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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238화 (239/497)

Chapter 238 - 238. 다시 아이들 (4)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김청수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저흰 산 타고 의왕시로 내려갈 테니까 형 누나들은 차 타고 위로 올라가요."

"아니, 왜? 우리가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내가 아까 한 말 때문에 그래?"

"여기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나머지는 저희끼리 할 수 있어요."

"잠깐, 잠깐만! 일단 돌아가고 나서 다 같이 이야기해보자."

나는 그의 말을 급하게 중단시켰다. 도저히 나 혼자로는 김청수의 고집을 꺾기에 역부족이라 판단한 까닭이었다.

그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동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눠보면 분명 태도가 달라지리라.

나와 김청수는 물에서 빠져나와 지수, 예린, 한세아,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그래? 잘됐네. 그편이 더 빠르니까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다."

일련의 이야기를 들은 지수가 꼬리를 까딱이며 한 말이었다.

"지수야!"

나는 놀라 그녀를 크게 불렀다. 말려도 모자랄 판에 부추기면 어쩌자는 것인가. 믿고 있었던 아군이 나를 배신한순간이었다.

"아니, 아저씨. 여기까지 도와 줬으면 충분하지. 우리가 애들을 끝까지 돌봐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

"우리 여기 오기 전에, 정확히는 역에서 불발탄이 터졌을 때 기억해? 그때 뭔가 엄청 위험한 게 다가오고 있었잖아. 나무 인간들 따위가 아닌 진짜로 위험한 거."

기억난다. 거대한 진동을 사방으로 퍼트리며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던 무언가. 그것이 무엇인지 형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럴 여유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만난 변종들보다 위험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바닥을 딛고 있는 발에 전해지는 불길한 느낌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그게 뭔지는 몰라도 역에서 터진 포탄 소리에 이끌렸다가 까마귀가 유인해 줘서 우리 겨우 살았었잖아. 근데 다 같이 차 타고 이동하다가 그게 다시 이끌려지면? 까마귀가 유인을 실패하면? 그럼 다 같이 죽는 거야."

"지수씨 말은 결국 그거죠? 아이들이 밑으로 가는 동안 우리가 위에서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시간을 벌어 준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한세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예린과 무어라 대화를 나누며 뛰어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람쥐썬더!"

"뱁새킥!"

"꺄아!"

아이들은 몸에서 아주 미약한 스파크를 튀기며 놀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능을 갑자기 각성한 것 같아서 조금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신구들에게서 푸른 입자 반응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예린이 가지고 있던 부모님의 유품처럼 반지나 목걸이 같은 장신구에 이능이 깃든 듯했다.

"네, 언니. 그러니까 애들은 걸어서 가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까마귀도 있으니까 흔들 다리인지 출렁 다리인지 그것도 쉽게 넘어갈 수 있을걸요? 그냥 한 명씩 태우고 날아가면 되니까요. 어제 기름통 드는 거 보니까 아이 한 명 정도 등에 태우는 건 문제도 아닌 것 같고요."

지수는 그 말하면서 옷에 묻은 흙들을 탈탈 털었다. 흙이 잔뜩 묻은 꼬리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살살 털었다.

다행히 털에 엉긴 것이 아니라 붕대 위에 묻은 흙들이었던 덕분에 흙 알갱이들은 금방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오해가 풀린 나는 이제서야 지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기껏 물로 씻은 것이 무색하게 흙먼지로 다시 뒤덮인 상태였다. 작업을 워낙 격하게 진행한 터라 이렇게 된 모양이다.

차량을 누르고 있거나 내부에 차 있던 흙더미들은 거의 다 치워져서 이제는 위로 꺼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내부에 담긴 물자 또한 대부분 무사했고.

"어···, 미안."

"그러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었어야지. 근데 뭐 괜찮아. 그것보다 김청수."

"···네?"

김청수는 지수의 부름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야기는 옆에서 다 들었잖아. 나는 일단 이렇게 생각했는데. 너는?"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었어요. 더 부담을 드리기도 죄송하고요. 동생들에게는 제가 아까 미리 말해 놨으니까 인사만 나누면 돼요."

"아저씨, 들었지? 그렇대. 헤어지는 시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하더라. 어차피 갈 거라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도 차 타고 빨리 이동하자. 우리가 가야 애들도 움직일 것 같으니까. 출발이라도 빨리해야 캠프에 늦지 않게 도착하지 않겠어?"

"어휴···. 그래, 알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어 하는 사이에 이별 준비가 착착 진행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들이 그렇다고 하니 여기서 내가 고집을 부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망설일 시간도 충분치 않으니 이쯤에서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옳은 일이리라.

지수의 말마따나 김청수와 그의 동생들이 해가 지기 전에 캠프에 도착하는 것이 제일 좋기도 하고 말이다.

출발 시간이 늦어 아이들이 위험한 길 한복판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다면 낭패다.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되었다.

그리 생각한 내가 문이 열린 운전석으로 향하던 그때.

"아, 운전은 제가 할게요! 현우씨는 쉬고 있어요!"

"엇!"

한세아가 나를 막으며 먼저 운전석에 올라탔다. 미처 내가 말릴 틈도 없었다.

기기기기기긱-

운전석에 앉은 그녀는 곧장 열쇠를 돌려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엔진에 시동이 걸리느냐 걸리지 않느냐가 앞으로 이동 계획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가 탄 차량을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여나 엔진에 문제가 생겨 연기가 치솟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키기긱-!

···부르릉

매우 불안한 소리가 잠시 이어지더니 다행히 시동이 걸린 험비.

텅-! 텅-!

차량이 힘차게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흙먼지가 잔뜩 일었다.

"콜록! 됐다! 예린아! 먼저 차에 타!"

"응···!"

예린은 막상 헤어질 때가 되니 발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건지, 자꾸 아이들을 보며 몸을 멈칫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는 까마귀에게 무어라 말을 마지막으로 하더니 도도도 뛰어와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잘 간직하고 있어!"

예린은 까마귀 목에 걸린 천 주머니를 보다가 차에 타고 있는 일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자그마한 작별 선물까지 쥐여준 모양이다.

"애들 잘 부탁해. 캠프 도착하면 함부로 사람 물건 가져가지 말고. 뭐, 네가 원하는 티만 내도 어지간한 건 다 주겠지만."

나는 까마귀의 부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슬쩍 눈을 아래로 내리자 녀석의 천 주머니에 소량의 푸른 가루가 담긴 것이 보였다. 예린이 준 선물의 정체였다.

[까아아아악!]

자세는 늠름하지만 울음소리는 여전히 경박한 까마귀. 녀석은 걱정 하지말라는 듯 날개를 크게 펼쳐 보였다. 날개에 있던 상처는 어느새 다 나은 후였다.

"···응? 뭔가 너 더 커진 것 같다? 아니, 확실하게 커졌네. 또 뭐 주워 먹었어?"

기분 탓이 아니라 까마귀는 어제보다 조금 더 커진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체감이 확 될 정도로 체구가 높아진 것이다.

"아직 성장이 끝난 게 아닌가?"

이대로 계속 성장한다면 몸집이 얼마나 커질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지금도 아이 둘을 등에 태워도 거뜬할 정도이건만.

[···까악?]

녀석도 이유는 모르는지 머리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발뺌하는 눈치가 아닌 걸 보니 정말로 모르는 모양이다.

'나쁜 일은 아니긴 한데···.'

김청수와 아이들을 지켜 주는 까마귀이니 덩치가 크면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없지 않겠는가. 녀석이 착한 심성으로 남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저씨! 얼른 타! 이제 갈 거야!"

차에 탄 채 나를 부르는 지수.

"알았어!"

나는 황급히 그녀가 있는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올라탔다. 뒷좌석에는 예린과 지수가 있는 까닭이었다. 자리가 좁은 건 아니었지만 한세아 혼자 앞에 둘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현우 형, 잘 가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까아아악!]

뒤따라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이자 이별 인사를 전하는 아이들. 그리고 날개를 퍼덕이는 까마귀 한 마리.

"그래. 너희도 얼른 가. 길은 우리가 알려 준 대로 철도길 따라서 쭉 내려가면 돼. 그게 그나마 안전하거든."

서서히 웃음을 되찾고, 기운을 차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괜스레 울컥해진 나는 애써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아이들을 살렸다.

우리가 아이들을 살렸다.

마음 깊이 차오르는 충족감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채웠다.

"조심해서 가!! 나중에 또 보자!"

휑하게 뜯어진 차 문을 넘어 고개를 내민 한세아, 예린, 지수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부르르릉-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차 내부를 울리는 것과 동시에 험비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격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아이들과 이별하면서 생긴 아쉬움을 속으로 달래던 예린은 어느새 곯아떨어져 있었다. 고개가 푹 숙여진 아이는 이내 지수에 의해 자세가 고쳐졌고, 좀 더 편안한 숨소리를 내쉴 수 있게 되었다.

도롱도롱 작게 코를 고는 예린은 귀를 자극하는 소음에 귀를 쫑긋거리면서도 절대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만큼 어제 하루 동안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는 의미였다.

하긴, 어른인 우리조차도 힘들어 죽겠건만. 아이는 오죽하겠는가.

"···아이들. 잘 가겠죠?"

한세아가 아이들이 있을 뒤편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차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아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잘 갈 거고, 무사히 도착할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운전에 힘 써 주세요. 세아씨."

"맞아요. 잘 가겠죠, 세아 언니."

나와 지수는 피로에 잔뜩 부어 오른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답했다.

"넵, 알았어요···."

한세아는 영 안심이 되지 않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려고 했으나, 이내 운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아 김청수, 박수린, 박채연, 김대현, 최민수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본 아이들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기운을 많이 차린 모습이었다.

지수가 말했던 것처럼 나, 지수, 예린, 한세아가 힘들게 올라왔던 고가교도, 포탄들의 밭도, 화물 열차로 이루어진 출렁 다리도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 까마귀가 대부분의 난관을 쉽게 해결해 줄 테니까.

그리고 아이들을 강제로 붙들고 있던 미련도 사라진 참이다. 주박을 벗어 던진 아이들은 이제 멈추지 않을 터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처럼.

그러니 아이들은 잘 가고 있을 것이고, 무사히 의왕시 캠프에 도착할 것이다.

이대로 아이들을 보내는 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영영 헤어지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마쳤을 때, 다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덜컹- 끼기기기-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차량 엔진이 불안한 소리를 토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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