 넝쿨들.

여전히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알을 수십 개씩 쏟아 내는 거대한 살덩어리.

살아 있는 변종 흰개미들은 염주 모양의 더듬이를 이리저리 흔들어 나와 지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중이었다. 간혹 배를 떨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꾸르륵-

세 쌍의 다리가 위로 향한 채 뒤집어진 흰개미들에게서는 체액이 꿀렁꿀렁 흘러나와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고, 강제로 뜯어진 넝쿨 줄기는 실수로 놓친 호스 마냥 투명한 물을 마구잡이로 흩뿌리고 있었다.

동료들의 사체가 바닥에 깔려 있어도 그것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침입자를 배제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공동 중앙 부분에 조금 못 미치는 위치.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갔으면 여왕 개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도달한 것만 해도 큰 성과였다.

'한 방 크게 먹이기에는 충분해.'

나는 그리 생각하며 도끼날의 뭉툭한 부분으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캉-!

후우웅-!

빠르게 퍼져나가는 기묘한 파장에 의해 나를 노리고 달려들던 병정 개미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아그작! 빠각! 까드득!

아직 넘어지는 충격을 흡수할 수는 없는지 곧장 바닥에 부딪힌 놈들의 다리가 엉망으로 꺾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집게가 부딪힐 때면 머리와 가슴을 잇는 외피가 터져 죽는 건 덤이었다.

그렇게 죽은 것들은 최소치로 어림잡아도 스무 마리.

그러나 뒤에서 새로이 밀려오는 키틴질의 파도에 의해 그 흔적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만큼 흰개미들의 물량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찰박찰박!

"큭!"

나는 황급히 옆으로 몸을 굴렀다. 뒤에서 병정 개미 한 마리가 빈틈을 노리고 달려든 까닭이었다. 검은 집게를 활짝 벌린 채.

콱-

진흙밭을 파고들어가는 집게.

콰직!

털썩-

놈은 집게를 빼서 나를 재차 공격하려고 했으나, 한 박자 빠르게 휘둘러진 내 도끼에 의해 다시는 머리를 들 수 없게 되었다.

탕! 탕! 탕!

이어지는 발포음이 내 근처의 흰개미들을 죽이는 것과 동시에 나는 푸른 불을 휘감은 도끼로 전방 하단을 그었다.

화르르륵!

습기가 가득 찬 공간인 것과 상관없이 크게 타오르는 푸른 불은 변종 흰개미들에게 연결된 넝쿨들을 사정 없이 태우기 시작했다. 활활 타는 푸른 불은 이내 줄기를 남김없이 태워 버리며 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병정 개미들은 한번 휘청거리기만 했을뿐, 기운을 잃고 쓰러지지는 않았다.

'······역시.'

지상과 달리 습기가 충분한 곳이기에 수분 공급 장치가 끊어져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톡톡히 보고 있는 듯했다.

물론, 넝쿨이 없는 이상 줄기를 다시 연결하기 전까지는 죽어 가기는 하겠지.

그러나 그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 문제다. 단시간이 아니라면 결국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이니까.

점점 막막하게 변하는 상황을 직접 겪고 있으려니 문득 앞서 나간 지수가 걱정되었다.

'···어디까지 간 거야.'

쏜살같이 내달린 그녀는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자꾸만 내 시선을 흰개미들이 몸으로 가리는 것도 그녀를 찾는 걸 방해하는데 한몫하고 있었다.

내가 간신히 볼 수 있는 건 사방에서 점멸하는 손전등 빛에 의해 역겨운 형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흰개미들의 외형뿐이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한지라 그것이 내 손전등 빛인지 지수의 헤드 랜턴이 내뿜는 빛인지 구분할 겨를이 없었다.

바로 그때.

꾸드드드득!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여왕개미가 불안한 소리를 내며 비대하게 팽창한 배를 억지로 움직이려고 했다. 넝쿨을 불태우는 푸른 불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모양이다.

여왕 개미는 어떻게든 물러나려고 했으나 그것은 의미없는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었다. 비대한 산란 기관이 생긴 이후부터 제 몸을 온전하게 가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콰직!

찌익!

그래도 크기가 크기인지라 여왕 개미가 몸을 크게 꿀렁거릴 때마다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병정 개미들이 무차별적으로 짓눌려 죽어 나갔다.

찌르르르르!

여왕 개미의 발작에 흰개미들은 시끄럽게 배를 떨어댔다. 갑작스러운 여왕 개미의 난동에 당황한 눈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묘한 파장보다 눈에 보이는 푸른 불이 위협적으로 보였던 것 같았다.

눈이 퇴화한 다른 흰개미들과 달리 생식충인 여왕 개미는 시각 기관이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완전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 나는 푸른 불을 휘감은 도끼로 한 번 더 위협을 가했다.

그때였다.

"아저씨!! 여기로 넘어 와! 그리고 불은 절대로 쓰지 마! 여기 가시 넝쿨 있어! 이거 불 태우면 안 된다면서!"

감감무소식이던 지수가 나를 다급하게 부른 것은.

"······!"

내가 헛숨을 들이킨 사이 지수의 외침이 이어졌다.

"애들도 여기 있으니까 김청수나 까마귀랑 같이 여왕 개미 뒤로 넘어오면 돼!"

뒤로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의 말을 들은 까마귀와 눈이 마주쳤다. 까마귀는 부리로 흰개미 하나를 터트린 참이었다. 녀석의 분홍 혀가 끈적한 체액을 핥았다.

그리고.

푸드더덕!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까마귀는 곧장 날아올라 나와 여왕 개미가 있는 위치로 내려 앉았다. 나름 변종이라 그런지 벌써 짧게나마라도 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된 모양이다.

"너 말고! 네가 오면 어떡해, 임마!"

[까아아악!]

까마귀는 고집스레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아니, 하아···. 그래, 일단 넘어가자. 세아씨! 청수야! 까마귀 좀 데려갈게!"

"어서 가기나 해요!"

대답을 돌려주는 한세아의 얼굴에는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옆에서 삽 한 자루를 꼬나쥔 김청수가 도와주고 있는 중이었어도 말이다.

"언니! 바람으로 밀어낼 게요!"

전방에 푸른 가루를 뿌려 만들어 낸 바람으로 끊임없이 달려드는 변종 흰개미들을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무너져도 진작 무너졌겠지.

지금 상황을 일단락 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빨리 아이들을 구하고, 지수가 흰개미 왕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까앙-!

나는 도끼로 드럼통에 구멍을 낸 후 까마귀와 함께 아직도 발작하고 있는 여왕 개미의 산란 기관을 밟아서 뒤로 넘어갔다.

여왕 개미를 구태여 죽일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당장은.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되고 있는 여왕 개미의 난동을 멈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것의 발작에 역으로 병정 개미들이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이게 뭐야."

뒤로 넘어간 나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니 다행히 아직 살아 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있었다.

다만 4명의 아이들이 놓인 위치에 문제가 하나 있었을 뿐.

보글··· 보글···

초록색 기포가 올라오는 이상한 물로 가득 찬 구덩이 아니, 못의 중앙에 아이들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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